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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단원 3과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3)

성경공부교재/십자가의복음

by 발의무리 2007. 8. 23. 09:37

본문

 

제10단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제3과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 (3)


4. 세상 사랑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방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세상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세상 사랑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빼내셨습니다. 이제 광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셨던 일은 그들 속에서부터 애굽을 빼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빼내는데는 하루가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서부터 애굽을 빼내는데는 사십 년이 걸렸습니다. 아니 40년이 걸려서도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흩으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속에서부터 애굽을 버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애굽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신체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굽을 그리워하며 회상했습니다.


출애굽기 16:2-3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애굽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출애굽기 16:2-3)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것의 정점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7:39-41을 읽으십시오. 


(사도행전 7:39-41)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행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행위 뒤에는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이 죄의 영향력은 언제까지 계속 되었습니까?(행 7:42 이하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애굽 때문이었습니다. 그 세상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은 모세의 말에 청종하기를 거부하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무서운 사실은 이 세상 사랑으로 인한 우상 숭배와 그 죄의 영향력이 이스라엘이 패망한 그 날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⑴ 오늘날 성도들의 삶 속에 가득한 금송아지


한번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금송아지가 가득한 것을 보이시며, 그것을 인하여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있는 금송아지를 다음과 같이 조명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들이 우리 지체를 누구 혹은 무엇에게 드려 순종하든지 우리는 그것의 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우리 지체를 죄에게 주어 순종하면 죄의 종이요,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려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입니다(롬  6:16).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경배하고 예배를 드릴지 모르지만,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버는데 있어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칙은 간 곳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법칙을 따르면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처럼 여기며, 돈에 관한 한 돈의 법칙만을 따를 뿐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주님이라고 고백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돈 앞에 엎드려, 다시 말해서 금송아지 앞에 엎드려 ‘당신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는 신입니다’라고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과 정확하게 똑같은 일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성도들의 삶 속에 세상 사랑함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오늘날 우리 가운데 팽배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로마서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5. 참다운 순종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3:18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히브리서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시편 106:24-26 참조)

(시편 106:24-26)

24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25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26 이러므로 저가 맹세하시기를 저희로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그것은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불순종과 불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⑴ 불신과 불순종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것이지만, 둘이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려면,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불순종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가데스바네아의 사건에 나옵니다. 민 13:17-14:11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민수기 13:17-33)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남방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19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21 이에 그들이 올라 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25 사십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4:1-11)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신 1:19-21)

(신명기 1:19-21)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에서 발행하여 너희의 본바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신 1:22)

(신명기 1: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정탐꾼들이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민 13:31-14:4)


                                                                      


이번이 그들이 불신하고 불순종한 몇 번째였습니까?(민 14:22)

(민수기 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기로 맹세하십니까?(민 14:23)

(민 14: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가데스바네아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선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에만 의존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드디어 맹세하사 그들을 흩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순종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참다운 믿음도 따라서 참다운 순종도 없습니다.


⑵ 순종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순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이해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만을 구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분노케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길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참으로 순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몰랐던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없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습니까? 이점이 바로 우리들이 이 단원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사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셔도 그것을 전혀 깨달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의 손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3:9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무엇을 보았습니까?


(히브리서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시편 103:7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모세에게는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시 103: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 󰡒�그 행위를󰡓�의 󰡐�행위󰡑�라는 단어는 원래 원어에는 󰡒�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새 번역이나 모든 영어 성경에는 다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행사만을 보여주셨습니까? 다시 말해서, 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구한 것이 오직 하나님의 행사 곧 하나님의 손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다음 과에서 살펴볼 모세의 삶을 보면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구하고, 마실 것이 없을 때 마실 것을 구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을 따름입니다. 자주 그들은 매우 절박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그것들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 어떠한 하나님의 길이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세상에서의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도들의 삶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것과 너무 흡사합니다. 오늘날 그들은 많은 기도를 합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작정 기도, 금식 기도, 다니엘 기도, 여리고 기도, 기도원 특별기도 성회, 릴레이 기도 등. 그리고 입시 때가 되면 큰 교회들은 새벽기도 시간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의 기도는 그들이 세워놓은 목표와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과 역사만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의 삶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나타난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종류의 신앙의 각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목회자들의 기도는 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또한 일반 성도들의 기도와 전혀 다름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기도도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응답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임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⑴ 영혼을 소멸하는 병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들은 영혼을 소멸시키는 무서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06:12-15을 다시 한 번 읽으십시오.


(시편 106:12-15)

12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13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옳은 답에 표 하시오.


  □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 하나님께서 그들이 요청한 것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어떻게 하셨습니까?(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보기 원하셔서 혹은 믿음에 의한 삶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원하셔서 반복적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손만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이 요청한 것을 주셨지만, 동시에 그들의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이 당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아니하고, 불신 가운데 하나님의 손만을 구한 처사를 욕심을 따라 구한 처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라는 말은 영혼을 소멸하는 병을 말합니다. 그래서 NIV나 NASV 영어 성경은 이 구절을 󰡒�a wasting disease(영혼을 소멸하는 병)󰡓�이란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이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이상한 병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의 병은 소뇌가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서서히 걸음이나 언어 등 모든 행동과 움직임이 점점 둔해져 나중에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소멸하는 병은 영적으로 정확하게 바로 그러한 병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우리 영혼은 파리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은 서서히 말라 죽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길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분별력은 점점 상실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눈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결국에는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그 실재가 없는 바리새인들의 삶과 같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13:14-15의 말씀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믿음의 삶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도 불가능해 집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은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4-15)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과의 요점


♡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세상 사랑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에서는 참다운 순종이 없습니다.

♡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손만을 구하는 삶을 살면, 영혼을 소멸하는 병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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