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27강 경배의 표현(여주봉목사)

시리즈설교/예배회복(1)

by 발의무리 2011. 2. 7. 08:40

본문

제27강 경배의 표현

여주봉목사

신6:4-5절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가 찬양과 경배에 대해서 몇 주째 살펴보고 있습니다. 찬양과 경배는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최상의 형태의 예배입니다. 그런데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의 한 부분은 온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배의 표현입니다. 경배의 표현인 온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경배를 더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홀로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마음 뜻 힘 성품 모든 것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마음과 뜻 힘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존재를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 감정 몸 힘 등으로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다양한 몸의 표현으로 드리는 것을 포함됩니다.


1.엎드려 절하며

경배의 한 표현은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경배라는 말 자체가 한자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엎드려 절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엎드려 절하며 예배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138:1-2절입니다.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전 존재로 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며라고 번역한 말은 영어성경을 보면 이 구절을 엎드려 절하며라고 번역합니다.

시5:7절입니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출34장을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합니다.하나님이 영광중에 임하셔서 자기 성품과 영광을 모세에게 계시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34:8절입니다.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계시록 하늘나라의 예배를 보았습니다. 하늘보좌 주위에 있는 장로들이 엎드려 절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계4:9절입니다.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시99:1절 이하입니다. 특히 5절을 보면 말합니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9절도 그렇습니다.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엎드려 절하는 것은 마치 네로 앞에 아부하며 절하는 대신들처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앞에 납작 엎드려 그분을 경배했습니다. 여러 구절을 읽었는데 우리가 이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대 납작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시99편 기자처럼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보았을 때 그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시38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깨닫고 소중함을 발견했을 때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풍성한 인자를 보았을 때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예배한 것은 그들의 중심에서 나온 마음과 몸을 다한 예배행위였습니다. 그들의 모든 경외심과 모든 열망과 모든 존경이 담긴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예배가 이처럼 훨씬 더 풍요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엎드려 경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존경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감격하며 그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뿐아니라 우리의 모든 주권을 포기하고 겸손히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엎드려 절하는 것이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2.손을 들고

딤전2:8절입니다.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남자들은 남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포함되겠지요. 저는 예배할 때 앞 자리에서 예배드립니다. 저는 예배할 때 누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안하는지 감독하지 않습니다. 누가 늦게 오고 빨리 오는가 보고 있으면 저는 예배를 안드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예배에서도 스랍들이 예배를 감독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감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집에 가서 예배했던 장면을 점검하기 위해서 틀어놓고 봅니다. 그래서 자주는 못합니다만 가끔 볼 때 여러분이 예배하는 장면이 찍혀 있습니다. 보면 대부분은 예배를 잘 드립니다. 여자들은 예배를 잘 드리는데 남자들은 잘 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유교적인 사고가 있어서 체면차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헌신짝처럼 내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어린아이처럼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보면 남자들에게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남자들이 예배의 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애3:40절입니다.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자신을 돌아보는 것 회개하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면서 41절을 보면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로 합니다.

왕상8:38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포로가 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손을 펴고 즉 손을 들고

시28:2절입니다.
“2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63:1-4절입니다.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134:1절입니다.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

시141:2절입니다.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시143:6절입니다.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여기를 보면 몇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와 찬양은 같은 예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곡조가 있다는 것 외에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찬양을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성경은 여러 곳에서 손을 들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 구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은 저들은 하나님께만 예배했습니다. 그분께만 손을 들고 그분 앞에서만 경배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회개하는 의미로 손을 들었습니다. 특히 애가3:40절입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세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예배했습니다. 시28:2절을 보면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높이는 자세로 더 나아가 하나님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손을 뻗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시146편 6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에서 주를 사모하나이다고 말합니다. 여기보면 손을 드는 자체가 예배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갈망하며 예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일날 예배하러 나올 때 주를 사모하며 갈망하며 손을 들고 주를 찬양하며 나올 때 우리 예배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더 풍요로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수 있어요. 꼭 손을 들어야 하나 찬양은 입으로 하는 것 아니냐? 꼭 들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지요. 그런데 마음이 있는 곳에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하나님을 높이며 회개하고 갈망하고 사모하게 될 때 우리 마음도 하나님을 향해 열리고 우리 예배는 더 풍성해집니다. 월드컵이 내일로 끝나지요. 16강전 보셨어요. 우리가나라가 1대0으로 지고 있다가 이정수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그냥 들어갔구만’ 한 사람 있습니까? 방방 뛰고 손을 들고 뛰고 난리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축구보다 못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면. 어떤 사람은 손이 올라오는데 몇 년이 걸린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3.춤을 추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출 15:19-21절입니다.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홍해의 승리를 경험한 후에 찬양입니다.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삼하6;14절입니다.
“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보세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전 존재로 예배했습니다.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예배했습니다. 다윗이 배에봇을 입었는데 그 겉옷까지 벗어던졌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미갈이 없신여기는 것처럼 춤을 추었습니다.
21절입니다.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며 예배했습니다. 미리암과 그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를 인하여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인하여 동시에 하나님 그분으로 인하여 찬양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시149:1절 이하입니다.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시150:1절 이하입니다.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30:11절입니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을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그래서 춤을 추며 기뻐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렘31:12절 이하입니다.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로 인하여 모든 은혜와 자비와 긍휼로 인하여 하나님 그분 자신을 기쁘고 즐거움이 넘쳐서 우리 온 몸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4.손뼉을 치며

시47:1절입니다.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98:1절 이하입니다.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2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의 행하심이 기쁘고 즐거워서 하나님의 방문이 기쁘고 즐거워서 하나님께 찬사와 존경을 포현하기 위해서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 왔습니다. 부시대통령이 들어오니까 다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며 찬양해야겠습니까? 그분을 향한 우리 모든 존경과 마음을 담아서 손뼉을 치며 예배해야합니다.


5.외치며

소리지리는 것입니다.
시47:1절입니다.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특히 5절을 보세요.
“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외치는 것 자체가 예배일 뿐아니라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는 축복이 거기에 있습니다.

시65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의 방문을 인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기쁨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재키플린저 찬양팀이 찬양할 때 온 몸으로 합니다. 그때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저도 가끔 부르짖는 소리로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으로 인한 기쁨 감격이 넘쳐서 하나님께 마음껏 소리치고 외치고 싶은 열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찬사가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으로 그분을 향해서 할렐루야를 아멘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6.말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우리의 언어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도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나누는 것도 예배입니다.
시63:7절입니다.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 찬양중에 주 찬양합니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 찬양합니다. 내 마음을 다해
....
....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에서 여러분의 언어 가운데 주님을 높이고 주님께 찬사를 다리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평 후욕하는 죄악을 버리고 입술을 열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을 높이는 말로 하는 예배를 드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시어머니들 잘 들으세요. 만나기만 하면 며느리 욕하는 짓 그만 두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해야할 입술로 상대방을 저주하는 입술을 끊으십시오. 모이면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 가지 방법이 말을 통해서입니다


7.주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행동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과 열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63:1절 이하입니다.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메마른 땅이 물을 갈급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찾으며 앙모한다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주의 영광과 권능을 보기 위해서 성소에서 바란다고 합니다. 그런 목마름 그런 갈급함 그런 갈증을 가지고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사모함을 가지고 몸과 영혼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며 주님을 바라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주일날 예배할 때 이런 자세로 나옵니까? 아니면 종교적인 의무를 하러 옵니까? 이런 자세와 태도로 나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표현들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우리 예배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제가 미국의 어느 집회에 갔습니다. 뛰면서 찬양하는 교회였습니다. 한 청년을 보았는데 뛰면서 하는데 미친 것 같았어요. 꼭 다윗과 같았어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찬양했어요. 찬양 끝나고 돌아갈 때 보니까 얼굴이 그렇게 투명한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그처럼 주님만을 기뻐하며 주님 앞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것으로 예배해야 하는데 여기에 주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1)이 모든 행동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나온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강요된 행동이나 마음이 없는 기계적인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에 부흥회 같으면 강제적으로 박수치게 합니다. 불길같은 성령이여! 또 획일적으로 박수치게 해서 분위기는 뜨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훈훈해져서 마음이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열매는 육신의 열매일 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초점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습니다.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게 됩니다.
3)설교를 통해서건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건 사람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감정주의는 항상 나쁩니다. 감정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감정에 호소하여 분위기를 만들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려는 감정주의는 항상 나쁜 것입니다. 거기에는 절대로 성령의 올바른 열매가 맺혀질 수 없고 참된 예배가 드려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부흥에서 말합니다.
“사람들을 흥분 시킬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방송에서 축구중계를 하면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고함을 치며 심지어는 목이 쉬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예배와 종교의 영역에서도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이런 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흥분된 상태로 사람들을 몰아가면서 사람들이 매우 행복하다고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런 것은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육체에 속한 기쁨입니다. 일부러 감정을 유발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애쓰는 것은 그것이 노래이든 주술이든지간에 그 모든 것은 다 신약성경의 정죄를 받습니다.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감정은 이해와 마음을 통하여 진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감정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감정주의는 부흥을 크게 저해할 것입니다.”

일부러 이런 표현들을 조작하여 분위기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버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표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애배하되 중심에서부터 하나님께 집중하고 높이고 찬사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랑과 은혜와 승리를 인하여 이런 표현들을 하나님께 표현해야 합니다. 이때 그 예배가 풍성해지고 참된 예배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 포도나무 교회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