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단원 4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제10단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제4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오늘날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모세에 의해 대변되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래야 모세와 같이 주님과의 친밀함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한 다가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하심 속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과 정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에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 길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이 그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모세는 구약 시대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부러워할 만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3:9-11을 읽고 모세가 하나님과 가졌던 친밀한 교제를 당신의 말로 표현해 보십시오.
(출애굽기 33:9-11)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에는 또한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홍해 앞에 선 모세의 모습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 곳에는 올바른 순종이 있고, 거기에서는 세상 사랑이 다루어집니다.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위에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임했을 때, 하나님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 경계선 밖에서 그 선도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 속에 들어가 그 곳에서 40일을 머물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 3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 영광으로 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말세지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교회를 방문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60:1-2).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사야 60:1-2)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올바른 신앙 각도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의 의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손을 구한다는 말과 대조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을 구한다는 말은 우리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나 능력과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구하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 두 가지가 별 차이가 없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수단이 되어지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지는 삶입니다.
⑵ 모세의 예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여 주셨으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시 103:7). 그러면 왜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까? 그래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가능케 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그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구했습니다.
(시편 103: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출애굽기 33:12-13을 읽으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습니까?
(출 33:12-13)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길을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구했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남아있기를 구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세는 하나님 자신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특히 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듭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후에 나온 말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 곧 하나님의 신임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 그 분 자신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15을 읽고, 아래에 써 보십시오.
(출애굽기 33: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 33:15)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출 33:1-3)
(출애굽기 33:1-3)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천사들을 앞서 보내어 그 모든 원수들을 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과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모세가 지금 있는 곳은 사막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그 사막은 까맣게 타버린 돌들뿐이더랍니다. 냉방시설이 완비된 차에서 잠시 내려 5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숨이 막힐 만큼 더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모세의 이 자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나 천군 천사를 통한 놀라운 승리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시는 그 돌 뿐이고 숨이 막히는 사막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구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에게 소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것이 소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기도와 삶의 자세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러한 친밀함을 허락하셨는지, 그가 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는지, 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사 곧바로 돌이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그에게 임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대조하여 볼 때,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구합니까?
⑶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시편 27:4을 읽고, 다윗이 하나님께 구한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써 보십시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을 한 가지 소원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많은 소원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것 중에서 첫 번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유일한 한 가지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 대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성공적인 사업도 원하고 하나님도 더욱 알기 원하는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회도 성공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보기 원하는 많은 목회자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세가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누어진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중하면, 그 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어질 때, 그 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모세와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방황하며 헤맬 때 뿐 아니라, 그들의 사역이 확장되고 놀라운 하나님의 복이 그들과 함께 할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자신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요 열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3:12-13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는 그의 사역의 절정기에 그가 한 기도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33:12-13)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⑴ 바울의 예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을 읽고 사도 바울이 알기 원했던 한 가지가 무엇인지 써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빌립보서 3:7-8, 10을 읽고 사도 바울이 간절히 얻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써 보십시오.
(빌립보서 3:7-8)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7-8절)
사도 바울도 역시 오직 예수님만을 원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대체적으로 그의 사역의 초기 부분에 쓰여진 서신서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는 로마 옥중에서 쓰여진 서신으로서 그의 사역의 말기 부분에 쓰여진 서신입니다. 이 서신들을 보면,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기 원하고, 그 분만을 사랑하기 원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자신 뿐이어야 합니다. 그 분을 알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하는 것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다가도, 조금만 방향이 흐려져 다른 것이 우리의 삶의 초점이 되어지면, 심지어 그것이 주를 위한 사역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우리에게서 끊어집니다.
⑵ 나의 전환점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저의 전환점도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한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신앙과 사역에 대한 저의 전반적인 이해가 변하게 되었으며, 저의 삶도 하나님 안에서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은 1991년 말 경에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교회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저에게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저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땅에 엎드려 회개하며 그렇습니다. 주님, 전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 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그저 저의 소욕을 위해 해 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신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공장을 돌면서 전도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신학교에 강의를 다니며 교회를 꾸려가기도 했습니다. 전혀 기반이 없는 곳에서 교회를 개척한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은 고생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을 주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한 교회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설교만 하더라도 제 임의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전하려고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성도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때로는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제가 넌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습니다라고 동의하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섬긴다며 열심히 뛰고 노력했을진 몰라도, 그리고 수시로 당면한 일과 문제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을진 몰라도, 제가 전하려고 노력하던 그 하나님, 제가 제 삶의 모든 것을 드려 그 분을 위해 산다고 하는 바로 그 하나님, 그 분 자신을 더욱 알기를 구하고, 그 하나님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일에는 정작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교리의 집합체가 아니며,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 분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모든 삶을 드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정작 그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을 소홀히 하고, 그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러한 저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제 노력으로 교회를 세워보려는 모든 노력까지 다 내려놓고, 그 때부터 하나님 그 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 분을 알기를 무엇보다 열망하고, 하나님 그 분을 사랑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간절히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의 삶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직접적으로 간섭하시면서 다루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의 삶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으로 채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저의 삶 속에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의, 거룩함,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경외함 등 하나님의 진정한 복들이 저의 삶에서 경험되어지며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더욱 민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분과 동행하는 법을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과거에는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들에 관한 진정한 의미와 실재(reality)가 깨달아졌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들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과의 요점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 각도로의 전환입니다.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이 하나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 하나님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서 초점이 벗어나면, 하나님의 친밀함은 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