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료/성경속으로의여행

23. 애굽에서의 시간은 저주의 시간이 아니라, 축복의 시간이다.

발의무리 2007. 9. 28. 16:39

23. 애굽에서의 450년은 저주의 시간이 아니라,

축복의 시간이다.

항상 자주 듣는 질문중 하나가 창세기 15장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하고 나서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서 노예로 400여년을 있도록 하고, 다시 구원하시겠다고 하느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냥 항상 넘어가곤했던 본문이다.
사실 이 대답도 거기에 대해 정확히 답변하는 답도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물론 성서학자들에 의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정도 해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창세기 주석을 20권 가까이 읽었는데 아직 시원한 답변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답변을 한다면 애굽에서의 시간은 저주의 시간이 아니라, 축복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송제근 교수의 관점에 의하면 입(入)애굽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함에 있다고 본다.
400여년동안 애굽에 간 것은 심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며 약속을 하신다. 자손을 모래알같이 많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애굽이다.


70명이 이주해서 400년 만에 장정만 60만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240만 정도로 해석한다. 한 가족에 4명이라고 해석해서이다.
60만 가족이므로 240만명이라는 해석이다.
어쨌꺼나 이스라엘은 3만배로 증가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인구는 500만 정도되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 남 북한 합쳐서 7천만명이라고 본다. 
우리는 5백년동안 14배 증가한 것이다.

요즘처럼 잘 먹고, 의학이 발달해도 5백년동안 14배 증가했는데, 이스라엘은 3만배 증가했다.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복주시고, 은혜주신것이 주 이유이지만, 애굽이어서 더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이런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가능케 하려면 이스라엘에서보다 애굽이 더 조건이 좋기에 애굽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다시말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심판이 아니다.

 

그들이 잘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셔서 이들이 고생하게 된 것이지, 고생하라고 애굽에 보낸 것이 아닌 것이다.

 

애굽에 보낸 것은 풍요로운 땅에서 아들 딸 놓으며 행복하라고 보내신 것이다.

그곳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이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살자 하나님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을것으로 여겼고, 하나님을 잊고 살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지 450년 동안 고생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다.
창세기는 오경 전체를 쓰면서 서론과 같은 역활을 하기때문에, 출애굽 사건을 예시적으로 적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 구절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입애굽은 축복하기 위해서였고, 출애굽은 구원하기 위해 있었던 사건이다.

하나님은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 죽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시다.

오늘도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지만,

그곳에서 바르지 않게 살고 있는 우리가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좋으면 뭐하는가!,

멋대로 살면 엉망인데..

영어 공부 시킨다고 미국보내도, 미국에서 공부안하고 나쁜짓 하면 소용없듯이

좋은 곳에 보내도 멋대로 사는 것에 대해 어쩌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곳으로 항상 인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