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주저녁)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8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금은 맛을 내야하며, 빛은 보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도들의 삶은 점점 맛을 잃어가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이 보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한 말씀을 마음속에서 보골 보골 올라오는데 그것이 바로 엡5:8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제 개인적으로 묵상하기를 원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무엇을 촉구하실까요?
1.너희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라는 겁니다.
사람은 종종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이것을 사도바울은 에베소서2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다.
그런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과거에는 어두움이었는데 지금은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그들과 섞여 살아가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빛의 자녀가 되었다 이 신분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신분을 인식할 때 어둠의 삶을 청산하고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님을 기도 사역하는데 죄책감에 절어 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주일날 교회에 오기만 하면 한주동안 세상의 어두움의 삶을 살았던 것 때문에 괴롭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 또 그 삶을 매일, 매주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또 반대로 어떤 성도는 너무 자유해요. 이것이 문제에요.
일주일 동안 실컷 죄짓고 주일날 교회 와서 용서해주세요. 그러고는 자유해요.
<밀양 영화>
한 아내가 남편을 사별하고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감.
전혀 죄책감이 없어요.
어떤 선교사님, 예수님의 보혈이 다 떨어졌다고
여러분! 왜 이럴까요? 이러한 삶이 청산이 안 될까요?
여러분 교회 오셔서 회개하는 것 -> 날마다 새로운 죄짓고 그것 회개하세요? 아님 똑 같은 거 회개하세요?
날마다 새로운 것 아니잖아요, 매일 똑 같은 것 회개하고 또 하고, 또하고.....
왜 일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자기의 신분을 인식하지 못해서 그래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감정과 느낌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빛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주일학교, 5만 원짜리 지폐,
무슨 말입니까?
깨끗한 돈이나 구겨지고 발로 짓이겨진 돈이라 할지라도 5만원 자리의 돈의 가치에는 조금도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자녀가 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신분이 바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일시적으로 실패하고 고통에 빠지기도 하고 입고 있는 옷이 남루할 수 있고 살고 있는 집이 반 지하 작은 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신분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되신 주님을 만나는 만나고 난 후 이 빛을 얼마나 강조한 줄 모릅니다.
빛을 경험하고 난 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확고한 신분의식이었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확고한 신분의식
확고한 신분의식이 있으니 그가 사명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어려움과 수모와 손가락질,..등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지를 못합니다.
옛날 암행어사 -> 남루한 옷을 입었다고 기죽지 않잖아요. 속상해 하지 않잖아요.
무엇이 -> 그의 신분이
(고후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빛 되신 주님을 만나 신분의식이 회복이 되면 일시적인 어려움과 상황과 초라함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런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엡5:8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창12장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이런 아브라함 -> 목숨 부지를 위해 아내를 누이로 속임.
창16:15 약속 믿지 못하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음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12-17장 사이에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선포하시는 겁니다.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이 선포가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하였음.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둠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지만 기억해라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 그 선언이 우리를 우리 되게 만든 것입니다.
늘 빛의 자녀임을 선포하십시오.
패배의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자식, 남편 - 전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빛이라고 선포하십시오.
네 같은 게 어떻게 빛의 자녀야 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마십시오.
과거 어둠의 영향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2. 빛은 빛인데 세상의 빛임을 인식하라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라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이 썩어지는 것을 막고, 어두움을 밝히는 것일까요?
여기 중요한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므로 세상이 너희 때문에 더 이상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소금은 부패방지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소금을 '부패방지'로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말씀은 단지 이 소금이 맛을 내는 것이라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금의 역할은 부패방지가 아니라 '짜게 하는 것'입니다.
이 후 구절에도 소금의 용도는 짠 맛에 있습니다. 이 역시 버려지고 밟혀지는 이유는 부패방지의 역할을 상실해서가 아니라 짜게 하는 맛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가 세상 속에서 독특하고 유일한 맛, '소금밖에 낼 수 없는 맛'을 내는 존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맛이 있습니까?
말로만 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서 맛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을 안 해서 변화가 안 된 것이 아니잖아요.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빛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 통상적인 해석은 '빛이 세상을 밝게 한다.'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서 14,15절을 보세요.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4-15절 말씀은 빛이 어떤 대상물을 비추어 주는 존재임에 초점이 있습니까?
아니면 빛은 스스로가 빛이 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존재라는 점에 초점이있습니까?
성경은 빛에 대해 설명할 때도 빛은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14절은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함으로써 빛이라는 존재는 캄캄한 세상 속에 있을 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15절 역시 그렇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둔다'는 의미 역시 빛이라는 존재는 모든 대상물에게 보여진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이 변질되지 않도록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빨리 막도록 해라!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주된 말씀을 의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처럼 세상 속에서 독특한 맛을 내는 존재이다. 너희는 빛처럼 세상에 보여지는 존재이다.'라고 하신 것처럼 이것이 바로 주님의 강조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여짐으로 5: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빛은 외부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입니다.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책망하라 이 말씀은 상담학적으로는 직면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치유되지 않은 내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어두움으로 나를 장악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놀라운 빛이 우리 내면에 찾아오면 그 내면의 상처가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4사람이 싸운 것이 부부싸움이랍니다.
눈에 보이는 나, 눈에 보이는 상대방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내면에 상처 받은 어린아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 상처 받는 어린아이
부부 싸움은 아 4명이 싸우는 것이 부부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코피 터지게 싸우겠어요.
이 상처가 언제 치유될까요? 주님의 빛이 우리 내면에 찾아와야 합니다.
찬144
아무도 주 같이 내 맘을 만져줄 수 없어요.
내가 영원히 찾아 해매도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의 자비 장 같이 흐르고 주의 손 고치시고
주의 팔에 내가 안전하니 주님뿐입니다.
아무도 주 같이 내 맘을 만져줄 수 없어요.
내가 영원히 찾아 해매도 오직 주님뿐입니다.
빛은 죄의 문제도 폭로합니다.
여러분 누가 지적한다고 회개가 일어나던가요? 반발심 밖에 안 일어남
우리 내면을 회개 시키는 것은 빛으로 오신 주님 밖에 없어요.
다윗 -> 가정 파괴범, 살인자 -> 가책을 느끼지 않음
누구도 다윗을 통제할 수 없었는데 나단이 무엇일 가지고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가지고 다윗을 조명하니까 다윗이 빛 앞에 꼬꾸라지는 겁니다.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나단이 없다는 겁니다.
왜 기분 나쁘게 지적하느냐고....
다윗에게 하나님의 빛이 그 내면에 비춰지니 뭐라고 고백합니까?
시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항상 긴장하게 됨.
신앙생활 오래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님.
빛을 경험한 사람의 삶 - 늘 조심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열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함
성경은 빛의 자녀, 어둠의 자식 둘로 구분하는 데
그 구분하는 잣대가 무엇인가?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빛의 열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인격과 관련
1)인격적 성숙
착함 - 내면적 선함, 내면 세계의 질서가 회복,
성려의 열매 -> 양선 = 선함과 같음
2)영적분별력
엡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도키마존테스'(* )는 금속의 질을 판명할 때 쓰이는 단어로 실험을 통해서 무엇을 '실증하다', '규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뜻을 분별해서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일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롬 12:2)
오늘 상식이 통한 세상
3)영적 각성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새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빛 된 삶
나의 빛 된 삶이 나의 후대를 비추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나의 작은 빛으로 그들이 방황하지 않게 해주세요.
3. 하나님으로부터 빛의 공급을 받아야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빛된 삶을 살아야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빛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은 하나님이세요. 빛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 세요.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은 우리가 쥐어짜서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빛 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 안에도 빛이 비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엔진이 작동을 해도 기어가 중립에 있으면 차가 움직이질 않아요.
바퀴가 굴러서 차가 움직이지만 바퀴를 움직이는 것은 바퀴가 아니라 엔진입니다.
소금과 빛의 삶 - 하나님 중심적 삶의 자리에 있어야 가능
여러분 우리가 빛의 자녀의 삶을 사는 것도 바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듯이 우리 스스로 살 수가 없어요.
빛이신 주님과 관계가 연결 되어야 빛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기어는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N의 위치에 있습니까? 아니면 D의 위치에 있습니까?
삼하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삼하22: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사랑의 관계를 추구함(엡2:12-19) (0) | 2011.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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