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권별설교/느헤미야

14강 말씀 부흥 운동

발의무리 2013. 12. 21. 16:19

말씀 부흥 운동

8:1-8

 

수년전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순서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순서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성도들이 예배 멀미를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뭐냐 하면 야야 사람이 옷 바꿔 입었다고 사람 바뀐 것이 아니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외적으로 변하는 것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오늘 보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대공사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느헤미야 7장에서는 성벽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두 명의 지도자를 세워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제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되었고, 성벽도 재건되었고 거기에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지도자도 세웠으니 외형적으로 볼 때 완벽한 하나님의 도성이 회복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평화의 도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 된 것 아닌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하면, 외형적으로는 잘 재건되었는데 그들의 마음은 아직 재건되지 못하고, 그들의 믿음은, 신앙은 아직 무너진 채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좋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 자기 믿음 또한 좋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교회 성도이니 잘 세워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위험한 생각이라는 겁니다.

나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도 하고 다윗의 장막도 참석하고, 오이코스모임에도 빠지지 않으니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외적으로 무엇인가를 잘 한다고 모두다 내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형적 회복이 진정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면이 같이 회복될 때 진정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느헤미야 8장에서 내면의 회복 즉 예루살렘성의 영적인 부흥, 말씀 부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일어남.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성벽을 다 재건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말씀을 들려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일까요? 왜 그들이 다른 것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한데, 날은 저물어가는 이 아이에게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겠습니까? 맛있는 과자를 먹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쁜 장난감을 가지는 것입니까? 아니에요. 바로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찾는 부모님의 음성을 듣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겉은 말짱한데 속은 텅 비어있고 겉은 말짱한데 속은 상처로 가득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무너진 믿음이 어떻게 재건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목사님, 성경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강론해 주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무너진 성벽을 다 재건했으니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무너진 믿음을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라로 불렀을 때 그가 하나님께 뭐라고 말합니까?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보세요, 여기에 무슨 믿음이 있나요?

그런 그에게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반응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 무슨 놀라운 초인적인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에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 거예요.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질 때 그 믿음 없던 예레미야가 믿음의 선지자로 변화 되더라는 겁니다.

 

정말 오늘 우리의 무너진 믿음이 다시 재건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고민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렇게 강퍅했던 사울,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공문을 받아들고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 주님의 음성을 들려질 때 바울사도로 변하는 사건이 일어나더라는 겁니다.(9)

다메섹 도상에서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사울아 사울아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임하니까 그것이 인생이 변하는 사건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하나님 오늘 죄 안 짓고 살게 해주세요.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좋은 성격주세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십니까?

지체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이제 내일부터 2주 동안 NWS 하나님 인도학교를 하게 되는데 무엇을 기도해야합니까?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죄짓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죄악의 폭우가 쏟아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 죄악의 흙탕물이 조금도 튀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단이 일어나고 회개가 일어나고 우리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도 말씀을 들려지는 인생이 되게 해주시오.

오늘도 예배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은혜를 부어주세요.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말씀에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칠월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회중 앞에 으르러 수문 앞 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을 듣고 있는데 몇 시간을 듣고 있느냐, 자그마치 새벽부터 오정까지, 다시 말해 6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느냐 ->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오늘 30분만 듣는 것도 쉽지 않는데 어떻게 6시간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현대 예배의 설교시간을 찾아보았는데 과거에는 1시간, 현재 30분이었다가 30분도 길게 느껴져 20분으로 주는 추세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말씀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말씀에 대한 배고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일까요?

왜 갈망이 없을까요? 그 원인은 뻔해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인식하지 못해서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말씀에 대한 갈망이 없어요. 목마름이 없어요.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말씀에 대한 목마름뿐 아니라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 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의 마지막 재앙이 장자재앙이죠.

그 재앙을 피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것이었습니다.

 

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12:6 이 달 열 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12: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여러분! 이 말씀이 생명인 것 아세요?

말씀대로 순종하여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사는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인식하는 자는 말씀에 대한 갈망뿐 아니라 그 말씀에 절대적 순종의 자리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있어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는 이 땅의 것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같이 생각합니다. 또 사탄이 그렇게 유혹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떡이 뭔가요? 이 세상의 좋은 직장,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여러분 이것이 부흥입니다. 진정한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목말라 하고 진리에 대해 목이 타는 갈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내 삶이 이 진리의 지배를 받고 싶어 하는 이 안타까운 마음,

이 진리의 말씀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의 행렬,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갈증에서 부흥은 시작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성전이 아니라 수문앞 광장에서, 화려한 제단 위에서가 초라한 나무 강단 위에서, 재미있는 장편 소설이 아니라 딱딱한 율법사를 일방적으로 읽어 주기만 하는데 (8: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는 말씀처럼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아멘이 무슨 뜻입니까?

승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의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굴복시켰습니다.

자신의 삶을 조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대한 그들의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줄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삶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이것만 자랑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아멘 아멘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 자랑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납니다.

아멘 아멘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뼈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성도가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아직 애들이 어린데 갑자기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소집해서 미리 유언을 말했답니다. 무슨 유언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 갑자기 요한복음 14:6절 말씀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랬더니 조끄만 한 애가 이렇게 도발적인 질문을 하드랍니다. 아빠 예수님이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순간적으로 당황 했는데 아빠의 대답 아빠가 가 봤어

성경이 그렇게 말해, 옆집 아저씨가 그랬다가 아니고 아빠가 가 봤어” “엄마가 가 봤어이렇게 대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을 때 그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아멘 아멘

무슨 말입니까? 내가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4. 회개의 역사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주시는 말씀에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사역을 받는 것도 그래요. 맨 날 기도사역만 받으면 뭐해요.

기도사역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에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자각해야 하는 겁니다.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중요함. 그러면 다 된 것 아닌가요?

수년을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 앞에 자각되는 인생이 아니면 그 많은 말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비춰보고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된 거예요.

우리 자녀들도 마찬지 에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214 하늘의 나는 새도

245 주님 말씀 하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