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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는 것(13) 하나님을 찾은 열매들

시리즈설교/하나님을찾는것

by 발의무리 2018. 1. 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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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는 것(13)-하나님을 찾은 열매들

 

역대하 26: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웃시야가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찾았다고 했는데요. 하나님앞에서는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호세아 4:1절 중반절부터보면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인데, 친밀한 교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요. 그 당시 많은 종교적인 의식은 있었지만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아는 참다운 지식이 없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없었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은 정직함이 없었다, 진실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융통성이 미덕으로 인정됩니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은 적당히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권모술수를 통해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세상의 나라는 사탄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다음에 다음왕을 세우기위해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이새의 집에 보냅니다. 사무엘은 성경에 보면 그를 통해 예언된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성취되었다고 되있습니다. 이새의 집에 갔을때 큰아들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을 하려면 일단 힘이 쎄야합니다. 힘이 곧 무기였습니다.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수 있는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 확신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죠.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을 지나가게 한다음에 다 아니라고 하니까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물었을때 그때에야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이말은 아버지 생각에 다윗은 왕이될 사람이 아니란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 다윗이었습니다.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정직함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듯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이사야 45:19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하나님앞에 정직함이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 그분이 정직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의를 말하고 정직을 말씀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이 구절에 보면 은밀하게 어둠가운데서 말씀하지 않으셨다. 공공연히 모두가 알도록 말씀하셨다. 말씀하신 내용중의 하나가 뭐냐면 나를 찾는 자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상은 만나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는자를 만나주십니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들.

열매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이 열매들이 나타나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에게 이러한 열매들이 나타나니까 하나님을 찾았는지 않찾았는지 뭘보면 아냐면 우리에게 열매가 함께하는지 않하는지를 보면 압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았는데 열매가 않나타나면 올바로 않찾거나 충분히 않찾은 겁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정직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게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받으십니다.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시고요. 진실로 보호하시고요. 모든 좋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경외함을 주십니다.

*잠언 2: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여기의 그것은 지식과 지혜를 의미합니다.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잠언서 8장에는 지혜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30절을 보면 알수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기의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혹은 하나님, 예수님을 표현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경외함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도 소중히 여깁니다. 시편119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자였습니다.

*시편 119: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합니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깁니다. 중심이 옳아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가능합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무엇보다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십니다.

*잠언 2: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보이신다는 말은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체험적으로 아는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찾는다는 말은 하나님 그분 자신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광야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 81편에서 그들이 나를 원치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당면한 필요와 처지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은 줄기차게 구했을지 모르지만 그분자신은 원치않은 겁니다.

하나님을 원한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원하다는 겁니다. 금은을 찾는 것과 같이 숨겨진 보화를 찾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알기를, 그분이 계신곳을 알아 함께 있기를, 그분의 뜻을 알아 그 가운데 동행하기를, 하나님이 이 시대에 뭘하는가를 알아 그 가운데 함께 있기를, 이렇게 하나님을 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즉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의중, 계획, 뜻을 알리시고 비전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면 다 소유한 겁니다.

 

3)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들이 넘칩니다.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들을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그분 자신을 원해서 찾습니다.

하나님을 원해서 찾을때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실뿐만 아니라 더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들이 그들에게 넘치게 하십니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누구든지 얻고자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를 잃으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광야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저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구해서 주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않됩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면 충분해서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하나님 알기를 구하고 뜻과 의중과 하나님 계신곳을 함께 있기를 구해서 그분을 추구하면 그분을 주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그분의 생명의 역사들은 당연히 넘치게 되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가 되어서 우리가 주님을 소유하게 된다면 주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셨다고 했는데, 나를 위하여 자기를 잃으면 얻으리라고 했는데, 이게 중심이 문제더라고요.

하나님을 찾는데 방해되는 주된 요소 중의 하나가 뭐냐면 자기가 주도하고자하는 야망입니다.

자기 사역하면 일반성도들도 많습니다. 사역 나태하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자기 휘하에서 명령하고 주도하고 이게 몸에 베있습니다. 야망입니다. 주님을 찾는데 개인적인 야망이 내려지고 주님의 뜻이면 충분해서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려지는 이게 올바른겁니다.

 

*신명기 30:15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 구절이 구약성경에서 우리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중의 하나입니다. 신명기는 두 번째 율법으로서 모세가 율법을 다시 설명해준겁니다.

예레미야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낼때부터 번제와 제사나 희생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았다고하시죠, 이 말은 번제와 희생과 같은 의식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장 주된 명령이 아니고 본질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나열하신 구절이 이 구절입니다.

신명기의 이 구절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낼때부터 그들에게 명령하신 가장 주된명령 핵심적인 명령이었던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앞에 한쪽에는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두었다고 하시면서 너희와 너희자손이 살기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생명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은 네 생명이라고 그러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무엇 이전에 그분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복입니다.

20절에 그를 의지하라고 했는데 이말은 그를 부종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있으라,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택하는 길을 말하는데 가장 먼저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존재를 다해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택하는 길입니다. 이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그토록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고 그 당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법 613가지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들을 하나님을 버린자리에 둡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지식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가르치는 성경이 말하는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떠한 인격적인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겁니다. 신명기 30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아사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주셨고 만나주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평강이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했다는 것은요 하나님이 그 나라를 통치하심으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함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웃시야 시대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 나라를 보호하셨습니다. 아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20년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역대하 15:2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12.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19. 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엘리 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왔습니다. 블레셋과 싸워서 져서 4만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20년이상 블레셋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20년후에 사무엘이 자랐습니다. 사무엘의 영향력이 컸던것 같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하나님을 찾는데 단순한집회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말을 NIV성경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탄식하고 여호와를 찾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엘리시대는 전쟁에 처음나가 졌습니다. 사천명이상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장로들을 포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패하게 하셨는지",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합니다. 왜 졌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지는게 당연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본인들은 종교적인 의식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을 버린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지식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삶은 하나님의 법을 버렸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짖밟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도 모르니까 왜 졌는지를 몰랐습니다. 해결책이 뭔지를 모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자고 합니다. 엘리도 눈이 멀어서 언약궤를 내줍니다. 이게 해결책이 아닌걸 전혀 모른겁니다. 언약궤를 내어주고 삼만명이상이 죽고 대패했습니다.

20년이 지난후에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으니까 언약궤를 가져오면 축복받는다고 했으면 엘리시대와 똑같습니다. 이때 그들이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여기의 사무엘의 영향력이 중요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자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한 겁니다. 엘리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을 의지한게 아니구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무엘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의 본질로 돌이킨겁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돌아오시니까 생명의 역사들이 회복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고(9),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고(9),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를 물리치시고(13), 그들에게 놀라운 승리를 주셨습니다.(10)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보호하셨습니다(13).

 

*사무엘상 7: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어린 양 하나를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이것을 외부적인 것에 둡니다. 이사야 시대는 성경대로 가장 살찌고 가장 좋은 것은 최상급의 제물을 무수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견디지 못하겠다고 내가 증오한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흠없는 제사를 드린게 초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의 초점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신앙의 본질과 예배와 삶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전쟁만 해도 엘리시대는 블레셋이 처들어와서 졌는데 사무엘때는 블레셋이 쳐들어 왔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천둥번개까지 쳐서 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어떤 주석에 보니 그 시기는 천둥번개가 치는 시기가 아니랍니다. 저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회복됩니다. 이런 일들이 내게 나타날때까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지금 내 삶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생명의 역사가 함께하고 계신가를 보셔야합니다. 함께하고 계시다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성경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대로하면 성경대로 반듯이 되어집니다.

4) 영적인 분별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않으면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집니다.

로마서 1:21-22절은 가장먼저 불신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도 해당되고요. 시편 8010~1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말입니다.

엘리도 보면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구요.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져 있으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니까 언약궤를 메고 나가는게 해결책이 아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저들이 왜 졌는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에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사야가 너희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너희가 보기는 보아도 보지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못한다.

하나님을 찾지않으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중에 하나가 뭐냐면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못하고 올바른 신앙생활 자체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앞에서 잘못됐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세요.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영적분별력이 주어집니다.

*잠언 28: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시편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솔로몬은 초기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유언하다시피 하면서 솔로몬에게 네 아비의 아버지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역대하 1:5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나아가서란 말은 단순히 나간게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러, 하나님께 물으러 갔습니다. 물론 천마리의 희생을 드렸습니다. 천마리의 희생이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았더니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내게 구하라 그러면 주겠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역대하 1:8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하나님이 다윗때부터 주신 은혜로 하나님이 자기를 이 자리에 세운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이 백성을 인도하도록 세운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11.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솔로몬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똑같습니다. 그랬더니 네가 구하지 않은 이 모든 것들도 네게 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구해야 영적인 분별력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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