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원 1과 율법주의의 본질
제2단원 율법주의
제1과
율법주의의 본질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3-24>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럴 때,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23-24). 반면에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의 참다운 은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매우 그럴 듯한 신앙의 모양을 갖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곳에는 진정한 성령님의 임재와 통치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신앙의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 위에 개인과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우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율법주의를 분별하여, 그것을 우리의 삶에서 철저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 신앙은 복음의 모조품으로서 복음의 가장 큰 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는 사실 십자가의 복음에서 우리를 떨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리고 율법주의 신앙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됩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그만큼 무섭습니다.
율법주의는 거짓신앙체계입니다. 그것은 마치 정교하게 제작된 위조지폐처럼, 참다운 복음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신앙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이해가 매우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이 살아나서 오늘의 한국 교회에 온다면, 어떠한 대우를 받으리라고 당신은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고로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시간을 지켜 금식하고 기도하며, 구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가장 신앙 좋은 사람으로 특별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교회에서 가장 중심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우리 역시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관과 비슷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던 신앙관과는 매우 다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그 바리새인들을 매우 심하게 질책하시고 꾸짖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이 뱉어내신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율법주의적인 이해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은 성도들인 우리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열매만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온갖 신앙적인 언어와 형식과 모양은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재와 능력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열매는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는 반면, 세상 사랑함과 죄는 가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를 적게 해서가 아닙니다. 헌신을 적게 해서가 아닙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많은 종류의 기도와 많은 종류의 헌금이 있는 나라도 드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거짓신앙체계인 율법주의적인 이해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도 가장 근본적으로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헌신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이해를 버리고, 올바른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의 신앙체계입니다.
율법주의는 신앙이 어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율법주의 신앙에 가장 빠지기 쉬운 사람들은 초신자들보다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장로와 안수집사 등 소위,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하나의 신앙체계입니다. 즉, 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말합니다. 물론 잘못된 이해를 말하죠.
⑴ 율법주의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요한복음 8:44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아버지가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던 거짓 사도나 선지자들 뒤에 누가 있다고 했습니까? (고후 11:13, 갈 3:1)
(고린도후서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갈라디아서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답은 둘 다 사탄입니다. 물론 이 말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내놓고 사탄을 섬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관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율법주의는 신약 구약 성경시대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등 모든 시대에 걸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짓신앙체계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것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며, 참다운 신앙을 왜곡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이나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동일한 신앙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정확하게 그들은 율법주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의 본질
율법주의는 한마디로 줄여서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를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신보다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신뢰하고, 마음의 상태보다 외부적인 복종을 강조하며, 인격체이신 성령님보다 규례와 규칙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주일예배, 십일조, 성찬식, 세례, 성경이나 성경공부, 기도 등 우리 신앙의 모든 면이 율법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의식(rituals)으로서 상징(symbols)이지 결코 실재(reality) 혹은 본질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의 실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2:16-17을 읽으십시오.
(골로새서 2:16-17)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6절의 ?이것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들?을 성경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본체는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사, 그리고 신앙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다 그림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알맹이요, 이러한 의식들은 알맹이인 예수님을 싸는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는 알맹이인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즉 예수님과의 교제보다 이러한 의식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지키고 행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율법주의는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고, 하나님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⑴ 성경도 율법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성경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의 모든 신앙과 삶과 사역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을 잘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나 성경공부도 율법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입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한편으로 피자 선전지와 같습니다. 여기 피자 선전지 한 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피자 그림이 매우 먹음직스럽게 그려져 있고, 피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그 선전지를 아무리 많이 보고, 읽고, 그 내용을 외웠다고 해서, 그것이 곧 피자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피자를 먹은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우리를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길잡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외웠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피자 선전지를 달달 외우고도, 피자를 전혀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공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개인적인 체험이나 느낌만을 중요시 여긴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미혹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경의 본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하기를 힘쓰기보다, 성경 공부하는 자체를 중요시한다거나 또는 자신이 성경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고 또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소위 성수주일이나 십일조나 기도 등 모든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나 성경공부도 율법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매우 좋은 예는 앞 단원에서 살펴본 대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신학교 교수들과 같은 성경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이 말하는 실재이신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7-38)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율법주의로 변질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보다 옳은 교리를 더 중요시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일정한 규칙들을 잘 지키는 것(conformity to rules)?으로 전락되어 버리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분리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우리에게서 걷히며, 우리는 영적인 실재(reality)에 대해 눈이 멀게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소위 성수주일하고, 십일조하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잘 지키는 것을 신앙의 주요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근본적인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 율법주의 종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 주위에는 신앙의 모양은 많으나 하나님의 실재와 생명은 없는 채, 하나님의 임재는 걷히고,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서 떠나 있으며, 우리에게는 세상의 온갖 죄악이 가득합니다.
이 과의 요점
♡ 율법주의는 사탄으로부터 나온 거짓신앙체계입니다.
♡ 율법주의의 본질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 우리 신앙의 모든 중요한 부분들이 다 율법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율법주의 신앙에 빠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며, 주님에게서 끊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