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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중요성

시리즈설교/말씀묵상

by 발의무리 2018. 1. 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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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중요성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우리는 이미 배운데로 하나님 말씀앞에 서서 그렇게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삶을 조정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해야합니다.

 

먼저 살펴보기

우리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성경에 비추어볼 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길을 찾고 의중을 알기를 구해서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그분께 묻고 그분을 찾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다윗이 살았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시편27:4의 구절은 다윗이 살았던 삶을 한눈에 볼수 있는 구절입니다.

-한 가지 일 : 영어 niv를 보면 : 이것이 내가 여태까지 하나님께 갈망해 왔던바다,(완료형입니다.), 그것을 내가 찾을 것이다(미완료형입니다)

이 한가지가 다윗이 지금까지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고, 앞으로도 찾고 원하고 갈망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용이 3가지 나옵니다.

첫째는 임재가운데 머물기를 원했고,

둘째는 아름다움을 보기를 열망했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말합니다.

세 번째는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우리말 성경에는 사모하는 그것이라고 나왔는데 명확하지 않게 나왔는데, 이 말은 찾는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바카르는 본래 조사하다’ ‘숙고하다하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말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길을 알기를 찾고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한 핵심은 하나님의 길을 구하고, 뜻을 찾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잘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사울의 인생은 한마디로 묻지 않았다이렇게 말합니다.

 

*역대상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심각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대부분의 삶속에서 이 자세가 없습니다.

*역대상 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다윗의 한 말입니다. 다윗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2) 모세가 구했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배역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대로 그 땅으로 가라 사자를 네 앞에서 보내겠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가 올라가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보면 모세는 주님을 알기를 구했습니다. : “내게 주를 알리시고”,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다윗의 표현으로는 주의 아름다움을 구한겁니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모세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길을 알기를 구하고, 찾고, 사모하고, 열망하고, 그를 위해서 하나님께 묻고 기다리는게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어떤일을 추진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계획대로 합니다. 그래놓고는 나중에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하는데 안이루어지면 하나님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너무나 잘못된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저질러 놓은 뒤치다꺼리 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부부는 한명이 일을 벌려요, 그리고는 하다가 않되겠다고 손을 듭니다. 다른 한명은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평생 고생합니다.

하나님은 뒤치다꺼리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거해달라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 안이루어 주시면, 하나님 원망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지금 반듯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의 뜻과 길을 구하고 그리로 행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의 궁극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길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찾고 구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스바냐서를 보겠습니다. 이사야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이사야는 남방유다 백성들에게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스바냐14절을 보면 예루살렘과 남방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스바냐1: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 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그마림 : 우상이름입니다. 우상 때문에 심판하시는 겁니다. 우상을 쓸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이 타락하면, 혼합주의 신앙을 갖게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자들이었습니다. 동시에 옥상에 올라가서 별들과 달들을 향해서 절을 하고, 섬겼던 자들입니다.

 

여러 성도들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별과 달과 태양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않기 때문에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바리새인들의 우상은 그 자신의 명예와 그 자신과 돈이 우상이었습니다. 종류만 다르지 똑같은 우상숭배 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신앙이 타락하면 항상 혼합주의 신앙에 빠집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섬기고, 자기 명예도 섬기고, 하나님 섬기고, 돈도 섬기고, 하나님 섬기고, 세상의 자기 목적이 우선인 겁니다. 안믿는 사람은 우상만 섬깁니다.

다음절을 보면 심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근간이 나옵니다.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히브리 문학의 특징은 비슷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강조하는 겁니다.

구하지도 아니한 이란 단어는 영어성경에 보면 inquire(인콰이어)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찾는 것과 포함된 핵심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스바냐시대와 이사야 시대는 같은 시대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1장에 보면 그들은 안식일, 매월 첫날 특별한 예배를 드리는 월삭, 모든 대회와 모든 절기를 성경대로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나님께 나올 때 성경이 규정한 숫송아지, 숫염소, 어린양등, 흠없고, 가장 살찌고, 가장 좋은, 재물들을 무수히 드렸습니다. 그들은 많이 기도하고, 많이 금식했습니다. 그랬는데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기 위해서 찾고, 기다리고,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의식이 안중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의식마저 없다면 하나님을 오래전에 떠난 겁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으면 반듯이 우상숭배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예외가 없습니다. 자기의 명예, 세상에서의 안락, , 쾌락, 육신의 정욕, 사람, 세상적인 지휘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혼합주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되어 있습니다.

 

얼마전에 스텝회의에서 성도들이 재정적인 면에서 관념이 부족한 것 같다고 한번해달라고 말이 나왔습니다.

예를들면 자기 수입을 초월해서 갚을 여력도 없는데 카드 쓰고, 빚을 쓰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성도로 해서는 안될일입니다.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건 성경적 가치관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찾아야 합니다. 전혀 나올데가 없는데, 하나님 믿는다고 카드 끍어서 신용불량된 분이 있습니다. 전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도 아닙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재정적인 면입니다. 재정적인 면에서 사고가 올바르게 되어있지 못하면 절대로 신앙이 올바로 되지 못합니다.

십일조만 하더라도 자기 쓸것 다쓰고, 문화비, 외식비, 학원비까지 다쓰고, 남으면 혹시 하나님 드릴까하는 것은 하나님 벌써 떠난 겁니다. 건축헌금도 십일조로 건축헌금하는 것은, 자기 맘대로 하나님 것을 바꾸는 겁니다. 그렇게 할 권리가 자기에게는 없습니다. 십일조 드린 다음에 하는 겁니다.

 

아모스 시대는 호세야 이사야 시대와 같은 시대입니다. 북방 이스라엘을 향하여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입니다. 똑같이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요. 이렇게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우상숭배가 가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구하지 않으니까 그 길을 갈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단한명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찾기를 중단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버리게 돼 있습니다.

 

*아모스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해답은 하나님의 길을 묻는 것입니다. 뜻을 묻는 것입니다.

 

*아모스 5: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시대와 말라기 시대와 똑같습니다.

- 살진 :NIV성경에는 최상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삶에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안받으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다가 장막을 치고 언약궤를 두고, 찬양하는 자들을 세워서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찬양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윗이 세상을 떠나면서 솔로몬에게 식양을 다 줍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을 세울건가를 쭉 말하면서 그럼면서 성가대를 세울 것을 말합니다. 레위 자손중에 악기와 하나님 찬양하는 자를 세우라고 합니다 그대부터 솔로몬 성전도 그렇고, 왕들이 성전을 회복시킬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리들, 오늘날로 성가대를 회복시켰습니다.

주님이 아모스 시대때, 삶이 하나님을 버린고로 극상품의 제물을 안받으신다고 말할뿐만 아니라 너희의 노래 소리도 듣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의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을 찾는게 핵심이고, 핵심이 하나님의 길과 뜻을 찾고 구하고 묻고 기다리는 것임을 볼수 있습니다.

4) 솔로몬의 예

솔로몬을 보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말씀하신게 두 번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엄청난 부와 명예 지혜는 다윗 때문에 주어진겁니다. 솔로몬을 보면 처음에는 옳게 시작했습니다. 부와 안락으로 인해서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들이면서 그들과 함께 이방관습과 우상숭배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솔로몬 시대에는 하나님이 그 심판을 다윗 때문에 유보하십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서 나라가 나눠지고 멸망합니다.

처음에 그가 옳게 시작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역대하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2: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을 명하고 3: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 4: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5: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의 지은 놋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기브온 산당에 성막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리더들과 같이 모여서 나온겁니다.

5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 기브온 산당에 예배하러 나간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서” : 영어성경을 찾아보면 표현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inquire(인콰이어)’ ‘하나님께 물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과 뜻을 물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을 찾아서 가는 겁니다. 그중의 하나는 묻고 길을 구하는 겁니다.

 

*6: 여호와의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하나님이 솔로몬 시대에 유다백성들에게 주신 부에 비하면 이건 얼마 안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도 주시고 엄청난 축복을 주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마리의 제사를 드린게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의 핵심은 천마리의 제사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구해서 나갔습니다.

 

*7: 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8: 솔로몬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나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시고 나로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10: 주는 이제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솔로몬은 시작할때 옳게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정확하게 주의 백성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끌도록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인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주의 백성을 주의 길로 이끌기 위해 주의 지혜가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그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으로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로서 자기는 신랑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신부된 교회를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쟁이로 인도하는 자에 불과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1:11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저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0절에 나온 솔로몬의 관점과 11절에 나온 하나님의 관점이 같습니다.

그당시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관점과 안목과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 있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렸기 때문에 축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확하게 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백성을 맡겨주셔서 자기가 앞서가며 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자리로 세우신 것을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지혜가 절박하게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로 나갈때도 그는 하나님을 구해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하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부으신 겁니다.

12: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이부분을 강력하게 주셔서 나누는 겁니다. 기록과도 중요한 부분이라 나누는 겁니다.

 

 

기록의 중요성.

1. 기록의 중요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부분을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반듯이 그것을 기록해야 합니다.

저는 신방갈 때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나누면, 대부분의 경우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분 신방을 가는데 어떤 부분을 나누라고 하는데요, 제가 적을게 없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에 꼭 기억하고 있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잊어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것이 있어야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의중인지 어떤 강조점까지 다 아는데 기록이 없으니 생각이 안나는 거예요. 차를 타고 가면서 하나님 제가 앞으로는 적을테니까 제발 생각나게 해주세요”. 하면서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집에 가서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에 생각이 났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반듯이 적습니다. 반듯이 적어야 할 것을 훈련시키시는 겁니다.

 

우리는 기록함으로써 말씀하신 것을 상기할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몇일이 지나면 망각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반듯이 그것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심을 주시해봐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절기를 세우시는데, 유월절만 하더라도 정말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절기들을 세웠냐면, 기억하라는 겁니다. 구약이건 신약이건 절기들을 세우신 가장 으뜸가는 목적중의 하나가 기억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한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절대로 잊지말라는 겁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는데,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 해질때까지가 안식일입니다. 오늘날도 안식교인들은 토요일날 예배드립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드립니다. 어떤때는 그들이 그런 성경구절들을 우리에게 들이대면서 니들이 잘못됐다고 합니다. 일요일은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다 다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미혹합니다. 적지않은 성도들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은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어요. 그뿐만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안식후 첫날인 주일날입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신 날도 주일날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매일 모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확산되어져서 여러지역으로 퍼져갈 때, 사도행전에 보면 안식후 첫날 모였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가장 나중에 쓰여진 성경중에 하나인데,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가지고 밧모섬에 찾아오시는데, 그날이 주의 날에라고 써있습니다.

안식후 첫날인 주일날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식적인 날로써 주의 날로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안식의 모든 의미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님의 날에, 기억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초대교회는 매주 성찬했습니다. 성찬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의미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교회나올 때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부활, 주님의 승천, 성령강림, 앞으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이 자리에 모인다면 우리의 예배는 완전히 다를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절기들을 세우셨는데 가장 주된 목적중의 하나는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중대한 것들을 다 망각하고 우리의 예배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습관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예배는 정말 타락하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기억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해야할 중요한 한가지는 기록하는 겁니다. 기억하고 상기하기위해서,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종종 들여다보면서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상기하고, 그것을 주야로 기억해야 늘 영적으로 깨어 있을수 있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우리 삶속에서 어떻게 열매 맺는가를 지켜봄으로써, 하나님을 경험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나갈수 있게되고요. 묵상노트를 통해서 살펴봄으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한눈에 볼수 있기도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뭘 기록할것인가?

1) 날짜

2) 묵상한 성경구절

3)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서 뭘 보이셨는가?, 하나님 목적에 대해서 뭘 보이셨는가?,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뭘 보이셨는가?

4)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지를 기록하세요.

5) 그것을 위한 나의 기도

6) 하나님 말씀하신 것에 대한 내 삶의 조정

핸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 하나님이 당신과 일하시도록, 당신의 개인, 가정, 교회, 혹은 직장생활에서 당신이 어떤 조정을 할 필요가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 하나님께 묻고 기다림.

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를 순종한 날짜와 내용.

8)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과 날짜.

 

3. 늘 마음에 품고 주시하여 보는 것의 중요성.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읽는 것은 제게 얼마나 흥분되는 기대의 시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제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실 준비가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길에 대한 저의 이해를 열어주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계시하실 때 제가 응답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그 성경말씀을 적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묵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그 말씀의 뜻 가운데 푹 빠지도록 노력합니다. 저는 제 인생을 그 진리, 곧 하나님께로 조정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동의하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법대로 일하시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그 날 종일 그 진리를 저의 삶에 사용하시도록 주목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진리를 계시하시도록 당신도 제가 밟는 이 과정을 따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기를 살펴본 이유는 최근들어서 제가 여러 성경 구절들을 묵상할때에,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이 구절들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기위해, 뜻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한 부분인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컴퓨터에 기록하고 정리해서 해놓고 조정이 필요하면 해놨는데, 부족한 것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을, 말씀하신바를 정리하여 기록하면서 그것을 수시로 보고 마음에 품고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떻게 행하신 것을 수시로 주시하여 봐야되는데,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신건데, 그게 부족한 것을 강력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많이 묵상한 것들도 더 못넘어가게 하신겁니다. 반듯이 묵상노트에 기록해야됩니다. 그렇게할때까지 더 이상 못가게 하신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을 보이신 겁니다.

 

예를들면 역대하6장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며 기도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채찍으로 쫓아내시면서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성전은 제사지내는 곳이라 생각하는데, 이 말이 이해가 잘 안되죠.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제사가 핵심이 아니고, 핵심이 기도인 것을 말씀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을 때 이스라엘이 이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들으시고, 이방사람들이 기도하거든 들으시고, 그래서 솔로몬의 예나 예수님의 예가 똑같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역대하6:32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NIV성경에는 : 주의 백성, 당신의 백성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이 먼 나라에서부터 와서, 당신의 위대한 이름과 당신의 능한 손과, 당신이 펼친 팔 때문에 와서 내게 구하면.

이걸보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이 나타나고, 그분의 강한 능력이 나타날 때 오는 겁니다. 안 믿는 이방인은 어차피 하나님 믿지 않습니다. 성경도 안믿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오는 것은 두가지 때문에 옵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심이 나타날때와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나타날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4장에서 요단강을 가르신 이유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게하고, 열방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보여지는 것이 성전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시면서 운행하시면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 그분의 성품, 그분의 사랑, 그분의 구원, 그 분의 위대하신 사랑과 손길이 보여지고, 그분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때, 안믿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우리 가운데도, 두가지 조화를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계시와 하나님의 강한 팔이 우리가운데 나타나서 운행하시는 것이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알면서 나눠야지 하면서 그냥 넘어갔는데, 하나님이 저를 지적하신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마음에 품고 하나님앞에 지속적으로 간구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행하심을 주시하여 봐야됩니다. 우리에게 그런 자세가 없는 것을 강력하게 지적하신 겁니다.

그렇게 하시기를 주님의 기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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