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단원 3과 하나님의 징계
제5단원 주님을 사랑하는 것
제3과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호세아 시대, 예레미야 시대,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 정확하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아무리 종교적인 의식과 헌신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생명이 그들에게 넘칠 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징계와 심판에 대한 그릇된 이해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일도 없이 그저 평탄하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신앙생활 잘못하는 증거로, 그리고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없이 평탄한 것을 신앙생활 잘하는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그릇된 이해입니다.
히브리서 12:6-8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징계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히브리서 12:6-8)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로마서 1:28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시는 것이 무엇의 표시입니까?(18절 참조)
(로마서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는 달리 하나님은 자기의 받으시는 아들을 그리고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실한 마음대로 온갖 죄 가운데 거하도록 내어버려두십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지 않고, 그들의 삶 속에 죄가 가득한데도, 그들의 삶이 그저 평탄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은 오늘날은 더 이상 심판하거나 징계하지 않으신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심판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신약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구약에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약 시대이건 신약 시대이건 변함이 없으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말라기 3:6은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 13:8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4:6-7을 읽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래에 써 보십시오.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사랑이실 뿐 아니라(요1서 4:8),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을 영원히 확증하셨습니다(로마서 5:8, 요1서4:10-11). 그런데 하나님은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고 다루십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10-11)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는 사랑과 공의, 은혜와 심판, 주권과 신실하심이 공존하십니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난 장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이와 같은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건전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중 어느 한 쪽만 강조하고 다른 한 쪽을 무시하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방종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오늘날 심각하게도 그러한 자세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팽배합니다.
특히 부흥의 때마다 하나님은 늘 자신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부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흥의 시대마다 언제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영광스러운 속성이 이처럼 기이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서로 떼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을 함께 두어야 합니다. 함께 동시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면서 동시에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는 언제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는 동시에 사랑하시며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는 동시에 거룩하시며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이것들을 나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302쪽, 생명의 말씀사)
징계의 목적
히브리서 12:5-11을 읽고, 징계의 목적을 써 보십시오(10-11절 참조).
(히브리서 12:5-11)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앙의 본질을 떠날 때 우리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설 때, 하나님의 거룩함에도 참여할 수 있고, 또 의의 평강한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을 들으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사업이 망하거나 자녀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연상합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그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중 일부입니다. 다음을 읽고, 그 징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성경구절의 번호를 써 넣으십시오. 헨리 블랙가비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에서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심 이사야 1:15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심 요한계시록 2:5
말씀의 기근을 보내심 아모스 8:11-12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게 하심 마태복음 13:14-15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심 이사야 5:5
죄의 결과를 충분히 감당케 하심 예레미야 7:13-15
멸망시키거나 제거하심 누가복음 19:43-44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요한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모스 8:11-12)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이사야 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예레미야 7:13-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누가복음 19:43-44)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하노라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기도 응답 받는 것을 몸무게 30kg 빼는 것보다 더 어렵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세상의 가장 좋은 아버지가 하나님께 비하면 악한 자에 불과할 만큼 좋으신 아버지로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특히 이사야 1장에 보면, 그 시대에 얼마나 신앙의 의식과 헌신이 가득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정확하게 오늘날이 그렇습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소중했으며,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는 것을 그의 생명을 잃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출 33:16).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걷힌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하나님의 말씀하신 말씀의 기근은 오늘날 북한이나 중국에서와 같이 성경을 갖기 원해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남한과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다림줄의 철저하게 가리워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날 때,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무서운 징계 중 하나는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신앙생활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지만, 그들은 그 사실도 그리고 왜 그러한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나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거할 때, 그 보호막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 보호막은 걷힙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보호막이 걷혔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목회자들의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당하게 하시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멸망에 이르게도 하십니다. 여기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실은 영적인 분별력의 부재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최종적인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고 받는 날은 하나님의 방문의 날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분별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 판단함으로써 오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급기야 죽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최종적인 심판이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 가운데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증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 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신앙의 의식들은 가득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다음 과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리들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그 외에 어떠한 다른 길도 없습니다.
이과의 요점
♡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 하나님의 징계는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라는 촉구입니다.
♡ 하나님의 징계는 다양합니다.
♡ 오늘날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징계의 증거들이 가득합니다.
♡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답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