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의한 삶(3)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
은혜에 의한 삶(3)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
창6:1-8
우리의 신앙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은혜- 고맙게 베풀어 주는 혜택.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
恩 - 은혜 은, 사랑할 은
惠 - 은혜 혜, 인자할 혜
은혜의 정의 -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
긍휼의 정의 - 마땅히 받아야 할 인간에게 내리지 않는 것(심판, 형벌, 저주)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부르시고 말씀하시고 사명을 주심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죄악의 탁류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시간에는 죄악의 물결이 넘치는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 죄악이요, 만져지는 것이 죄악인 세상의 탁류에서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만을 사랑했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바로 노아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사는 것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노아를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가기의 가치관을 따라 살고,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고, 적당하게 타협하며 사는 세상 한 가운데서, 이러한 방법을 따라 살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현실 속에서, 노아는 그들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추구하며, 사모하며, 그 삶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는 자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내 생명이 헛됨을 알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자, 그래서 이런 찬양을 드립니다.
로버트 로우리 박사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오늘 성경에는 2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와, 또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가 버린 사람들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셨어요, 예수그리스도를 투자해서 하나님의 아들, 딸 - 우리는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 그분을 예배하는 것,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
밑 둥이 잘린 나무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접붙임 - 이제 푸러름을 자랑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함.
고기에 0.5% 소금만 있어도 썩지 않는다는데 25%소금이 있는 사회가 썩어져감 - 다 가짜라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가 성도의 신분으로 살지 못하고, 죄악과 결혼해서 사는 거예요.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도 듣는데, 가정에 가면 아니에요, 직장에 가면 아니에요, 친구를 만나면 아니라는 겁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될 때 그 결과가 무엇인줄 아세요?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말씀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가 버리시는 거예요. 성령 하나님께서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걷쳐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버려두는 거예요, 간섭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예)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
바로가 스스로 강퍅케 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상실한 대로 내어 버려두사 라고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면 우리는 강퍅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죄로 인하여 주의 성령이 자기에게서 떠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0,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에게서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두지 마소서
2.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식당에서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 밥을 먹는데 혼자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든 사람이 제사상을 차려놓고 다 절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경상도 버전으로 간디가 부어야 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성경적 용어로 담대함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시대에, 귀에 들리는 것이 다 죄악 된 것이요,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모습뿐인 환경 가운데 노아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영혼의 아픔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노아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 하는 거룩한 고민이 있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여러분의 고민은 무엇이며 여러분의 아픔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오늘 노아와 같이 신앙의 몸부림이 여러분의 몸부림이 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는 그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라는 말씀과 같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 의 삶을 살았던 겁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당에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믿지 않은 사람들이 부적을 지니고 `다니듯 그런 마음으로 성경책을 차에 가지고 다니는 정도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그러면 노아가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의인이며, 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노아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노아도 우리와 같이 결혼하고 자녀 낳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보통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어떻게 환경을 초월하여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창6:8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렇습니다. 노아가 도저히 신앙을 양보하지 아니하고서는 살 수 없었던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3.자기의 무능을 보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음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에 가지 않는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교회 가운데, 성도들의 삶 가운데 실재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는 -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만 여전히 피상적이요, 교리적으로 앎니다.
지극히 풍성한 은혜의 하나님을 알지만 실재보다는 이론으로 앎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잘 모릅니다.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인식 못합니다.
내 자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수 없음을...
내 자원으로 죄를 이길 수 없음을...
내 자원으로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룰 수 없음을...
이것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니 알지만 내 자원으로 할 수 없음을 여전히 이론으로 알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서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이론으로 알기에 실제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은혜에 의한 삶에 관한 지식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설교도 듣고, 그 진리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그 결과 은혜에 의한 삶이 실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은혜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막연하게 죄인이며, 우리 자원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심각한 줄을 잘 모르며 설령 안다 하여도 이론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을 누리고, 그 은혜에 의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가능합니다. 자기관점에서 보는 자기 이해가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신앙의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세상을 이기며, 죄악의 물결을 헤치며, 믿음을 지키며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결심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이 땅위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도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 가정에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 교회에, 이 민족 위에 하늘의 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가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히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살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하루를 마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왜인가요? 노아 혼자만 구원 얻고 천국가게 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에요.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나 혼자 구원 얻고 천국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죄 많고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조금도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그 거룩한 구원에로 우리를 초대하셨으며, 죄로 인하여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매력 있게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굳게 결심을 해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악 된 세상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만 가지 은혜를 기억하며 늘 감사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오늘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가를 생각하며 십자가를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내가 주님 앞에서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 믿음의 씨를 보존하여 물려주는 믿음의 조상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