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셀

셀 목회와 현대 목회전략 1

발의무리 2008. 7. 19. 21:20

서론

목회는 방법이다. 목회는 교회를 위한 방법이다. 우선 목회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하나님의 것을 사람에게 전달하고, 사람의 것을 하나님에게 인도하는 것이 목회이다. 또한 목회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보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후자의 경우에서 볼 때 순전히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하자면 목회는 교회라는 구조체가 사람들을 흡수하고 보존하는 것을 돕는 길이다. 교회가 목회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일은 결국 두 가지로서 흡수와 보존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교회는 흥하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는 쇠한다. 흡수가 다른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보존은 같은 물질을 지키는 것이다. 목회는 이질적인 요소인 불신자를 받아들이고, 동질적인 요소인 신자를 머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흡수와 보존은 목회의 두 요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방법이 원리에 근거하여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지 어떤 원리에 근거하여 실행된다. 이렇게 볼 때 목회는 어떤 원리에 근거하여 실행되는 방법이다. 사실상 원리는 목적의식에서 나온다.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원리를 설정하며 원리에 따라서 방법이 모색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목적이 원리를 결정하며, 원리에서 방법이 기원한다. 오늘날 목회방식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일견하기에 현대의 교회들은 대체로 미국식 목회방식에 의존하여 이것을 유입하는데 고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교회들이 무비판적으로 교회 성장에 목적을 두다 보니 교회성장학을 원리로 삼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기에 급급한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때때로 이런 현상은 목회의 목적이 전위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구령 (救靈)하다보니 성장한다"는 도식보다 오히려 "성장하기 위하여 구령 (救靈)한다"는 도식의 목회가 성행하게 되었다. 많은 성장/부흥 세미나라든가 다양한 평신도훈련이 이것을 입증해준다. 이로 말미암아 목회는 마치 상업적인 체계처럼 되어서 성도를 재화 (財貨)로 여기게 되고, 조직화에 비중를 두게 되며, 결국 마케팅에 몰두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목회의 문제점이다. 이것을 목회의 세속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와 성도에 대한 성경적 이해보다 상업적 이해가 앞서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교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을뿐더러 혹시 성장한다 할지라도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원칙 하에서 주로 목회의 방법론에 관하여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가 할 것인가 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목회자의 자질이나 목회의 내용 등에 관하여는 거의 논외가 될 것이다. 본고가 주력하는 것은 목회 방법론에 관한 논의이다. 여기에서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방법론이 세속적인가 아니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일 뿐이다. 본고는 목회 방법론과 관련하여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셀 교회를 개략적으로 진단하고 현대목회를 위한 전략을 요점적으로 세워볼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셀 교회 진단과 현대목회 전략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진술될 것이다. 본고를 읽기 전에 몇 가지 미리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로 본고는 셀 교회 운동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단순한 평가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본고를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목적 때문에 본고가 셀 교회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며 현대목회의 전략에 관하여도 매우 제한적으로 진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셋째로 본고는 강연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가급적으로 각주참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학문적인 형태를 떠나려고 했다는 사실에 주의해 주기를 바란다.


2. 셀 교회의 시도

셀 교회는 두 가지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전통교회에 대한 회의와 신약교회에 대한 의뢰이다. 셀 교회의 주창자들은 전통교회의 문제를 관찰하면서 동시에 신약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더 나은 길을 찾아 나섰다. 셀 교회의 두 가지 관점을 자세히 살펴보자.


1) 전통교회에 대한 회의

셀 목회는 전통적인 목회개념에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목회방식을 위한 현상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에 대한 회의를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1) 교회관

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하면 전통교회의 문제점은 교회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A.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

셀 교회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문제점을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라는 점에서 찾는다. 전통적인 교회는 프로그램 중심 (Program Base Design)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심 교회의 비효율적인 면은 다섯 가지로 지적된다. 첫째로 교회의 건물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을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빈 채로 방치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전문목사들이 교인을 섬기는 것은 교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문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셋째로 프로그램 중심 교회에서는 봉사하는 교인들이 전교인의 8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넷째로 소망을 잃은 채 봉사활동에 태만한 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온 교회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불신자들 (또는 불신자들의 공동체)과는 사실상 접촉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B. 건물중심의 교회

셀 교회 지도자들은 전통교회가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를 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위 '교회'라는 특별한 건물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교회들은 교회 건물의 규모에 제한을 받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교회는 불신자들과 단절되고 차단된 현상을 일으키고 불신자들에 대한 기독교 고유의 사명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는 건물 속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전통주의 교회는 성공의 기준을 인격적으로 주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수에서 찾는 것보다 단순히 교회를 메운 사람들의 수로 판단한다.


C. 교구중심의 교회

셀 교회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또 다른 문제점을 "교구정신"에서 발견한다. 전통교회들은 활동의 영역을 제한하거나 표시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두 가지 문제점이 파생한다. 첫째로 전통교회들은 근처의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같은 교파에 속한 "자매교회들"의 존재를 의식하여 이 교회들의 활동 영역들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전통교회들이 같은 지역 안의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서로 잘 모르고 지낸다.


(2) 목회자와 평신도의 문제

셀 교회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겉만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왕국을 통치하는 목사들은 절대로 평신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비하신 성직자와 동일한 직무들을 맡도록 내보내지 않는다. 둘째로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책임 있는 사역자가 되는 일에 대해 머뭇거린다.


A. 목회자

셀 교회 지도자들은 전통교회가 프로그램 중심으로 목회를 할 때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도할 전문가들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설교, 교육, 상담, 예산 편성과 집행의 관리, 길 잃은 자의 구제 그리고 교회 일정의 효과적 관리를 감당할 수 있는 전문 목사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파생하는 문제점은 전통교회의 목회자들에게 길 잃은 자들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교회의 목회자들은 한 주일을 바쁘게 보내야 하기 때문에 불신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다. 목회자들은 업무 일정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 차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원치도 않는다. 대다수의 교회 사역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단지 교회 성도들과만 어울렸을 뿐이다. 교인들이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지 않는 까닭은 자신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조차 강단에서 행하는 설교 사역 이외에 개인적으로 전도를 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자들의 영향력아래 있는 교인들 역시 교회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쁜 생활에 여념이 없다.


B. 교인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수동성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계층의 교인들이 수동적으로 앉아서 설교만 듣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중심 교회와 교인들의 관계는 단순히 기계적인 관계일 뿐이다. 전통주의 교회의 경우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 10-15 퍼센트만이 교회의 기능에 필요한 임무에 종사하고 만다. 또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교인들에게는 교제의 결핍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동체의 본질은 소속감과 동료의식인데, 전통교회에서는 찬양교회, 부흥교회, 성경공부교회 모든 것이 대규모 집단의 교회라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심교회에서 가장 나쁜 점은 너무나도 중요한 코이노니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심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친교를 나눌만한 시간과 장소가 없을 뿐 만 아니라, 교회의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교인들을 서로 떼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곳은 교회건물이라는 중간무대이다.


(3) 성령 체험 부재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4) 불신자에 대한 무관심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문제점은 불신자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잃은 교회들은 조직을 유지하기에 급급할 뿐이라는 것이다.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이 하는 일이란 겨우 처음 교회에 출석한 사람들을 심방하는 것이다. 물론 전도활동으로 불신자에게 다가가는 교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전도활동도 현실 속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할 것은 뒤로 미룬 채 사후 (死後) 이득만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을 즐기는 불신자들이나 내세에 관심 없는 불신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다수의 전통교회들이 불신자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더욱 큰 문제로 삼는다. 전통교회는 불신자들을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평생토록 성경공부를 하는 집단으로 전락하여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이 무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점이 파생한다. 첫째로 전통주의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한 기반을 너무 높이 설정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공부이다. 불신자들은 성경공부를 원하지 않지만 그것은 항상 무시되었다. 둘째로 전통적인 교회들은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기독교인들만의 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가 인간의 왕국이 되어 이 왕국에 속한 사람들을 다른 왕국으로부터 격리시켰다고 지적한다. 전통교회의 신자들은 다른 왕국들과 격리된 채 살고 있으며, 항상 주님의 일을 행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주님의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교회는 지옥의 문을 박차고 공격해 들어가지를 않고 교회건물 안에서 헛된 싸움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건물 밖으로 나와 불신자들을 향하여 한 걸음 옮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사명은 갈등 속으로 들어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5) 대사회 관계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가 인구증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사회에서는 엄청난 인구폭발이라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는 이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복음전도가 이 시대의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양식과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고자 한다면 단순증가 (addition)의 개념이 아닌 배가증식 (multiplication)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2) 신약교회에 근거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전통교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신약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셀 교회의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신약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들은 신약교회의 모습은 셀 교회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 (마 18:20)이 모인 작은 공동체에서 교회의 존재를 보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셀 교회'라는 초대교회의 원형으로 교회의 본질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셀 교회의 생활양식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에 매우 충실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중심 구조와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들이 교회를 위하여 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사람의 몸의 생명이 세포로부터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생명은 셀 그룹들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생물학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신약교회의 모습을 설명한다.


(1) 건물로서의 교회

무엇보다도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약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구약성경에서는 성막과 성전을 모두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신약시대로 내려오면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이 파격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신자들을 살아있는 돌들로 보면서 이들이 함께 모여 성령의 집을 이룬다고 했던 베드로의 사상 (벧전 2:5)을 따라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을 돌로 쌓아 만든 구조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진 건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돌들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 주변의 모든 돌들과 교회를 세우고 양육하는 작업에 각기 제 몫을 담당해야 한다. 여기에 모든 살아있는 돌과 주변의 모든 돌 사이에 긴밀한 유대관계가 존재하는 교회의 생활방식이 있다고 한다. 끈끈한 사랑의 시멘트로 결합된 이 돌들은 자신들에게 넘치는 은사를 주시고 서로 끊임없이 세우도록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2) 몸으로서의 교회

또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약교회가 사람의 신체에 비유되어 묘사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경우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지체가 된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령께서 새신자들을 그 몸 안에 스며들게 해서 각자에게 맞는 일과 기능을 담당하는 구성원이 되게 하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들은 서로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다. 각 지체는 전체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서로 세우는 (oikodomeo) 책임은 이들 지체들의 생활양식의 핵심이 된다 (엡 4:15-16). 모든 개인은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대교회가 그 일을 정확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신자가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집회에는 다 함께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소집단을 이루어 집집마다 방문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소집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옥들의 수용능력과 지도자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부자들만 2층의 다락방이 있는 가옥을 소유했고 그 밖의 가옥들은 열 명 내지 열두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없었고, 대규모 집회를 인도하기에 합당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소규모 모임을 통해 만남으로써 서로의 사역 속에서 서로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교회들은 처음부터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서로의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을 통해 각 사람의 주변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3) 가정교회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유형의 건물이 아닌 여러 가정을 무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순회제자들 (itinerant servants)도 이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곳마다 집안에서 그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는 것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대교회가 가정에서 형성된 데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치를 나누는 곳이 바로 가정이라는 것이다. 한 가정에서 함께 지낼 때 가치체계가 깊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사실 가정에서 지내는 것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가장 으뜸가는 전략이었다. 전심전력으로 가정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하면 전도자들의 가정참여를 보고 불신자들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고전 14:24-25)고 인정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생활을 통한 복음전도 (Body Life Evangelism)라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인 교회에 임재해 계시고 또 권능으로 교통하심을 목격하고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대교회에는 전문성직자가 없었고, 가정교회에서 위대했던 사람들은 봉사자들이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셀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하면 가정그룹들은 서로 독립해 있지 않고 발생초기부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것은 가정교회들이 지역교회를 형성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했음을 보여준다. 가정그룹들은 서로 만나게 되면 사랑의 만찬을 함께 나눴다. 순회제자들 (itinerant servants)들은 가정교회와 지역교회를 연결하는 끈이 되었다.


3) 셀 교회의 개념

이상과 같이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약교회를 모델로 삼으면서 셀 교회의 개념을 제시한다. 셀 교회의 개념에 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셀이란 개방적이고 복음전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그룹으로서 교회생활에 함께 얽혀 있는 것이다. 셀 그룹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세워주기 위하여,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매주 모인다. 각 셀 그룹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전도와 결신을 통하여 그룹들이 자라나서 번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신자가 교회에 더해지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더해지는 것이다. 셀 그룹의 회원들은 또한 축하예배에 출석하도록 권장된다. 이 축하예배에는 모든 셀이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린다". 이 설명에 비추어 셀 교회에 관한 몇 가지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1) 소그룹 운동

첫째로 셀 교회는 셀이라고 일컬어지는 소그룹 운동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는 소그룹과 대그룹이라는 두 날개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소그룹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하면 공동체는 오직 소그룹을 통해서만 가장 온전한 형태로 형성되기 때문에 셀 그룹을 15명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공동체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로 서로에 대한 헌신과 소속감이 표현된다. 함께 나누는 삶 속에서 공동체는 생겨날 수 있으며, 이로써 공동의 목표와 서로의 발전을 위해 모든 신자들이 헌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셀 교회의 소그룹이 전통적인 교회의 소그룹과 다르다는 점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교회의 소그룹은 교회의 일부이지만, 셀 교회에서는 소그룹 (셀) 그 자체가 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교회사에서 소그룹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셀 그룹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진 확대가족이며 교회를 세우는 데 기초가 되는 초석으로 이해한다. 전형적인 셀 그룹으로 발전하려면 한 주간 동안에 자주 서로가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셀 그룹은 한 가족인 것이므로, 여러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부들은 함께 시장에 가며 아이들은 다른 아이의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좋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것이 가정교회와 유사하지만 실제로 가정교회와 셀 그룹 운동사이에는 현저한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차이점은 가정교회의 독립성에서 나타난다. 주일마다 함께 15-25명 사람들의 공동체로 모이는 가정교회는 일반적으로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가정교회가 근처의 다른 가정교회들과 접촉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자신을 넘어선 더 진전된 구조를 생각지 못한다. 둘째 차이점은 가정교회의 정체성에서 나타난다. 대부분의 가정교회들은 공격적인 복음전도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 부흥의 진정한 운동이 되지 못한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관과 관련하여 셀 교회가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셀 교회는 건물 중심의 교회도 아니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교회 건물의 규모에 제한을 받지만 셀 교회는 교회 건물의 규모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셀 교회도 필요한 공간을 건축할 때가 있는데 그 목적은 교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셀 교회는 교구 중심의 교회 아니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활동영역에 제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셀 교회는 거대도시가 불신자로 가득 찬 것을 바라보면서 개 교회의 활동영역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셀 교회의 특징은 세상과 접촉하기 (Touching the World)에서 잘 나타난다. 셀 교회는 전통주의 교회가 이제껏 해왔던 방식과 달리 도시의 구조 속으로 깊이 침투함으로써 좀더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전통주의 교회는 예배의 대부분을 교회 건물 안에서 드리지만, 셀 교회에서는 교회의 삶이 주 단위로 한 가구씩 방문하는 심방예배에서 더 활발해진다.


(2) 불신자 전도

둘째로 셀 교회는 불신자 전도에 관심을 둔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도시의 다양한 문화에 알맞은 도시적 형태의 교회가 요구된다는 전제를 가진다. 사탄은 각종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감방을 지닌 작은 마을 속에 사람들을 가두며, 도시에서는 더욱 끔찍한 감방을 이용한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기본 욕구, 즉 대단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며 인간을 "왕국들"이라는 감방에 가두었다. 교회의 사명은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셀 그룹의 주요목적은 지옥의 앞마당에서 '구원의 상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셀 교회의 불신자 전도는 가까운 친구나 이웃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관계전도이다. 셀 교회는 인격공동체인 오이코스에 침투한다. 셀 교회에게 새신자 주위 사람들 (Oikoses)은 추수할 밭이 된다. 셀 교회는 새신자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씨뿌리기, 경작하기, 추수하기라는 세 가지 순환을 보여주는 1년의 달력을 구성한다. 특히 추수하기를 위해서는 세 가지 추수 전도집회 (Harvest Events)가 활용된다. 첫째로 실내 경기장에서 행해지는 크리스마스 행사이며, 둘째로 셀 그룹이 불신자를 집으로 초대하는 만찬인 부활절 행사이며, 마지막으로 7월과 8월 행사로서 셀 멤버들이 손님들을 데려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드라마를 상영하는 행사이다. 셀 교회의 불신자 전도는 봉사를 중요한 방법으로 여긴다. 셀 그룹 교회들은 성경공부에 들어서기를 꺼리는 불신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절박한 필요의 순간에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셀 그룹은 불신자들의 필요를 강력하게 충족시킨다. 셀 그룹은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병자나 치매증 환자를 찾아감으로써 이들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것에 초점을 둔다.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최초의 셀 그룹을 성장케 하는 밑거름이 된다. "언제나 셀 그룹의 건강을 재는 척도는 그들이 얼마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느냐 이다".


(3) 평신도 활용

셋째로 셀 교회에서는 복음이 가까운 친구나 이웃의 손길로 전해진다. 이것은 전통교회에서는 복음이 직업적인 성직자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통주의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을 개선하는데 집중하였는데 그것은 모든 신자 하나 하나를 훈련하여 능력있는 사역자로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셀 교회에서는 평신도인 셀 그룹 지도자가 성직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례집행과 축도 등).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역을 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에게 전투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평신도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죽은 다수를 위해 소진하는 소수를 살리는 일이며 동시에 죽은 다수 그 자체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셀 교회의 전도방식은 평신도의 실생활 (body life)에 기초한 전도이다. 셀 교회의 복음전도에는 자신의 몸된 교회 안에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래서 셀 그룹에 들어오는 불신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목격하며 "하나님은 확실히 여러분가운데 계십니다" (고전 14:25)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4) 성령 체험

넷째로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령 (은사)의 체험과 실현을 강조한다. 그들은 셀 교회들이 세상의 악과 항상 대면하고 있으므로 성령의 권능을 늘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셀 교회는 성령의 은사에 큰 관심을 가진다. 이때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령의 영적인 은사들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셀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그리스도의 몸 속에 흐르는 영적인 피라고 생각한다. 셀 그룹 교회의 생명은 그것이 지니는 특수한 피에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특정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셀 그룹 교회에 공급하며 해로운 찌꺼기를 제거한다. 셀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사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셀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영적인 은사를 이용해 서로를 굳게 세우는 것이 그들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혼의 치유를 끊임없이 경험한다고 한다. 은사의 활용을 통해 덕을 세움으로써 가장 교회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셀 교회는 성령과 관련하여 계시를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든 신자들이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셀 그룹 안에서 성령의 은사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서로를 세우는 일을 하기 전에, 신자들은 먼저 경청의 방 (Listening Room)에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셀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할 때 계시가 주어진다".


(5) 정리

위에서 언급한 셀 교회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해볼 수 있다. 셀 교회는 소그룹을 중심으로 불신자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평신도를 활용하는 성령체험 운동이다. 결국 셀 교회는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평신도가 활동하는 소그룹이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운동이다. (성령 체험 -> 평신도 -> 소그룹 -> 전도). 이 운동의 사상적인 배경에는 성장과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성장학이라는 원리가 놓여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을 셀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