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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8) 예배의 본질

시리즈설교/예배회복의삶

by 발의무리 2007. 2. 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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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8) 예배의 본질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기 형상과 모양은 비슷한 말을 연속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 수사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인격적 존재 즉, 지, 정, 의를 가진 인격체로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인간만을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드)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는 ‘경작하다’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예배한다,섬긴다’는 의미로(출3:12,신4:19,말3:14)써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함이요,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에덴동산을 경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창2:19 그 예로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 이름을 지은 것이 하나님과 같음)

에덴동산의 삶은 하나님과 친밀함이요,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본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도 또 결과 하나님의 의중, 의도, 목적, 길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결핍이 찾아오게 된 겁니다. 사랑의 결핍인 미움이, 건강의 결핍인 질병이, 생명의 결핍인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독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고독인 거예요. 또 하나는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왜,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잃어버릴 때 인간은 고독하고 공허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다시금 친밀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바로 제사(예배)라는 의식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바로 제사(예배)라는 의식입니다. 


1.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컵과 물, 컵은 의식이며 물은 본질, 결혼반지)

의식은 본질을 위한 수단이요 (콩 껍질은 알맹이가 자라기 위한 수단)

의식은 본질을 나타내는 수단

따라서 본질과 의식도 모두 중요합니다(동전의 양면, 손바닥과 손등과 같음)


2.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시 말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주일까지 일하고, 공부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왜 예배를 드리라고 할까요?


1)하나님이 무엇인가 필요해서 예배드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서 괴롭히기 우해서가 아닙니다.(게리 베스트)

3)열심히 공을 들이면 그 대가로 복을 주기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종교의 특징이 무언가하면 신을 만족시켜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것이 특징입니다. 공과 정성이 특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열심히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 기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엇인가 열심히 해되면 그것을 보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공을 들여 자기가 믿는 신을 만족시키려고 하듯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려고 열심히 합니다. 그래야 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예배가 쉽는가? 힘드는가? 힘이든데 왜 그렇게 열심히 예배드리는가? 복받기 위하여..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예배하라 하셨을까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신다” 우리와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더 많은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원하십니다. 여러분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길 원하십니다. ‘난 널 원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위해서 예배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아가서 - 주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노래함


(시40:6-8)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 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6절에 “들리시기를” 이 말은 뚫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깨달았다는 겁니다. 무엇을?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음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럼 뭘 원하느냐? 나를 원하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한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주께 왔나이다, 그러면서 그 뒤에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를 기꺼이 기뻐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 하에 손복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저임을 제가 알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우리와 친밀한 교제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다.


출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보세요! 하나님께서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이일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냈어냈다는 겁니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이 말은 넌 내꺼야 난 널 원해 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십니다. 넌 내꺼야, 하나님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는데 우리는 무엇인가 행위를 가지고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좋은 악기 소리를 듣기 원해서 예배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좋은 목소리를 듣기 원해서 예배를 원치 않습니다. 만약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천사들을 동원한다면 훨씬 좋은 목소리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배자리에 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로 서는 것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롬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그 사랑의 주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눈 맞춤을 하며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세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내가 주님과 더 깊은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3.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을 추구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그분을 알기를 구하여 나아가야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내 삶을 조정하여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음으로써 그분을 더욱더 알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기를 위해 그 열망을 가지고 나가는 이것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시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여기서 산에 오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말과 얼굴을 구하는 것은 평행법입니다.


그런데 예배드리러 나갈 때 뭐 하러 가느냐? 6절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 자신만을 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33장의 모세의 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예배를 보면 하나님을 찾아 나오지 않습니다. 건강을 찾아, 문제해결을 찾아, 복을 찾아 나오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고 사랑하기를 원하여 찾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여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여 나오니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고도  1)하나님을 근심케 합니다. 2)하나님의 길을 모릅니다. 3)불신이 가득합니다. 4)세상 사랑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5)참다운 순종이 없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그친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바로 제사(예배)라는 의식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바로 제사(예배)라는 의식입니다. 


1.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컵과 물, 컵은 의식이며 물은 본질, 결혼반지)

의식은 본질을 위한 수단이요 (콩 껍질은 알맹이가 자라기 위한 수단)

따라서 본질과 의식도 모두 중요합니다(동전의 양면, 손바닥과 손등과 같음)


2.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1)하나님이 무엇인가 필요해서 예배드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서 괴롭히기 우해서가 아닙니다.

3)열심히 공을 들이면 그 대가로 복을 주기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신다” 우리와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더 많은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원하십니다. 여러분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길 원하십니다. ‘난 널 원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위해서 예배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3.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여기서 산에 오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말과 얼굴을 구하는 것은 평행법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을 추구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그분을 알기를 구하여 나아가야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내 삶을 조정하여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음으로써 그분을 더욱더 알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기를 위해 그 열망을 가지고 나가는 이것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알고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끝으로 시편27:4절을 잃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을 한 가지 소원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많은 소원 중 한자가지 아니라 다윗의 유일한 한 가지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원이 다윗에게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 이 때 그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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