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설교/교회회복다섯기둥

3. 두 번째 기둥 찬양과 경배

발의무리 2008. 11. 21. 12:46

두 번째 기둥 찬양과 경배

 

 

새 부대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두 번째의 기둥은 찬양과 경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과 경배가 꼭 필요한가? 이것이 없으면 안되는가? 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는 새 부대가 세워지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둥입니다.

 

지금 제가 섬기는 포도나무교회를 개척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주일 낮에는 가정에서 몇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가까운 교회들을 방문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녁 예배를 다녀오면, 꼭 회개를 해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너무 형식적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표기도는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너무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찬송을 드리는데, 잘 아는 찬송을 습관적으로 부릅니다.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지만, 그 가사 하나 마음에서부터 진심으로 나오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중에 옆을 쳐다보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금도 마음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서에 따라 습관적으로 드릴 따름입니다. 우리들이 찬송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교는 하나님이란 단어를 빼면, 고등학교나 중학교 윤리시간에 가르쳐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마치고 오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회개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내 체험이 기준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국의 모든 교회의 예배가 다 이렇다.’ 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너무 형식적이고 습관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오늘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하나님께서 찬양과 경배를 전세계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믿기로는 하나님께서 말세지말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성벽을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찬양과 경배는 그 자체가 예배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형태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요한계시록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우리들이 드릴 예배 그리고 오늘날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어떠한 예배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어떠한 예배입니까? 바로 찬양과 경배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나오는 하늘나라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스랍들이 그 주위를 날며 찬양을 드립니다. 그들은 하늘나라 성전의 찬양 리더들입니다. 그 주위에 앉아 있던 장로들이 보좌에서 일어나 면류관을 땅에 던지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천천 만만의 천사들과 하늘나라 백성들이 일제히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엎드립니다. 그러자 모든 피조물이 일제히 연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찬양 소리는 나이아가라 폭포 소리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하나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5:11-14). 이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하고 거룩한 예배입니까?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필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일정한 모양을 갖추어 일정한 순서를 따라 의식을 잘 행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이해하는 것은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교회 안에 율법주의 신앙이 가득하면, 절대로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이 가득한 교회에서 어떻게 위에서 드려진 것과 같은 찬양과 경배가 드려질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올바로 이해하면, 찬양과 경배는 필수입니다.

 

찬양과 경배는 참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열어줍니다. 과거에 저는 하나님 주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스랍들이 왜 온 몸에 눈으로 가득한지 잘 몰랐습니다. 마치 괴물들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그 표현들은 상징적인 표현들입니다. 또한 저는 그들이 어떻게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된 로봇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앞에 강림하셨을 때 느꼈던 것처럼,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도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넘치고, 우리는 그분 앞에 엎드려 온 마음으로 그분만을 경배하기 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 가까이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데, 어떠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처럼, 우리들이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수록,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알수록 그분만을 더욱 경배하기 원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은 직접화법의 찬양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찬양들은 간접화법의 찬양입니다. 마치 간증식의 찬양입니다. 그러한 찬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매우 부족합니다. 위에 나오는 요한계시록 5:1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직접 칭송과 찬사를 드리는 직접화법의 찬양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아도 많은 부분이 직접화법의 찬양이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당신) 사랑하나이다.” 찬양과 경배가 올바로 드려질 때, 성령님의 놀라운 사역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물론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을 위해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찬양과 경배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기뻐하시며, 그곳에 성령으로 임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찬양과 경배의 첫 번째 기둥인 십자가의 복음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우리의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고, 또 십자가의 복음 위에 굳게 서게 될 때, 찬양과 경배가 깊이 그리고 자유롭게 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십자가의 복음에 관한 사실들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그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 위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곳에 참으로 놀라운 찬양과 경배가 드려질 것입니다. 반면에,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그곳에서 진정한 찬양과 경배가 드려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아는 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아는 만큼,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 이상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 노래는 매우 아름답게 드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는 드릴 수 없습니다.

 

찬양과 경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기준대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사항까지 상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을 따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는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제자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새로운 곡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과 경배에 대한 이해와 가치와 자세 등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들의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온 마음을 다해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다면, 그 곡에 참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