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사자처럼 포효하라
목회자들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회는 종종 목회자들이 서커스단 배우들의 재주를 가지고 무수한 역할과 책임들을 가지고 요술을 부리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교회는 심지어 이런 광고를 내었습니다 : “목사 청빙 : 완벽한 목사, 30년의 설교 경험을 가진 약 28세 정도, 젊은이의 마음을 가지되, 나이든 사람들과도 잘 일할 수 있어야 하며, 교회 스포츠행사에 참가하고, 모든 입원환자를 심방 해야 함. 최고의 교섭기술과 찬양하기에 좋은 목소리, 그리고 사무장비 수리와 교회승합차 운전 그리고 교회건물의 수도관 수리에 있어서 전문가적 자질을 갖추어야 함. 업무시간은 오전7시부터 오후 10시. 사례비 주당 100$, 가급적 주당 50$의 십일조를 작정, 유행감각을 가진 옷 입기와 큰 장서를 가질 것. 복음전도 사역에 참여와 하루 30명의 교인들에게 전화심방, 그리고 교구민들이 전화할 때 항상 사무실에 있을 것.” 세상에서 최고의 스트레스를 가진 직업중의 하나로서, 목사직을 말하는 것은 놀랄만한 조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스트레스 더 가중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부담을 여유 있게 도울 수 있는 지도력의 지위에 대해 다른 면들을 이해하거나 균형을 지키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목회 부르심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복합적인 역할에 대해 적절한 전망을 가짐으로써 더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운 사역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목회 사역의 세가지 국면 성경은 목회 사역의 세 가지 국면들을 돋보이게 합니다. 이 세가지 역할은 담임목사 뿐 아니라 모든 목회자들에게 적용되며, 셀처치뿐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양(shepherding)과 경영(managing), 그리고 리더쉽(leading)입니다. 목양 Shepherding 목양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헬라어로 목사는 목자(shephere)를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2절에서,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대부분의 우리 신학교 훈련은 우리가 목자가 되어, 양들을 가르치고 먹이며, 그 양들을 사랑하고 잘 돌보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은사와 재능을 가진 목자조차도 - 만약 목양이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라면 - 자신들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구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양육하고 격려하는, 양을 위한 마음을 가진 목사는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빨리 이끌 것입니다. 그래서 곧 교회는 그 목사가 더 이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히 관심을 쏟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나면 사람들은 투덜투덜 대기 시작합니다. “우리 목사님 어떻게 되었나?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아” 그 좋고 사랑스런 목자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헌신을 한 어떤 목사들은 결심했습니다. “나는 각 사람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내 능력 밖의 교회로 성장시키지 않을 거야.” 왜 이런 마음을 갖습니까? 그 목자의 마음이 칭송을 받는 동안, 잃어버린 사람들의 전체 공동체는 같은 종류의 양육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크기에 대해서 추측할 수 없습니다! 목회 사역에서 성공과 성장은 목자로서 중요한 만큼 두 가지 다른 면이 요구됩니다. 경영 Managing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경영이 세속적이고, 비영적인 활동이며, 교회 목사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영을 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3장5절에서 감독의 직분과 관계된 바울의 충고는 목사들과 모든 교회 지도자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가정을 경영하는 것은 가족휴가 계획에 허드렛일을 분배하과 예산을 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교회, 특히 큰 교회를 경영하는 것은 더 많은 경영 기술을 요구합니다. 좋은 목사는 좋은 경영자가 될 것입니다. 성령의 움직임에 마음을 여는 교회들은 종종 이 목회 사역과 더불어 가장 큰 문제를 가집니다.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결코 적절한 명령과 경영으로부터 우리를 억제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받았지만 역기능을 가진 1세기 고린도 교회는 이 함정의 위험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들에서 보는 많은 문제점들은 영적인 이슈들로 오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이슈들로부터 나옵니다. 만약 경영 문제들이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영적인 문제들이 될 것입니다. 마귀는 열악한 경영을 이용할 것이며 일들을 나쁘게 만들 것입니다. 셀처치 구조는 실제로 경영 구조입니다. 이 체계를 사용함으로써, 교회는 양들에 대해 탁월한 목회적 돌봄을 유지하는 한편, 무한대의 크기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머지 한 면이 필요합니다. 리더쉽(Leading) 리더쉽 곧 지도력은 목회 사역에서 가장 어려운 면입니다. 심지어 세속적 사업세계에서도 그 개념을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많은 저자들이 좋은 지도자가 되는 법, 다른 사람들을 좋은 지도자로 훈련하는 법과 같은 리더쉽의 본질을 밝히려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때때로 지도자가 훈련이 되는지 아닌지 혹은 그들이 만들어지기 보다 오히려 태어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 생깁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 만약 우리가 이 구절이 목사가 한 교회를 지배하기 위한 면허로 제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면, 믿을만한 지도력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남자와 여자들을 불러 일으켜 기름을 부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고, 하나님께 복종케 하며,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열정을 주십니다. 주님의 비전에 사로잡힌 한 명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일어나 선포하며, 그들이 말씀을 듣고 따르도록 합니다. 경영과 리더쉽의 차이는 이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리더쉽이 올바른 시간과 옳은 방법 속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경영은 일들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큰 필요중의 하나는 리더쉽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의 지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교회를 이끌 수 있는 -이기심이 없는- 강력한 사람들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사탄은 자기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목회 사역의 세 가지 모든 국면들, 즉 목양과 경영과 리더쉽은 성장하고 효과적인 교회로 가기 위해서 능력 가운데 작용해야 합니다. 모든 단계들에서 목양, 경영, 그리고 리더쉽 셀처치에서, 지도력의 모든 단계들 - 셀의 목자로부터 담임목사에 이르기까지-은 서로 다른 비율가운데 사역에서 이들 세 가지 면이 실행될 것입니다. 셀 단계에서의 리더(목자)들은 그들의 목양 책임들을 통해서 목회적 돌봄의 크기를 제공합니다. 지역장이나 지역목사들은 더 많은 경영 기능들이 더해질 것입니다. 지구 목사의 우선적 역할은 담임목사가 주로 리더쉽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력의 모든 단계들은 충분한 기술의 범위와 목양과 경영 그리고 돌봄 가운데서 사람들을 지도하는데 기름부으심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들면, 셀에서 일어나는 더 많고 더 좋은 목양은, 셀의 목자가 경영 기술을 연습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행정적인 책임들을 위임합니다. 훌륭한 셀 목자들은 셀 그룹 사역의 모든 점에서 자신의 셀 부목자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셀은 자신의 셀에 대한 주님의 지도를 들으며 또한 그 비전을 전달하는 리더쉽의 능력을 가진 남,녀에 의해서 이끌어집니다. 목양과 경영 그리고 리더쉽 사역의 이들 세가지 국면은 조화 가운데 유지되어야 하는 교회 본질의 세가지 면들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공동체(a community)요, 조직(a corporation)이요, 주의(a cause)입니다. 공동체, 조직 그리고 주의 목양이 두드러지는 한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형제와 자매들처럼 서로 서로 보살펴 주도록 관련되어 있습니다. 경영 위에 세워진 한 조직은, 사람들이 사업안의 근로자서 각기 관련되어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주의에서, 리더쉽은 가장 중요하며, 사람들은 군사적 환경 가운데 있는 군인들과 유사한 방법으로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공동체에서는, 대개 모두에게 있어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조직에서는 과정이 중요한 문제이고, 주의에서는 목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목자들은 능력을 제공하고 신뢰를 세웁니다. 조직의 경영자들은 구조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주의의 지도자들은 전략을 제공하고, 공통 목적 가운데 사람들을 결집시킵니다. 이들 각각의 요소는 장점과 약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모두가 강력하고, 균형 있고 효과적인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 진리들 가운데 단지 한 가지 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거짓말로 이끄는 것입니다. 양육하는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에게 좋은 느낌을 갖게 만들지만, 본래 가족들은 제한 없는 크기로 성장하도록 맞추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들은 너무 내향적이 되어 그들이 결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의 군사적 구조는 그룹의 목적들을 향해서 가는데에 잘 작용하지만, 가족 관계의 돌봄이나 지원 없이, 의지 위에 맞춰진 병영생활이란 결국 몹시 지치거나 교묘하게 조작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조직은 사람들보다 더 임무에 초점이 맞추어질 때, 비인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 없이는 많은 일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 내연기관 차량에서, 엔진은 변속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큰 소리를 듣지만, 앞으로 전진하기에 너무나 힘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의 문제가 일어날 때, 목사는 문제의 본질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 이슈가 목양에 있는지, 경영에 있는 것인지, 리더쉽에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목사는 진정한 대답을 파헤쳐 내야 하지만,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다른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며 일어난 많은 문제들이 자신들의 뿌리에서 목양의 결핍임을 인식하고 실재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목양은 근본적인 것 목회 사역에 대한 세 가지 면에 있는 균형의 필요에 대해 내가 말한 모든 것에 관련하여, 나는 목양이 근본적이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FCBC에서 성도들과 직원들은 나의 리더쉽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에게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가 사람들에게 엄하게 훈련시킬 때 조치도, 신자들은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을 사랑하고 먹이는 목자는 사람들의 신뢰를 세웁니다. 나는 결코 돈에 대해 잠이 안 올 정도로 염려해보지 않았습니다. 재정은 그것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나는 결코 프로그램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잠이 안 올 정도로 염려합니다. 나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울기도 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은 것을 알 때, 한 밤 중에 절망감 가운데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고통은 때때로 나를 거의 죽입니다. 어떤 사람의 상황에 대해 나는 고뇌가운데 몇 번이고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 내 사역에서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의 생명을 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이 죄에 빠졌을 때, 나는 그를 위해 몇 시간이나 기도할 것이며, 거기에 대해 내가 어떤 돌파구를 볼 때, 나를 압도하는 그 기쁨이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에 대한 묘사를 요한복음 10장에서 보여줍니다. 가장 큰 권위는 그들의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사람들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이 근본적인 사실을 이해해야 하며, 사도적 리더쉽을 추구하기 전에 매일의 생활에서 이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목자의 마음이 없이, 그 밖에 모든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담임목사 목회 사역의 본질 위에 있는 이 배경과 더불어, 영적 지도자로서 담임목사의 역할을 면밀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셀처치에 이것을 적용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나는 2장에서 셀처치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한 선결 요건 중 하나가 강력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1. 교회는 기름 부음 받은 한 사람에 의해서 이끌어 진다 오만한 가운데 나를 오해하게 되는 사람들의 위험스런 점에서, 나는 항상 FCBC 성장에 기여한 주요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은혜로운 지도력의 은사라고 전 세계에 있는 지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FCBC는 나의 강력하고도 기름부음 받은 지도력 때문에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교회 설립 초기에 우리의 리더쉽 팀은 오스왈드 J. 스미스가 쓴 「더 나은 세계를 세우는 것(Building a Better World)」을 한 단원씩 주의 깊게 공부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이사야55:4).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양떼가 위원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자에 의해서 인도되어야 한다. 위원들은 조언을 하지 결코 지시하지 않는다. 성령은 사람들을 지명한다. 감독과 장로들은 결코 위원회를 돌보지 않으며, 교회를 돌보는 것에 주어져 있다. 그들은 감독과 목자가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각각은 자신의 양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문제가 있어 왔다. 하나님의 계획이 뒤 따를 때, 모든 것이 잘 된다. 오스왈드 스미스의 글은 구약과 신약에서 많은 예증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위원회는 그 자체의 지위를 갖습니다. 가장 기름부음 받고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지도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인식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팀과 더불어 자신을 둘러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조언하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하나님의 목적에 풀어놓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력의 모형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셀처치는 비전에 의해서 이끌어집니다. 셀처치는 하나님의 비전을 향하여 사람들을 모으도록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셀처치는 또한 군대와 같은 구조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영적 훈련의 의식이 스며들게하는 강력한 사령관을 요청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강력한 리더쉽에 대해 의심쩍은 눈초리를 보내었습니다. 특별히 그것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말입니다. 한 결과로, 많은 인간적인 감시와 대항수단들이 한 사람의 지배에 대하여 감시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교회조직체 안에 세워져 왔습니다. 내가 비록 상호 책임의 필요가 있다고 동의할지라도, 이러한 감시들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을 승리의 사역으로 인도하려고 애쓰는 하나님이 지명한 지도자들에게 더 많은 주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소위 “독재권”이라 부르는 설교단 배후에 대해서 큰 두려뭄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사역을 한 후, 나는 설교단 뒤에 서 있는 것보다 신자의 좌석에 앉아 있는 “독재자들”을 더 많이 보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교회는 자원해서 나오는 집단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독재적인 목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세우고 도왔던 나이 지긋한 숙녀는 아무도 자신의 의지를 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리더쉽은 독재권이 아니다 리더쉽은 사람들이 비전을 추구하도록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명의 지도자는 인도하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려는 깊은 갈망을 성공적으로 스며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특성, 성실, 풍부한 자원, 열정, 훌륭한 판단력, 기술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가장 중요한 것) 등의 덕분으로 자기 사람들의 신뢰를 충분히 얻습니다. 그에 따른 결과로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결정하는 자유와 지휘와 통제하는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러한 리더쉽은 결코 위원회에 의해서 제공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정말로 그러한 리더쉽이 한 그룹에 의해서 제공된다면, 먼저 그러한 강력한 리더쉽을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그 그룹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마치 신약성경의 리더쉽이 구약성경의 리더쉽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합니다. 나는 성경적 리더쉽이 그리스도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일관된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할 때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구약성경은 모세와 기드온, 다윗, 엘리야 등과 같이 많은 지도자들을 보여 줍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유대인을 위한 지도자로,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11장22절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바다나를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 지도력을 주어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인 제사장직은 이 원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교회 조직이나 혹은 리더쉽의 기초라기 보다 오히려, 만인제사장직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움직이는 준거로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효과적인 리더쉽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한 사람 안에 걸려 있습니다. 대체로, 교회의 성숙도 영성, 그리고 영향력은 교회 지도자의 성숙도와 영성과 영향력을 너머 서서 솟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중직의 리더쉽 Leadership in the Five-Fold Ministry 다섯 가지 사역의 모든 역할은 에베소서 4:11-13에서 지도자들, 그러나 각각 다른 면에서 지도되는 것과 관련된 내용으로 상술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의견을 일치하도록 세우는 능력과 더불어 돌보는 목자로서 지도합니다.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통하여 양들을 먹입니다. 복음전하는 자는 사람들이 익은 곡식을 거두도록 믿음을 풀어놓고, 영적 추수를 위한 전략을 짭니다.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 비전을 분여하고 종합적인 리더쉽을 감독하는 자로 실행합니다. 사도는 믿을만하고, 환상적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리더쉽을 제공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에 유일무이한 사도적 역할을 회복해 오고 있습니다. 한 사도가 일치를 이루도록 목회적 기술을 가지고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팀을 조작하는 동안, 한편 사도적 리더쉽은 기름부음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주님은 친히 그리스도의 몸을 동원하고 무장하는 권위를 사용할 그의 군대 안에서 장군들을 지명하고 일으키십니다. FCBC의 무서운 성장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그리고 내 인생을 통한 결과로서 왔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또 그것을 실행하도록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위임할 권위를 가집니다. 내가 주님 앞에서 친밀함 가운데 겸손히 걷는 한, 주님은 우리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내가 강력한 지도력을 장려하고 지원함으로써, 나는 항상 남용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도적 지도자로 주신 권위를 오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께서 바로 그것을 하도록 선택하셨고, 우리를 기꺼이 인정하기때문에 위험을 무릎 쓰고서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그의 종들을 꺽어 버리기 보다 오히려 더 많이 그들을 신속히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규제를 잊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사도들의 능력이나 또는 지도자의 영향력의 범위를 통제하는 구조들을 세우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쨋든 어떠한 인간의 체계도 억지로 궁극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들을 누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체계를 부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도적 지도자들에 대한 실재적인 점검은 그들이 주님과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고 또 주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강력한 지도자들을 질식시키는 긴장을 만드는 체계 대신에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물도록 기도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지도자들을 풀어놓을 수 있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처럼 그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8절에서, 바울은 자신과 동료 사도들을 대표하여,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권위와 함께 위임된 사도적 지도자들은 많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 자신들의 손에 걸려 있기 때문에, 사역의 방향에 대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깊은 책임감을 느낄 것입니다. 2. 교회는 목사가 인도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 만약 한 교회가 자기 목사에게 지도력의 권위를 발휘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목사는 정치적 움직임을 통해서 위원회나 이사회로부터 오는 권위와 싸우는 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 지도하는 자유를 가진 자기 교회의 목사를 신뢰할 수 없는 교회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를 사역자로 놓아주어야 합니다. 교회 리더쉽의 다른 종류들을 고려하십시오. 회중에 의해서 단독으로 이끌어지는 교회는 약 100명 내지 150명에서 정체될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매달 열리는 회중의 사업 모임으로 결정되어야할 때, 교회 성장은 모든 아이디어와 결정들이 이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 과정을 통해 찬성을 기다려야 하는 것 때문에 손해를 당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회중의 리더쉽은 한 교회의 결정권자를 초신자들과 세속적인 신자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크기나 영성에 있어서 모두 한 교회의 성장을 거의 촉진하지 못하게 합니다. 평의회에서 이끌어지는 교회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지만, 성장은 300명에서 500명 사이에서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그 점 때문에, 너무 많은 이슈들이 평의회의 회의에서 다뤄집니다. 평의회는 지도자들이 무거운 짐 아래 휘청거리지 않을 때까지, 더 오래되고 나중에 실행할 더 많은 회의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평의회가 목회자들을 간섭할 때, 많은 전임사역자들은 결국 좌절감을 일으키거나 떠나게 만듭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더 많은 권위를 가질 때, 목사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시간낭비가 된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같은 이유 때문에, 평의회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교회는 좋은 사람들을 스탭으로 이끄는데 갈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리더쉽의 종류는 하나님 나라 사역의 낮은 관점을 시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들은 자신의 여분의 시간에 그 직무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교회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계획하고 또 그것을 성취할 지역적, 세계적 전략들을 실행하는 높은 수준의 전문가적인 스탭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교회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갈망하는 목회팀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한 지도자에 의해 이끌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배열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담임목사의 기름부으심을 극대화시킬 것입니다. 나는 교회의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의 방법을 추구하도록 헌신할 때, 주님께서 그러한 지도자를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3. 목사는 지도력의 역할을 차지해야 한다. 어떤 목사들은 자신의 교회를 이끄는데 주저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도력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아마도 그들은 지도력의 책임을 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정을 해야할 때, 차라리 무간섭주의의 역할로서 마무리지을 만큼 충분히 오래동안 교회에서 종교적인 게임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문제들에 대한 실패에 대해서 목사를 책망하지 않도록 발사수라고 불려지는 평의회에게 맡기는 것이 더 쉽습니다. 때때로 담임 목사는 어떤 일에 대해 큰 필요가 있을 때, 지도력을 갖기를 원하지 않음으로써, 교회의 스탭들을 맹렬하게 몰아부칠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한 교회가 자기 목사에게 지도하는 자주성을 주고 그리고 어떤 것은 일하지 않을 때, 지도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앞에서 책임지도록 겸손하게 기꺼이 서야하며 또한 실수도 용인되어야 합니다. 사실, 만약 실수가 직원중의 한 사람의 것이라 하더라도, 담임목사는 여전히 그 역할에서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사람들에게 비전을 나눌 때마다, 지도자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측정함으로써, 약속을 만들고 기준점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도력의 역할은 놀라운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의지하는 것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종의 지도력은 최고의 지도자의 특성을 나타내며 권위를 높이는 것입니다. 강력한 지도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이 주신 확신과 더불어 서 있습니다. 그러한 지도력은 교회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또 성숙하도록 비옥한 땅을 제공합니다. 지도자는 겸손과 함께 인정이 필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은 인도하는데 있어서 상처를 입습니다. 그들의 위치는 회중의 안과 바같으로부터 목표가 되어 쉽게 화살의 타켓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실수들에 대해서 호되게 비난받습니다. 그리고 나면 의절감과 낙담 그리고 탄도(彈道)에 대해서 반항적으로 자신을 두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지도자들이 지도력의 위치와 책임감을 취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그들이 인정과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축복하도록 자신들의 지도자를 기꺼이 긍정하고, 기도하고, 풀어줄 때,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들에게 섬기는 능력과 겸손 모두를 주실 것입니다. FCBC가 출범할 때, 내 마음은 이전 교회 지도자들의 거절로 인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결국 교회 분리를 일으켰던 그 이슈는 한 사람에게 돌려졌습니다. 나는 지배적이며, 독재적이고 심지어 위험스런 세력가로 비난받았습니다. FCBC시초에, 나는 지도력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 하는 핵심리더들에게 나의 지도력을 양도하면서 나는 무감동하고 냉담한 채 교회를 출범했던 것입니다. 1987년초, 교회가 출범한지 몇 달후에 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모데스토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인 빌 예거를 초빙하여 리더쉽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예거 목사는 60대였고, 그때는 은퇴한 이후였습니다. 그 방문에서 빌 예거 목사는 내가 얼마나 낙심 중에 있는가를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나는 싱가폴 공항에서 그가 나에게 나누어 준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오늘아침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단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너에게 새 이름을 주셨고, 너의 이름은 ‘아리’라고 불려질 것이다. 이것은 ”사자“를 의미하는 유대인의 이름이란다.” 이 말은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 이름은 싱가폴에서 “사자 도시”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 위엄 있는 고양이는 우리 나라의 문화적인 표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거 목사는 계속해서 “로렌스, 주님은 네가 ‘싱가폴의 사자’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일어서서 포효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네가 ‘싱가폴의 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마다, 일어서서 다시 포효해야 한다!” 아무도 이전에 그런 방법으로 나를 인정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 사역 경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더 천천히, 더 겸손히 가도록 경고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경험이 많은 하나님의 종이 실제로 나를 장악하고, 이끌며 그리고 깊이 느끼게 하도록 격려한 최초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영 깊은 곳에서 어떤 것이 갑자기 튀어 나왔습니다. 나는 그때 이후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위해서 지금까지 포효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를 격려함 이 장을 마치면서, 지도력의 은사를 가지고, 내가 옹호하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역할을 취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충분한 기름부음을 받은 것에 대해 의혹을 품는 담임목사를 격려할 몇 가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간구들을 내놓고, 우리 아버지에게 오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 교회에 지금 당신의 위치로 불러 주셨다면, 확실히 그분은 기꺼이 당신이 그 일을 하도록 모든 원천들을 주실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도력의 기름부음을 위해 주님께 간구하고, 그래도 역시 당신이 그 점에서 민감해지지 않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이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다른 어떤 사람을 일으켜 당신 교회에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 사람을 지원하고 당신의 지위를 양도할만큼 담대하십시오. 그럴 때 교회 성장은 정체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가 하나님의 지고하신 목적과 더불어 당신과 교회 모두를 재조정한다면,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들은 또한 지도력에 대한 그들의 기름부으심이, 그들이 사도적 네트웍의 지체가 될 때 증가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사도적 엄호와 개척 지도자의 권위아래 교회 그룹과 연결될 때, 당신의 교회는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7:1-10에서 로마의 백부장은 이 원리를 이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사들과 종을 지배하는 효과적인 원천과 신뢰할만한 지도력이 자신의 직무의 권위 아래 에 있는 자신의 지위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백부장은 또한 예수님의 권위가 아버지 하나님의 최고 권위에 대한 그의 복종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적 네트웍은 이와 똑같은 전제로부터 작용합니다. 오늘날 사도적 지도력의 역할이 탁월하게 회복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전보다 더 많은 네트웍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나는 이 연결을 갈망하는 교회들에 대한 엄호를 제공하면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더 넓은 비전을 나눌 교회들의 사도적 네트웍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더 강력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지도자들에 대해 긴급한 필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 예거 목사가 나를 격려한 것처럼, 나는 담임목사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과 방향을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주님께 완전한 복종하도록 그분과 긴밀한 관계 안에서 머무십시오. 그는 당신을 기름 부어 주실 것이며, 당신의 권위아래 있는 사람들을 이끄는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의 전진을 위해서 포효하십시오! |
셀처치로 전환하라9 (0) | 2008.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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