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삶(2) 자기중심적 삶의 특징
자기중심적 삶에 나타난 특징들
옛사람의 특징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특징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이 자기 중심성에는 4가지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1)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입니다.
2)자기를 변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3)자기과신 입니다.
4)자부심입니다.
1.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입니다.
창4:3-7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 없는 삶을 꿈꾸고 반역한 아담이후에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에서 시작됩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각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만 합당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분하게 여긴 가인은 죄를 지으려는 미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그에게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밀려난 것에 대해 매우 분해합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이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언제나 자기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경쟁심, 시기, 질투가 나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진정한 연합도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지 못하면 못 견뎌 합니다.
이것이 연합을 방해하는 무서운 요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말하면서도 자기가 중심에 서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지 못하면 함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쟁심이 우리로 죄로 인도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다툼은 여기서 나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이웃 사이에, 지역 사이에, 나라 사이에, 민족들 사이에,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마음을 갖기에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롬1:28-32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자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에 두길 싫어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꿈꿉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저희를 그대로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온갖 죄악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이난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 나타난 죄 된 모습들입니다.
2.자기를 변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의 대답을 보십시오.
창3:12-13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하신 저 여가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타락은 사람과 그 이웃사이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내 탓으로 돌려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 합니다. 아마도 그날 하와는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가까운 사람 사이에 상처를 주고받는 문제와 너무나 동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와에게 묻습니다. 그녀도 역시 “뱀이 나를 뀌어서..”라고 변명합니다. 자기 탓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심지어 하나님에게 까지 그 이유를 둘러 댑니다. 이때 이후로 인류는 자기를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고 모세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회중들 때문이라고 둘러대려합니다.
출32:22-24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같은 방식으로 불순종한 사울왕은 자기의 잘못을 백성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삼상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변호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해댑니다. 아담의 범죄 후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지만 그는 모른 체 하며 거짓말합니다.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여러분 우리 안에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우리 본성은 끊임없이 자기를 변호하며 또 거짓말을 해댑니다. 자기가 상처 받지 않으려고 변호합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변호할까요? 죄를 핑계됨으로 ‘자기를 정당화시키려는 태도’때문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떠넘김으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로 심각한 이유는 말씀 앞에 정직하게 대면해야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변호해 버립니다. 타협해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옛 본성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삶이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대면할 때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애통함으로 주님을 찾게 됩니다.
3.자기과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를 신뢰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눅22:33-34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죽는 자리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의 예언하신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해 버리고 맙니다. 그는 자신을 과신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자기를 과신합니다. 그래서 자기자원으로 살려 고합니다. 자기 열심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도전합니다. 그러나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과 사역과 신앙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15:19, 30, 8:26, 28, 14:10)
그에 반해 베드로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이 있다고 상상하는 한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옛 본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과신’이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살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있어야합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4.자부심입니다.
자기 과신의 결과는 자부심으로 남게 됩니다. 자기가 한 행위를 보면서 자부심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가 이루어 놓은 일을 봅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을 보면서 상대적인 우월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것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부심의 출처는 자기입니다. 그리고 자부심은 자기를 놓지 않습니다. 자기를 강하게 붙잡게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관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으며 영적 분별력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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