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권별설교/요나

요나의 실패(욘1:1-3)

발의무리 2011. 4. 2. 07:27

2010.06.06 요나의 실패 영광교회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 사람을 통하여 일하심

그러면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로 찾는 것

이 삶이 어떻게 가능 하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 -> 믿음으로 순종 ->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심

->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심 ->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옮 ->복을 받음

 

이것을 위해 요나를 부르심

이것은 요나에게는 축복 ->가문의 영광

그런데 요나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한마디로 그러나......불순종으로 반응함

 

그냥 불순종이 아니라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못해서 순종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문제도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불순종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 이 요나가 누구입니까?

당대 선지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왕에게 조언하고 예언을 할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는 당대 대표적인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인 이런 요나가 불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세요?

그렇다면 무엇이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초청에 불순종하게 하였을까요?

무엇이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을까요?

 

1.상한 감정, 즉 내면의 상처가 걸림돌이 되었음

요나는 니느웨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요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니느웨에 대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아주 잔인한 민족 - 소수민족 말살정책

4마리에 사지를 묶어 찢어죽이는 잔인함

우리에 사람을 가둬두고 오가며 칼로 푹푹 찌르며 고통을 격다 죽어가게 함

왕의 목을 잘라 아들에 목에 걸고 거리를 다니게 함

배속의 태아까지 칼로 찔러 죽이는 잔인함

성경은 니느웨이를 교만, 궤휼과 강포와 늑탈이 가득한 도시, 이기적인 도시라고 평가합니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이 야만인 같은 앗수르에 의해 멸당 당하게 되었고, 앗수르의 혼열정책으로 나라가, 민족이 없어지게 됨.

그들은 개취급을 받게 됨.

결국 북이스라엘 후손들은 사마리아인으로 개취급을 받게 됨.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다른 곳에는 어디던 가라면 가겠는데 이곳만큼은 가기 싫은 거예요.

이러한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요나에게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가 판단하기에 니느웨는 은혜를 베풀 이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요나가 그랬어요.

 

여러분 이처럼 내면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에 동의하는 삶은 쉽지 않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쉽지 않음

이런 사람은 자아의 소리를 듣게 됨,

하나님의 소리에는 관심이 없음.

요나 - 상처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함.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처가 있음.

그 결과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의 소리를 듣고 시기 질투가 올라옴.

영적으로 건강하면 생각이 올라오면 처리를 해 버리지만 사울은 상처가 있었기에 처리하지 못함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음

그러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생각에 갖가지 양념을 첨가함

생각을 발전시킬 때 원수가 공격하는 통로가 됨

과거의 상처의 영향력이 그 사람을 붙드는 통로가 됨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보면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일에 자기를 불러주신 영광이요 축복인데 얄팍한 자기 논리 자기 계산으로 불순종하게 만듦.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1)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위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고리를 만듦

요나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고리를 만듦

많은 사람 - 내면의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됨

순종의 사람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처가 치유되어야 함.

우리 모두는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함, ?

그래야 내가 잘되니까?

그래야 문제 해결이 되니까?

그래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으니까?

아니에요. 왜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그래야 하나님 앞에 순종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의 원인>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대상 -> 하나님

왜 내 기도는 안들어주시는가,

다른 사람은 하나님 음성이 들리는데 왜 나는 안들리는 가

왜 아필이면 나에게 요구하시는가

*사람 때문에

환경 -> 내가 원하는 환경이 아님 ->그러면 상처 받음

 

2)어떻게 상처치유?

하나님의 성품과 주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가장 옳은 길로 인도하심

하나님은 전지하심 - 최선의 길로 이끄신다.

전능하심 -완전한 길로 인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는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여기서부터 과거의 상처를 봐야한다.

나를 사랑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신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옳아요 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

나의 상처와 아픔을 주님이 알고 계심을 아는 것이 중요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상처를 다 알고 계신다는 이것 하나만 인식한다면....이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가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은 분이심을 알아야함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왜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는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실 수 하지 않은 분이심을 아는 것이 중요함.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 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심일세

내가 세운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쓰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잘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보여도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 맡기리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과거 상처를 다루심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 가신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 66: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66:1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 관계 어려움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

- 하나님 쓰셨던 인물들은 다루셨다.

-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면 상처로 남을 수 있음.

 

) 요셉 - 6살 때 어머니 주금, 아버지의 편애를 받음

형들에 의해 팔려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여 세우심

안정을 누리 때 위기가 옴 - 보디발 아내에 의해 감옥에 감.

감옥에서 꿈 해석 후 기억해달라고 했는데 잊어버림.

- 우리는 국무총리가 되었다면 보디발 집에 찾아갔을 것이다.

- 형들을 복수했을 것이다.

- 50:18-21

50: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다른 각도로 해석이 끝남 -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그 일을 이루셨다. 그래서 자기를 판 현들의 가족까지 돌보겠다고 함, 다루심의 통로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 됨.

- 상처가 하나님이 나를 빚어 가시는 과정으로 보아야

- 과거의 상처를 다루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현장실습하기 위해서

- 피차는 조교 노릇한다.

- 다루심을 이해하고 나면 상처를 안 받는다. 그 뒤에 하나님의 의도가 계시기 때문

- 과거를 상처가 재해석이 된다.

다루심 속에서 내가 다루어 질 뿐 아니라 상대방을 내가 용서할 때 그들이 자유케됨 -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십자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

십자가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 내려져야 한다.

- 자기 야망, 욕심, 인정받으려는 것에서 기인하여 상처를 받으면 회개해야 한다.

- 야망 :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 우리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 우리의 유일한 배경 : 하나님

내 문제 하나님 아신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 , 죄책감의 문제 - 십자가에서 바라보면 해결

-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 변호사의 음성을 거절하는 것

- 십자가를 이해하면 상처를 받지 않음 - 온유함

- 이것이 안 되면 자기를 과신하고 왜곡된 이해를 한다.

 

2.요나가 불순종한 두 번째 이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요나의 불순종의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몰랐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요.

 

마치 탕자의 비유의 큰 아들과 같이

자기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 뭐입니까?

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큰 아들의 말이 다 맞음 - 그런데 큰 아들을 집안의 탕자라 부르는 이유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오늘 요나 그는 아침에 있다 저녁에 없어질 박넝쿨에 생명을 건 사람입니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4: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4: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 그러면 60만이 넘는 인구

 

이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박넝쿨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직장, 건강, , )

우리는 이러한 잠깐 있다 없어질 것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영원한 영혼을 위하여는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영혼을 당신의 박넝쿨 만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여러분의 박넝쿨 만큼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음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회복하게 됨

오늘 그 타락한 시대를 향하여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한가.

이사야가 경험한 것과 같이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내가 누구를 보내야 할꼬.

저 타락한 백성들 참다운 지도자가 없어 고통하며 신음하는 저들에게 오늘 누가 내일을 행할꼬. 할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교회는 거짓신앙이 가득한 시대,

가정은 붕괴되고

자녀들은 것 잡을 수 없이 혼돈에 빠짐

이 땅 가운데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가 되어버림

하나님을 버린 인생들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아직도 탄식하고 계세요

누기 이 혼돈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을 죽여 버린 저 인생들 앞에

복음들이고 갈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시대를 향한 아버지의 심정

이때 우리가 하나님과 실제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됨.

이사야처럼 내가 누구를 보낼꼬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우리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마음을 회복시켜주세요.

경배와 찬양 91- 저 죽어가는 형제에게 주님 마음내게 주소서

 

3.요나가 불순종한 세 번째 이유

요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아니 그 강대국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어가지고 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유대나라 사람이 가서 너희들 회개하라고 할 때 누가 말을 듣겠느냐는 겁니다.

아니 회개는 고사하고 도리어 요나의 생명이 위태로울 거예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나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보임

모세 - 네가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여러분 당시 애굽이 어떤 나라입니까? 애굽의 바로왕은 어떤 왕이었습니까?

나 같은 게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거예요.

지금 말로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생각? 자기생각이에요.

요나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래요.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래요.

저는 여러분의 논리가 생각이 내려지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기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3절을 보세요.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니느웨는 북동쪽에 있음

그런데 그는 정반대인 북서쪽에 있는 욥바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요나는 욥바에서 놀라운 일을 만납니다.

마치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됨 - 이 말은 오늘의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다시스는 솔로몬 왕 때부터 이스라엘과 무역을 해왔는데, 그 시대에 다시스는 3년에 한 번씩 무역을 했습니다.

왕상10:22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그러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는 3년마다 한 번씩 욥바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빠져 가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잘 풀리느냐는 거예요.

아니 불순종해서 세상으로 나가는데 있던 배도 끊어야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일이 더 잘 풀리는 거예요

요나가 어떻게 생각 했을까요? 이것이 하나님 뜻이었구나

여러분 세상에 일이 잘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 위험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데 일이 잘 풀리는 것 위험합니다.

정말 우리의 삶에 무서운 것은 징계하지 않는 징계

그런데 보세요.

마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이 요나 편에서 보면 대박인 것 같은데 -

하나님 편에서는 대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당하고 물고기 배속에 들어간 것이 대박이더라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하는 일 마다 잘 안되고 내 가슴을 찣어 놓는 실패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축복인도 모른다는 겁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은 엉망인데 너무 잘되는 거 이것이 나중에 대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4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원문() 그러나 라는 접속부사로 시작

3-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지 않는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그러나 입니다. - 인간의 불순종에 대해 방해를 거시는 하나님의 그러나 입니다.

인간의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나의 대결에서 인간의 그러나가 이겨본 적이 없음

오늘 여러분 하나님과 무슨 문제로 대결하고 계시나요?

여러분의 그러나와 하나님의 그러나가 어떤 문제로 충돌이 되시나요?

빨리 포기하시고 내려놓으세요.

경배와 찬양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