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인가?

기독자료/자주묻는질문답

by 발의무리 2011. 5. 9. 10:15

본문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인가?
  
1.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미국의 기독교인들

지난 4월 20일자 국민일보는 4월 17일자 Religion Today지를 인용하며 "미국 복음주의 기독인들 성지수호 기도팀 발족"이란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일부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매일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는 100만 명의 미국인과 10만 교회를 확보하는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유대인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는 사랑의 다리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의 주창자 한 사람은 이와 같은 운동의 근거를 시편 122편에 기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에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운동은 예루살렘을 성지로 보고 유대인들을 특별한 선민들로 보는 시온주의 운동이다.

이와 같은 유대주의 선민 사상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온주의 사상은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 내지 정치적 종교사상은 이미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 의해서 거부되고 말았다.


2. 신약의 기독교는 유대 중심적이 아니라 이방 중심적이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에 나타난 역설적인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들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방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높이 칭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0-12).

이방 중심적 구원의 역사가 천국에까지 이어진다는 말씀이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사역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행28:28).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갈릴리로 가라고 분부했다.

유대의 중심적 지배계급의 상징인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유대의 주변적 하층계급의 상징인 갈릴리로 가라고 분부하신 것은 기독교가 유대 중심적이 아니라 이방 중심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기독교는 사마리아로 가이사랴로 안디옥으로 그리고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로마로 확장해 갔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의 이상현 교수가 기독교 선교의 특성 중의 하나가 중심성이 아닌 주변성임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3.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화한 로마제국이나 미국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제롬은 서기 410년 기독교화한 로마가 알래릭에 의해서 테러를 당했을 때 기독교화한 로마 제국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면서 로마와 함께 기독교가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이와 같은 팍스 로마나적 기독교 사상은 이미 콘스탄틴 대제의 궁중 신학자 유세비우스에 의해 제창되었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 대제를 극구 찬양하면서 콘스탄틴 대제의 제국을 "하늘의 하나님의 통치의 지상적 복사"로 보았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와 같은 동일시의 도식과 제롬의 탄식을 잘못된 것으로 비판했다.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화한 로마 제국의 흥망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독교화한 로마 제국이나 정치적으로 승리한 로마 제국의 기독교회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유대인도 아니었고 교회의 일원도 아니었던 욥이 하나님의 도성의 일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한 예는 "다른 나라 백성들 가운데도 영적 도성 예루살렘에 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하나님의 도성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결국 어거스틴은 지리적 또는 국가적 예루살렘의 개념을 거부했고 하나님 나라의 기독교화한 어떤 나라와의 동일시도 거부했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예지 가운데, 밖에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칼빈을 비롯한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스 로마나적 기독교 사상은 팍스 브리타니카, 팍스 아메리카나 또는 팍스 코리아나의 모습으로 거듭해서 등장하곤 했다.

특히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은 기독교를 자기 나라와 동일시하고 기독교의 정의를 실현하는 십자군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미국은 이스라엘 국가와 함께 반미 반이적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아메리카 및 이스라엘적 제국을 세우려고 하는 듯 하다.


4.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물론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복음이 이방으로 전파되었음을 지적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11:26)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민이 전부 구원 얻는다는 말은 아니다.

박윤선 목사는 그 말을 "이스라엘 민족 중 구원 얻는 자들"이라고 해석했고 존 머리는 "선택 받은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했다.

영적 이스라엘 중에는 물론 유대인도 포함되어있고 팔레스틴인도 포함되어있다.

아니 지금 팔레스틴인들 가운데는 유대인들 가운데보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7:9)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도 물론 기도해야 한다.

카나다의 오스왈도 스미스 목사는 「선교사가 되려면」 이라는 책 서두에 이렇게 기술했다.

"뉴욕에 있는 한 영혼이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최근 아프카니스탄으로 다시 들어간 어느 선교사가 들어가기 전에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가장 밟으시고 싶어하실 땅이 아프카니스탄일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기아와 전쟁으로 인해 드리워진 죽음의 공포가 존재하고, 사악한 정치 세력들에 의한 압제와 무엇보다 참된 목자 없이 유리하는 저들..... 그들 속에 계신 하나님을 뵙고자, 그들과 함께 고통 받으시는 그 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는 오늘도 다시 그곳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우리는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 우리들이 정신 없이 달려가는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적 사고의 방향이 잘못된 방향이 아닌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를 보시고 우시는 주님의 가슴과 눈물이 과연 어떤 종류의 가슴과 눈물인지를 더듬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들에게 주님의 눈과 마음과 눈물과 심장을 주시기를 바란다.

(참고: 이 글은 손봉호 교수, 김영한 교수와 상의해서 그리고 동의를 얻어서 쓴 글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