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무리 2017. 8. 12. 19:50

아들의 유업(8)

 

로마서 8:15~17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이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본문말씀 영광중에 포함된 핵심적인 내용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유업일 겁니다.

1.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인 우리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유업중 최종적인 것은 하늘나라의 유업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현 질서는 사라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데, 그것을 성경은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유업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히 온전하신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이시고요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교제는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요. 우리와의 사랑의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때부터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게 사랑의 교제였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실때부터 하나님은 사랑을 나눌 가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다음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부분을 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실때에도 한 핵심적인 요소가 성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영광중에 임하시고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지도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가운데 역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4장에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25장부터 곧바로 나오는게 성막을 만드는 내용들이고 40장에 성막이 완성될 때 하나님이 그곳에 영광으로 임하시고 그때부터 그들의 길을 지도하시는게 나옵니다.

이 언약이 다윗의 시대에 한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삼하7장에 이 언약이 나옵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고 저들은 아들이 됩니다. 이때에도 한 핵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언약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영광중에 임하셔서 거하시며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두루 행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께 봉언하면서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영광중에 임하셔서 모세의 성막에 그러셨듯이, 영광중에 임하셔서 제사장들이 감히 서서 제사를 드리지 못할만큼, 때로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만큼 임하셔서 거기에 임재하시게되고 그들과 함께 하시게 됩니다.

친밀과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이 신약의 교회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성경에 보면 신약의 교회야 말로 이러한 하나님의 열망이 성취된 것이다.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열망이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이말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그 말이 성취되어져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열망을 성취해서 성전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완성되지 않았어요.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지금 신약시대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지금 현재 지어져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성전이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완성되지 않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날에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에게 영원한 유업이 주어질텐데, 영원한 유업의 핵심도 다른 여러 가지 소중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거기의 핵심도 창조주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와의 살아있는 친밀한 교제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겁니다.

 

1) 여기에는 육체의 부활도 포함됩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우리의 장막 집은 : 육체를 가르킵니다.

 

2.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에 대한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위의 말씀만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신 썩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옷입게 될 것을 말하면서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성령이야 말로 우리가 받을 모든 유업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 주어진 것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의 보증이라는 말은 페트라주석 참조.

[‘보증의 헬라어 아르라본에라본에서 차용한 것으로 당시의 상업 용어이다. 이것은 어떤 계약을 할 때의 계약금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의 인침을 그리스도인의 기업의 보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약속의 성령이 성도의 마음 속에서 보증을 해주시므로 구속의 그 날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주심을 시사한다. 한편 기업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속에서 보증해 주신 것으로 미래의 영적인 부활체를 가리킨다. 이는 미래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을 시사한다.]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을 포함해서 우리의 운명은 예수님의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만 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지고 돌아가시고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제일 불쌍한 자들입니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잠자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왜냐면 잠자는 자들은 깰때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할 날이 있기 때문에 잠자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망하였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렇게 부활하게 될거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하늘나라의 유업이 예수님의 부활에 달렸습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이 예수님이 함께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이 죽음가운데서 부활하시도록 역사하셨을뿐만 아니라 이제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도 되셔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우고 있고, 그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오늘날 오셔서 우리가 받을 유업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고 계신겁니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은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만큼 확실합니다.

 

3.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1)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산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이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돌아가야할 본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여기보면 그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있던 나그네들에게 사도베드로가 편지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단어는 디아스포라는 단어입니다. 유대인들로서 예루살렘과 유대를 떠나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고 유대인들에게 보내졌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2절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의 나그네는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인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본향이 있기 때문에 이땅에서는 나그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의 나그네로서 우리는 한편으로 탄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성경 어려곳에서 말해줍니다.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부활을 기다리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우리들이 이땅에 사는 동안 탄식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벗고자 한다는 말은 그당시 헬라 사람들처럼 우리의 영이 빠져나가는게 구원이라는 그것을 말하는게 아니고,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덧입는 것이 최종적인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이땅에 이 육체 가운데 사는 우리는 탄식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땅에 살면서 탄식함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안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돌아갈 본향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은 빛과 어둠이 다른 것처럼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탄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산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를 읽어보면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보내진 편지인데요.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예수 믿는다고 해서 아직 목숨을 잃는 그런때는 아직 아니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점점 핍박이 심해져서 그 다음 세대에는 예수믿는다고 해서 붙잡히면 원형경기장에서 버려져서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도하고, 사람들은 빙 둘러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는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워 죽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읽어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재산이 차압당하는 그런때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 중의 하나가 순금입니다. 순금이 되기 위해서 온갖 불순물이 있는 것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찌꺼기 다 태우고 순금만 남습니다. 순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믿음은 그 순금보다 소중하다. 믿음의 연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하시는데 그 믿음은 우리주님 다시오실 때 그 앞에 칭찬을 받게 하실 것이라, 순금보다 비교할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라 이렇게 말하면서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들은 그런 상황에 있었지만 그들에게 산 소망이 있었기에 그 상황에서도 예수로 인하여 말로 표현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이게 우리 신앙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길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에 보시면 항상 기뻐하라는 뜻은 사도바울은 근심하는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우리가 이땅에 사는 동안에 나그네로 살기 때문에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그 산소망으로 인하여 말로 표현할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을 바라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갑니다.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1.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안에서 헛되지않은앎이라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에 금방 좌우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할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조금만 공격하면 금방 낙심합니다. 특별히 내가 상대방을 위해 뭘 쏟았는데, 그 사람이 그걸 알아주기는커녕 불평하면 완전히 무너집니다. 교회서도 열심히 봉사했는데 목회자가 알아주기는커녕 목회자가 책망하는 말이 들어오면 이게 뭐야 싶어서 다 집어던집니다.

사도바울이 귀한 것은 자기가 자책할 것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데요. 이게 정말 귀한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책망할게 보이지 않는데요.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의가되지 못하기에 의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이런 상황인데도 사람의 평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더 나아가서 자기는 자기 자신도 판단하지 않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어둠에 숨겨진것까지 들쳐내시고, 마음의 동기까지 드러내셔서 그날에 그분이 판단하셔서 상급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을 섬기되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때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평가만을 소중히 여기며 주님앞에 선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듯이 배워야할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배워야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수 있습니다. 이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좋은 동기를 가지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잖아요.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시편119편 기자는 구약의 사람인데도 이땅에서의 자신의 삶이 나그네인 것을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119: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구약시대에는 하늘나라의 소망이 오늘처럼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으로 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하늘의 유업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보증으로 하나님의 영,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안에 주신, 우리안에 계신 성령이 그 모든 보증인, 그것이 산소망인데, 구약시대에는 그일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막연하게 뿌연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구약의 사람들도 이땅에서 나그네인 것을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그랬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시편 기자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기위해 그가했던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사모했습니다. 그길을 따라 살기를 열망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는 돌아갈 본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0절을 영어 NIV성경은 내 영이 소멸되어집니다. 주님의 율법을 향한 열망으로 인해서 항상’,

그만큼 주의 법을 알기를, 주의 길을 알기를 사모하고 열망했습니다. 왜냐면, 그 길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요. 돌아갈 본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돌아가야할 본향이 있습니다. 그 본향에서의 우리의 삶의 운명은 이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시편119편 기자는 나그네의 삶을 살며 기도하기를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이기적인 것에서 내 눈을 돌려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쓸모없는 것들을 바라보지 말게 해주세요.

하늘의 유업에 대해서 말하면서 성경에서는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유업은 더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영광스러운 것인데, 정작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 유업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 모든 유업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는데, 이 유업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유업을 진실로 인식한다면, 하나님의 승리는 진실로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삶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삶의 목표도 달라질 것이고, 살아갈 이유가 바뀔것이며, 이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의 영역은 근본적으로 바뀔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