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원/제5과 해석과 적용 단계의 분별
제5과 해석과 적용 단계의 분별
우리는 앞에서 계시 단계의 분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계시 단계의 분별은 우리가 들은 음성이나 우리가 받은 계시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취하고, 사탄과 자기의 음성을 분별하여 버립니다.
계시 단계의 분별을 통해 우리가 들은 음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분별되어졌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 단계의 분별을 더 거쳐야 합니다. 그것은 해석 단계의 분별과 적용 단계의 분별입니다. 해석 단계의 분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음성의 의미를 분별하는 것이고, 적용 단계의 분별은 그 음성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 단계에서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한 단계 내지는 두 단계에서 성령의 인도를 올바로 받았다 할지라도, 나머지 한 단계 내지는 두 단계에서 성령의 인도를 올바로 받지 못하면, 최종적인 결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전혀 아닐 수 있습니다.
교회의 중요성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하는데 있어서도 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서 27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27절) .....................................................................
각 성도는 무엇입니까? (27절) ............................................................................................
누가 각 지체를 몸에 두셨습니까? (18절) ...........................................................................
다른 지체보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지체가 있습니까? (15-17, 21-24절) .....................
각 지체는 혼자 스스로 설 수 있습니까? ............................................................................
각 지체는 서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5절) .....................................................................
또한 각 지체가 어떻게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까?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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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을 불러 모아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각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각 지체를 두십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각 지체가 서로 돌보며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성도들로 하여금 상호의존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다른 지체보다 더 우월한 지체도, 더 열등한 지체도 없습니다. 다 중요하고 다 필요합니다. 특히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가 그렇듯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는 절대로 혼자 설 수 없습니다. 또한 각 지체가 서로 연락하고 상합할 때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자라나고 사랑 안에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면에서 그렇듯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데 있어서도 교회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 해석, 적용 단계의 분별 모두 한 사람을 통해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사람에게, 해석과 적용은 다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어떤 때는 계시와 해석은 한 사람에게 적용은 다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또 어떤 때는 계시와 해석과 적용을 각기 다른 세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로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상호의존적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한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신다면, 사람들의 모든 초점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춰질 것입니다.
해석과 적용 단계의 중요성에 대한 성경적인 예
해석과 적용 단계의 분별의 중요성 그리고 이 단계에서 잘못 분별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라도 그 반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기 원했고, 로마 교회의 파송을 받아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까?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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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에 있던 성도들은 누구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까?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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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에 살던 빌립 집사의 식구들과 아가보는 누구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까? (행 2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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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울은 성령에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말 개역성경은 바울이 “심령에 메임을 받아”, 즉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확신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이었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에 가는 것을 오랫동안 기도해 왔으며(롬 1:9-10), 나중에 바울이 예루살렘 감옥에 갇혔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바울이 거기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행 23:11). 이 구절은 “성령에 메일을 받아”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어 성경들 뿐 아니라, 개역개정판 성경은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던 도중에 만난 두로의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가이사랴에 살던 빌립 집사의 가족들과 아가보도 그렇게 했습니다. 특히 빌립 집사에게는 네 딸이 있었는데, 그 네 명 모두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가보는 그 당시 가장 잘 알려진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써, 그 당시 있었던 세계적인 기근에 대해서 예언했던 사람이고(행 11:28), 초대교회에서 선지자로 임명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성령은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말하는 분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해석과 적용 단계의 분별의 중요성입니다.
분별과 관련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예언(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반드시 분별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도를 받고, 그 감동이 서로 일치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분별의 자세가 아닙니다. 만약 바울이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했더라면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예언을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해석의 단계
위의 문제를 계속 살펴보면서, 해석과 적용 단계의 분별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1장 8절에서 14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어떻게 했습니까? ...........................................................
아가보는 성령의 감동으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
그 말은 들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
이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그 당시 유명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수족을 묶었습니다. 이 경우는 이것이 계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들의 행동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한 예, 겔 4:1-17).
아가보는 이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이 이 예언의 해석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 면에서 틀렸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결박한 것이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방인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을 때,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현장으로 달려가서 바울을 묶어 감옥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바울의 목숨을 건졌습니다(행 21:31-34). 그러나 결국 바울이 유대인들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그 해석은 전반적으로 옳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신약 시대의 예언과 구약 시대의 예언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아가보의 이 말은 들은 그곳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에게 울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적용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아가보를 통해서 주어진 해석을 듣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두로에 있던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곳의 성도들은 계시와 해석의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하였지만, 적용의 단계에서 올바로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예언의 은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났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어느 누구도 이러한 잘못으로부터 면역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예수님을 말리다가 예수님께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베드로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판단한 결과 그러한 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마 16:21-23).
반면에 사도 바울은 아가보나 두로의 성도들의 예언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바에 따라 올바로 이해하고 적용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에서 24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그는 누구의 강한 인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까? ........................................
성령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
그에 대한 바울의 자세는 어땠습니까? ................................................................................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강한 인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각 성에서 결박과 환란이 그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의 길을 마치는데 있어서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로의 성도들이나 아가보의 예언을 들었을 때 성령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바와 정확하게 일치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즉, 그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데, 그곳에 가면 갇히게 될 것을 성령께서 보이신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갇힐 것 뿐 아니라, 죽음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예언을 올바로 분별하였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적용의 단계까지 올바로 분별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위해 나의 도움을 청할 때,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을 음성을 같이 분별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이해와 그 사람이 처한 입장과 처지를 감안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그 음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위에서 사도 바울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해석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분별하기 위해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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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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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
하나님은 아브람(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 이름을 창대케 하고, 그를 복의 근원 삼아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도록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려고 하십니다.
이와 같은 구절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 개인을 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인본주의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다니 아브라함은 참 좋겠다. 그는 아버지 때부터 신실하게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전혀 그런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려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낼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 때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출 3:5-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건져낼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 때, 기드온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삿 67-16).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시고 그를 통해 그 당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 때, 아나니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행 9:10-16). 하나님은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구원하시고, 그를 통해 전 에피오피아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 때, 빌립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행 8:26-3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그것을 인본주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의도를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잘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영적 랜드마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종합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어 각 개별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감동 하나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감동을 주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비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냐? 그것을 감동이라고 말하느냐?”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감동을 주신 목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환경을 볼 때 환경 속에 나타난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런 감동을 주십니다.
적용의 단계
적용 단계의 분별의 중요성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강사가 한 성도의 머리 위해 검은 구름이 달러 표시 모양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목사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검은 돈에 대해서 회개하라고 질책했습니다. 질책을 받은 그는 그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를 찾아가서 자기는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나 돈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업을 하는 성도였는데, 세금은 내는 것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있어서 매우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회사에서 직원 중 한 사람이 돈을 횡령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경우, 달러 표시 모양의 검은 구름이 한 성도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본 것이 계시의 부분이었습니다. 그 계시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사탄이나 그 강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검은 돈으로 이해한 것이 해석의 부분이었습니다. 그 강사는 해석도 올바로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적용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의 회사에서 돈이 불법으로 세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성도에게 알려주려고 하셨는데, 그 목사는 그것을 그 성도가 검은 돈을 횡령하고 있다고 적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되, 세 가지 단계를 통해서 올바로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