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탱크목사 중고등부 혁명/홍민기

기독자료/신앙서적요약

by 발의무리 2007. 10. 5. 07:00

본문

탱크목사 중고등부 혁명/홍민기
 

탱크목사 중고등부 혁명

홍민기 지음

규장 / 2003년 8월 / 254쪽 / 9,500원

▣ 저자 홍민기

1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청소년기에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회심한 후 청소년 사역의 비전을 발견하고 미국 고든대학(Gordon College)에서 청소년 사역과 성서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신학원(Westminster Seminary. M. Div.)을 졸업했다.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이중언어 설교자로, 이민 사회의 가정 사역과 청소년 사역을 돕는 ‘브리지 임팩트 사역원’(Bridge Impact Ministry)의 대표이자 ‘청소년 코스타’(Youth Kosta) 강사이기도 하다. 강남교회 고등부에서 신앙훈련과 더불어 수능을 대비하는 ‘고공방’(고등부 공부방)을 운영 중이며 ‘기윤실’ 운영위원, ‘치유목회연구원’의 청소년 상담 교수 등을 맡고 있다.

▣ Short Summary

“아이들과 노는 게 마냥 신나고 즐겁다”는 강남교회 고등부 목사 홍민기는 아이들과 ‘성경퀴즈게임’을 할 때면 미식축구선수 출신의 거구를 앞세워 “저요! 저요!”하고 먼저 망가질 줄도 아는 ‘솔선수범 온몸 내던지기’가 습관이자 주특기이다. “아이들과 먹고 놀고 뒹굴지 않으려면 설교할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는 게 미국 이민 시절부터 10여 년간 청소년 사역에 탱크처럼 역동적으로 매진해 온 그만의 청소년 사역론이다.

육중한 몸무게를 줄이기로 작심하던 날 “내가 살을 빼면 너희들은 친구 한 명씩 전도해 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일, 축구선수인 고등부 학생의 교회 출석이 뜸해지자 “토요일 하루 학교 빠진다고 큰일 안 난다”며 고등부 학생들을 대거 이끌고 축구장을 찾아 “아무개야! 교회 나와라!”라고 함께 외친 일까지. 따져보면 교회 수련회에서 골초 청소년들에게 담뱃불을 붙여주고 수련회에 카지노 게임까지 도입해가면서 철저히 이 시대를 사는 청소년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역하는 그는 청소년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차례

1부 청소년과 함께 뒹굴 줄 모르면 가르치지 말라

1장 : 같이 먹고 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라

2장 : 청소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가?

3장 : 하나님 만난 가슴으로 가르쳐라

4장 : 예수님과 청소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가 되라

2부 청소년 사역,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5장 : 청소년 투자에 인색하면 경로당 교회 멀지 않다

6장 : 한 영혼을 변화시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7장 : 청소년의 리얼 타임 트렌드로 커뮤니케이션하라

8장 : 고3 우상숭배를 중단하라

3부 가슴으로 감동시켜 혼으로 구원한다

9장 :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마련해준다

10장 : 가정과 긴밀하게 네트워킹된 사역을 한다

11장 : 청소년을 학교에 파송하는 선교사로 제자훈련 한다

12장 : 신실한 눈높이 멘토 사역으로 영혼을 살린다

4부 공부 고민은 청소년 공부방으로 해결한다

13장 : 공부방을 통해 신앙 우선순위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라

14장 : 공부방 운영을 이렇게 하라

탱크목사 중고등부 혁명

홍민기 지음

규장 / 2003년 8월 / 254쪽 / 9,500원

1부 청소년과 함께 뒹굴 줄 모르면 가르치지 말라

같이 먹고 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라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에서 신학과 목회의 기초 수업까지 받았으며 이민 2세와 3세를 상대로 10년 가까이 청소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2월, 서울로 부르심을 받아 현재 강남교회 고등부를 맡아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실시한 ‘관계 중심’의 청소년 사역을 한국교회에 접목시키며, 세상과 전통의 가치관에 좌우되지 않고, 말씀 중심으로 사역해 온 일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특별히 두 가지 분야에 집중하여 사역했습니다. 첫째, 주중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인 학습을 신앙과 연계하여 사역했습니다. 둘째, 수련회 때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학생들과 같이 놀고 뒹굴면서 그들이 예수를 만나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도록 인도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수련회 기간은 단 며칠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변하여 예수의 복음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믿음 : 대접받는 대로 행동한다

제가 한국에 와서 첫 교회 수련회에서 선택한 놀이 프로그램은 카지노 게임입니다. 저는 그들을 존중하고 어른으로 대접해줍니다. 그들이 대접받는 대로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미숙한 점이 많아 실수도 많지만, 의외로 우리가 놀랄 만한 일들을 해내기도 합니다. 청소년일지라도 우리가 대우해주면 그만큼 자기 몫을 합니다. 아이들이 죄에 쉽게 무너지는 것은 자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역의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얼마나 만족해하셨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여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수련회에 웬 카지노

카지노는 게임일 뿐입니다. 정작 그 게임을 어떻게 하느냐가 카지노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고등부 수련회에서 카지노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3주가 걸렸습니다. 분주히 다니며 애쓰는 제 모습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퍼진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쓰시는구나. 정말 좋은 수련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인식만 심어줘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단순히 앉아서 계획만 짜기보다 발품을 팔아가며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 이상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역자를 보면 식사할 때도 독상 받고 예배 때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식으로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는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그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할 때, 아이들은 저와 블랙잭을 해서 칩을 다 잃으면 다른 코너에 가서 성경퀴즈를 풀어야 했고 거기서 답을 맞히면 칩을 다시 주었습니다. 그러면 여지껏 성경 한 번 안 읽던 녀석들도 성경 말씀을 막 외우기 시작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결국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접근하도록 하는 과정이자 도구에 불과합니다. 관심 있던 것을 해보면서, 흥미를 가지고 신나게 놀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수련회에서는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설교 안 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노는 일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한 회복과 기도를 통한 치유

청소년 사역을 지속해 오는 동안 저는 아이들과 벽을 쌓는 사역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사역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사역자가 한 아이씩 붙잡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자에게는 아이들만의 문화와 그들의 눈높이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지 타협할 수 없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 그리고 이를 통한 회복과 치유입니다. 이것은 세상 어느 프로그램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한 채 CCM 몇 곡 불렀다고 예배드렸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는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청소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가?

한번은 제가 수련회에서 참담한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화장실 뒤에서 한 녀석은 망을 보고 한 녀석은 빨리 피우려고 담배를 마구 빠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와 그들 사이에 맺어왔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짓으로 자기를 감추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저는 제 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더욱 교회에 나와야 하겠기에 차라리 제가 담뱃불을 붙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곧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련회가 끝날 때쯤 되자 담배 피우는 장소에는 아예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담배를 끊었다는 아이들까지 속출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을 향해 “너는 이것이 잘못이다”라고 지적해서 그 아이가 변화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는 그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감해줄 때 일어납니다. 저에게는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기성세대보다 방황하는 한 아이가 더욱 소중합니다. 저도 담뱃불을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붙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제가 보지 않은 곳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는 아주 혼쭐을 내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아이와 저 사이의 정직한 관계를 무너뜨리는 배신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제가 아이들의 흡연을 용납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대해서 아이들을 크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수련회까지 와서 술을 마셨다면 그것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외적인 모습에 촉각을 곤두세워서는 안 됩니다. 각각의 중심을 사랑해야 합니다. 술, 담배, 마약,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에만 신경 쓰다보면 그 아이들의 중심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멀리서 손가락질하며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과 교회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치유하시는 주님께서 어루만지시어 청소년들이 술, 담배 등을 끊고 예수를 영접하는 기적까지 일으켜 주십니다.

관계의 마력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모델이 필요합니다. 사역자와 교사는 바로 그 역할 모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인정받는 모델이 되려면 우선 그들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합니다. 그들과 만나서 부대끼고, 같이 놀고, 같이 먹고,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자는 일들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고 밥 먹지 않으려면 설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설교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100명이 나온다고 하면 듣는 아이들은 고작 2,3명뿐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설교를 하려면 아이들과 먼저 접촉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가르치는 당신이 누구냐?”가 더 중요합니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관계성을 강조하면서 다가오는 이단에게 쉽게 넘어갑니다. 쉽게 갱단에 들어가는 것도 모두 이 관계성 때문입니다. 갱단에 들어가면 소속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사역자)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절대로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은 똑같습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관계를 추구합니다. 부흥하는 사역의 중심에는 바로 이 관계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보아야 믿는 영상세대입니다. 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대신 할 역할 모델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역할을 부모와 사역자와 교사가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청소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가 되라

뉴욕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다 보니, 변화된 아이들이 집에 가서 또 다시 아픔을 겪는 일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가정에서 잘 받아주기는커녕 “이제는 공부해라”, “이제는 말 잘 들어라”라고 애초에 문제를 일으켰던 상황의 말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 역시 훈련되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역 단체를 결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브릿지 임팩트(Bridge Impact)입니다.

브릿지 임펙트는 “청소년들과 부모, 청소년들과 청소년 사역자들 간의 다리가 된다. 그리고 청소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가 된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브릿지 임펙트는 우선 부모들을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리더로 훈련시킵니다. 브릿지 임펙트 사역의 일환인 가정 캠프를 통해서 회복된 가정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가정이 회복되면 부모가 회복되고 아이도 회복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엄청납니다. 아버지가 바로 서면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제대로 서게 되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출했다 하면 목사님 집부터 찾아라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는 특히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교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떡하느냐는 문제로 저는 여기저기로 자주 불려 다녔습니다. 그럴 때 소위 문제아라는 아이들은 자기 편드느라 고생하고 욕먹는 목사에게 의리 지킨답시고 집에도 안 가고 평소 안 하던 기도까지 하며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는 한 아이들은 신앙이 흔들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다른 곳에 가서 해결점을 찾지 않습니다. 한때 자기에게 따뜻한 정을 보여준 사람, 그래도 그 아이들 눈에 바람직한 모델로 보이는 목사나 교사를 찾아옵니다.

저는 가출한 아이들에게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즉시 부모한테 데리고 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전화하려면 “제가 데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든가 “며칠 데리고 있다가 보내겠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게 데리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죄의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출하면 일단 친구 집을 전전합니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여러 가지 유혹과 죄에 빠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가출하고 싶으면 저희 집으로 오라고 당부합니다. 아이들이 먼저 “저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저 좀 만나주세요“라고 전화할 수 있을 정도의 교사나 사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의 예배로도 변화될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주일예배가 살아 있으면 아이들이 변합니다. 한 아이는 정말 깡패 중에 깡패요, 아주 몹쓸 짓만 하고 다니는 문제아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먹이고 재웠습니다. 하루는 같이 주일예배를 드리자고 권했습니다. 이 아이가 예배를 드리러 온 그 날, 정작 제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회개하고 진정으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예배당에서 뒹굴고 소리 지르면서 자기가 잘못 했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똑똑히 기억합니다.

한번은 이 아이를 간증자로 세운 적이 있습니다. 15분 정도 간증한 다음 아이가 내려오고 단상에 올라가 보니 아이들이 전부 울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나같이 몹쓸 놈, 나 같은 깡패도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너희들도 모두 사랑하신다”라고 한 간증에 아이들이 크게 감동한 것입니다. 그때 사역자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최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도로 인도하며 초청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때는 제 설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배를 너무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의 예배가 풍성할 때는 좀 더 찬양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참 찬양의 은혜가 깊어지는데 돌연 “시간이 되었으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은혜 그만 받고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물론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청소년 예배 때는 성령의 움직임을 좀 더 세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일예배를 기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주일예배를 생각하면 재미없고 설교 생각만 해도 졸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는 재미있고 우리 목사님은 웃긴다는 생각이라도 갖게 해야 합니다. 재미 역시 우리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2부 청소년 사역,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청소년 투자에 인색하면 경로당 교회 멀지 않다

지금처럼 혼미하고 기준이 없는 사회에서, 이 땅의 회복은 청소년들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청소년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죽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 교회가 그저 성경만 가르치는 옛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말씀이 없이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열심히 제자훈련을 시키는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사역자와 학생들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한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공부에 찌든 아이들

처음 한국 학생들을 만났을 때 제가 받은 인상은 그들이 공부에 찌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에 찌든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속이 상하는 한편, 저는 교회나 가정에서 정말 잘못하고 있는 점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을 크리스천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으로 키운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대접받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결국엔 ‘모자라다’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고3이면 교회생활을 안 해도 하나님이 이해하신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공부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면 운동, 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달란트입니다. 각자 개인의 달란트는 무시한 채 모든 아이들이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목적 없는 공부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라는 소리만 들으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런 반응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매일 똑같은 소리를 지겹게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밥 먹어라”, “일찍 자지 마라”는 식의 잔소리만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특히 학원에 다니면서부터 학교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났습니다. 학교 시간에 오히려 잠을 자는,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말과 구호로 사랑하기보다

제가 바라본 한국교회는 단적으로 장년을 위한 교회입니다. 지금 교회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흔한 예로 보통 교회당에서 제일 좋은 예배실과 제일 좋은 장소는 모두 어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마땅히 놀 곳조차 없습니다. 사회나 가정에서는 교육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온갖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사정이 다른 모양입니다. 물론 교육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는 말뿐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교회 회복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어른들은 아주 어린 심령들까지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교회 식당에서도 대개 어른들이 먼저 먹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은 먹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대접받던 아이들이 교회만 오면 헷갈립니다. 아이들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어떤 행사 연습을 할 때에도 교회 시설을 충분히 쓸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헌금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회는 어른들이 드린 헌금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어떤 곳에서 어떻게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균형 있는 투자와 존중

교회에서는 교육부서의 수련회에 대해서도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수련회에서 무엇을 먹는지,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찬양대에서 야유회를 간다고 하면 많은 예산이 할당됩니다. 이런 일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 교회에서 튕겨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찬양대와 교사는 차원이 다릅니다. 교사 한 사람이 잘못하면 수많은 영혼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지 자명한 문제가 아닐까요? 지금 우리는 균형 없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당회는 어린 심령부터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산을 책정해야 합니다.

청소년의 위기, 교회의 위기

지금 우리의 청년이나 중고등부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이 떨리고 걱정부터 앞섭니다. 우리는 장년들 위주로 교회를 이끌어왔습니다. 장년 집회에는 좋은 강사를 초빙합니다. 식사도 가장 좋은 곳에서 대접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 집회의 강사들을 좀 더 우대해야 합니다. 청소년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게 생활합니다. 교회는 그들을 우대하고 존중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활기차게 놀 수 있도록 장년들이 이모저모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교회가 활기차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교회도 곧 유럽의 교회처럼 젊은 사람 하나 없는 경로당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선교도 중요하고 봉사, 구제 등 교회가 할 일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협해서는 안 될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교육비입니다. 교육비 예산이 적어도 다른 예산보다 많고 타당하다고 여겨지기 전까지는 교육에 신경을 쓴다는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 고등부에서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어른들이 와서 그 공부방을 직접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을 갖다보면 그들의 필요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교육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식 대하듯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은 장년 출석이 청소년 출석수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크리스천 중 80% 이상이 고등학교 때 복음을 접했습니다. 그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그 시기에 복음을 접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예수를 믿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청소년들의 수는 계속 줄고, 교회마다 청소년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입니다. 결국 10년, 20년 후 이 문제는 장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장차 장년의 수가 준다는 것은 교회가 약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교회당을 아름답게 지어놓았더라도 앞으로 교회를 이어나갈 사람이 없게 된다는 뜻이지요. 청소년들에게 투자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영혼을 변화시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소중한 한 사람

청소년 사역은 가장 즐겁고 재미있고 쉬운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지금 진리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체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변화도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한 번 친밀한 관계를 맺어 통하는 사이가 되면 누구보다 그 관계에 헌신하는 자들이 바로 청소년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만 북돋워주면 청소년은 아주 아름다운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을 변화시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청소년 사역의 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역의 일환으로 저는 1대1 미팅을 자주 갖습니다. 1대1 미팅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역자와 그리고 부모와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관계 형성에 앞서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진실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둘째, 한 아이의 이름, 학교, 생일, 친한 친구 이름 등을 외워야 합니다. 셋째, 좋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괜한 질문하지 말고 지혜롭게 질문해서 대화를 유도합니다. 넷째,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문화를 익히고 함께 해야 합니다. 다섯째, 우표 붙인 엽서나 카드를 이용해보십시오. 이제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직접 쓰고 우표를 붙인 편지를 받으면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합니다. 여섯째, 아이들의 행사에 함께 참여합니다. 학교 축제에도 가보고, 운동 시합도 보고, 콘서트에도 가보고, 힙합 동아리 발표회가 있다면 그런 곳도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과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도

사역자가 한 학생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도 다음 세 가지를 실천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첫째, 리스트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한 시간에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영혼, 한 영혼을 관심을 가지고 세밀히 돌아볼 때 그들이 변화됩니다. 둘째, 사역자들이나 교사들이 중보기도 팀을 구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든 사탄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우리의 청소년들을 쓰러뜨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역자의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부터 넘어집니다. 셋째, 아이들과 사역자의 기도제목으로 기도 달력을 만듭니다. 기도 달력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면 좋습니다.

좋은 리더의 구비 조건

한 학생을 변화시키려면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청소년 리더는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분의 정신과 말씀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둘째, 아이들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항상 표현해야 합니다. 셋째,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변할듯하다가 제자리이고, 변한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안 변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조금씩 성숙하고 있음을 믿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넷째, 사실 아이들은 외롭고 기댈 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계속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정직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거짓으로 그러는지, 좋아하는 척하는 건지, 말로만 그러는지 다 압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셋째, 청소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면을 바꾼 다음 오라고 하면 올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넷째,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십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먼저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밥상 같이하는 사역

교회에서 착실하게 자란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술 문화나 세속 문화에 빠지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교회에서 그들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역자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알맞은 문화 사역도, 그들의 기억 속에 간직될 만한 이벤트도 없었고 수련회 역시 무덤덤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사역자는 아이들과의 진하고 구체적인 관계 없이는 설교도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밥상을 같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의 말문을 여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뭐니뭐니 해도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뭐 먹을래? 맛있냐?”라는 말로 입을 열다보면 자연스럽게 물어볼 거리도 생깁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 관계를 맺다 보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척척 진행됩니다. 1대1 혹은 1대2의 만남이 그래서 소중합니다. 이런 만남이 서로 깊은 마음까지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아이들 속으로 파고들기

맨 처음 저희 교회 아이들에게는 패배주의적인 정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세워주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창조하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영화도 같이 보러 가고, 자전거 여행도 같이 가고, 기차 여행도 같이 갔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방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방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이들은 부쩍 공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변화가 동반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고 주일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려도 주일예배 시간에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느라 고개를 박고 있는 아이도, 떠드는 아이도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바로 저와 그들 사이에 관계의 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 인간 얘기 좀 들어주자!” 바로 이런 관계가 형성된 것이지요. 청소년들은 그런 관계 없이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두터워지고 아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이 달라지자 재미있는 변화가 또다시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지 않고, 교회 일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교회 일에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전도를 남의 일처럼 여기고 전도 못한다고 내빼던 아이들이 전도에 대한 가능성을 알게 되더니 구체적으로 또 담대하게 변했습니다. “목사님, 저는요, 저희 2학년 11반을 전도할 거예요.” 아이들 중에서 속속 이렇게 공표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눈빛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초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불신자나 초신자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배려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다른 교회에서 옮겨오는 그것보다는 초신자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청소년의 리얼 타임 트렌드로 커뮤니케이션하라

핸드폰과 컴퓨터, 문자와 채팅

지금 제 청소년 사역에 최고로 도움이 되는 도구 중 하나가 문자 메시지와 채팅입니다.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들킬까봐 아예 전화 상담을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과 문자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사이버 공간 그 자체가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침투하지 못합니다. 그 세계에 침투하지 못하고서는 아이들과 아무리 이야기를 해봤자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119를 칠 수 있듯이 아이들은 적어도 교사나 목사에게 119를 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긴급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랩으로 표현해 봐

이제 ‘힙합’은 아이들의 문화 가운데 크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힙합이 자기표현의 방식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힙합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이 있는데 한번은 CBS의 방송 프로를 공개녹화 한 일이 있습니다. 드디어 힙합 팀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몸이 굳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금방 풀어져서 신나게 랩을 해나갔지요. 그런데 자작곡을 부르던 친구가 그만 가사를 잊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천지창조 첫째 날...둘째 날...” 이렇게 이어지다가 그만 다섯째 날 가사를 까먹은 겁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다시 랩으로 “다섯째 날! 다섯째 날! 우와 잊어버렸어!”라고 즉흥대사를 이어갔습니다. 녹화장은 완전히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힙합을 통해서 자유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힙합을 할 때 거기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습니다. 겉으로는 힙합이지만 결국 복음성가이고 CCM인 셈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자기를 표현하면서 신앙심을 키워나갑니다. 교회에 힙합을 도입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고3 우상숭배를 중단하라

“고3인데 얼마나 힘드니? 힘든데도 교회에 나왔구나. 참 고맙다.” 아니 주일에 교회에 나온 걸 고맙다고 하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신앙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고3들이 다 새벽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어떻게 그 힘든 고3 시절을 감당해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3인 1년 간 예배만 드리고 사역하지 말고 봉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간이 없고 바쁠 때 하는 봉사를 더욱 귀하게 여기십니다. 한국은 가정과 교회에서 고3생들을 완전히 우상숭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우상을 깨뜨려야 한국의 청소년 사역이 살아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마라톤의 시작일 뿐입니다. 재수를 하건 서울대에 들어가건 이제 마라톤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것인데 조금 늦으면 어떻고 조금 덜 좋으면 어떻습니까? 대학 입학은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데 목표처럼 됐습니다.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세상적인 가치관에 젖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대에 갔다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조금 떨어지는 대학에 갔다고 하면 죄인처럼 죽어지내고, 재수하면 완전히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치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주님과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공부 못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아닙니다.

3부 가슴으로 감동시켜 혼으로 구원한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마련해준다

저는 지난 2002년, 우리 아이들을 캐나다 록키산맥으로 데리고 나가는 비전 트립(Vision Trip)을 감행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원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들에게 드넓은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둘째, 여행 때 받은 느낌이나 경험이 그들의 세계관으로 발전되고 앞으로 그들의 삶의 방향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 교회를 통해서 또는 교회 활동을 통해서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비전 트랩에 앞서 두 달 전부터 성경쓰기와 제자훈련을 따로 실시했습니다. 그것은 별도의 소그룹 훈련이었습니다. 로마서를 비롯해서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등 신약성경의 3분의 2 가량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도 썼습니다. 사실 그냥 성경을 쓰라고 하면 안 쓰지만 목표가 있으면 쓸 수 있습니다. 캐나다 비전 트립을 위한 훈련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깨달았고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비전 트립에는 신앙이 굳어지고 세계관이 달라지는 유익이 있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아이들의 스케일이 커졌다고 하고,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10, 20대에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교회가 비전 트립을 꿈꾸고 계획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다른 일을 못하더라도 이런 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를 많이 가져야 아이들이 변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도 ‘내가 정말 이곳에 있어야 하는구나, 내가 이 교회에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대학 가고 군대 가서, 교회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생각해봐도 좋은 추억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로스 오버 : 색다른 전도 축제와 가스펠 콘서트

우리에게는 축제 문화가 없습니다. 특별히 예배와 축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예배의 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전도 축제에서 제가 원하는 것은 기존 예배의 틀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색이 전도 집회라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 형식에 있는 묵도나 사도신경, 대표기도를 모두 뺐습니다. 마지막에 하는 축도도 뺐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학생이 거부감을 느낄 만한 요소는 다 빼고 대신 워십 댄스(worship dance)나 특별 찬양처럼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순서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도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영화였습니다. 제목은 ‘강남의 영광’입니다. 8명의 아이들과 같이 가정용 비디오를 이용해서 찍고 편집한 것입니다. 저는 영화에서 마약 중독자로 나왔는데 대사 한 마디 없이 담배꽁초를 찾다가 맥주 마시려고 한강에 뛰어드는 역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또 한번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웃고 즐기면서도 ‘목사님이 저렇게까지 노력했구나’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지요.

영화가 끝나고 나자 저는 15분 정도 메시지를 전한 다음 초대 순서를 가졌습니다. 학생들을 초대하고 나서, 예수를 믿겠다고 한 아이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었는데 특별히 만찬에는 좋은 음식들이 풍성했습니다. 이런 축제의 장점은 일단 전도가 된다는 점입니다. 또 아이들에게 ‘우리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모두 350여 명의 아이들이 참석했고 우리 아이들끼리 단결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애썼기 때문에 그 목표가 이루어지자 모두들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는 코드의 하나가 바로 CCM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CCM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CCM 가수들을 초대하여 콘서트도 열었습니다. 말씀 집회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찬양 사역자를 초청하여 여는 콘서트에서도 아이들은 믿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콘서트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교회로 인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러 가자고 하면 안 와도 콘서트에 가자면 옵니다. 이런 콘서트 문화를 십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긴밀하게 네트워킹된 사역을 한다

청소년 사역의 트라이앵글

청소년 사역은 삼각형입니다. 청소년과 부모, 그리고 사역이 각 꼭지점에 해당합니다. 청소년 사역 안에는 교사 훈련도 있습니다. 자기가 아이들을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아이가 찾아와서 “우리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라고 하면 “나 같아도 미치겠다. 너희 엄마 왜 그러시냐?”라며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러나 그러면 교사와 아이 사이는 좋아도 아이와 엄마 사이는 멀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실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교사는 부모님이 지금 그들을 가장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누구보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모든 교회의 주일 학교 사역은 아이와 부모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가끔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만약 이 자리에 나쁜 놈이 총을 들고 들어와서 ‘네가 죽을래, 아니면 이 아이들을 다 죽일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당연히 ‘내가 왜 죽어요? 난 집에 아내와 아이가 있어요’라고 할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을 죽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너희들의 아빠 엄마란다.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도저히 좇아갈 수 없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어? 아닌데, 나를 이해하는 분은 목사님이세요.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정말 싫은데...”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부모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부모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가정 사역의 전문성 배양

주일 학교는 이제 아이들의 가정까지 사역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과 아이들을 잇는 사역, 집이 아닌 가정을 만들어가도록 사역해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그립고 아름다운 스위트 홈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일, 그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가정 사역의 전문성을 배양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사역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 가정 속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해보는 것입니다. 둘째,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 자원하여 방문해 주어야 합니다. 그만큼 시간도 할애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릴 것입니다. 셋째, 전문서적을 통해서 전문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있다면 가정 사역도 제대로 해낼 수 있습니다. 가정 사역이 이루어지면 이제 부모도 훈련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베테랑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들을 가르쳐주길 원합니다.

청소년, 그들이 갈구하는 멘토는?

우리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또 가정에서, 청소년 세대에 대해서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물론이고 교사나 사역자들까지도 아이들이 친구밖에 모른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설문 조사 결과 청소년들은 자기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으로 첫째, 부모를 꼽았습니다. 2위는 놀랍게도 친척 어른, 3위가 교사나 목사, 4위가 친구입니다. 아이들이 진정 으로 원하는 것은 어른들 중에서 자신들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멘토를 찾는 일이지요. 그러므로 가장 시급한 일은 사역자나 교사, 부모가 우리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그들과의 관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같이 느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냥 같이 느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같이 느껴주는 관계야말로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청소년을 학교에 파송하는 선교사로 제자훈련 한다

제자훈련의 긴급성

하나님 앞에 열매 맺는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제자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난 10개월 간 40여 명이 제자훈련을 해왔는데 이 아이들의 변화는 정말 놀랍습니다. 제자훈련을 하면 기독교 세계관이 생깁니다. 자기에 대한 소명이 생깁니다. 자기 삶에 대한 가치관이 생깁니다. 제자훈련이란 예수님처럼 같이 말씀을 나누고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나눌 때 제자훈련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훈련을 할 때는 먼저 신앙적인 적용점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만약 전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한 후 어떻게 교회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 했을 경우 이런 결과가 있다는 것을 삶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죄를 너무 쉽게 용납하고 용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거저 용서받고 거저 은혜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된 후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셔서 죄와 싸울 능력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점은 부각하지 않고, “또 넘어졌니? 일어나라. 또 넘어졌어? 그래도 일어나면 된다. 하나님은 다 이해하셔. 하나님은 다 용서하신단다”라고 은혜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교회에서 자기들끼리만 친교하고 복닥거립니다. 이 세상에서 헤매는 친구들을 변화시킬 수 없는 나약한 크리스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간증의 전파력

말도 별로 없고 교회에도 잘 나오지 않았던 고3 여학생이 제자훈련을 하면서 정말 뜨거운 제자로 변화하여 친구를 전도하여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에 나온 친구가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교회에 처음 나왔습니다. 제가 교회에 나온 이유는 친구가 요즘 너무나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변화하는 친구의 삶을 보면서, 또 교회에 나오면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했을 때 도저히 안 가겠다는 말을 못 했습니다.” 변화된 고3 여학생의 영향력은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그 아이를 찾아오는 일들이 일어나게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두 말씀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프로그램에 온 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역의 목표는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훈련입니다. 우리 삶의 개혁은 본질로 돌아갈 때 일어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 훈련에는 특별한 교재나 커리큘럼보다 말씀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말씀에 비추어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문화적인 이슈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주효합니다. 말씀으로 변화되면 아이들은 학교를 변화시키고, 친구를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그런 간증을 통해서 아이들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세워집니다.

신실한 눈높이 멘토 사역으로 영혼을 살린다

소그룹 인도법

제자훈련과 리더훈련을 하려면 특별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그룹 인도법에 능숙해야 합니다. 소그룹을 인도하는 방법에는 8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학생들이 자기 견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둘째, 아이들의 견해와 답변을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다”라면서 고마워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셋째, 첫 번째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시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지금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러면 이것은 또 어떻게 생각하지?”라고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이렇게 계속하면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집니다. 넷째, 토론을 하다보면 조금 말이 많은 한 아이가 토론 시간을 독주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시간을 안배하여 모두에게 발언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소그룹을 인도하다보면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질 때가 있습니다. 토론하다가 갑자기 서로 아무 말도 안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십시오. 모든 질문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민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아이들에게는 배울 게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또 실제로 아이들에게 뭔가를 배웠다면 그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덟째, “예” 또는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삼가야 합니다. 이 경우 “예”, “아니요”라는 대답을 제외한 다른 답을 들을 수 없어서 더 이상 토론을 이끌어가기 어려워집니다.

열매 맺는 사역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

열매 맺는 사역은 믿음으로 시작되고 믿음으로 지속되는 사역입니다. 그럼 어떤 사역이 열매 맺는 사역입니까? 그것은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입니다. 강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적용에 힘쓰는 교육, 실천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교육 커리큘럼은 첫째, 성경적인 교육 커리큘럼이어야 합니다. 둘째, 실천적이고 적용이 쉬워야 합니다. 너무 어려우면 자기도 그 교육 커리큘럼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셋째, 가르치고 배우기 쉬워야 합니다. 매우 단순하고 한 가지 주제로 일관하는 교육 커리큘럼이 요구됩니다. 넷째,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지속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성공적인 교육 커리큘럼은 가정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입니다. 열매 맺는 사역은 가정을 섬기는 사역이기 때문에, 주일학교의 한 부서를 맡았으면 그 부서 아이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까지 사역 대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 맺는 사역이 됩니다.

4부 공부 고민은 청소년 공부방으로 해결한다

청소년을 만나기 위한 고육지책

강남교회 고등부에는 ‘고공방’(고등부 공부방)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강료를 전혀 내지 않으며 선생님들도 무료 봉사입니다.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공부에 찌든 아이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사역이란 만남이 없으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데,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사역자가 청소년을 만날 시간이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의 학업을 지도하기 시작하자 교육열이 유난히 높은 우리 학부모들도 덩달아 교회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3년 첫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이전 시험 대비 최고 성적 향상자에 대해 시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학생은 중3 성적과 비교해서 무려 평균 35점이나 올랐습니다. 공부방을 통해서 학업에 자신을 갖게 된 친구들이 많아 보람도 큽니다. 고등부에 와서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중한 뜻을 깨닫는 과정에서 고공방은 학생인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고 그 학생은 말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한 번도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고공방에 와서 ‘이번 시험에는 열심히 해보자.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고, 또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고공방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공방의 학습 프로그램은 일선 학원의 프로그램이나 정규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랍게 변화했습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학습에 있습니다. 고공방에 1년 동안 꾸준히 참석한 학생이라면 적어도 매일 20분씩 성경을 읽고 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성경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써보는 것이 좋겠다 해서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담임목사님의 권유로 영어성경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어느새 요한복음 절반 이상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 1:7). 아이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지식의 근본 역시 분명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은혜를 뒤로 미룬 채 진행되는 사역은 어느 것 하나 부흥할 수 없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