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권별설교/창세기

믿음과 동역자의 삶 (창15:1-6)

발의무리 2009. 8. 17. 10:16

(2009.8.1주오전)           믿음과 동역자의 삶

창15: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알았던 모세는 시90:12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지혜롭게 산다.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요?

세상의 가치관은 융통성 있게 사는 것을 지혜롭게 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인지 정직하게 사는 사람, 바르게 사는 사람,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혜롭게 사는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선택하셨는지

왜 나를 구속하셨는지

왜 나를 부르셨는지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사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부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베소서 1장은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하기 위하여”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다시 나타내 보여주기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부르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창세기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 모양을 따라 창조하신 목적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 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셔서 도대체 무엇 하자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다시 나타내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나님을 정확히 다시 나타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하고

세상으로 향하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소개 하고, 알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함으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부르셨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다시 나타내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동역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광 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동역자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영광 할 수 있게 됩니다.

 

동역자의 삶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에 동참하는 삶 이라 할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 가운데 거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중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를 그 일로 초청하십니다. 이때 나의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시는 것, 이것이 바로 동역자의 삶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이 때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 - 믿음에 의한 삶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동역자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뿐 아니라 열방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기 원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 크기의 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초청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기 위해선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1)노아 -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찾아오셔서 이 땅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심판하시겠다고, 그래서 너는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어라 말씀하심

그런데 문제는 노아가 지금껏 한 번도 비를 구경하지도 못한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 - 방주를 만들어라 - 믿음이 없이는 순종이 불가능

 

2)아브라함 - 지금으로부터 약4000년 전, 당시 도서관, 에어컨이 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반을 둔 아브람이, 당시 국제경찰도 없던 시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 -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

 

3)모세 - 홍해 앞에서 앞에는 홍해 바다가, 양 옆은 산, 뒤에는 애굽의 장교들이 이끄는 제일 우수한 전차 600대를 포함한 모든 전차들과 애굽의 모든 병거, 기마부대, 보병부대가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추격하는 상황,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움에 빠져서 모세를 향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라고 원망하는 상황에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믿음이 없이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3)여호수아(수3장) - 요단강을 건너는 것 - 보리를 거두는 때 - 항상 강물이 범람하였음.

하나님의 말씀 -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요단강에 다다르거든 그 강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또 여리고 전투에서 - 배수진, 할례를 행함, 여리고 성을 돌라는 겁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 순종이 불가능함.

 

보세요, 어느 것 하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믿음이 없이는 순종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

모두가 하나님 크기의 일입니다.

정리)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심

지혜로운 삶 -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생각하며 사는 삶.

우리를 선택, 구속, 부르신 목적 - 하나님을 영광 하는 삶(다시 나타내 보여주는 삶)이 삶은 동역자의 삶으로 가능 - 동역자의 삶을 살기 위해선 - 믿음이 필수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크기의 일로 초청하기에 믿음이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큰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동역자 삶은 믿음으로만 가능한데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그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기에 그 아름다운 믿음의 삶들을 살았을까요? 또한 우리는 이 삶이 왜 어려울까요?

 

1. 믿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입니다. 믿음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열심이 곧 믿음’이라는 오해가 우리가운데 팽배해 있습니다. (바리새인 열심)

둘째, 성경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경이 말한 믿음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그만 어려운 일에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것은 전혀 하나님을 믿는 자세가 아닙니다.

 

셋째 환경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님(환경이 풀리면 아멘, 환경이 어려우면 노멘)

넷째 마음의 확신이 믿음이 아닙니다.

마음의 확신이 믿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마음의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믿음이 아닙니다.

 

예) 막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 확신 갖고 가족이 둘러 앉아 독약을 나눠 먹음 - 가족이 죽음

 

히11장을 믿음 장이라 하는데

그기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 제가 방주를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방주를 잘 짖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시작했나요? 아닙니다.

 

여호수아 요단강 앞에서 하나님 우리가 언약궤를 매고 건너가겠습니다. 그때 물이 갈라질 줄 믿습니다. 하고 들어갔나요?

 

여리고성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성을 돌았나요?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 보십시오. 단 한 사람도 자기들이 계획해서 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시작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자기들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겁니다.

 

히11장 집에 가서 읽어보세요, 그중에 누가 단 한사람이라도 자기들이 계획을 세워놓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하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나아갔는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 -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을 잘 말해주는 구절

합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주전6세기 선지자로 성경초두부터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하고 있음

합1:2-4 (현대어성경)

1:2 '오 여호와여, '사람 살려 !' 하고 아무리 외쳐도 주님은 들어 주지를 않으시고, '사람 패 죽인다 !' 하고 소리를 질러도 주님은 구출해 주지를 않으시니, 이런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합니까? 1:3 왜 나에게 악하고 거짓된 일들을 보게 하십니까?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들을 그저 보고만 계십니까 ? 이 나라에는 어디에나 탄압과 폭력이 가득차 있고, 싸움과 불화가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1:4 그렇기 때문에 주의 율법은 힘을 못 쓰고, 국가의 법은 효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저 악인들이 이 땅의 의인들을 붙잡아 자기들의 폭력 밑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하박국의 불평 요약

1.왜? 의인이 불의한 자에게 핍박당하는데 왜 가만히 있습니까?

2.언제까지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과 동역자의 삶을 살려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 의인은 불의한 자에게 핍박만 당하고

하나님은 의인이 핍박당하고 있는데도 그 고통을 두고 보기만 하는 것 같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반면 악인들의 모습

자기 힘을 의지하고

욕심을 부려 땅을 넓히고

부당한 이득으로 배를 불리고 있는데 왜 하나님 가만히 계십니까? 언제까지..

 

2.하나님의 응답: 합2:4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에무나)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브리어 3단어로 되어있음 (짜디크 에무나 하야)

그러나 의인은: 짜디크

믿음으로 말미암아: 에무-나

살리라: 하야

 

에무나 아멘이란 단어와 같은 어근

에무나의 기본개념 = 버티다 견고하다 총49번사용

그중 44번 정도 신실함, 성실함, 정직함, 신뢰할만한 견고함으로 사용됨

믿음으로 사용된 곳 하박국 여기에 한번뿐임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성실함, 신실함, 버팀)으로 살리라

그러면 의인은 무엇을 믿고 버티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의인이 누구인가를 살펴야 되고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약속하심

창12:1,2 아브라함을 부르심, 큰 민족을 약속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시간이 흐름 - 아브람이 하나님께

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의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를 가리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하신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러면 의인은 그의 버팀으로 말이 암아 살리라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약속이 더디 성취된다 하더라도 그 약속이 지체된다 하더라도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약속이 성취될 때 까지 버팀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버틸 때만이 의인은 진정한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을 수 있음

에무나가 성경 맨 처음에 사용된 곳

출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내려오지 아니하니라(에무나) - 그의 손이 강하게 버티니라 가 옳은 번역

 

피곤해진 팔을 끝가지 들고 버티는 것을 말함 그래서 의인은 그의 에무나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단어는 오직 의인은 그의 버팀으로.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번역할 수 있음

 

동역자의 삶 - 믿음이 필 수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더디 성취 되고, 그 약속이 지체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신뢰하며 그 약속이 성취될 때 까지 버팀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동역자 된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인 것입니다.

창12장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의 언약을 주심

1)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

2)가나안 땅을 주겠다.

3)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름다웠으나 현실은 정 반대였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가능성 너무나 적게 보였으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너무나 커보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메꾸어 나아갔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 되로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임을 신뢰하고 강하게 버틸 때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주신 약속이 환경적으로 아브라함과 도저히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놓여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일로 초청한 그 일이 불가능해 보이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버틸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시며,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다시 나타내 보여주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2. 에무나는 직분을 가리킬 때 사용함

성전에서 문지기나, 냄비지지는 자를 설명할 때 에무나를 사용함

 

대상9:22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 열둘이니 이는 그 향리에서 그 보계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대상9:31 고라 자손 살룸의 장자 맛디댜라 하는 레위 사람은 남비에 지지는 것을 맡았으며 (에무나)

 

레위인 가운데 어떤 사람은 평생 성막의 문지기 역할을 맡았고 어떤 사람은 냄비 지지는 일만 맡았음 이 일을 신실하게 에무나로 감당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평생 성막의 문지기 역할을 맡았고 어떤 사람은 남비 지지는 일만 맡았음 이 일을 신실하게 에무나로 감당해 낸 사람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음

 

교회 직분을 맡아 섬기면 힘듦

그래서 예배만 드리고 멀찌감치 서 있으면 상처 받지 않기 때문에 직분을 맡기보다는 방관자처럼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

그러나 교회의 직분을 맡고 끝까지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을 통해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어떤 보상이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있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그의 교회에 하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고린전서 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린도 지역은 상업도시이면서 항구도시로 무척 음란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음란의 대명사로, 고린도 사람 같은 인간들이라는 말이 유행하였습니다.

이런 지역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린도 교회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고린도 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 총16장으로 되어있는데 “충성”에 대한 부분이 1장도 아닌, 그렇다고 마지막 장도 아닌 4장에 기록되어 있음. 천체 흐름을 아는 것이 중요함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음행의 문제, 머리에 수건 쓰는 문제, 헌금의 문제, 성찬의 문제,

그런데 무엇보다 고린도 교회는 분파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3장은 고린도교회의 분파 문제를 야단칩니다.

그리고 4장을 시작하면서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라고 말씀함니다.

 

여기 일꾼이란 단어는 - 휘페레테스 라는 단어로, 휘포(전치사 ~아래서) + 헤르테스(노젖는사람)의 합성어임.

그러니 일꾼이란? 선장의 명령을 따라 배 밑창에서 신실하게 노를 젓는 노잡이를 가리켜 일꾼이합니다. 뱃사람에게 사용되는 전문용어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고린도 교회, 이러한 문제가 가득한 교회, 그래서 그래 교회가 여기뿐이냐, 내가 떠나면 그만이지, 그래 직분 내려놓고 안하면 되는 것 아냐!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신뢰하고 교회의 맡은 직분을 신실하게 성실함으로 버틸 때 하나님께서 교회에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교회

눈물 겹도록 신실하게 그 일을 감당하는 분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오이코스리더로, 다윗의 장막 인도자로, 식당 봉사로, 교사로, 각 위원회에서, 전도회, 보이지도 않은 배 밑창, 그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신실하게 성실함으로 섬기는 지체들을 통해 오늘의 포도나무교회가 있으며 또 그러한 지체들을 통해 내일의 포도나무교회의 비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가 총력전도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포도나무교회의 한 지체라면 모든 성도가 관계동심원 바인더를 구입하셔서 기도 가운데 각자가 동심원에 속한 가족, 친척, 이웃들의 이름과 그들의 형편을 상세하게 작성하고 기도하고, 관계를 맺고, 교회로 인도하는 이일에 성실함과 신실함으로 감당하는 지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죽어가는 영혼의 생명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8월 중으로 바인더 구입과 관계 동심원을 작성 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적부도 아울러 작성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오이코스 리더 분들이 먼저 앞장서서 이일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또 오이코스 지체들이 바인더 구입과 작성을 꼼꼼히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3.결혼관계를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

합2:2의 믿음이란 단어가 결혼관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됨

 

호2: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 진실함으로(에무나)

 

하나님께서 음행하는, 불륜만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불려 들어서 장가들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에무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륜을 저지르는 음행을 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신실함을 저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대리고 와서 사랑을 제게 하면서 내가 진실함으로 에무나로 장가들겠다고 선언하심

하나님의 이 같은 에무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사람 호세아를 택함 - 온 몸으로 겪게 함

음행을 저지른 고멜을 대려다가 아내를 삼고 사랑을 제게 하라는 겁니다.

 

결혼관계에서의 에무나는 배우자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아내에 대하여 신실함을 지키는 에무나의 모습 보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부가운데 한 사람이 외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사람이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고 신실함으로 인해 한 가정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것을 주변에서 보아왔습니다.

 

아무런 보상과 만족을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실치 못한 상대방에게 신실함으로 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바보라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통해 가정이 깨어지지 않고 유지되어 온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남편이 외도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기도로 키워온 아내..

남편이 가장으로서 일을 전혀 감당하지 못함에도 불고하고 신실함으로 아내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아내...

때론 아내가 아내의 역할을 전혀 감당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진실함으로, 성실함으로 남편의 자리를 지켜온 남편....

때론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였지만 진실함으로 신실함을 자녀의 자리를 지키는 에무나의 모습 보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19: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 함이니라 - 이 말은 이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용서하신 예수님을 보면

호세아 음행한 여인 대려다 사랑을 제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배우자의 불성실함을 참아내며 신실하게 살아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버티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벤허 150만 불 투입

10년의 제작기간

10만 명의 출연인원

지구를 한 바꿔 돌만큼 필름을 사용한 걸작 영화

영화의 클리이막스 15분간의 전차경주씬

만5천명이 4개월 동안 연습했다는 전설적 기록을 남김

멧살라 4마리 흑마 이끄는 바퀴에 톱날달린 중무장한 그리스식 전차를 끌고 주인공 유다벤허와 경주를 벌임

찰톤 헤스톤은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 경기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연기해야했음

 

찰톤 헤스톤 - 마차 타는 것을 힘들어했음 2개월 연습 후에야 겨우 마차를 몰수 있었음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게 이렇게 말함 마차는 탈수 있겠는데 경주에서 이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때 와일러 감독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단지 경주에 남아있기만 해도 그러면 당신이 이기도록 해 줄 테니까..

 

모든 것에 유다 벤허보다 유리했던 멧살라가 참패를 당한 이유가 뭐죠? 윌리엄 와일러가 유다벤허가 이기고 멧살라가 참패를 당하도록 각본을 썼기 때문입니다.

동역자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단지 경주에 남아있기만 해라 그러면 당신이 이기도록 해 줄 테니”

 

우리 인생의 거대한 각본을 짜시고 감독하신 하나님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경주에 남아있기만 해라 내가 너로 승리케 해주마. 여러분 우리가 일을 이루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십니다.

 

출17장보면 너무나 분명함

손만 들고 버터라 그러면 승리케 해주겠다.

여기에 우리의 삶의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의 삶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홍수로 이 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방주를 지었던 노아

*죽은 이삭을 재 가운데서도 살리실 것을 믿고 아들을 향해 칼을 들었던 아브라함

*하나님을 신뢰하고 홍해를 향해 팔을 내 밀었던 모세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신뢰하고 법궤를 메고 요단 강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은 제사장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는 자로서 그 약속이 더디게 성취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까지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고 그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해 보이고, 도저히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지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신뢰하고 신실함으로 에무나의 모습으로 함께 그 길을 걸으며, 결과 하나님의 생명을 선물로 받는 포도나무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 물결 찬양 229장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327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