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다림줄
아모스7:7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에 맞추어 세워져야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암7:7절에서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1.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교회
오늘 우리의 실정 - 하나님의 다림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 세워지지 않으면 거기에는 인간의 실적은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는 없음.
또 사람 앞에서는 귀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
오늘 교회의 모습 -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임재가 없음 -회복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 세워져야함. 이때 진정한 은혜가 흐르고, 성령이 마음껏 역사함.
오늘 우리의 예배를 봐도 마찬가지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은혜를 다 경험하길 원하지만 진정한 예배회복은 예배순서, 악기, 조명, 성가대를 사와도 안 됨 - 진정한 예배회복은 성경이 말한 하나님의 기준에 잘 맞추어서 드려질 때 그곳에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 있음.
하나님과의 친밀함도 기도와 금식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서 세워질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사역, 하나님과 친밀함도)
2.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다 헛것.
계3:1-2
사대교회 - 사람의 평가 ->살았다, 하나님의 평가 ->죽었다
서머나 교회 - 사람의 평가 -> 가난한 교회, 하나님의 평가 ->부요하다
라오디게아교회 - 사람의 평가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의 평가 ->가난, 가련, 헐 벗고 굶주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관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야 바른 신앙생활인 하나님의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관점은 엄청 소중히 여기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관심밖에 있음.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볼까 에는 엄청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보실까 고민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사람 앞에 잘 보이는 것에 대하여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전혀 관심밖에 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관점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잘 봐주시겠지 당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 대하여서도 ‘너희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가는 소중히 여기지 않고 서로 칭찬만 원한다’고 말씀하심.
요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런데 바리새인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십니까? 아님 사람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시나요? 뭐라고 대답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심, 왜? 실제는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보다 사람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
오늘 우리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실로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똑같음.
예) 새벽기도 -> 목사님 교인 다갔는가 쳐다보다 눈이 마주침
사대교회 - 잘나가는 교회였음, 활동력이 강하고,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침체되어있는 교회가 아님, 자타다가 공인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는 교회였음. 그런데 주님의 평가는 실상은 죽었다 ->관점이 달라요.
그럼 왜 죽었는가? 예수님의 처방이 무엇인가?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즉 받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순종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고전3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3:10-15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울 때 하나님의 기준은 금, 은, 보석으로 세우는 것인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구원은 받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는 겁니다.
즉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무리 화려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함께하니 성장하지 하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들의 하는 것이 맞다는 말이라고 함.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에베소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사람들이 볼 때는 훌륭한 교회였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 - 분별력이 없는 것인지, 단순한 것인지...
렘6:20
예레미야 시대 -시대말적인 상황
예레미야 40년 사역,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북쪽에서부터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 바벨론이 쳐들어올 것을 예언, 그 예언대로 되고 있음을 목도함.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를 보세요.
유대 -> 시바, 에티오피아 2,000키로 정도
원방 -인도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이들이 자기들이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안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비싼 향유를 드렸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 안받는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심판을 예고하고 있는 거예요. 왜? 예배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우리의 그 어떤 희생, 헌신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기준만 통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다림줄만 통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 오스카 톰슨 - 관계전도 강의
비행기에서 전도, 하나님 앞에 가시려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가셔야 합니다.
그렇죠? 우리의 구원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철야기도하고, 잘못한거 생각나는 데로 다 회개하고 전 재산을 헌금했다해도 구원받지 못함. 왜 -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다림줄만 통합니다.
기도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기도할 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많이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기도, 하나님을 아는것, 사랑하는 것, 사역)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하 행할 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편에서 아무리 큰 희생을 드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순수한 동기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 순수한 동기는 무척 소중합니다. 나눠진 마음은 우상이기 때문에, 그러나 순수한 동기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2가지를 구함 1)나누어지지 않는 마음과 2)주의 길
4. 하나님의 다림줄은 가리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임.
하나님의 다림줄 -> 하나님의 기준 ->성경이 하나님의 기준임.
문제는 하나님의 기준이 가리워 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가리워지면 - 절대 올바른 신앙은 불가능하며, 절대 회복이 안 됨. 우리가 회복을 위해서도 먼저 하나님의 다림줄을 회복시키십니다. 교회회복도 하나님의 기분이 회복되어야함.
우리가 하나님의 다림줄을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음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
렘6장을 봐도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져 있으니 자기들은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하나님을 너무 멀리 떠나있음.
다림줄이 가리워져 있다는 의미
마12:1-7
7절에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죄를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현대어 성경에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라는 성경 구절의 뜻을 너희가 제대로 알았더라면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바리세인들이 이 뜻을 몰랐어요. 그러면 무엇을 몰랐다는 말인가?
이 구절이 호세아6:6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구절이 호세아6:6절에 나온다는 것을 몰랐다는 건가, 아님 하나님은 제사보다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건가, 아님 바리세인들이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럼 그들이 뭘몰랐다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정확히 그러합니다.
오늘날 성도나 교회 목회자들에게 계명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져있으니 그 사랑의 의미를 몰랐어요. 그들은 의식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신앙의 가장 A.B.C에 해당하는 것이 가리워짐.
여러분!
이사야시대, 예레미야시대, 바리세인들 그들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랑 안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사랑한다고 생각했죠. 그 이유는 그렇게 열심을 다해 의식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림줄을 보는 것 -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볼 수 있음.
그러기 위해선 마음의 자세가 올바라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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