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교재/십자가의복음

제2단원 3과 율법주의 특징(2)

발의무리 2007. 6. 19. 08:42

제2단원 율법주의

제3과

율법주의 특징(2)


2. 영적인 우월감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가 남들보다 영적으로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영적인 우월감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본질을 규례와 규칙에 대한 외부적인 복종에 두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잘 지킨 자기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리와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이 점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세리로부터 멀리 따로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누가복음 18:11-12)


여기 어떤 성도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예수 믿은 이후로 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 기도 한 번 빠진 적이 없습니다. 사업하면서 부수입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립니다. 주일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성도가 다른 성도보다 더 영적으로 월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가 율법주의 신앙에 빠진 증거입니다.


위의 예에서 당신은 왜 그 성도의 그러한 자세가 율법주의 신앙에 빠진 증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의견을 달리합니까?  아래에 써보십시오.


                                                                       


                                                                       


                                                                       


성수주일이나 십일조, 기도나 봉사는 우리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질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위의 성도가 올바른 신앙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헌신과 봉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와 할 것입니다.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해 늘 갈급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는 절대로 상대방에 대해서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의 본질을 규례와 규칙들을 외부적으로 잘 지키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자세는 바로 자기-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율법주의 신앙에 빠진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 전통에 의존


율법주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전통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전통에 대한 의존입니다. 물론 모든 전통이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초한 전통은 좋은 전통입니다. 그리고 좋은 전통은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신앙의 문제는 규례와 절차를 중요시하는 전통에 집착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역시 바리새인들의 삶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3에서 그들에 대해?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20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날이 무슨 날이었습니까?(9절)


                                                                      


예수님은 누구의 감동으로 그 병자를 고쳤습니까?(19절)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습니까?(16, 18절)                        


예수님은 참으로 안식일을 범했습니까?                                  


예수님이 38년 동안이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특히 예수님은 이 일을 자신의 임의로 하지 않으시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해서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도 아니고, 그 능력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에 들려서 그러한 일을 행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진실로 안식일을 범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안식일관을 범했을 따름입니다. 실제로 안식일을 범한 것과 그들의 안식일관을 범한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그 환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함으로써,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께서 성경에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전혀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명목하에 일을 세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과 관습에 의하면, 물건을 옮기는 것이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구체적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에서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이 부분에 해당하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예배에 대한 이해입니다. 만약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예배 순서와 절차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에 빠진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교회의 예배 순서와 절차가 자기가 과거에 다니던 교회의 것과 다르거나, 그 예배 순서에 자기가 기대하는 한 가지가 빠지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돌아 나옵니다. 그들은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특히 찬양과 경배건 성령의 사역이건 성령의 움직이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반대합니다.


4. 할례 받지 못한 마음


율법주의 신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할례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집착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감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세입니다. 자기의 과거 경험과 사회적인 인식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시면 그렇게 따라가고자 하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이 자세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사야 66:2 세 번 주의 깊게 읽고 아래에 써 보십시오.

(이사야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할례 받지 못한 마음, 즉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전혀 없는 강팍한 마음(unteachable spirit)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성령을 거역하게 되어 있습니다.?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사도행전 7:51). 반면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마음의 자세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세입니다. 즉, 배우고자하는 자세(teachable spirit)를 가진 자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자기들이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비추어 보고자 하는 겸손함도 없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정죄했습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은 비슷한 상황에서 매우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에게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이 오실 메시야인가를 확인했다고 생각합니까? 마태복음 11:1-6을 읽고 옳다고 생각하는 답에 표 하십시오.

(마태복음 11:1-6)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  감옥에 들어가니까 신앙이 떨어져서

  □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자기가 생각한 메시야관과 달라서

  □  기타                                              


세례 요한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달라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2절을 보아도 우리는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나오는 세례 요한이 외친 예수님에 관한 메세지의 내용을 보아도 그 점이 확인됩니다(예, 마 3:1-13 참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말세에 오시는 심판의 주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자기가 생각한 바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해 받은 계시가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임의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따라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계시는 부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자기가 받은 계시에만 기초하여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물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배우고자 하는 자세, 즉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2장 이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해서 자신이 하시는 일들이 구약에 예언된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일들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오시는 메시야가 만왕의 왕과 심판의 주로 오시는 분만이 아니라, 동시에 섬기는 종으로도 오시는 분임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례 요한은 실족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깊고 온전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6에서 말씀하신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성령의 역사에 반드시 실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과의 요점


♡ 율법주의 신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영적인 우월감입니다.

♡ 율법주의 신앙은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성령을 거역합니다.

♡ 율법주의 신앙의 특징은 할례 받지 못한 강팍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