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단원 영적 분별력
제2과
보는 것의 법칙
하나님의 다림줄과 하나님 나라의 열매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도 필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으로 그 일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쓰임 받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이 씨 뿌리는 비유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계시며, 하나님 나라의 메세지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막 1:14-15). 그리고 놀라운 표적들과 기사들을 통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씨 뿌리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행하시고 계시는 그 놀라운 일에 동참하여 열매 맺고 쓰임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비유입니다.
(마가복음 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18-23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위에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를 직접 해석해 주신 구절입니다. 그 구절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십시오.
(마태복음 13:18-23)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씨앗은 무엇을 의미합니까?(19절)
네 종류의 밭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길가에 뿌려진 것은 말씀을 받는 사람이 어떤 것을 말합니까?(18절)
가시밭에 뿌려진 것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돌밭에 뿌려진 것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많은 열매를 맺은 좋은 밭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23절)
좋은 밭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여기에서 씨앗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말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성경 구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초청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행하고 계신 놀라운 일로의 초청을 말합니다.
네 종류의 밭은 그 말씀을 들은 네 종류의 마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본 네 종류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길가에 뿌려진 것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자이고,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결국 열매를 맺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깨닫는 것, 즉 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열매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여 주님께 놀라웁게 쓰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길가에 뿌려진 것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없는 강팍한 마음을 대변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거기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또 그 놀라운 표적들과 기사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지식과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대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시떨기는 성경에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실로 구원을 얻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속해 있던 상류사회에서는 마치 거지 대장처럼 취급받는 예수님에게 나아와, 그것도 대낮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재산이 많은 고로 그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준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진실로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만약 그것을 보았더라면, 그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여기의 좋은 밭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눈은 봄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영생의 말씀(요 6:68),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마 4:20, 22). 그들은 상당한 부자였음을 기억하십시오.
돌밭은 그 당시 주님께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실로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먹지도 않고 며칠씩이나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놀라운 주님의 기적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르지 않자 다 돌아갔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 중에 맨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겨우 120명이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그 120명으로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침노하는 무리였습니다. 좋은 밭이었습니다.
저는 집회를 인도하면서 신앙의 본질이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설교할 때,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참으로 기뻐합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서 머지않아 예전의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신앙의 바른 길을 따라 살려면 거기에는 삶의 조정이 필요하고, 대가가 치루어지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말씀을 버리고 율법주의-기복신앙-인본주의 신앙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그들은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다림줄을 봅니다. 신앙의 본질과 참다운 신앙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봅니다. 그들은 삶을 기꺼이 조정합니다. 어떠한 댓가라도 기쁨으로 치룹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타협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그렇게 할 때, 그 교회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열매들이 놀라웁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보는 것의 법칙 : 빈익빈 부익부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 즉 영적인 분별력에는 중요한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는 자는 더욱 보게 될 것이고, 보지 못하는 자는 더욱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을 보고 그 위에 서는 자는 하나님의 기준을 더욱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기준을 보지 못하고 임의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준을 더욱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1-15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십시오.
(마태복음 13:11-15)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2절을 써 보십시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2절은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 구절입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보지 못하도록 하신 것처럼 이해되는 15절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요한복음 12:39-40, 로마서 11:7)
자본주의의 병폐 중 하나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고 합니다. 즉, 가진 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게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 분별력의 법칙입니다. 보는 자는 더욱 보게 될 것이요. 보지 못한 자는 더욱 눈이 어두워지게 될 것입니다. 12절은 바로 보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12:39-40과 로마서 11:5, 7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나온 사람들과 주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차이는 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도록 하신 것처럼 보이는 이 구절들을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그들에게 심판을 작정하셨을 때, 더 이상 그들에게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초청을 거절할수록 그들의 영적인 눈은 그만큼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 되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의 말씀과 초청을 거절하고 영적으로 동일한 자리에 절대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9:39-4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시기 위해 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표적으로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도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대하여 사모함도 없었고, 주님의 말씀에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심판 중 하나는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3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보는 것과 하나님의 부흥
우리는 하나님의 부흥이 이 나라에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흥과 하나님의 다림줄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⑴ 하나님의 부흥은 다림줄이 재발견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항상 준비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 단계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같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들이 재발견 됩니다. 그 진리들이 재발견 된다는 말은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들이 가리워졌다가 다시 발견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리워졌던 하나님의 다림줄이 재발견 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부흥』에서 이점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외없이 이러한 중추적인 교리들을 발견한 것이 궁극적으로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언제나 부흥 이전의 예비적인 조짐이 있기 마련입니다...그 준비 단계는 어김없이 이 장엄하고 영광스럽고 중추적인 진리들을 재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종교개혁의 역사를 생각해 봅시다. 프로테스탄트 부흥이 임한 것은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장엄한 진리를 문득 깨달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부흥 51쪽, 생명의 말씀사) 그는 이어서 요한 웨슬레 시대, 18세기의 웨일즈 부흥, 그리고 19세기의 북아일랜드 부흥 등 다른 부흥의 때에도 정확하게 동일한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영적으로 극심하게 타락한 이후에 옵니다. 그런데 교회가 타락했다는 말은 다림줄이 가리워졌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타락한 교회가 회복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림줄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이 회복되어야 그리로 교회가 돌아올 수 있고,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돌아와야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혹은 부흥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⑵ 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 부흥의 시작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기 시작하면 부흥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것을 자기의 처지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흥의 첫 번째 단계는...자기의 처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적용하여 자기들의 처지가 어떠한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서 떠나가시고 또 떠나가셨다는 것을 압니다. 구름이 사라집니다. 불기둥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가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떠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눈에 보이는 표지와 상징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깨닫고 인식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어떤 부흥에 대한 역사든지, 교회사에 일어난 어떤 위대한 영적 운동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든지 다 읽어보라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언제나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즉시 발견할 것입니다(같은 책 202쪽)
여기서 보는 것은 표면적인 사실들을 단순히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선명히 보고, 그 다림줄에 비추어 본 자신들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느헤미야 1:3-4)
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패망했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느헤미야는 그것을 인하여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였습니다(느헤미야 1:1-5). 그 이유는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이 표면적인 사실만을 보았던 반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다림줄과 그 다림줄에 비추어 본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전체를 드렸고, 결국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느헤미야처럼 우리의 현 상황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 중 대부분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 신앙의 본질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 지를 선명하게 깨닫고, 또 그 하나님의 기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과 그 결과 우리 가운데 가득한 어떠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열매들을 본다면, 우리는 실로 느헤미야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구할 것입니다.
⑶ 보는 것은 전적인 헌신을 가능케 합니다.
하나님의 큰일일수록 큰 대가를 요구하고, 또 큰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보십시오. 각자 모양은 다르지만 전적인 헌신이 그들에게서 요구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흥은 우리들의 전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예비하는 자의 삶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쓰임 받았던 자들은 교회가 불신과 죄와 인본주의로 타락해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는 어떠한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따로 구별시켰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삶과 사역을 하나님의 주권과 기준에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전적인 헌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이 전적인 헌신을 가능케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보았습니다. 그 기준에 비추어 본 자신들의 삶과 상태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이 자신들 가운데 회복되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들 가운데 회복되도록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걸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그 일을 위해 바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반대나 핍박이나 비방 앞에서도 절대로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의 요점
♡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은 우리 신앙의 모든 면에서 필수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것과 보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 영적 분별력의 법칙 : 부익부 빈익빈
♡ 하나님의 다림줄과 하나님의 부흥은 필연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부흥은 다림줄이 재발견되어 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보는 것이 전적인 헌신을 가능케 합니다.
제3단원 4과 영적 분별력을 위한 자세(2) (0) | 2007.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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