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자씨(Mustard)와 담배나무 씨앗 예수님은 믿음과 하늘나라를 겨자씨(사진 참고)에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마 17:20과 눅 17:6에서는 지극히 작은 믿음을 비유하는 데 겨자씨를 사용하셨고, 마 13:32, 막 4:30-32, 눅 13:39에서는 천국의 확장을 겨자씨에 비유하고 있다. 겨자씨는 신약성경의 헬라어로 ‘시나피스’이다. 히브리어로는 ‘하르달’(חרדל)인 데, 구약성경에는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헬라어 ‘시나피스’는 고대로부터 히브리어의 '하르달'(חרדל), 곧 겨자로 번역되어 왔으므로, 신약성경의 '시나피스'가 '겨자'이외의 다른 식물을 지칭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문제는 '시나피스' 곧 히브리어로 '하르달'인 겨자가 어떻게 생긴 식물이냐는 것이다. 그간 성지순례객들에게 대롱같이 생긴 노란 꽃에서 채취된 담배씨 모양의 작은 씨앗이 성경의 겨자씨로 소개되어 왔다.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근처에서 아랍인들이 한국 성지순례객들에게 한국말로 '겨자씨, 겨자씨'하면서 한 봉지당 1달러에 팔고 있는 것이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겨자씨인가, 아니면 봄에 제주도의 유채꽃 같은 노란 꽃이 피는 1년생 식물로서 히브리어로 '하르달'로 불리우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지난 수년간 한국인 가이드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널리 '겨자씨'라고 알려진 나무의 씨앗은 원산지가 브라질인 담배나무 씨앗이다. 이 나무는 1898년 브라질에서 처음 수입된 것으로서 학명이 '니코티아나 글라우카'(Nicotiana glauca)이며 흔히 '담배나무'(tobacco tree)로 불리고 있다. 이 나무는 번식력이 우수해서 거친 곳에서도 잘 자라며, 현재 장신대 연구소 건물앞의 광야에서도 네 그루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으며 연구소 정문앞 화단 바닥을 비집고 들어와 1년만에 그 키가 2미터에 달할 정도로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무는 히브리어의 '하르달' 곧 겨자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적이 없으며 학명(니코틴)으로나 통상명으로나 담배나무에 불과하며, 19세기 말에 수입된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존재하지 않았던 나무이다. 그러면 어떻게 담배나무씨가 겨자씨로 탈바꿈하게 되었을까? 이는 마태복음 13:32과 누가복음 13:19에서 겨자를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는 데서 생겨난 오해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2);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느니라"(눅 13:19). '하르달' 곧 겨자는 작기는 작으나(직경 1mm) 모든 씨보다 작지는 않으며, 더구나 1년생 풀일 뿐이지 결코 나무과로 분류될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가장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나무가 바로 담배나무이다. 담배나무는 우선 그 씨의 크기가 가장 작을 뿐 아니라 (담배씨의 크기를 상상해 보라), 처음에는 나물 같다가 점점 자라면 나무로 변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담배나무의 이러한 특징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술된 겨자씨 비유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므로 언제부터인가 성경의 겨자나무로 둔갑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제주도의 유채꽃 같은 꽃을 피우는 1년생의 겨자를 두고 예수님은 과연 '나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 우선 천국비유와 관련해서 겨자씨 비유가 나타나는 3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에는(막 4:32) 나무라는 표현이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음서 중 마가복음 우선설을 거의 통설로 받아 들인다는 점을 전제할 때,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사용하실 때에 '나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진다는 마가복음 4:32절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겨자를 나무가 된다고도 하지 않았고 또한 나무보다 크다고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모든 나물보다 크다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겨자를 1년생 풀로 인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물은 헬라어로 '락사노스'(Laxanos) 곧 허브(herb)를 의미한다. 겨자는 바로 허브과에 속한다. "모든 나물보다 크다"는 것은 모든 허브보다 크다는 뜻이다. 그러면 겨자가 다 자라면 그 키가 어느 정도가 되며 과연 새들이 깃들만 한가? 이스라엘에는 여러 종류의 겨자가 있는 데, 그 중에서도 흑겨자(sinapis arvensis)와 백겨자(sinapis alba)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상기한 바와 같이 봄에 노란 꽃을 피우며 네 개의 꽃잎을 지녀 위에서 보면 그 꽃의 모양이 십자가 형상이 된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겨자는 아마도 흑겨자였을 것이다. 그 씨앗의 직경이 1mm 정도로 작고, 경우에 따라 2m이상 3m까지도 자라며 갈릴리 지역에 흔하기 때문이다. 다 자란 후에는 그 줄기의 중앙 굵기 또한 매우 굵어서 새들이 앉아서 쉬기도 하는 데, 특히 그 씨앗은 가을에 새들이 즐겨 찾는 먹이가 된다. 가을철 2미터 이상의 키로 거대한 군집으로 자라 있는 야생 겨자밭에 앉아 겨자씨를 먹고 있는 새들을 상상해 보라. 예수님은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싶다. 새들이 '깃든다'는 헬라어 '카타스케노오'란 표현 역시 '둥지를 틀다, 거주하다'는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쉰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새들이 겨자가지위에 쉬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계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토양이 좋은 경우에 흑겨자는 3미터까지도 자라므로 갈릴리 사람들이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던 것처럼, 흑겨자를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정해 본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자가 '나무'라는 표현을 썼다 해서 그리 이해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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