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설교/다루심의 삶

자기를 부인하는 삶

발의무리 2018. 2. 8. 18:43

자기를 부인하는 삶

 

편견이 깨어지려면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가야 한다. 편견, 영적전쟁, 치유 등은 성령께서 우리속에 사심으로 놀라운 경험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성령에 의한 삶, 믿음에 의한 삶, 은혜에 의한 삶이 가능해진다.

자아가 부인되어지는 삶은 하나님 크기의 일로 돌이키는 것이다.

 

16:16-25

고전2:8/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음

반석/ 베드로가 했던 신앙고백/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

이 신앙고백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대적하지 못하고,천국의 열쇠를 준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비추시는 지혜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는 교회에게 권세와 열쇠를 주신다.

 

그런데 베드로/ 그리하지 마옵소서// 육신의 관점에서는 :, 의리

영적인 관점에서는: 사단의 사주

베드로는 자기 생각을 표현했고, 그것은 베드로의 자아의 표현이다.

이 자아는 생각, 사고, 마음의 영역이다. 이 영역이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는 영역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24절에서 자기를 부인

5:16-17,

8:5-8/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적한다. 육신의 결과는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열매

누가 주인인가?- 육의 생각인가 아니면 영의 생각인가?

사고의 영역에 주인이 누구인가?

고후10:3-6

우리의 병기는 강력이다. . 세상적 육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병기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이론들을 파하는 병기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장소는 우리의 사고체계에서 일어난다. 무신론, 진화론, 유물론, 세상종교 등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이론들의 예인데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복종하게 되면 진리 가운데 서게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파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바로 앞에서 성령으로 알았지만, 조금 뒤에 사단의 생각으로 나옴

 

사고체계에는

1)기억하는 영역-

2)새 정보를 채우는 영역-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과거의 잘못된 것은 버리고 새것을 받아들인다. 이 영역에서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영역에서 회개가 될 수 있다.

3)추론해내는 영역

추론에서 문제를 만나면 반응하게 된다.

반응은/ 조건반사적 행동, 해석을 해서 결론을 내림- 자아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성령님의 인도를 받음의 3가지로 반응을 하게 된다.

*이 때 자아의 음성을 듣는가? 아니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가이다.

 

육신- 자아/ 이 자아가 성령의 인도를 못따라가게 한다.

 

자아의 특징

- 자기 본위:하나님의 기준보다 왜곡된 것으로 자기 보호를 하려고 자기 변호에 익숙하다.

판단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상승되는 효과를 받는다. 경쟁심, 질투,판단,시기,비난, 칭찬받음을 좋아하는 것 등 이런 특징을 반영한다.

- 자기 과신: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인데 자신을 의지한다. 자기 지혜가 나온다. 자기 지혜로 산다. 자기를 신뢰한다. 자신을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결국 믿음의 의한 삶은 불가능해진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주님의 은혜가 임할 자리가 없고 요청하지도 않는다.

-교만: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가르칠려고만 한다. 우월의식, 자신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리새인들이 그 예이다. 자부심으로 3단계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이것을 부인하라고 하셨다.

일명 아담적인 본성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이 본성의 특징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특징이 있다. (14:12-14/3)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

기복신앙도 아담적 본성에 근거하고 있다.

철도의 평행선/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문제 해결을 해주는 분으로 멀어지면 도움을 못받게 되니 안되겠고, 너무 가까이 하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요구하여 헌신을 요구할까봐서 더 가까이 못하는 식이다. 그래서 복은 원하지만 그 다음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향해 인심쓰려고 하는 식의 종교생활.

내 인생의 주인은 이기에 더 이상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녀를 목회자로 헌신하는 것은 싫고 장로는 좋다는 식이다. 그 이면에는 철저히 이기적인 생각이 들어있다.

 

***편견을 깨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아/ 성경적인 근거

1. 3:1-4, 2:14(하나님은 인간을 복된자리로 이끄신다), 사단은 사람을 흑암으로 이끈다.

3:6/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어야 가장 완전하다.

2.14:12-14 사단이 타락하던 방식대로 사람에게 그대로 속이고 있다.

3. 2:13/ 사단이 흑암 유6,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떠남, 기원전586년 포로로 끌려감.

4. 15장 탕자의 사건/ 그가 행복한 기간은 아버지의 자원이 있을 때만/ 그후 그는 어디까지 떨어지는가? 돼지치는 집, 돼지가 먹는 음식도 못먹는 자리까지 하락됨.

5. 3:23/ 하나님없이도 살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다루심과 십자가

 

자아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자아는 이미 죽었다.

2:20

십자가의 사건으로 이미 해결하셨다.

6:4-11/ 죄에 대하여는 여길지어다./ 그런데 이것이 이론에 불과하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그냥 참으면 자아를 부인하는지 안다.

5:16-17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적한다.

 

그런데 주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다루신다.

,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실제화시키신다.

 

4:26/에노스/ 유한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을 찾음

11:3-4/바벨탑(인본주의) 흩어짐 / 인간이 오늘날 바벨탑을 쌓는다.

 

하나님의 다루심

 

환경을 통해서 본성을 보게하신다. 5:7-8/예수님의 예-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웠다.

성경말씀히4:12

성령님/ 비추신다. 16:8

구약의 사건/

1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 인간은 답이 나오는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런데 지시할 땅으로 가라/ 답을 알 수가 없다.

아들을 주겠다.- 믿을 수 없는 약속/ 그래서 하나님이 믿게 하려고 쪼개진 제물사이의 약속을 맺으신다./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을 보라. 누구라고 어기면 쪼개진 제물처럼 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코 이루신다는 것을 보게된다.

 

3:7-10(동사: 보고, 듣고, 알고)

400년을 왜 침묵하셨을까?/ 남아를 학살당하게 빼앗기는 아픔을 맛볼 정도로

출애굽은 하나님의 전적인 연출이다. 아부라함의 약속 가운데 왜 430년간 종살이를 계획하셨을까? 또 바로를 왜 강퍅하게 하셔서 기적을 보게 하셨을까?

아담적인 본성을 깨려고 하셨다.

자신들의 무능을 역사속에서 보도록

이방이 믿는 신이 전적으로 무능하고 하나님만이 전능자임을 알게 하시려고/ 열 번째 재앙- 신의 아들을 죽이려는 것/ 14:1-/ 돌쳐서- 잘가던 자들을 다시 불렀다.- 승리

15:23- 사흘만에 뒤집는다. 왜 쓴물로 데려갔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미리 손을 쓰시지.

 

* 광야의 목적/ 8:2-3 성경이 없던시절- 자신의 무능을 알게 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만 생명이 있다.

2- 디모데의 연단

광야를 통해 두가지를 이루신다. 우리의 무능함을 발견케 하며, 우리 속에 선함이 없음을 보게 하신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 - 주도권의 이양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면 사람 숫자의 과다에 있지 않음을 보아야 한다.

열왕기서나 역대기서에 보면 어떤 왕들은 돈으로 전쟁을 하는데 결국은 망하고 도움도 받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야 한다. 하나님만 지혜이다. 우리가 무능력한 것임을, 우리가 죽은자임을 보게하는 것, 내 자원으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자아를 깨뜨리신다. 사람의 지혜를 근거로 살지 말도록

그래서 하나님은 자아를 다루신다.(광야로 인도해서)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60:8)

 

자기본위, 자아가 믿음에 의한 삶과 성령의 인도를 방해한다.

-베드로/ 21장에서 자기를 과신한 결과 주님을 3번 부인했다.- 그도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발견했을 것이다.

 

자아/ 내가 할수 있다고 하는 것은 철저히 깨뜨리시기 원하신다.

 

안건들면 좋은 사람? 어떤 사람이든지 환경이 좋고 건들지 않으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며 칭송도 받는다. 그리고 본인도 자신이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는 사랑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인생을 사랑하시면 그 인생을 그대로 두질 않는다. 가시를 붙이신다. 이것은 자신을 보게 한다./자신의 부족과 못됨을 보게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좌절, 남심, 자기에 대해 그것밖에 못됨을 보고 죽을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인생은 꾸정물 통과 같다. 안건들면 고요하고 깨끗하게 보인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잘 가라져 앉아 있다. 또 가리워져 있다. 그러나 인생 막대기로 휘져으면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 / 안건들면 좋은 사람이야, 왜 건들어! 라고 말한다.

* 결국 자신에 대해 절망을 보게 하신다. 환경이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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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보게 하신다.

성령님이 들추신다. 온전히 죄인이며 의로움이 없음을 보이시고 그것을 보면 자기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주님만 의지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가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어지는 것이다.

*자기를 못보면 의지의 한국인이 되는 것./ 자신을 못보면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비추임을 받기전에는 자신이 참으로 의인인줄 알았다. 후에 죄인중의 괴수 라고 말한다.

3:6/ 7:24/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 자신의 실상을 발견하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발작도 못감을 보게하고 하나님을 갈망하게 한다.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니 괴롭다. 자신이 이것밖에 안됨을 본다.

또는 자기가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데 생각과 계획대로 안된다. -자신의 무능을 서서히 알게 된다. 의지가 강하면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도입한다. 이것은 성경적인 사고 안에서 가치관이 정리되어야 한다.

이순옥전도사님) 변경아사모)

 

자신의 무능을 발견한 자가 십자가의 감격을 알게된다. 2:1의 상황에 있었음을 보아야 한다.

 

자신을 못보면 십자가를 안찾는다. 우리 삶에 우연은 없다.

 

 

십자가에 의한 삶

 

1) 주님의 십자가는 항상 의지하는 것이다.

6:53-57

십자가의 이중사역 -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3:23, 1:16, 3:14-16)

옛 본성인 자아를 처리

 

2) 십자가에는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 계시되어 있습니다. - 죄인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의 실질적인 사건이 십자가이다. 5:8, 8:32

·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6, 139

·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1:19-

 

3) 주님의 십자가를 항상 의지할때!

십자가 앞에 가면 항상 두가지가 보여집니다. 하나는 우리의 선함이 없음과, 하나님의 처방을 봅니다. 우리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무지와 하나님의 전지를 발견케 됩니다.

 

a)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습니다.

b)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을 위해 주님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아덴에서의 전도후 실패한채 고린도로 간 바울 - 두렵고 떨림으로!

십자가를 봄.

c)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실재가 됩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사는 삶과 연결됩니다.-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 삶)

d) 믿음의 의한 삶, 은혜에 의한 삶, 성령에 의한 삶이 되어집니다.

믿음으로 한발을 옮기는 것,- 자신을 과신하는 것이 깨어짐으로 하나님을 신뢰케 되는 것입니다. (1:19-2:10)

사실 십자가를 아는 자가 은혜를 이해하게 됩니다.

 

자아의 특징은 자아를 포기해야 하는데 자기 본위를 변론한다. 정직하게 대면 못하게 한다.

너 때문이 아니야!, 저 인간 만나서 그래식이다. 이유를 타인에게 돌리려 한다.

자기가 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니 괴롭다./여전히 자기 붙잡으려니까 힘들다./ 자기부인을 끝까지 자기 변론하니까 못간다.

그러므로 정직함이 필요하다.(말씀앞에)

자아는 합리화, 변론을 하게 한다. ‘넌 잘하고 있어, 그렇게 어떻게 사니! 그사람이 나빠

정직함이 있을 때 자신을 보게된다.

내적치유/ 잘못된 시각을 가지면 자아를 강화시키려 한다. /토설이 자기 변호, 보호해 줄수 있다.

자기 변호/ 한이 맺힘/ -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고발, 탓만 한다. 자기는 하나님께로 안가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자기변호만하고 한이 맺힌다.

 

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를 보고 하나님께 동의하라 자신을 볼때 견딜수 없다. 내 모습을 보면서 자시에게 절망해야 주님을 붙잡게 된다, -구원의 길-십자가만이 유일한 처방임을 붙든다.-십자가의 공로만 받아들인다.

 

이러한 나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십자가만이 지혜인 것을 아는 자는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찾으신다.

범사에 주를 인정하고 주님의 지혜를 붙든다.

 

자신을 부인

회개

***죄송해요? 이것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다. 즉 자신은 잘못을 행하지 않을 능력이 있는데 실수로 실패했다고. 다시는 안할께요?

동의하라. 요일1:9

그래서 주님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 수용 조건없는 초대에 응하겠다는 믿음이다.

참다운 회개 샘플/변호사의 음성을 거절하라. 23:39-43

**십자가를 보는자는 자부심을 배설물로 여긴다.

자기를 부인하면 나타나는 특징

자부심이 내려진다. 3:4-10

자랑, 출신 가문, 종교적 열심, 율법의 의/

*배설물로 도리어 해로 여김/ 6:14

이것 때문에 열등의식이 생긴다./십자가 복음에서 깨진다.

은혜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