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강 양문재건을 통한 예배회복(느3:1-5)
예배회복
느3:1-5
느헤미야는 총 13장으로 남 유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2500년 전에 기록되었던 예루살렘 성벽 중건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여기에 전에 “기록된 바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은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럼 오늘 본문의 예루살렘 성벽 중건도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교훈이 무엇일까요?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성벽 재건은 양문건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느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여러분! 예루살렘 성은 꼭 사람의 오른쪽 발자국과 흡사 합니다. (화면)
예루살렘 성벽에는 10개의 성문과 4개의 망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10개의 성문 중에 양문은 예루살렘 지도를 보면 양문이 어디 있는가?
맨 위에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본문이 있는데 예루살렘 성의 모든 오물을 버리는 문입니다.
양문을 통해 성내로 쭉 들어오면 성전을 만나게 됩니다.
제사에 사용할 양을 이 문을 통해 옮겼다고 해서 양문이라 불립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제단을 향해서 나아갈 때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 양문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양문은 하나님 앞에 제사, 예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주위를 둘러보세요.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무너진 가정을 바라보며 어찌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무너진 가정의 부산물로 나타나는 오늘...
캠퍼스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그 중 가장 먼저 다시 세울 것 -> 예배의 재건
예배 회복이 진정한 회복
탕자: 모든 것의 회복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죠.
우리의 모든 회복의 출발: 예배회복
2.예배회복을 열망하시는 하나님
유다백성들 바벨론 포로에서 70년이 차면 회복을 약속
(렘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BC 586년 바벨론 포로
BC 538년 포로귀환 (48년)
BC 536년 성전기초 완성 (50년)
방해 /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으로 중단 -> 15년 지남
BC 519년 다리오왕 즉위
BC 518년 하나님의 말씀, 학개와 스가랴에게 임함 (68년), 예루살렘에 돌아 온지 20년이 지남.
BC 516년 예루살렘 성전 완공 (70년)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회복을 정치적 회복을 회복으로 보지 않음.
본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회복으로 보지 않음
성전회복을 회복으로 봄, 즉 예배회복을 진정한 회복으로 봄
왜 성전 회복을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보는가?
성전이 세워지는 것: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것과 연결
(스가랴2:10-13) 슥2:10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2:11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2:12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2:13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오시면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넘침
성전회복 -> 건물이 아님, 제사의 회복, 예배의 회복
예배회복: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자로 서야 함.
3.예배회복이란 무엇인가?
교회회복이란?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회복
예배 가운데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이 예배 회복입니다.
오늘의 문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큰 문제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분 만이 하실 일들이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배 가운데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는 겁니다.
이것이 심각한 병이 들었다는 겁니다.
4.예배가 회복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1)예배에는 하나 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예배가 회복되면
첫째, 교회가 하나 됩니다.
1절을 보세요.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절을 보면 안디옥교회가 얼마나 복잡한 교회인지 아시겠지요?
5명의 지도자를 세웠다고 하는데 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마나엔, 사울입니다.
면면이 어떻습니까?
바나바는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고 귀족입니다.
교회에 땅을 헌금할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몬, 여기에서 니그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흑인입니다. 북아프리카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흑인들의 지위가 백인에 비해서 높지 않지만 당시에도 낮았던 것 같습니다. 낮은 지위에 있는 시몬,
구레네 사람 루기오, 이 사람도 흑인이었습니다.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외국인노동자들의 위치하고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나임은 헤롯의 젖동생이었습니다. 귀족입니다. 높은 지위의 사람입니다.
사울, 알다시피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인텔리 출신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는 여러 인종과 여러 계층이 모인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이 모이면 반드시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가 살아있으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녹이시는 분이십니다.
다양성이 있는데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것이 분열과 충동의 동인으로 작용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있으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 하는 예배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듭니다.
예배가운데 관계를 회복시키심
예)
남편 바람 - 살갗만 스쳐도 -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음 - 이혼
예배를 통하여 - 이혼할 수 없다고……. 그러면 남편이 불쌍해서 어떠하냐고...
모든 단체경기의 승리는 조직력에 있습니다. 즉 하나 됨에 있습니다.
교도나무교회의 2기 사역의 승리의 원동력은 하나 됨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있으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 하는 예배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영광입니다.
2)예배에는 환난을 이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창세기 35장에 보니까 야곱이 하몰의 아들에게 복수해서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고백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삶에 위기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많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통곡으로 며칠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험과 환난, 하나님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야곱은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풉니까?
예배로부터 풉니다. ‘내가 거기에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예배드리기를 원하노라.’ 간절히 예배드릴 때 창세기 35장에서 어떤 일이 나타났습니까?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들이 두려워 떨게 만드는 대적이 떨게 만드는 그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능력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성도가 배워야 될 한 가지, 교회가 세뇌시킬 정도로 하나 붙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환난과 위기가 있을 때 다른 것으로부터 풀지 말고 예배로부터 풀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예배로부터 문제를 풀 때 가장 두려워 떱니다.
예배로부터 삶의 많은 문제를 풀어가는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처음 갔던 청교도들, 메이플라워에 102명이 타고 미 대륙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까?
기아의 위기,
내분의 위기,
멸절의 위기, 많은 위기가 있었는데 그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계속 강조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 모든 문제를 예배로부터 풀었다는 것입니다. 미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예배드렸고 그다음에 했던 일이 곡식 거두고 난 다음에 예배드렸습니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 아닙니까? 예배로부터 풀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난제를 예배로부터 푸는, 승리를 맛볼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케 합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그가 목격한 세상은 한마디로 황폐함 그 자체였습니다.
여러분 1년 동안 물에 잠겨있었던 세상이 어떠했겠습니까? 상상해 보세요.
여기저기 시체들이 늘려 있었을 것이고, 그 시체들은 썩어 사망의 냄새가 진동을 했을 것이며, 집 한 채 찾아볼 수 없는 생명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폐허 그 자체였을 겁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을 바라보고 노아는 절망했을 거예요. 낙심했을 거예요. 소망을 찾아볼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아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에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제사, 예배인겁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절망 속에서 자기의 살 집을 지은 것이 아니에요. 먹을 것을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폐허 속에 하나님을 생각한 거예요.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과거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 방주를 준비하라 말씀하신 하나님, 나를 붙드셨던 그 하나님을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거예요.
하나님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하나님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부요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의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하는 심령에 그 곳에 찾아오시는 거예요.
예배를 통하여 오늘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 그의 놀라움을 보이셨다. 그의 얼굴을 보이시고, 그의 전능하신 팔을 내게 보이셨다. 나는 주님과 함께 있었다. 사랑을 경험했다. 여러분 이러한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예배한 노아에게 주신 축복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노아에게 복을 주셨는데 어떤 복을 주셨는가?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회복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열쇠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자에게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한 노아를 하나님께서는 축복하기로 하셨는데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기 3단어가 나오는데 생육, 번성, 땅에 충만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의 본질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인간은 저주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1장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이렇게 축복합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죄로 인하여 이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1장의 약속을 창세기 9장에서 다시 회복시키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노아홍수 당시 인구가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6:1에서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라고 말한 것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죽고 노아8식구만 살아남은 거예요. 여러분 8식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너희는 안심해라 비록 마귀가 인간을 타락시켰지만, 인간이 죄를 지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심판이 왔지만 축복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예배하는 곳에서는 회복 역사가 경험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질병이, 습관, 직장, 사업, 가정의 문제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4)예배는 비전을 갖게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예배는 꿈을 갖게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꿈을 갖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배 중에 음성을 듣고 땅 끝을 보기 시작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원래 이렇게 비전이 있던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니까 눈이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세워야 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나바와 바울이었습니다.
예배 잘 드리는 교회는 비전이 충만하고 다른 것은 모르지만 방향이 명확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방향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당장 내가 무엇을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까짓것 못 얻으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얻으면 되는 것이지요.
방향만 올바르면 나머지는 시간문제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비전이라는 것은 별과 같습니다.
별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유익이 있습니다.
별은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그 별을 따겠다고 나가는 사람은 방향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별을 주십니다. 비전을 주십니다.
비전이 이 땅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방향이 올바로 되는,
그 방향 때문에 우리 삶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은혜의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회복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어린양)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바로 예배를 향한 갈망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향한 갈망
회복을 향한 갈망
아~~정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이 갈망에서부터 회복은 시작될 것입니다.
어린아이 자라나려면 성장 통이 있습니다.
만약 성장 통이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우리 포도나무교회 모든 지체들이 갈망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성장 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성장 통이 없는 지체는 이미 병든 거예요.
점검
나는 예배회복의 갈망이 있는가?
가정의 회복을 향한 갈망이 있는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가문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는 방법입니다.
모든 일을 예배를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예배 하나 붙들면 승리합니다.
예배 붙들면 가족도 하나 되고 교회도 하나가 되고 우리 공동체도 될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의 능력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에는 환난을 이기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배로부터 나아갈 때 환난과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예배 하나 제대로 드리면 명확한 꿈을 꾸는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종들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명확한 방향을 회복하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포도나무교회에 주신 비전 - 회복과 부흥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언제 더 선명해 지는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