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회복(7) 신앙의 본질과 예배
호세아6:6
예배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예배와 관련하여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분 백성과의 만남입니다. 그 말보다 예배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예배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의식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문안 인사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그의 백성이 우리가 만나는 자리가 예배입니다.
창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안에 거하길 원하셨습니다.(하나님과 아담의 친밀함 - 각종 짐승의 이름)
그런데 창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타락하기 전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3:8-9, 23) “8-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보세요, 이제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친밀함도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 길, 뜻을 전혀 모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넘쳤습니다. 왜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매일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날마다 교제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외로움이 없었어요, 고독이 없었어요, 아픔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게 된 거에요. 이때부터 모든 결핍이 찾아오게 된 겁니다. 사랑의 결핍인 미움이, 건강의 결핍인 질병이, 여러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독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고독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바로 제사 예배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 그리움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 나아가는 통로인 겁니다.
1.신앙의 본질과 예배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예배의 본질입니다.
오늘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리는가요? 예배를 드리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가요?
1)의식, 형식, 습관 2)복 3)문제해결 4)두려움
그러나 여러분 예배란 위의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예배의 본질이란 겁니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대중 하나인 호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는 것은 제사와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예배는 의식으로서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신앙의 본질입니다. 반면 예배는 의식으로써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의 회복입니다.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
의식(제사, 번제)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니 예배의 의식 속에 신앙의 본질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결혼 - 결혼반지 - 반지 -(의식), 사랑-(본질) 아무리 비싼 반지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예배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 가운데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 생각, 시간, 정렬, 물질, 취미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드리는 삶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즉 지금 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삶의 목표, 목적이 전환 됩니다.
이처럼 예배 가운데 신앙의 본질이 담겨지려면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즉 내 삶의 목적, 목표가 전 존재가 전환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뭐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즉 내 삶의 목적, 목표가 하나님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이렇게 전환된 무리들이 모여 드리는 의식이 예배입니다.
3.타락한 예배
1) 신앙이 타락하면 반드시 예배가 타락하게 된다.
-이사야 시대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사야1장의 예배를 가리켜 마당만 밟는 예배가 하는 것을 봅니다.
(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무슨 말입니까? 입술뿐인 예배라는 겁니다.
-예레미야시대 - 실제 심판이 임한 시대
렘12: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영어 NIV성경에서는 “주님이 항상 저들의 입술에 있습니다” 즉 입반 벌리면 주님이야기 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렘23:35-37) “35-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36-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 37-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 하셨느뇨”
당시 습관일 만큼 목회자를 만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라고 습관적일만큼 물었지만 그러나 마음이 멀다는 겁니다.
-바리새인
(마15:7-9) “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 세시대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신앙이 타락하면 예배가 타라가한다는 것입니다.
2)타락한 예배는 정성이 부족한 예배가 아닙니다.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 마당만 밟고 입술뿐인 예배라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외부적 모양에 둡니다. 지각에, 옷도 대충입고, 슬리퍼 신고, 껌을 씹고, 설교 중에는 옆 사람과 애기하다 축도하기 전에 나가는 이러한 것을 가리켜 마당만 밟는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분전에 나와서 마음으로 준비라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입고 정성스럽게 예배를 드려야 참다운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예레미야 시대에 정성이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정성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들의 희생, 기도를 우리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근데 그들에게 마당만 밟는다, 입술로만 존경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렘7: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 고기는 너희나 먹으라 - 하나님이 안 받으시겠다는 말입니다.
번제를 어떻게 드렸느냐?
렘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시바->에멘 원방->인도) 결코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렘7: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본질이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정성을 보세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보면 우리는 발 벋고도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는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평가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타락하면 반드시 예배가 타락합니다. 예배가 타락한다는 것은 정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제사지내는 이해로 예배를 이해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준비하며 제사지내듯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생각합니다.(양복에 넥타이, 헌금도 정성껏)
그렇게 드리는 것이 잘못됐다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 상달된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3)타락한 예배가 뭐냐? 본질이 없는 예배가 타락한 예배입니다.
입술은 존경하되 마음이 없는 예배가 타락한 예배입니다. 본질이 없으면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당만 밟는 예배요, 입술뿐인 예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려도 본질이 없으면 지극히 타락한 예배입니다.
그럼에도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예배로 나아가는 가?
①신앙생활을 의식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②정성껏 예배드리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③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④두려움 때문입니다.
4.성경에서 말하는 참다운 예배
말할 것도 없이 본질이 있는 예배가 참다운 예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합니다.
1)우리의 예배가 올바르기 위해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봉사하는 것도, 헌금하는 것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뭐하려고 하느냐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생갈 때 까지 기다려보세요, 평생 동안 아마 평생가도 한번 있을까 말까 할껄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본질이고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뭐냐 하면 우리의 의식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본질이라는 겁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알고 존재를 다하여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의식이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 까지 예배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그 자리로 삶이 그렇게 전환하고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2)예배를 통해서 본질이 추구되어야합니다.
예배는 본질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 예배를 통해서 본질이 추구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참다운 예배입니다.
(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러 나갈 때 뭐 하러 가느냐?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예배를 보면 하나님을 찾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도, 하나님을 보기도, 영광에 앞도당하는 기대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말과 얼굴을 구하는 것은 평행법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의 의미는 아닙니다. 그분 자신을 구하여 나오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기복신앙의 예배에서는 아무리 정성이 많아도 헛된 예배입니다.
렘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는 이유
렘6: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기복신앙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의 예배는 아무리 정성과 희생이 많아도 탁락한 예배요 그래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에서나 개인기도에서나 추구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구하여 나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신앙의 본질이 추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그분을 알기를 구하여 나아가야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내 삶을 조정하여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음으로써 그분을 더욱더 알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같이 있기를 위해 그 열망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였는데 - 안 돌아와서 징계를 받았다. 문제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아오라 - 이 말은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시대 그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헌금, 기도, 구제, 월삭을 지켰습니다.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어요, 그런데 이러한 자들에게 돌아 오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라면 우리보다 그들이 훨씬 잘했어요. 이러한 것에서 돌아오는 것이라면 호세아 시대 사람들은 돌아올 필요가 없었어요. 왜 그들은 이미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야야를 톱으로 켜 죽였던 겁니다.
여러분 돌아오라는 것은 보다 성경 많이 보고, 기도하고, 헌금 많이 하는 것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열심이 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돌아오라 라는 말을 잘 이해하세요.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피운 남자에게 - 돌아오라는 것은 옷사주고, 맛 있은 음식 사주고, 놀러가고, 영화 보러가고 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잘하고 있어요, 이것이 돌아오는 것이라면 돌아올 필요가 없어요.
사업실패 - 하나님께로 돌아와 - 이 말의 의미는 교회 나와서 도와달라고 기도해 - 중요 -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또 사업에 실패한 성도를 권면할 때 주님을 찾아야지 합니다. 여기서 주님을 찾는 것은 주님께 나아와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이 말한 주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본지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
정리
하나님께 돌아간다- 의식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찾는 것이 아님, 본질로 돌아와야 함을 의미합니다.
2.자기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님
우리는 물론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머물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을 알기 우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하 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 헌금, 기도 가 아님.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으면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우리 전 존재로 사랑하면
만일 저를 찾으면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임.
만일 저를 버리면 -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는 것
엘리 만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블레셋과 전쟁, 두 아들이 죽음, 그런데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자빠져 목이 부르져 죽음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자식보다 법궤를 더 귀하게 여김 그런데 이런 엘리를 하나님은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는 말씀과 같이 엘리를 경멸의 반열에 두고 계시다는 겁니다.
처음 하나님 네 집과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약속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본질에서 떠났기 때문, 그러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성격책 - 차에 싫고 다니는 것과 같음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 더딤, 그러나 우리 일, 자기 이득, 자기 목적에는 얼마나 빠른지
하나님은 엘리를 경건의 반열에 두지 않았어요.
존중히 여긴다 - 우리 마음으로 귀하에 여기는 것이 아님. - 본질에 서 있는 것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가까이 하라, 돌아간다, 찾는다, 함께하다 - 이 모든 것은 보다 많은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나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님
돌아오라, 가까이 하라 -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알고 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목적, 목표인 삶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지만 -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일시적 종교의식으로 돌아서는 것으로 문제 해결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 목적, 가 전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배 -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위하여 나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하나님의 임재를,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기 위하는 마음으로 예배로 모여 보십시오.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없는 예배 헛된 예배
사1장11,12 무수한 제물로 예배를 드렸어요 정성을 다해 예배드렸는데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 속에 본질이 없으니.. 헛된예배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가리켜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그들이 얼마나 안식일을 잘 지켰나요,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본질이 없어요. 삶이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예배 -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표, 목적,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님.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는 예배가 참된 예배.
(렘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돈과 정성을 들인 예배 - 그러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 - 왜 본질 가운데 서있지 않기 때문, 하나님이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수단으로서의 예배 - 헛된예배
본질 없는 예배의 특징
1)생명력이 없음
생명력은 신앙의 본질에서만 나옴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면 생명력이 없게됩니다.
(렘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가졌와 드렸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며 달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 내 법을 버렸기 때문에 여기서 버렸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서 있을 때 생명력이 있음 왜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예배가 과연 생명력이 있는 예배인가? 없어요, 왜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
2)형식적임 - 본질이 없으면 형식에 치중하게 됨
형식적인 것은 율법주의에서 나옴.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보다 종교생활에 치중합니다. 형식, 절차, 정성을 강조합니다. 저성의 뒷 배경에는 자기 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외적 모양을 강조.
3)오락의 요소가 증가
예배의 본질이 없으니 예배의 흥을 맞추기 위해, 사람에 맞춤, 분위기 맞추는데 치중
열린예배 - 잘못 적용
4)보편적 메시지
삶의 행복을 제공하는 악세사리
낙하산과 같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 지옥안가는 보증수표
신앙생활 했으니 지옥에는 이제 가지 않을 것이고.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이러한 사람은 말씀으로 해부하는 것을 싫어함. 보편적 메시지를 좋아함.
성경이 말한 진정한 믿음을 작지 못한 모습.
진정한 믿음 - 인격체 이신 하나님께 생명을 거는 것
당시 거짓 선지자 다윗의 나라가 영원하다 이 말씀을 믿고 우리가 망하다니 우리는 절대 안 망한다고 평화 메시지를 전함.
또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 -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이해 못함, 그래서 죽인거예요.
롬11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 남은 자가 영원하다는 것인데도..
예수님께서 사두개인 (마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요즘 성령을 이론적으로 알기 때문에 삶속에 전혀 성령의 역사가 없음
여러분 성경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다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말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을 말함
다림줄과 같이 하나님의 기준이 적나라하게 나타나야 함. 그래서 그 말씀에서 나를 탐사해야 함. 그래야 변화가 일어남.
묵상 -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탐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탐사할 때 말씀 앞에 꼬꾸라집니다. 그래서 탄식, 절망, 실망, 애통하는 이 과정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물면 안되요, 예수님께로 인도가 피요(몽학선생)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주님의 은혜를 절박함을 구함- 이것이 변화되는 과정
예배
신앙의 본질의 토대위에
본질을 구하는 도구
예배를 통하여 본질을 추구하고
본질 가운데 선 사람이 예배 앞으로 나오게 될 때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심
출20:24 “네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홍수가 시작되었고 40일 동안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후 150일을 땅에 창일하다가 노아방주가 7월 17일에 아라랏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1일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고 물이 걷힌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의 신앙을 몇 가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린 사람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노아는 까마귀, 비둘기를 내 보내어 물이 감함을 확인하였고 또 직접 노아의 눈으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경험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창 8: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창 8: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명령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 먼저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행동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2.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린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방주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난 후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가 방주에서 나온 후 제일먼저 행한 것이 무엇인가, 집을 지은 것도, 먹을 양식을 준비한 것도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한 거예요. 여러분! 예배가 무엇인가요?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러니 예배드리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예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신령과 신정으로 예배하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겁니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바로 예배하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은 어둠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떠나가고, 고통과 근심과 걱정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가정은 결코 패함이 없습니다. 아벨이 드린 피의 제사를 드리는 곳마다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노아에게 복을 주셨는데 어떤 복을 주셨는가? (창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회복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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