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원 -십자가에 의한 삶
요6:53-57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이때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시며,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게 되며, 이것을 믿지 않은 자들이 바라보고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노아방주, 성막, 성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우리의 신앙은 참신앙과 거짓신앙으로 나누어집니다.
참신앙이란?
하나님 중심적인 삶
*창1:1
*선악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예수님의 비유(탕자의 비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1)하나님 자원
(은혜에 의한 삶, 믿음에 의한 삶, 십자가에 의한 삶)
2)하나님 목적(하나님의 영광)
3)하나님 방법(성령에 의한 삶)
4)하나님 관점(배우려는 자세, 하나님의 다림줄)
이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거짓신앙이란?(신앙의 모조품)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그 근원은 사탄(사14장)
자기중심적인 삶의 특징
1)자기자원(율법주의, 자기자원의 사역)
2)자기목적(기복신앙, 자기영광)
3)자기방업(인본주의)
4)자기관점(영적소경, 편견)
오늘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 가운데 하나님 자원으로 사는 삶의 3번째입니다.
하나님 자원
1)오직 은혜에 의한 삶
은혜 -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의 능력
2)오직 믿음에 의한 삶
믿음 -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3)오직 십자가에 의한 삶
십자가에 의한 삶이란?
우리는 십자가 하면 예수 믿을 때 한번 믿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천국 가는 티켓을 사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필요하고 그리고 그 후론 아무소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믿음으로 의지해야하지만 또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첫째,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는 삶입니다.
요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또한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53절에 나오는 ‘먹다’ ‘마시다’ 라는 단어는 단순과거형입니다. 헬라어에서 단순과거형은 어느 시점에서 한 번 일어난 행동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볼 때 , 이 구절은 우리들이 처음으로 예수를 믿을 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느 한 시점에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우리의 죄 용서와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우리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거듭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요1:12-13 참조)
둘째, 항상 반복적으로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반면에 5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에 나오는 ‘먹다’와 ‘마시다’라는 동사는 현제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제형은 지속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말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거듭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보면 이 두 가지 종류의 시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성경에는 보험증권 사는 것과 같은 식의 구원은 없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고백하고 영접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화재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안심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구원은 없습니다. 이 구절을 보아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과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늘 서는 믿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현재형의 믿음이 더욱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56절절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에 나오는 ‘먹다’와 ‘마시다’도 현재형입니다.
특히 56절은 우리들이 순간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살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사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전제를 볼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삶입니다. 우리는 그 삶에서만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요15:1-5)
그런데 날마다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친밀함의 비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이 우리들이 날마다 먹고 마셔야 할 양식이요 그렇게 될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57절)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아야할 이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으로만 살 수 있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히10:19-20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마27:50-51)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히9:23-24
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예루살렘 성전은 하늘나라에 있는 진짜 성전인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휘장이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심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통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4:14-16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되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말은 당당하게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당당함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당당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기 때문에 겸손하게 그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당당함을 말합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그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 용서,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하나님의 능력, 거룩한 삶 등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열어 놓으신 그 길만이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 외에는 어떠한 다른 길도 없습니다. 즉 우리의 어떠한 종교적인 헌신이나 희생으로도 하나님의 단 하나의 은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돈 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고자 하는 시몬에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는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행8:20-22)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능력,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 등 그것이 어떠한 은혜이든지, 우리는 헌금, 기도, 봉사 등과 같은 어떠한 헌신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행위입니다. 우리들이 그 모든 은혜를 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핏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히12:21-24, 창4:10)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는 다음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1) 너희 죄가 예수님의 피로 사하여졌다. (화목, 용서)
2) 너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님의 피로 회복되었다.
우리가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력화 되어버린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에 주님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 32:1-5)
1) 실패하고 넘어진 상태 (시 32:3-4)
2)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후 회복됨 (시 32:5)
3) 넘어짐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음을 발견 (시 32:6)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모든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지성소 안까지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고리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기의 모습을 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깨어있는 삶을 살 때에는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삶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 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처음 죄를 지을 때에는 “ 그래요 주님, 저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밖에 없어요” 하면서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다가도 똑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자기의 생활 때문에 죄책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늘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보상심리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봉사를 열심히 하는 이유의 배후에 보상심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열심히 해야지 지난날의 과오를 주님께서 덮어주실 것 같아서입니다.
또 하나 특징은 타협주의 입니다. “아니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적당히 선을 그어놓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사는 방법
1.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뿐입니다.
2.모든 율법주의 가치관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우리 속에 어떠한 선한 것도 없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베드로 - 주를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
주님을 따르는데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
물위에 뛰어든 사람
예수님을 보호한다고 칼 차고 다녔던 사람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고 예수님과 동료들 앞에서 장담했던 사람
이러한 베드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렇게 장담해 놓고 하찮은 종들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닭우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통곡함 ->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의 눈물이었을 거예요.
그 순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주님을 따랐다고 생각해 왔는데 자신이 고작 하찮은 종들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까지 부인한 자였던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예수님이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베드로를 찾아가 그를 회복시켜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과 자신에 대한 환멸감을 가지고 어떻게 주를 위해 설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가신 것입니다.
찾아가셔서 먼저 제자들을 먹이신 다음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씩이나 물어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이나 이 질문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질문을 들으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한 사건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외에는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라고 말씀하시며 다시 소명을 주셨습니다.
보세요 여러분
베드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주를 따랐으되 자기 열심히 따랐습니다. 열심히 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베드로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을 통해서 자기 힘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자기의 그 모든 열심은 결국 주님을 그렇게 부인하는 결과 밖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해서 서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베드로로 하여금 베드로 되게 한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의 열심과 노력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서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그 어떤 선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만약 우리 속에 어떠한 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어떤 선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자기 의를 철저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서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 말은 순간순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4.성령의 조명이 필수적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사는데에는 성령의 조명이 필수적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공로를 순간순간 믿음으로 의지하여 서야 하는데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의 공로가 우리에게 산명하게 깨달아져야 우리는 그것을 의지하고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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