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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 위에 앉으신
우리의 기도 파트너
기도를 통해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동반자 관계(partnership)를 맺을 수가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같은 관계를 그의 말씀속에 계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람한 신성 모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역사는 그야말로 “주께서 함께 역사하신”(막 16:20)역사였다. 더욱이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동역자”하고 부르고 있다(고전3:9;고후6:11).
하나님과 ‘동역하는’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순종으로 동역하는 방법도 있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 동역하는 방법도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共有)함으로 동역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과 더 밀접한 접촉을 갖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세계로 인해 크게 고통하는 하나님의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까지 우리가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과 대화하며 교제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무엇보다도 우리는“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계신다고 거듭해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요1:3) 지금도 만물을 붙들고 계신(히1:30)예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기도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예수께서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명령만 하시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능력 앞에는 지옥의 어떤 귀신도 사탄의 그 어떤 연합 세력도 대항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왜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들을 단지 꾸짖고 멈춰 세우시고 소멸시키지 않으시는 것인가?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날이 올 것이다(살후2:8).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철장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실 날이 올 것이다(계12:5). 그리고 우리도 그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계2:27).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이 땅을 다스리는 방법을 택하셨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지 결코 그의 능력과 영광의 때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성부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는 지금 통치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가? 그는 지금 홀(scepter)로 통치하지 않으시고 기도로 통치하신다. 심지어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 그러니까 사탄이 밀까부르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까부를 날이 올 것이라고 베드로에게 경고하실 때 (눅22:30-32)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사탄을 못하게 막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지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중보 기도를 통해 통치하신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기”(엡1:20-22)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그의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천사들과 이미 죽은 성도들과 인터뷰를 하고 계시는가? 성경이 이에 대해 보여 주고 있는 유일한 장면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롬8:34참조)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면서 영원한 제사장으로 항상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다)히7:24-25).
예수님은 살아서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그 분은 또한 살아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기도 한다. 그는 중보의 기도를 통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 예수님은 만물 위에 뛰어나신 주권자이시나 또한 만물을 위해 기도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시기도 한다. 기도는 확실한 결과를 낳으며, 기도는 축복의 매개 역할을 담당한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축복을 베푸신다. 주님은 축복을 베푸시는 왕 같은 중재자요 축복의 수여자이시다.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제사장적 임무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에게 제사장 기도의 임무를 부여하시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도 그에 동참하기를 바라시며 자신이 세상에 축복을 베푸실 때 그 일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축복을 베푸신다. 여러분과 나도 마찬가지로 기도를 통해 남에게 축복을 베풀 수가 있다.
베드로전서 2:9은 말한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 또한 요한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 가운데서 해방시키셨고, 우리를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으며, 그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우리를 삼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계 1:5-6).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시다(히2:17).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또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만드셨다(계1:6). 이 같은 사실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6절). 이 같은 사실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외적인 사역이나 복음 증거나 설교가 아니다. 우리의 최대 봉사는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간에 제사장적인 중보기도를 드리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일을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중보 기도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기도하도록 단지 창조만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속되고 의롭다 함을 얻고 거룩해지는 것도 결국은 기도를 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와 그리스도의 공동 임무(사명)
이 시대에 예수인의 최대 기도 과제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교회를 위한 기도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명령한 곳은 성경에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 그 부분은 바로 시편 2:7-8이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이것이 예수께서 오늘날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는 이유인가?
예수님은 열방들을 구하라는 성부의 명령을 받으셨다. 따라서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라는 것이 예수님이 교회에게 주신 최대의 사명이요 최후의 요청이 된 것이다(마 28:19-20). 또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기까지 예수님의 재림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마 24:14). 만일 주님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그 분의 마음이 열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거우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국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신 최우선 순위의 과제는 바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밤이든 낮이든 기도를 드릴 때면 언제나 그 분은 미리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언제 기도하러 나아가든지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파트너(동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5-6, 10).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디에 앉아 계시는가?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 옆 우주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보좌에 같이 앉아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 즉 중보 사역을 함께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신이신 우리의 기도 파트너(동역자)
그리스도가 우리와 기도 파트너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기도에 어떤 방식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 주의해 보도록 하라.
첫째,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선 경외감으로 조심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중보 기도의 파트너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와 배치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계속적으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기도 파트너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기도를 계속적으로 해야 할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우리가 기도할 때 강한 확신이 생기게 된다.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위해 기도한다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도에 동참한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떤 확신이 생기겠는가?(히 10:2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만일 예수님과 우리가 한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듣지 않으실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기도하면 성부께서 들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요 11: 42).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우리의 중보 기도에 힘을 얻을 수 있는 확신을 주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또한 요한1서 5:16은 성령께서 특별한 남을 위한 우리의 기도, 즉 우리의 중보 기도를 기억해 두신다고 말하공 있다.
셋째, 우리가 계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응답이 속히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하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에 힘쓰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눅 18:1-8, 11:5-10).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고 있음(본서30장<章>을 보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면, 예수님께서도 계속해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시는 중임을 확신하고 우리도 또한 참고 기다리면서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너무나 놀라운 비유를 말씀하셨다. 우리들도 간청을 무시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던 불의한 재판관에게 낙심하지 않고 계속 간구했던 과부의 본을 받아 꾸준하게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은 그 같은 불의한 재판관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못박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부같이 되어야 한다 !
아멘의 하나님
성경에는 우리 기도 동역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그림이 있다. “아멘이시요……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3:14). 이 구절은 예수께서 “아멘”이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사야 65:16을 히브리어로 번역해 보면 진리의 하나님은“아멘의 하나님”이 된다. 동사 아멘(amen)의 원래 의미는 어떤 한 사람을 믿을 만한 사람, 신뢰할 만한 사람. 신실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로, 인도자의 기도나 찬양을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되면 아멘이라는 뜻은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혹은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라는 의미이다(예를 들어 시편 41:13, 72:19, 106:48; 대상 16:36; 느 8:6을 참조하라). 둘째, 아멘은 왕의 명령아나 뜻에 대한 신하들의 순종의 동의로 사용된다(왕상 1:36; 렘 11:5).
예수님이 아멘이라는 성경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하여 “예”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에도 그 기도에 대해 “예”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이제 하늘의 그 영광스런 장면을 생각해 보자.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림을 그려 본다면 예수께서는 성부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신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의 보좌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도 그 분 곁에 앉아 있다. 우리가 내주하시는 성령(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통해 중재하시는)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의 영광과 그의 뜻을 위해 간청을 드린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께 간청을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의 전능하신 중보기도와 우리의 중보 기도를 합쳐 공동의 중보 기도로서 성부께 제시하며 “아멘”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서명 날인을 하신다. 사실상 주님께서는 그 본성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의 “아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본성상 그가 갈보리에서 성취한 업적으로 인해 또한 그가 우리의 기도에 동의 하시는 것으로 인해(마 18:19) 우리 기도의 절대적인 아멘이 되신다.
이상을 통해 살펴볼 때 우리가 하나님께 송영을 드려야 할 마땅한 때가 아닌가 ! 우리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치는 천상의 무리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그와 같이 찬송해야 마땅한 때가 아닌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4).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시 144: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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