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바울도 오병이어 사건을 했던 것이 아닐까?
27. 바울도 오병이어 사건을 했던 것이 아닐까?
저는 사도행전 27장에 나오는 바울의 바다 사건을 보면 또 한가지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7장 33절에 보면 바다에 풍랑이 일고 어려움에 처해서 다 사람들이 굶었습니다.
하루이틀 양식 아낀다고 굶은게 아니라, 14일을 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14일 동안 굶주렸다는 것은 양식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이 음식을 해다가 사람들을 먹이더라는 겁니다.
어디서 이 음식이 생겼습니까!
27장 33절부터 보십시오.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가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14일동안 276명이 굶주렸는데 어디서 그 음식을 배가 부를정도로 먹고 버릴정도로 어디서 그 음식을 가져왔다는 것입니까!
이게 지금 무슨 일입니까!
잘 보십시오.
지금 이 장면이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고, 여기에 떡을 가져와서 축사하고 떼어 먹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배부르고, 남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완전히 오병이어 사건의 재탕입니다.
14일을 굶을 정도였다면 빵이 어딘가에 이만큼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금식기도 하고 경건해있는 상태도 아닌데 빵이 있다는 것을 알면 폭동이라도 일어나서 음식 찾아먹죠.
여러분 하루 먹을게 없어서 굶어 보십시오. 그래도 눈에 뵈는게 없는데 14일동안 그때까지 음식을 가만 놔두겠습니까!
그 날이 14일이나 되었다는 것은 그 배에 더이상 음식이 없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빵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병이어 사건으로 보입니다.
저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또 일어났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학자들은 단순히 성만찬이다 하는데 성경은 배불리 먹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지금의 성만찬으로 이해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조금 남아 있는 것으로 바울의 오병이어 사건이 새롭게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 다 먹고, 12광주리 남은 것처럼 남아서 바다에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이렇게 확신하는 학자는 보지 못했고, 아직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럴법도 해 보입니다)
바울이 주님과 함께 하고 다시 일어났을때 이전보다 더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바울로 변모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잡히고서, 새롭게 의식의 변환이 왔고, 예루살렘의 감옥생활 2년이후에 바울은 놀랍도록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폭풍이 부는 바다에서 진두 지휘하고, - 마치 예수님이 바다를 잔잔히 하듯이 -.,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고,
14일을 굶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갈때 다 죽을 사람처럼, 작별인사하고, 마지막 인사하고 갔지만,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로마에 대한 비전을 다시금 품고 2년동안의 감금이 바울로 하여금 더 불타는 열정을 가지게 하고 나서 이후에는 뜨거운 사명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로 떠날때부터는 또 다른 사울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의 패턴과 사도행전의 패턴을 같은 패턴으로 보는데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처럼, 사도행전도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죽음)이후에 새로운 시작(부활)이 이런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뜨거운 사명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이적을 이루어낸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본문을 오병이어로 봐야할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사명속에서 살아갈때 새로운 바울을 보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명속에서 일어선 인생,
잘되면 잘됐지, 잘못되지 않습니다.
믿음 속에서 사는 인생,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