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교재/십자가의복음

제8단원 2과 예수 그리스도

발의무리 2007. 8. 23. 09:30
 

제8단원 십자가에 의한 삶

제2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십자가의 복음 외에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능력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세상적인 지혜나 말의 설득력을 가지고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실적인 진리의 나열도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격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1:16, 고린도전서 1:17-18, 고린도전서 1:23-24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곳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지 써 보십시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고린도전서 1:17-18)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메세지를 우선 복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그 복음을 십자가의 도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중에는 그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한 복음은 인격체 되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그 분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요한1서 1:1-3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복음이 인격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 구절을 보면,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이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전한 복음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들었을 뿐 아니라,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보았고, 또 손으로 만져본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전한 복음이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이었다면, 그는 그것을 단순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말하는 생명의 말씀, 영원한 생명은 모두 똑같은 것으로서, 그가 들었을 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인격체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4단원 1과를 복습하십시오.  복습하기 전에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듣는 것은 그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조명으로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⑴ 잭키 풀린저의 예


잭키 풀린저는 홍콩에서 마약 중독자들이나 창녀들과 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녀의 사역을 통해서 때로는 20년 혹은 30년 동안 마약에 중독되었던 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있습니다. 많은 갱단 두목들과 단원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은퇴한 창녀들이나 젊은 창녀들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회복되고 치유된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과거의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해 봉사합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전임으로 봉사하는 사람들만 해도 100명이 넘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대가로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봉사합니다. 온 삶으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길거리에 버려진 그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진리를 듣고, 그것에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그들은 그렇게 놀라웁게 구원받고, 치유 받고, 변화된 것입니다.


잭키 풀린저의 사역이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만, 우리의 모든 사역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섬김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거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열매들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역 뿐 아니라 어떠한 사역이든지, 그것이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의 토대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거기에서 어떠한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 지신 그 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그 분을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⑴ 주님을 아는 만큼 주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2:1-5을 자세히 읽으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1-5)


우리는 이 구절에서 매우 특이한 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2절에 나오는󰡐�알다󰡑�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1장에서부터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는 말 대신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전하다󰡑�라는 단어 대신에 󰡐�알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앞뒤가 제대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단어가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먼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이 아니라, 십자가 지신 예수님 자신인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래서 사도 바울은 지금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복음을 알기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이라고 번역해야 더 옳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만약 복음이 십자가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이라면, 사도 바울은 벌써 오래 전에 그것을 습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도 그 예수님을 더욱 알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쯤이면, 그는 이미 3층천에도 다녀왔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들을 경험했고, 수많은 사역의 열매들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알기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처음으로 예수 믿을 때 습득하는 몇 가지 십자가에 관한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하면 그들은 그것을 이미 다 배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어떤 과정을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 그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분을 아는 만큼 그 분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2절에 나오는󰡐�알다󰡑�라는 단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그 분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아는 만큼 그 분을 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그 분을 알지 못하고, 그 분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만을 전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생명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것은 듣는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 뿐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 구역장, 성경 공부 지도자 등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그 복음인 예수님을 그토록 알기 원했다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주일학교 교사들을 포함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으면 잠시 멈추고 당신의 학생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  있다.            □  그렇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혹시 그들에게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만을 전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십시오.  


                                                                      


⑵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2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말함으로써, 주님을 아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목적이요 목표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사역이 그의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주를 위해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고전 15:1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표나 목적은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과의 교제에서 그의 사역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목표와 목적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 중 하나로서, 그의 사역 끝 부분에 쓰여진 서신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거기서도 여전히 동일한 목표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7-10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빌립보서 3:7-10)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사도 바울은 무엇만을 얻기 원하고 있습니까?(7, 8, 10절)


                                                                      


그것을 위해 사도 바울은 다른 모든 것을 어떻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까?(7-8절)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아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8절)


                                                                      


사도 바울은 여전히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기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의 능력 뿐 아니라, 그 분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도 더 알기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면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축복과 능력은 원하지만,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별로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십자가 지신 주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 가장 고귀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해 모든 것을 손실로 떨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삶의 목적도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목표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심지어 많은 목표 중의 첫 번째도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사역도 예수님의 방법대로 감당할 수 있고, 그 놀라운 십자가의 능력도 놀라웁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초점이 다른 것에 맞추어지면,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사역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사역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과의 요점


♡ 십자가의 복음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 인격체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 십자가의 복음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먼저 예수님을 알기를 힘써야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전달됩니다.

♡ 예수님을 알기를 힘쓰는 것은 십자가의 삶을 살기 위해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