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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행하는 삶(갈5:16-26)

성경권별설교/갈라디아서

by 발의무리 2011. 4. 6. 06:15

본문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5:16-26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 친밀함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삶을 사는가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많은 곳에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창조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곱에서 출애굽 사건

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제자들을 부르심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십자가에 죽으심(2:12-19)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성령을 보내심

14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 신앙은 하나님과 친밀함이며 그 친밀함의 극치는 성령에 의한 삶입니다.

성령에 의한 삶이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친밀함 가운데 성령께 민감하여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의 실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을 살 때 나타나는 현상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게 되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로 육신을 좇아 행할 때. 육신의 열매가 맺게 되는 되는데 19, 20, 21절에 나오는

성적인 문제

세상 사랑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술 취함과 방탕의 문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원인 - 육신을 좇아 행할 때 일어남

따라서 성령에 의한 삶이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인데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1.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의 의미 ->이 말은 성령을 따라 간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이 말을 표준 새 번역에서는 이 구절을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 인격체이신 하나님

- 그분이 하시는 일 -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

(16: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인도한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서게 될 때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 육체의 소욕 때문에 진리를 알면서도 그 진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삶이 잘되지 않습니다. 용서가 하나님의 기준인 것을 알지만 육체에서 나오는 감정과 욕심이 진리에 동의하는 삶을 막아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육체의 소리와 성령의 소리를 동시에 듣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늘 성령의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 우리가 육체의 소리를 내리고 성령의 소리, 진리를 따라갈 때 우리 삶에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그 한 예가 행13:1-3의 내용입니다.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1:19절에 스데반이 순교한 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 중 안디옥으로 피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11:19) 나중에는 헬라인에게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자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해서 이들을 지도하게 했고, 나중엔 바울도 함께 1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교회가 점차 성장해 갈 때에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라는 성령의 음성을 교회가 듣게 됩니다.

이때 얼마든지 육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교회가 막 성장되고 있는데 담임목사와 수석부목사를 선교사로 보내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우리 교회는 어떠하고...

그러나 이때 교회는 성령의 소리를 듣고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소아시아, 유럽, 로마까지 이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고 오늘 우리가 그 복음을 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크기의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을 만나면 육체에서 나오는 감정과 욕심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때 육체의 소욕에서 나오는 생각과 감정을 포기하고 성령의 소리를 따라갈 때 우리의 삶에 진정한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내리고 성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께 동의하고, 진리를 믿음으로 반응해 나갈 때 열매를 맺고 그것이 승리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2가지 생각이 나옵니다.

하나는 육체의 생각이, 또 하나는 성령의 생각입니다.

이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각이냐, 성령의 생각이냐...

육체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은 불안함, 두려움, 좌절, 낙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게 되며 그 결과 자기식 처방을 하게 됩니다. (사울 왕)

그러나 성령의 생각은 평안과 안식입니다. (환경은 아닌데 마음은 평안함)

여러분 우리가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전히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의한 삶이란 성령을 좇아가는 삶이요, 여기에 진정한 평안과 안식, 자유함, 승리가 있습니다.

2.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

우리가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삶이 어려운 이유는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보세요.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려하면 육체의 소욕이 그것을 방해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방해를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으면 되는데 그 방해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는데 있습니다.

그 심각성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소욕을 따라 그것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니 쉽습니다. 그런데 어렵습니다. 왜 어렵느냐?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권위의 문제 때문입니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그것에 순종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한다는 말입니다.

보세요, 두려움, 시기, 질투, 욕심, 명예욕, 자존심, 자기연민, 불신, 판단, 매사 부정적, 이러한 모든 것이 육체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것이 죄인 줄 알면서 여전히 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러한 것들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권위를 갖고 행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압니다. 자기 나름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잘 안됩니다. 왜입니까? 오래 동안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권위에 순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적당히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만 적당히 압니다.

하나님을 인격체 하나님으로 알지만 여전히 이론에 머뭅니다.

그러니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 진리에 동의하는 삶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합니다.

입술로는 성령 하나님을 부르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성령님이 전혀 안 계시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인격체 되신 하나님을 더 알기를 구해야합니다. 이론에서 더 나아가 야다로서의 하나님을 알기를 구해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인도를 좇아 순종하는 삶이 가능 합니다.

3.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 때문입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16-18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소욕을 좇지 말라 하시면서

5:19-21에서 육체의 소욕은 현저하다 하면서 4가지를 말씀하고 있고요

5:22-23에서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의 비결을 말하는데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죄 된 본성, 옛사람) 못 박았고, 뿐만 아니라 거기서부터 나오는 감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아멘,

그런데 우리 감정은 전혀 죽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이 경험이 진리가 아니라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뭐라고 했느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죄 된 본성, 옛사람) 거기서부터 나오는 감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자 이기 때문입니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 사람이 못 박혔고 그 결과 죄의 종노릇 하지 않는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 결과 14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가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분노가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시기 질투가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의심이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불신이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죄가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자존심이 당신을 주관치 못합니다.

왜요? 그놈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놈이 죽었는데 우리는 오래 동안 그것을 잘 알지 못해서, 진리를 몰라서 그것에 순종해 왔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불안해했습니다.

불신에 빠져 두려워해서 혼돈해서 상황과 환경에 반응했습니다.

감정에 욕심에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 몰라서

그래서 그 육체가 우리 삶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치 덧에 걸린 짐승처럼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 ? 죄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죽었습니다.

옛 본성에서 나오는 타락된 감정, 욕심은 그것은 이미 우리의 삶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 너희는 이미 놀라운 승리를 거둔 자다.

여러분이 오래 동안 두려움에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 두려움의 족쇄를 풀어 놓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래 동안 시기 질투의 문제에 사로 잡혔다면 그 시기 질투의 문제를 이미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족쇄가 파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의 약속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 이 말은 너희가 성령을 좇아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성령의 인도를 좇아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너희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속여, 우리의 목에 족쇄를 채워 우리를 끌고 다녔는데 그 족쇄가 이미 깨어졌어요, 풀어졌어요. 죄가 더 이상 여러분을 주관치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승리를 누릴 수 있는 비결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래 동안 우리는 연민에 빠졌고, 불신에 빠졌고, 열등감에 빠졌고, 낮은 자존감에 헤맸고, 불안함에 헤맸고, 두려움에 헤맸다면 주님께서 이미 놀라운 승리를 이루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이 말은 그렇게 간주하라 믿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는 말이 무었습니까?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전에는 죄가 우리 삶에서 왕 노릇했는데 이제 은혜가 왕 노릇 합니다.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다는 말은 그분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2;19 보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 권속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 합니까? 의지 한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날도와 줄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값진 소유물로 택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열렬히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7:6-8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배로운 소유물로 여기신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는 말은 그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성에 있다는 말은 인격체 되신 하나님이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마다, 하나님을 찾을 때 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 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 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뭔가 세게 뭔가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를 알고 계시고, 나를 만나고 계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더 경험하고 알게 되는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체 되산 하나님과 관계성에 있을 때 우리 삶에 진정한 승리와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진리에 동의하고 싶은데 자존심이 나를 방해하며, 분노가 나를 방해하며, 감정이, 질투가 나를 방해해요, 그때 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지요.

은혜에 풍성하신 하나님 제가 지금 이러한 상태에 있는데 저를 도와주세요. 여기서부터 벗어나기 원해요. 그럴 때 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고 선하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버려두는 분이 아니라구요,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이 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기 위하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며 주님을 구할 때 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로, 진리로 이끄시길 기뻐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보십시오.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가장 선하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시길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는 말이 여러분의 삶의 놀라움이요, 기쁨이길 축복합니다.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 동의 할 수 있습니다.

) 어떤 때는 시기 질투가 올라 올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를 저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 제 마음에 지금 시기 질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그런데 저는 그렇게 안살고 싶습니다. 제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길 원합니다. 무엇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인지 제가 압니다. 제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떤 때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딴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불편한 생각이 듭니다. 그때 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경배하고 싶습니다. 제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 그런데 다른 생각이 제 중심에 자꾸 찾아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이때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주님의 임재가 회복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꺼이 서게 합니다.

어떤 때는 제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 동의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때 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으십니다. 새 힘을 부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음을 인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자는 말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놓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좇아가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환경을 보니 너무너무 힘들고 좌절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안도와 주실 것 같아 그러면서 낙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낙심할 것인가, 하나님께 반응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성령님이 나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합니다. 그때 성령님이 진리를 깨닫게 하실 때 우리는 그 진리에 반응하는 겁니다.

나나렛 예수의 이름으로 불신의 생각은 떠나가라고 선포하고

나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죽었음을 선포하고

그리고 진리를 붙잡는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드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지금 제 앞에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저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제가 동의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할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승리로 축복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마다 성령님이 우리 삶에서 권위를 갖게 됩니다.

6:16 우리는 무었에 든지 순종하면 그것의 종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옛 본성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욕심에 순종했더니 그것이 우리의 삶에 권위를 갖고 우리의 삶에 족쇄로 채워졌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진리에 동의 했더니, 성령님께 동의 했더니 드디어 성령님이 내 삶에서 권위를 갖고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내 삶을 진리로 이끄시는 것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어집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의 권위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성령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어 드릴 때 마다 성령님께서 내 삶에 권위를 가지고 모든 사건 속에서 성령님께서 진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놀라운 승리로 성숙된 자리로 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파도를 허락하십니다. 그 환경 속에서 히5:14 그러나 단단한 음식물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내가 진리를 사용함으로 점점 성숙케 되어 집니다. 성숙한 사람은 선악을 분별 할 줄도 알지만, 성령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진리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쉬워집니다. 이것이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두 가지 갈림길이 있습니까? 어떤 갈등이 있습니까? 인간관계로, 환경으로 갈등이 있습니까? 욕심과 감정으로 인한 갈등이 있습니까? 어떤 상황에서 선택해야 할 갈등이 있습니까? 지금 성령님께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하십시오. 이렇게 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의 삶에 오래 동안 사로잡고 있었던 이미 깨졌지만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속여 왔던 그러한 모든 억압은 완전히 박살나게 될 것이고 성령님과 동행하므로 놀라운 승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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