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설교/말씀묵상

성경을 통한 묵상의 중요성

발의무리 2018. 1. 25. 15:12

성경을 통한 묵상의 중요성

 

* 여호수아1:5~9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길와 의중을 보아야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성령의 조명이 필수입니다. 단순히 성경적인 지식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중에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묵상입니다.

 

1. 묵상의 중요성.

여호수아 1:6~9절 말씀의 배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때부터 약속하신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실 계획을 지금 실현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계획을 알리시고,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수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광야를 통해 40년 동안 인도하심으로서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죠. 그리고 요단강 앞에와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모세 다음으로 여호수아를 세우십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가나안땅을 백성에게 유업으로 주실 그 일에 가서 적들을 물리치고, 그곳을 빼앗아야할 그러한 자리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이 엄청난 일을 하실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하여 이 일이 가능하도록 함께 할것이라고 하면서, 너는 철저하게 내 길에 행해야 한다. 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앞에 엎드려 그 말씀을 묵상하므로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과 의중을 발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있는 사람은 세상의 길과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데,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엎드려 그 율법을 묵상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엎드려 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게 되고, 이 길로 행할 때 그러한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면 어떠한 축복이 있냐면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포도나무의 말씀을 보면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저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시편의 의인은 악인의 꾀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행하고, 그러할 때 열매가 맺을 거란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을 거라고 했는데, 이말은 우리가 예수님안에 예수님이 우리안에 거하는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 우리가 말씀앞에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서, 말씀을 묵상하며 상고하는 가운데 그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행하는게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우리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면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겁니다. 앞서가신 주님께 예민하여 믿음으로 순종해가는 그때에 열매가 나타나는 겁니다.

 

속초로 수련회갔을때 포도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천송이쯤 열린걸 봤습니다. 전에 신문에서 한나무에 이천송이 정도 달린 포도나무가 나왔는데요. 왜 하나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하신지 알겠더라고요.

 

묵상에 관해서 가장 많이 말하는 구절이 시편 119편입니다.

개혁개정판에는 묵상하다는 말을 뭐라고 번역했냐 하면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이렇게 번역해 버렸어요. 그 말이 묵상하다는 말입니다.

*시편119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구절이예요. 이걸보면 명백하게 성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겁니다.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얼굴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 묵상할때에 )

 

다윗의 한가지 소원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서 목말라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목말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그렇게 마음껏 송축하며, 찬양하며 경배하는 자이었습니다. 이 두 개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목말라하면서 알기를 갈망하면서 같이 해야할 중요한 한가지가 다윗처럼 주님이 주신 그 크신 은혜로 인하여 그분을 마음껏 송축하고 감사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필수적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벽에 주의 말씀앞에 묵상하며 섰다고 말합니다.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2.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묵상이 필수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단어 하나하나와 한구 한구를 자세히 보셔야 됩니다. 구와 절의 관계도 자세히 연결하여 보셔야 합니다. 필요하면 여러 성경번역을 같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에 하나님이 선교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영어 공부하려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잘 모르니까 한페이지를 보는데 단어 하나하나, 삼인칭 단수 찾으면서 보는데 두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까 빨라지더라고요. 영어로 단어 하나 하나까지 찾으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게된 겁니다. 영어 공부하려고 성경을 자세히 보게 됐는데 그걸 통해서 묵상을 배우게 된거예요. 그러면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자동적으로 습득하게 된겁니다.

 

성경을 보다보니까 옥중서신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같은 옥중서신이 사도바울이 쓴 서신 가운데에서는 가장 깊은 것 같아요. 옥중서신은 진도가 잘 못나가요.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많은 뜻들이 담겨져 있어요.

 

아래 구절은 사도바울의 골로새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골로새서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기도의 내용입니다.

성경을 그냥보면 이런저런 내용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원래 원어를 보면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영어 NIV 성경만 보더라도 이게 잘되어 있어요. 만약 한국말만 본다면 개역개정이면 그것만 보지말고, 다른 여러 번역들을 참조하면, 그 구절이 말하는바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상세히 읽어야 합니다.

 

NIV성경에 보면

이로써 너희에 관해서 내가 듣는 날부터 지금까지 너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쉬지않았다. 하나님께 구하되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통해 (또는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너희가 충만케 되기를 너희가 구한다.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편지하면서 기도하는 가장 핵심은 하나님께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또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 1장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의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시면서 너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길로만 행해야되 하면서 그다음에 묵상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앞에 묵상하므로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행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기도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냐면 첫째는 너희가 주께 합당한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범사에 (=모든일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위해서, 이것을 구한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우리가 주께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일에, 범사에 주님께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그분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의 삶을 조정해서 유럽으로 갔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모든일에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라 하면서 주님을 기쁘게하는 네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하시고,”

여러분이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단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15: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두 번째는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나는 날이 갈수록 친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건케 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능력으로 강건케 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능력은 겉으로 나타난 능력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게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에베소서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사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강건케된 결과가 모든 어려움 가운데 기쁨으로 인내하고 참을수 있도록, 이게 능력입니다.

 

네 번째는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감사하되 우리를 빛의 나라에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유업을 얻을자로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될 주된 원인과 목적과 이유가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로 들이시고, 그 영원한 유업을 우리에게 받게 하신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될 주된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마음눈이 밝혀져야 보여집니다. 이게 않보여지면 그것다 망각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 안이루어 진다고 맨날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무엇이 하나님의 의도이고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무엇이 우리 신앙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지가 보입니다. 이렇게 내용을 자세히 읽어야 하나님의 길이 보여요.

 

*요한복음 5:3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도 자세히 알고 보면 들어있어요. 제 말을 듣고 보면 있는데, 그냥 보면 안보여요.

영어 NIV성경에는 내 스스로는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내가 듣는 데로만 판단한다. 그런고로 내 판단이 옳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그분을 기쁘게 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왜냐하면 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는 판단할 때 나는 내 자원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내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얼마나 좋냐 이 말입니다.

위의 구절을 보면 5:27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판단할 권리를 예수님에게 주셨다고 써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으신겁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관점이 안보이는 주된 이유중의 하나가 우리가 전적으로 주를 위해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묵상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하나 구절하나까지 자세하게 상세하게 봐야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영어 성경을 읽으며 주어와 동사, 단수 복수와 연결이 명확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려면 한국말 성경을 치우고 사전을 가지고 단어 하나하나 까지 찾으면 됩니다.

 

3. 성경을 문맥에서 이해하라.

성경을 이해할 때 반듯이 문맥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겁니다. 구절을 읽을 때 앞 뒤를 다 보셔야 됩니다. 특별히 단락 전체를 보시는게 제일 좋습니다.

어떤분이 설교할때도 그 구절만 안봅니다. 그 구절 앞과 뒤를 보면서 그 구절이 말하는 바를 봅니다. 그러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있어서도 문맥을 가지고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가 한우와 함께 편지를 써놓고 갔는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주셨다고 하면서 써놓았어요.

*히브리서13: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그분과 얘기를 안해봐서 모르지만 아마도 그분이 기도하는데 이 구절을 주셔서 섬기는 자들이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고 해놓으니까 한우를 가지고 온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구절을 주셨다면 문맥을 봐야 이해합니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 내용은 구약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화목제는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들이 먹게 되어 있고요. 많은 제사가 드리고 제사장들이 먹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못먹는 제사가 있는데 속죄제예요. 속죄제는 짐승을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제물은 영문밖, 이스라엘진 밖에서 태우게 되에 있습니다. 이 제사를 말하면서 속죄제가 예표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제를 지내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처럼 못먹는 제사가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자기 몸으로 드려 이스라엘 진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영문밖, 예루살렘 경계밖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대로 그대로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영문이라고 표현된 말은 캠프, 진입니다. 영문밖은 예루살렘 성문밖입니다. 예루살렘이 그 당시에 뭐를 의미했느냐고 하면, 제도화된 종교를 대표하는 겁니다. 이 제도화된 종교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모양만 있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말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아가려면 그 당시 제도화된 종교와 관계없이 의식으로 대체된 신앙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서는 그 삶가운데 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능욕을 지는게 포함된다는 말입니다.

 

바울같은 경우에는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레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이말은 초대교회 당시 전 세계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게 맞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부족하다, 추가로 할례도 받아야 한다. 유대인의 전통을 지켜야 된다고 가르쳤어요. 그렇게 전하면 핍박받을 일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전하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친다. 십자가의 능력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앞에 서게하는 자격이 할례를 받는 것이라면, 육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핍박은 받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할수 없다 할례를 전하면 왜그렇게 핍박을 받겠느냐 나는 핍박을 받을지라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전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말은 우리가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나가, 주님의 십자가만을 의지하여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히브리서13:10 말씀을 주셨다면 이런 뜻이므로 이런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때도 문맥에서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완전히 자기 임의대로 해석합니다.

**을 보면 어떤때는 속임수를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한 교회에 100명정도 되는데 어떤 여자분이 들어와서 장로님을 꼬셔서 이혼하게하고 들어앉아서 교회의 반을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단은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고 그랬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했는데, 이런일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목적만이 아니라 과정까지도 성령님이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곳에서는 이런 일을 이렇게 가르친답니다.

*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이게 성경에 써있어요 그들은 아무리 거짓말 할찌라도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라면 그게 괜찮다는 거예요.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에만 구원을 얻으니까 사람들을 그곳으로 들어오게 하는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라는 거지요.

성경은 전체적으로 봐야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고 거짓이 없으시다고 수없이 말하고 있고 사단은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고 전체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진짜로 그렇게 말하고 있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1절부터 보면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하나님 버렸다고 하나님이 떠났느냐 그 얘기입니다.

4: 그럴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게 아니고 말도 안되는 얘기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을 드러나게 하면 어떻겠냐 하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돼는 얘기라는 겁니다.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두 구절은 같이 봐야 됩니다. 연결된 구절입니다. 영어성경에는 그렇게 돼있습니다.

 

이말은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8: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하나님은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고 하니까 말하기를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한다고 사람들은 사도바울을 비방한다는 거예요. 7절과 8절처럼 사도바울이 말한다고 사도바울을 비방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하나님은 절대로 그럴수 없는데, 저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건 말도안돼는 얘기이고 그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죄받을 얘기다라는 거죠.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니란 얘기죠.

 

**는 이 구절만 딱 빼가지고 불의를 사용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그거 괜찮아 이렇게 가르친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문맥에서 이해 않하니까요.

문맥에서 그 구절만 딱 빼서 사용하니까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는 겁니다. 이게 사단이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기록하였으되 : 성경에 나온다는 말입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말한겁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인용한 겁니다.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편 91편에 나온 말입니다.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6: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제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랄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이 구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거쳐삼고 지존자로 의지하고 그 분만 산성으로 삼고 그 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신뢰하는 삶을 살면, 내 모든길에, 인생의 여정에 라를 말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천사를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지키겠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이 말을 인용하는데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라는 말은 빼고

갔다가 붙여놓으니까, 뛰어내리면 받아줄것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말을 만든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하잖아요.

 

로마서 3장을 가지고 신**가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는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서 들을때에도 문맥에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에 성경을 묵상하는데 또렷하게 주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만큼 이사야54:1~3절을 주셨습니다.

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그때 분당에서 5년째 되는해 지하를 구입해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주셔서 장막터를 넓히며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라고 하니까 지하처소를 주실려고 하실려는 말씀인가보다 이렇게 이해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갈라디아서 4장을 보니까요. 사도바울이 아브라함의 두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두 개의 신앙체계로 비교해요. 십자가 복음과 거짓신앙체계, 인본주의와 율법주의 그러면서 541절을 인용하면서 이 유업이 십자가복음에 주어진다고 쓰여있어요. 그걸보면서 이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집중적으로 십자가의 공로만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서서 주님만을 위해 유일한 목적된 십자가의 복음만을 추구하게 하셨는데, 그 유업이 이 유업인거예요. 그때부터 열방을 열어가십니다.

성경의 말씀을 주실때에도 문맥에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입니다. 안그러면 우리의 환경에 맞도록 임의대로 갖다 붙인다는 말입니다. 그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과는 전혀 다르게 살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