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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 로렌스 콩)

기독자료/신앙서적요약

by 발의무리 2007. 6. 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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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by 로렌스 콩



나는 우리가 싱가폴에 있는 하나의 교회 즉 FCBC안의 하나의 교회로서, 또 전세계에 둘러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바는, 교회가 경기(play)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룬 모든 성취와 역사에 마음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만든 구조들에 감동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데, 전세계에 있는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려는 남녀들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나는 어떤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9년 만해도, 나는 5개월간이나 여행 중에 있었으며,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전보다 많은 교회들과 컨프런스에서 사역할 더 많은 초청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은혜스러운 분이셨는데, 모든 세미나와 컨프런스에서 그분 자신만을 뒤에 남겨 두고 오도록 나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메말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항에서 공항으로, 호텔에서 호텔로 옮겨다니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스케줄이라고 하는 어떤 틀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것은 나의 내면의 시계가 아침인지 아니면 밤인지 미처 알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루를 놓쳤는지 아니면 다음날 살고 있었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경건의 시간을 가졌는지 놓쳤는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내 교회는 바야흐로 문턱을 넘어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1999년 11월, 나는 아르헨티나에 있었는데, 마치 4년 동안 있었던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거기에서 나는 어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책과 설교테이프들을 통해 내가 알았던 분입니다.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토미 테니이며 그는 「The God Chaser」라는 책을 쓴 분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좇는 것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 책을 가지고 있다면, 읽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새로운 불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토미 테니는 ‘하나님의 손(the Hand of God)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얼굴(the Face of God)을 구하는 것의 차이’를 말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것을 위하여 그리고 어떤 것이 부어지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은 그의 손도 얻게 된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손만 찾았지 그분의 얼굴을 놓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토미 테니는 그저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능력을 갖는 것’과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갖는 것’ 사이에서의 차이를 명백히 구별해 냅니다. 그는 여기 둘 사이에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올 때, 설교자는 더 잘 설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배인도자는 더 잘 인도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더 열정적으로 예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는, 설교자는 설교할 수 없으며, 예배인도자는 인도할 수 없고, 예배자들은 하나님앞에 놀람 가운데 서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능력과 기름부으심을 찾느라고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즐기고, 그분을 알며, 그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 메시지는 나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단이 우리를 미혹시킬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가릴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도록 하기까지 이끕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세미나가 끝났을 때, 나는 한 주일간 그곳에서 더 머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방해를 받았는데, 싱가폴에 있던 내 아내가 폴로 경기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말은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았지만, 어쨋든 아내는 쿵하고 느리게 떨어졌습니다. 말을 타는 사람이라면 그(그녀)는 떨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일어나서 다시 말에 올라 타 움직일 것입니다. 내 아내가 떨어졌을 때, 그녀는 움직임이 없었고 3일 동안 의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아내의 생명을 염려했었는데 목이 부러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은 즉시 나를 싱가폴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때까지 내 아내는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머리의 타박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머리 속과 유동성이 있는 내부 혈관에서 피가 새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나는 모든 약속을 취소했고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4,5일을 보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내는 뇌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퇴원해서 지금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의 아내와 함께 했던 그 6일은 나에게 매우 냉정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분 앞에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고, 아침 6시에는 일어나곤 했습니다. 아내는 많은 안정을 필요로 했으며 정오쯤 깰 때까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생각하던 시간으로 막 되돌아오면서, 나는 개인용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영광”-특별히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것-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는 모든 성경구절들을 찾았고, 그리고 각 구절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특별한 날 아침, 나의 연구는 출애굽기 33장18절로 나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문맥의 앞에 진술한 구절들을 조사했고, 이 문맥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되어 있음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으며, 하나님은 백성들을 심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그 백성들을 위해 중보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내가 출애굽기 33:1-3에 읽은 상황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히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위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이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의 축복들을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주심으로써 그의 말씀을 지켰으며, 또한 백성들에 앞서 적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사자를 보냄으로써 그의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아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나는 다음 구절을 읽었는데, 여기서 나의 마음은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33:3)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네가 원하는 모든 축복을 줄 것이다. 너는 큰 교회 혹은 성공적인 사역을 원하느냐? 너는 너희 교단에서 정상에 오르기를 원하느냐? 너는 표적과 기사를 원하느냐? 너는 치유의 능력을 원하느냐? 너는 수천명에게 설교할 능력을 원하느냐? 무엇이든지 너를 위해서 내가 준비했노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줄 것이며, 나를 위하여 명령을 따르도록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너는 나의 손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얼굴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주시는 한 장소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문맥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나의 손을 제공하겠다. 왜냐하면 나의 손은 나의 얼굴보다 너에게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나의 능력을 줄 것이다. 너는 나의 임재없이도 그 임무를 완성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나는 내 아내 옆에 있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아들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하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에게 민족들을 줄 것이라고 말했지 않느냐. 나는 너에게 5000개의 셀들을 줄 것이며, 그리고 너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네가 알도록 하겠노라. 만약 네가 더 큰 교회를 원한다면 너에게 더 큰 교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는 내가 빠진 교회가 될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나는 모세가 출애굽기 33장15절에서 주님께 드렸던 그 반응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다음의 구절을 읽는 것을 계속하기도 전에였습니다. :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그날, 나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만약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 없는 성공이라면, 어떻게 세상이 나의 성공에 대해서 당신께로부터 온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로렌스 콩이 그저 빌 게이츠와 같이 지혜와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움직이며 일들을 완수할 수 있는 위대한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이 모든 것들을 데려가 주옵소서. 나는 당신의 임재가 없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영광을 원합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기를 원하며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영광을 볼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하나님께서 내안에 부여하신 재능과 은사와 장점들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면, 나는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나에게서 취하여 버리기를 원할 것입니다.

FCBC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에 여기에 세워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재능들과 은사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장 거기서 멈추고, “하나님, 당신의 임재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가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교회가 훌륭한 프로그램, 더 나은 음악의 질 그리고 더 멋있고 흥분할만한 춤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5,000개의 셀과 다섯 가지면에서 배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없이 그것을 한다면, 우리는 곧 탈진하고 말 것입니다. 생명은 껍데기 채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셀안에서 만날 때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것과 같이, 우리의 셀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합니다.

잠시동안 이 국제적인 사역을 가질 때, 나는 기대에 어긋나는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위치나 영향력을 위해서 겨룹니다. 그리고 그런 소용돌이에 휩쓰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은 당신의 것입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 당신이 차지하십시오.” 나는 그분 앞에 내려 앉아서 그분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선장이나 장군 혹은 사도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기도와 말씀 가운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의 교회와 셀들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위대한 어떤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몸 안에 그렇게 많은 불일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사람과 사물들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나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으며, 내 인생을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 안에 그 영광을 회복시켜 달라고 주님께 구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영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찾는 사람이 되도록 내 마음을 새롭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울부짖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하나님, 원컨대 당신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나는 너에게 나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노라 하지만 너에게 내 등을 보여 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20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죽은 자 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기의 야망을 죽이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구한다면, 비로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가장 큰 장애는 우리의 무지가 아니라, 우리의 자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시다. 큰 사역이나 축복들과 같은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맙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순함을 잊지 맙시다. 인생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랑에 빠집시다.

내가 이 간증을 나눌 때 나는 항상 이 점에서 어색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방언으로 말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기름부음을 원한다면 나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부르는데에는 어떤 공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조건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과 순결한 마음 그리고 자아에 대한 죽음입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 안에서 두려움과 분노와 원한 같은 것들을 은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당신의 야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나는 당신이 이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나는 결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나는 항상 나의 아버지께 기쁨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종종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순성을 빼앗겨 버리도록 많은 일들을 허용했기 때문에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그분에게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우리를 앞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자아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임재와 영광이 당신과 함께 갈 것입니다. 항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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