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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약속의 씨 (창21-24장)
발의무리
2007. 6. 3. 20:59
이삭 : 약속의 씨(창 21장 - 24장)
이삭의 탄생은 지금까지의 성경의 흐름을 볼 때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삭이 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언약이 수포가 되
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 - 셋 - 노아 - 셈 - 아브라함으로 연결되
는 거룩한 씨의 계보는 자칫 그 후사가 없어 끊어질 위기에 직면해 있었
습니다. 이 후사를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롯
과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이 등장하지만 모두 제외되고 하나님은 아브라
함과 사라에게서 출생한 이삭이 약속의 씨로 세워질 것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계시해 주고 있음을 볼 때 이삭의 출생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지 짐작을 하게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약속의 씨인 이삭이 출생하게 됨으로 거
룩한 씨의 계보가 이삭에게까지 연결됨으로 창 3:15 이후부터의 언약이
연결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믿음이 돈독하여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아들 이삭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
다. 아브라함은 이 일에 있어서 이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생산함으로
실패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은 어디까지나 하나
님의 의지의 결과이며 전적으로 아담(은혜의 언약)과 노아(보존의 언약)
와 맺은 약속의 성취이며 은혜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약속의
아들을 가장 기다렸던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의 열심이 지나쳐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생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인물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여종과 그 아들(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네 아들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고 하시
며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고 선언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아담 - 셋 - 노아 - 셈 - 아브라함에게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삭과 그의 후손에게만 연결될 것이며 이 일을
추진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이처럼 의미 깊은 출생이었기 때문에 그 출생의 근원 역시 초역사적
입니다. 이미 나이 늙어 생산할 능력이 없는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져 생
산이 중단된 사라 사이에서 약0속의 씨 이삭이 출생한 것은 마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한 것과 같은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이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귀한 아들이었건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십니다(22장).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요구이지만 이삭이 누구의 소유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한 것입
니다. 우리는 아들을 바치기로 한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 말고 더 깊은 고통이 가슴 속에 있
었습니다. 아들을 잃는 고통보다도 더 깊은 고뇌가 그의 가슴 속에 흐르
고 있던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관점들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아들을 바치려는 아버지의 심정만을 찾아보기 위한 성경이라면 성경에서
구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부성애를 그리기 위해
성경에서 이 이야기를 길게 서술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성경
외의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부
성애를 그리고 있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계획
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혹한 요
구를 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때 비로소 성경에 담겨진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약속의 씨"입니다. 이 이삭이 죽어버
린다면 지금까지 연연히 흘러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우리는 이 역사를
구속사라고 합니다)는 그 맥이 0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
에게 약속한 거룩한 씨의 후손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를 구원할 여자의 후손(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소망까지도 없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고 기뻐한 것은 친아들을 얻은 기쁨보다는
이러한 맥락에서 구세주를 기다리는 기쁨이 훨씬 컸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아담, 노아와 맺은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점에서 그 기쁨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무척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전 인류의 구원의 약속의 성취가 이삭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
의 후손에게 메시야가 탄생할 것인데 그 이삭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시험인지 하나님 자신이 더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
을 염두에 두어야만 본문 22장의 깊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꺼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비록 이삭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2:8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
을 믿음의 조상으로 일컫게 하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입니다. 비록 이
삭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신 구원의 계획만은 바꾸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승리
를 보장받고 있는 것입0니다.
22:16-18을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
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네 씨는 누구일까요? 천하만민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
을 그 씨는 누구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아담 이후 수 많는 약속의 자녀들
이 바라는 그 씨가 누구인가는 점점 더 밝히 보여질 것입니다. 한 가지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않았
는데 하나님도 그 아들 독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중 깊은 곳에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
지도 못할 축복을 갖고 있는 것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
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일이란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후 사라가 죽었습니다(23장). 그러자 그 주민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좋은 곳을 골라 사라를 장사하도록 배려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
라함은 에브론이라는 사람에게서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을 구입하여 가족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아브라함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그
땅을 사들인 것입니다. 이후 아브라함 자신도 이곳에 몸을 묻었고 이삭
과 야곱도 이곳에 몸을 묻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 이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더 먼 훗날엔 여기에서 다윗이 왕으로 즉위합
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그 땅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을 바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24장에서는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얻고 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20 이하에 갑자기 리브가의 출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 족보는 나훌의 족보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
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곧 24장에 와서 이삭
이 나홀의 소생 중에서 아내를 구하는 점을 보아 22:20의 족보가 의미없
이 등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리브가를 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은 계획을 하나님이 추진하고 계시는 것은 이삭
의 결혼을 통하여 약속의 씨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삭의 배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치밀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그의 나라에 속한
백성은 모두 이와같은 방법으로 예비하시고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24
장 60절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라고 하는 리브가의 오라버니들의 무의식적인 축복
도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큰 민족
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22:17의 축복과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세한 부분에서도 그의 계획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의 탄생은 지금까지의 성경의 흐름을 볼 때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삭이 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언약이 수포가 되
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 - 셋 - 노아 - 셈 - 아브라함으로 연결되
는 거룩한 씨의 계보는 자칫 그 후사가 없어 끊어질 위기에 직면해 있었
습니다. 이 후사를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롯
과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이 등장하지만 모두 제외되고 하나님은 아브라
함과 사라에게서 출생한 이삭이 약속의 씨로 세워질 것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계시해 주고 있음을 볼 때 이삭의 출생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지 짐작을 하게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약속의 씨인 이삭이 출생하게 됨으로 거
룩한 씨의 계보가 이삭에게까지 연결됨으로 창 3:15 이후부터의 언약이
연결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믿음이 돈독하여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아들 이삭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
다. 아브라함은 이 일에 있어서 이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생산함으로
실패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은 어디까지나 하나
님의 의지의 결과이며 전적으로 아담(은혜의 언약)과 노아(보존의 언약)
와 맺은 약속의 성취이며 은혜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약속의
아들을 가장 기다렸던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의 열심이 지나쳐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생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인물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여종과 그 아들(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네 아들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고 하시
며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고 선언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아담 - 셋 - 노아 - 셈 - 아브라함에게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삭과 그의 후손에게만 연결될 것이며 이 일을
추진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이처럼 의미 깊은 출생이었기 때문에 그 출생의 근원 역시 초역사적
입니다. 이미 나이 늙어 생산할 능력이 없는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져 생
산이 중단된 사라 사이에서 약0속의 씨 이삭이 출생한 것은 마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한 것과 같은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이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귀한 아들이었건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십니다(22장).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요구이지만 이삭이 누구의 소유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한 것입
니다. 우리는 아들을 바치기로 한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 말고 더 깊은 고통이 가슴 속에 있
었습니다. 아들을 잃는 고통보다도 더 깊은 고뇌가 그의 가슴 속에 흐르
고 있던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관점들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아들을 바치려는 아버지의 심정만을 찾아보기 위한 성경이라면 성경에서
구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부성애를 그리기 위해
성경에서 이 이야기를 길게 서술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성경
외의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부
성애를 그리고 있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계획
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혹한 요
구를 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때 비로소 성경에 담겨진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약속의 씨"입니다. 이 이삭이 죽어버
린다면 지금까지 연연히 흘러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우리는 이 역사를
구속사라고 합니다)는 그 맥이 0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
에게 약속한 거룩한 씨의 후손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를 구원할 여자의 후손(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소망까지도 없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고 기뻐한 것은 친아들을 얻은 기쁨보다는
이러한 맥락에서 구세주를 기다리는 기쁨이 훨씬 컸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아담, 노아와 맺은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점에서 그 기쁨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무척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전 인류의 구원의 약속의 성취가 이삭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
의 후손에게 메시야가 탄생할 것인데 그 이삭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시험인지 하나님 자신이 더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
을 염두에 두어야만 본문 22장의 깊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꺼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비록 이삭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2:8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
을 믿음의 조상으로 일컫게 하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입니다. 비록 이
삭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신 구원의 계획만은 바꾸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승리
를 보장받고 있는 것입0니다.
22:16-18을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
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네 씨는 누구일까요? 천하만민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
을 그 씨는 누구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아담 이후 수 많는 약속의 자녀들
이 바라는 그 씨가 누구인가는 점점 더 밝히 보여질 것입니다. 한 가지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않았
는데 하나님도 그 아들 독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중 깊은 곳에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
지도 못할 축복을 갖고 있는 것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
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일이란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후 사라가 죽었습니다(23장). 그러자 그 주민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좋은 곳을 골라 사라를 장사하도록 배려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
라함은 에브론이라는 사람에게서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을 구입하여 가족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아브라함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그
땅을 사들인 것입니다. 이후 아브라함 자신도 이곳에 몸을 묻었고 이삭
과 야곱도 이곳에 몸을 묻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 이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더 먼 훗날엔 여기에서 다윗이 왕으로 즉위합
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그 땅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을 바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24장에서는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얻고 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20 이하에 갑자기 리브가의 출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 족보는 나훌의 족보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
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곧 24장에 와서 이삭
이 나홀의 소생 중에서 아내를 구하는 점을 보아 22:20의 족보가 의미없
이 등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리브가를 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은 계획을 하나님이 추진하고 계시는 것은 이삭
의 결혼을 통하여 약속의 씨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삭의 배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치밀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그의 나라에 속한
백성은 모두 이와같은 방법으로 예비하시고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24
장 60절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라고 하는 리브가의 오라버니들의 무의식적인 축복
도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큰 민족
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22:17의 축복과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세한 부분에서도 그의 계획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