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권별설교/느헤미야

08강 크고 드려우신 하나님 (느4:14)

발의무리 2013. 7. 29. 20:36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2013.6.30주저녁)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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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으로부터 약30여 년 전에 교육전도사 시절에 오디오 미쳐서 정말 어렵게 오디오를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교육전도사들의 사례금으로 오디오를 구입하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오디오를 어떻게 구입한지 아세요?

제가 구입하고 싶은 오디오 카탈로그를 책상 유리 밑에 넣어두고 매일 매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반드시 이 오디오를 구입할고 말 거야 바라볼 때 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사야할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결국은 제가 원하던 그 오디오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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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오디오 산 것 자랑하려고 한 것 아닌 거 아시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핵심 요지는 바라봄입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변화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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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같이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살면서 왜 굶어 죽어가는 자들이 세상이 존재합니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매일 사람들이 돈 만 바라보니 모두가 돈의 영향을 받고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돈의 노예가 되니 돈을 꽉 움켜지고 흘러 보낼 줄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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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동물의 왕인 사자들이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 보세요.

사자들이 초식동물과 같은 얼룩말을 언제 사냥한 줄 아세요.

사자들은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서만, 배가고파 허기가 질 때만 초식동물을 잡아먹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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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인간들의 저급한 욕심, 저급한 끊임없는 탐욕이 오늘 이 지구 한쪽에서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배가 불러 죽어가도 있고, 또 지구 반대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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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만약 사자들이 인간의 그 끊임없는 탐욕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아프리카 초원은 죽은 시체들의 냄새로 진동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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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는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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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날마다 무엇을 바라봅니까?

지금 여러분의 눈이, 생각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것이 우리는 영향을 받고 그렇게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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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을 보세요.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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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롯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조카 아닙니까?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아브라함 때문에 거부가 된 사람.

그런데 그의 삶의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사위들은 소돔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함께 멸망을 당하였고,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은 두 딸과 함께 겨우 생명은 건졌는데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태어난 그것이 모암과 암몬 족속 아닙니까?

여러분! 이렇게 비참하게 된 출발이 무엇입니까?

바라봄이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롯은 요단들의 그 비옥한 땅, 소돔고모라성의 그 화려함만 바라보았지, 소돔고모라성의 그 죄악은 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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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상고 출신의 베드로 보세요.

한 밤중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라 명하실 때 배에서 뛰어내려는 것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그랬던 베드로도 환경을 바라보니 별 수 없이 물에 빠져들어 가더라는 겁니다.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도 별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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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교할 때 한 번씩 인용하는데

예레미야 보세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뭐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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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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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보니까?

금방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이거 누구 모습입니까? 우리 모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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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는 먼 이국땅에서 바벨론에서 포로민의 아들로 태어나 왕의 목숨을 책임지는 술 관원의 높은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귀를 막은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소식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성이 무너져 황폐해 졌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황폐한 도성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재건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따라가려는데 예기치 않은 심각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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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시험하는 데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과 또 다른 하나는 내부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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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부의 시험

그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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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말로 비웃습니다.

(4:1-3)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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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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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말로 비웃음 뒤에 그들이 노린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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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귀가 부하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타락시키는 일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전시하는 무기 전시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무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무기가 제일 낡았는데 제일 비싼 값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궁금하게 여긴 부하들이 마귀에게 물었습니다. “두목님, 이 무기에 왜 이렇게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나요?” 그러자 두목이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이 무기를 사용할 줄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이 무기로 간단히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가 있어, 이 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타락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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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기의 이름은 바로 낙망이라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낙망케 하는가? 바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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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 말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무엇인가 바로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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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교회에서 시험 들었다 하면 대부분 그 원인이 무엇인가? 말 때문인 것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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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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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의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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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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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의 삶

1.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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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이 어려운 환경을 만남 

한 사람 나 이럴 줄 알았다고, 나 잘하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난 잘될 수 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으로 그것을 맞는 사람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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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왜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이것을 통해서 욥처럼 정금 같은 인물로 다듬어 가실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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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언어가 그 사람의 행동을 규정짓는다는 것을 아시죠?

 

2. 선한 말을 하라 / 유익한 말을 하라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세운다 ) 오이코도메

이 단어 에베소서에서 주로 교회를 세우는 것과 연관해서 사용됨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즉 공동체를 세우는데 이 단어가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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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말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사용되는 말이 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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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이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위기다.

한국교회는 변질했다.

교회가 무능력하다, 무기력하다.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한다.

교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교회가 왜 이 모양이냐~~

교회는 믿을 것이 아니다.

목사들은 권위만 내세우고 상처만 준다.

이 땅의 좋은 교회는 불가능하다.

나는 교회를 믿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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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또 성도들을 향하여 얼마나 부정적인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위기다.

성도들이 성도답지 않다.

성도들이 정직하지 않다.

성도들이 너무 이기주의다.

얼마나 부정적인 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들이 이렇게 하는 말들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가 위기일 수 있어요.

성도들이 성도답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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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합니까?

이 비웃음에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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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합니다..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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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세 번째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만나게 됩니다. (1:4-11, 2:4, 4:4-5)

그런데 여러분, 이 기도가 밥 먹을 때 하는 기도나, 잠잘 때 하는 기도로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정말 절박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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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위기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도 이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위기 불감증에 걸렸어요.

그런데 정말 위기입니다. 보통 위기가 아닙니다. 정말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절박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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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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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 절박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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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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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신다.(요일5:14-15)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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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즉" - 막연한 것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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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한다.

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할까요? 그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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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

고전2:9,10/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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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령님이 우리 기도를 도우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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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구할 수 있도록 도우심.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수 있도록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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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령을 따라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하심.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령의 도우심의 기도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게 될 것임 -> 반드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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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블랙가비 스완표 자전거

이것을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구하는 기도에 비유함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려고 성령으로 구하게 하시고 그 일을 이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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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령께서 기도하게 하실 때 절대로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됨 - 영적 민감함

기도하게 하시고 -> 이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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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선택합니다.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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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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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님께서 (1:21)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삼으셨으니) 디노미 > 주다 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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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입니까?

성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로 예수님을 주셨다.

지금 예수님이 이 교회의 주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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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면 우리는 그 머리되신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 영향력 가운데 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인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 있다면 좋은 교회는 가능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가능합니다.

회복된 교회는 가능 합니다.

살아있는 영적인 교회는 절대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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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환경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의 처지만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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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왜입니까?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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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의 상황: 매우 심각한 상황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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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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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기를 선택함

하나님을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토대해서 바라보는 것

- 하나님의 의중, 의도, 목적, , 계획을 바라보는 것

-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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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 중에 느헤미야와 같은 공격이 있습니까? 시험이 있습니까?

여러분 이 시험에서 어떠하실래요?

어떻게 하기를 원하세요?

환경만 바라보며 나는 못해, 나는 할 수 없어, 이 일은 우리에게 너무 벅찬 일이야, 이 엄청난 일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어 그러고만 있을꺼야구요.

기도하기를 선택하십시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만을 바라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질투가, 하나님의 열심히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고 앞서가시며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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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부의 시험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 시험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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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공동체를 가장 시험 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원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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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이란 환경이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되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감정의 표현이 원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망의 특성은 누룩과 같아가지고 절대로 이 원망이 혼자 원망으로 끝나지않습니다. 원망은 누룩과 같이 퍼져 나갑니다. 원망이 원망을 낳고, 불평이 불평을 낳고 이렇게 계속 확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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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원망이 무엇입니까?

2절 살고보자, 먹는 문제 원초적 본능적인 것으로 원망

3-4 돈 문제, 세금을 많이 내었는데도 그런데 우리가 왜 부단한 대우를 받느냐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시험을 당할 때 왜 알아주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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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여러 가지 우환이 계속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해 본적이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섬김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충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높혀주지 않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한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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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원망과 불평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단은 우리를 원망하게 합니다. 불평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원망과 불평의 배후에는 사단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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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 성경학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할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마시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의 이유

1.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 원망하게 됨.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 생활할 때 하나님을 원망

만약 그들이 과거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 비참한 광경을 기억했다면, 노예생활의 부자유 속에서 귿르을 자유케 하시사 출애굽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이 기억했었더라면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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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홍해의 죽음 앞에 섰을 때 생명과 보호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더라면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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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생활에서 그들이 굶주림의 위기 앞에 처했을 때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던 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었더라면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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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2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잊기 때문에 원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종노릇할때에 그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내일이 없고 소망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세상에서 마귀의 손에서 끌어내시고 구언하시어 약 속의 땅 가나안 천국을 가게 하시고 구속하신 이 놀라운 은혜를 망가할 때 원망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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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재 하나님의 보호를 망각할 때 원망

액정, 우리가 맞있는 음식을 계속 먹으면 나중에는 그것이 밎이 있는줄 모르듯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 축복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로는 감격을 사실하게 되고 감사를 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불평과 원망 밖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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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걸어 갈때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등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다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기 양들을 위해 지키고 돌보는 일에 생명을 걸고 하신다는 것까지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절망 속에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캄캄한 밤을 헤매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희생하고라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우리가 생명처럼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사실을 믿고 계십니까? 그가 우리를 인도하고 돌보고 계심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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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래의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볼 때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지금 원망의 순간에도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그 약 속의 땅을 향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그 과정에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인도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 신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가난의 혼인잔치를 기억하십니까? 나중에 가장 좋은 포도주가 맛을 보았던 하객들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것이 하나님의 일처리 방법임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원망이 변하여 찬송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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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원망의 시험이 일어날 때 어떻게 했느냐?

6-중심에 계획하였습니다., 이 중심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강조한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곰곰히 생각하면서 어떻게 할것인가를 계획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시험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생각을 하십시오,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하십시오. 중심에 계획하십시오.

문제의 원인을 치료10.11절 회개를 촉구할 때 백성들의 반응 12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 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회개, 순종할 때, 아멘 할때 자기도 살고, 남도 살고, 공동체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 하나님의 말씀에 판단 받고, 말씀에 치료 받고 말씀가운데 수술을 받아서 우리속에 있는 모든 문제들 다해결하고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치료 앞에 아멘으로 순종해서 내적인 시험 교회의 시험, 가정의 시험 다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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