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율법주의 특징(3)
5. 능력이 없는 종교
율법주의 신앙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능력이 없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거기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이 그저 형식과 절차로 가득 찬 종교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이 주어집니까? 경건의 능력은 교회에서 말하는 요구 사항들을 잘 지킨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잘 지킨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서 사실 때에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그분의 생명이요, 그분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교제는 소홀히 하고 규례와 규칙에 대한 외부적인 복종만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신앙에서는 절대로 경건의 능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주의 신앙에는 외식(위선)이 가득합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모양과 절차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겉모양은 매우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을 갖춥니다. 죄는 속으로 숨습니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외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이 부분을 자주 강력하게 꾸짖으시며,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5, 27-28을 읽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어떤 점을 강하게 꾸짖으셨는지 써보십시오.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27-28)
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당신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자주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에 갈 때에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 듯한 모양을 종교적인 갖추지만, 그들 속에는 온갖 세상의 욕심과 정욕과 시기와 질투와 간음과 싸움과 교만과 명예욕이 가득합니다. 오늘날 성도들과 교회 안에 있는 죄는 참으로 언급하기조차 가슴 아플 만큼 심각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주의 신앙의 결과요 그 열매인 것입니다. 율법주의에서는 절대로 죄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6. 영적 소경(spiritual blindness).
율법주의 신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영적인 무지입니다. 즉 영적으로 눈 먼 상태입니다.
마태복음 23:24, 26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마태복음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태복음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이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다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참고로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어두운 세상을 비치는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22:29을 읽고 아래에 써 보십시오.
(마태복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 반복해서 영적인 소경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도 말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⑴ 이론과 실재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로 치면 신학교 교수와도 같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니요.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성경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셨을 때 비웃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그 당시 중교지도자들이 이해하는 바가 달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실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반면, 그들은 이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림자 혹은 피자 선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실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실재는 성령님의 조명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십니다. 그런데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자기의 종교적인 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으며,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리고 영적인 장님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7. 믿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45-47을 읽으십시오.
(요한복음 5:45-47)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어떤 점을 지적하고 계십니까?
이 말씀을 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들이 모세의 글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모세의 글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의 글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성경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의 일점일획까지 모두 다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여기서도 믿음의 성격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보여줍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을 이론적으로 믿으면, 그것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한 믿음은 삶 가운데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다운 믿음은 실재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론적으로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믿었을지 모르지만, 그 본체이신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도 그리고 참다운 순종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주의 신앙은 신앙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유사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그의 별을 보고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 태어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당황한 헤롯왕은 서기관들을 불러 왕으로 오실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에 대해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면서, 미가서에 나오는 이에 대한 예언을 단숨에 외웠습니다(마 2:5-6). 그 정도는 기초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찾아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동방박사들이 이 말을 듣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떠나갈 때, 그 성경말씀을 줄줄줄 외워대던 서기관들 중 단 한 사람도, 예루살렘에서 그토록 소란을 떨던 단 한 사람도 같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소망은 율법이요, 모세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 약속들을 목숨을 걸고 믿는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더라면, 그들은 아마 동방박사들을 앞질러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이 세상은 유한하며,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 앞에 설 것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해서 계산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까? 만약 우리들이 이 사실들을 진실로 믿는다면, 다시 말해서 그러한 하나님의 진리의 실체 혹은 실재를 깨닫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절대로 지금처럼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주의 신앙은 믿음을 이론적인 사실을 믿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리기 때문에 거기에는 참다운 믿음이 없습니다. 따라서 참다운 순종도 삶의 변화도 없습니다.
이 과의 요점
♡ 율법주의의 특징은 능력이 없는 종교입니다.
♡ 율법주의 신앙에서는 절대로 죄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 율법주의의 특징은 외식입니다.
♡ 율법주의의 특징은 영적 소경입니다.
♡ 율법주의의 특징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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