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축복 (욘1:1-3)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축복
요나1:1-3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주 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1)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2)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했다.
므두셀라의 뜻: 그의 죽음이 반드시 OO를 가져올 것이다.
그가 죽을 때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가 죽을 때 그것(홍수)을 보내리라
3)어떻게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응답하신다.
오늘은 요나서1:1-3울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두 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하는 말
교회가 문제다
그리스도인들이 문제다
교회가 위기다
뭔가 문제인가?
성도가 교회가 - 무기력함, 무능력함,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교회가, 성도가 더 이상 대안이 되지 않음
개인이나 가정이나 겉으로 보기엔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직장을 다니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현실
육체의 질병
내면의 상처들,
상한감정
갖가지 영적문제
감당할 수 없는 억압들...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교회가 성도들이 너무나 부기력하고 무능력하다는 겁니다.
조그마한 어려운 환경 앞에서 낙심, 불신, 절망하고 어쩔줄 모름
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의 신앙이 무기력한 것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가 잘 아는 요셉 -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이복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자기 형제들이 의해 물 없는 웅덩이 빠뜨림을 당하고,
애굽의 노예시장으로 팔려가는 신세,
보디발 아내에게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철장신세
여러분 이 얼마나 비참한 삶입니까?
도저히 인간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창39: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하나님과 동행이 -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분노와 증오를 용서로
미움을 사랑으로
자기연민을 주를 향한 소망으로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요나서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두 번째 말씀을 드리고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1.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야합니다.
요나서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 합니다.
여러분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 축복이 다른 것이 아니에요.
온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축복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이 축복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예배회복, 예배회복을 위해 기도하는데
왜 예배회복을 기도합니까?
회복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결단이 일어나고, 회개가 일어나고 우리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울을 보세요 - 그렇게 강퍅했던 사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고 혈기 등등한 그였지만 그 사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까 그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울아 사울아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임하니까, 인생이 변하는 사건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 한마디에 꼬꾸라지는 것이 인생이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나요?
한결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노아-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아브라함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인생이기를 축복합니다.
2.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 - 1)일어나라 2)가라 3)외치라
1)일어나라
요나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여기 "일어나"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결단하라 - 무기력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라는 뜻
여러분 눅15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탕자비유에서 탕자가 회복하는 과정을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➀현실에 대한 자각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현실에 대한 자각이에요.
돼지 쥐엄 열매를 먹고 겨우 생명을 연명하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
회복에 대한 첫 번째 열쇄는
우리 자신에 대한 초라함을 자각이에요.
이렇게 살라고 만든 인생이 아닌데..
날마다 이렇게 싸우라고 주신 가정이 아닌데..
이렇게 무기력 하라고 주신 것이 교회가 아닌데...
현실에 대한 자각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변화가 없다, 이것을 정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자각이에요
이거 뭔가 병들었다.
이거 뭔가 심각하다
방치해선 안되겠다.
이 자각이에요.
➁자각을 바탕으로 마음의 결심이 일어납니다.(18절)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오늘 우리의 문제 - 이 두 번째 단계까지 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했어요
내가 뭐하는 짓이냐
내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나
자각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아버지께 돌아가리라고 결심했어요.
우리교회 예배시간 마다 특히 성령의 사역 시간에 한주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고 결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내적으로 결심한다는 거에요.
나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뭐야 내가, 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
그런데 보세요, 여기까지 탕자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자각 -> 결심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
이것이 요나에게 주시는 일어나라는 말씀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2)사명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를 향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명은 특별한 사람이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명입니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얼마나 기가 막힌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실 때 무슨 조건으로, 자격으로 부르시나요? 탁월한 리더쉽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능력 유무를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우리 기도 - 사명을 주세요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자각하는 거에요.
바울을 보세요
모든 편지 서두에 사명의식을 이야기 합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날마다 사명을 가작하는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가야 합니다.
요나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앉아서는 주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생각만 가지고, 마음만 가지고, 입만 가지고는 주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 - "일어나 함께 가자" 라는 표현
3)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있다면 나타나는 특징이 뭐냐?
본질이 회복되면 나타는 특징이 뭐냐?
닫혔던 입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행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무슨 말을 했느냐
행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를 말하기 시작함
배운 것도 없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던 제자들에게 어떤 능력이 나타납니까?
행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함
그들의 입술이 성령님의 통제를 받기 시작하드라는 겁니다.
언어의 변화, 입술이 달라짐, 말하는 내용이 달라짐
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이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했는데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인간적으로는 요나에게 충분한 이유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어요.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
아주 잔인한 민족 - 소수민족 말살정책
말4마리에 사지를 묶어 찢어죽이는 잔이함
우리에 사람을 가둬두고 오가며 칼로 푹푹 찌르며 고통을 껵다 죽어가게 함
왕의 목을 잘라 아들에 목에 걸고
배속의 태아까지 칼로 찔러 죽이는 잔인함
다른 곳에는 어디던 가라면 가겠는데 이곳만큼은 가기 싫은 거예요.
그러나 요나의 “그러나”의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몰랐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요.
마치 탕자의 비유의 큰 아들과 같이
자기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 뭐입니까?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오늘 요나 그는 아침에 있다 저녁에 없어질 박넝쿨에 생명을 건 사람입니다.
요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4: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4: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 그러면 60만이 넘는 인구
이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박넝쿨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집,직장, 건강, 돈, 몸)
우리는 이러한 잠간있다 없어질 것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영원한 영혼을 위하여는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영혼을 당신의 박넝쿨 만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여러분의 박넝쿨 만큼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음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정을 회복하게 됨
오늘 그 타락한 시대를 향하여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한가. 이사야가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내가 누구를 보내야 할꼬.
저 타락한 백성들 참다운 지도자가 없어 고통하며 신음하는 저들에게 오늘 누가 내일을 행할꼬. 할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교회는 거짓신앙이 가득한 시대,
가정은 붕괴되고
자녀들은 것 잡을 수 없이 혼돈에 빠짐
이 땅 가운데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가 되어버림
하나님을 버린 인생들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아직도 탄식하고 계세요
누기 이 혼돈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을 죽여 버린 저 인생들 앞에
복음들이고 갈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시대를 향한 아버지의 심정
이때 우리가 하나님과 실제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됨.
이사야처럼 내가 누구를 보낼꼬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우리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마음을 회복시켜주세요.
경배와 찬양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91장 - 저 죽어가는 형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