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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시리즈설교/교회회복

by 발의무리 2007. 9. 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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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해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 속에 주되 너희 육신에게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 36: 16-28)

교회회복 시리즈를 오늘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교회회복시리즈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펴보게 하심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흥이 우리 가운데, 열방 가운데, 임해주시도록 하나님께 더 담대하게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속히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이 땅을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부흥을 이곳에서부터 땅 끝까지 보내주시는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전반적으로 첫째는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펴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펴보고,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교회회복과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 이러한 부분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의 질투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쓴 ‘십자가의 복음’ 11단원 2과에 정리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하면 우리에게 용어 그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데,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질투는 아주 소중한 부분 같고, 우리가 간절히 열방하고 사모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 같습니다. 특별히 오늘 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붓고 계신 하나님의 큰 은혜 중의 하나가 저는 하나님의 질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부흥이 예비 되어지고,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부어지는 것은 아주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1]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34장 14절)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가 질투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님의 이름 중에는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여호와 샬롬’ 등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이름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질투’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Jealousy'라고 대문자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질투라는 이름이 얼마큼 중요한가 하면, 십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 하나님의 질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 중에 질투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 중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 중에 하나가 질투고, 그 분의 성품이 또한 질투하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질투의 의미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하나님이 우리 인간처럼 질투하는 분이신가? 그 말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투는 죄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죄의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투에 대해서는 야고보서를 보면 압니다. “너희 가운데 독한 시기, 다툼(개인적인 야망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그 지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 그랬습니다. 우리 가운데 시기질투가 있을 때, 우리가 받았다고 계시나 감동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게 아니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시기나 질투는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의 그림자도 없으신 분인데, 그 하나님이 그 이름 중의 하나가 질투이고, 성품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질투’라는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질투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어떠한 의미로 쓰이는가? ‘하나님의 질투’라는 말은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질투라는 말은 영어로 ‘jealousy’인데, ‘jealousy’ 라고 번역되어야 할 부분이 성경에 많은 경우에 ‘zeal’ 열심이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질투가 하나님에게 쓰여지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우리말 성경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NIV 영어성경에는 ‘I am jealous for you with a godly jealousy."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나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너희를 위하여 질투하노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영어성경에 질투라고 나와 있는 단어를 ‘zeal’ 열심이라고 번역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질투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열심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그것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6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넷째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다섯째는 예수님이고, 여섯째는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보호하신다는 말은 레위기 10장에 보면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술에 취한 가운데 자기들 임의로 행하다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그 즉시 살라 죽이고,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질투를 가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들이 특별히 여섯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 성령님이 그렇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성경 전체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성격 하나님의 명예 이러한 부분을 포함합니다.

1]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구원하심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구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질투로 인하여 구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어떻게 다윗의 집을 축복하셨는가를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전을 짓는 것은 그 아들을 통해서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듣고 다윗이 하나님께 말한 내용이 18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그동안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22절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을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여기서 우리는 뭘 볼 수 있냐면 하나님께서 친히 가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 삼으셨는데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장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 아래 14절까지 읽어 보시면 동일한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들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신 이유도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함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기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그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심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25편 11절,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하소서.”

2]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구원하심
앞으로 나오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가 달려 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하게 될 때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과 멸시를 당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질투를 가지고 계신데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하여 멸시와 조롱을 당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그 차원에서 기도하기를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 죄를 사하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반복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서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때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고, 다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지금 제가 읽고자 하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6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 가운데서 빼내서 하나님이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들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그 목적이 저들로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0장 1-2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들 가운데서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데, 그 목적이 뭐냐? 그들로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 일을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 때도 공통적인 반응은 저들이 감격하고 감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며 치유하신 목적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렇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이사야서 64장 1절에서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게 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여기에 ‘불이 섶을 살랐다’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이 말은 엘리야와 모세의 때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부흥,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신 때를 말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림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열방으로 혹은 주의 백성들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셨습니다.

3]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게 위해서 하심
이사야 64장 3절에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말씀드린 대로 과거의 배경을 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들에게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5-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모세 앞에 강림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세 6 여호와께서 그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배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삼대까지 보응하리라 8 모세가 급히 엎드려 경배하며.” 출애굽기 34장의 이 사건은 모세가 그날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하나님이다. 라는 사실을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관해서 배우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사건은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임하셔서 하나님 자신을 모세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모세가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그 앞에 임하셔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인지가 풍성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서 죄와 형벌은 반드시 자여손 삼사 대까지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뭐냐?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신 목적이 뭐냐?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부흥’책에 보면 부흥은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면 하나님의 선함을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선함은 뭐냐?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오늘 날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 부흥 때는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면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존재가 휩싸여 자기의 죄가 무서워 하나님 앞에서 떨며 땅에 납작 엎드려 중심에서부터 자기 속에 있는 더러움과 죄악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계시하시는 것은 단순한 하나님에 관한 이론적인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계신하시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부흥 때마다 그러한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시하신다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계시하신다는 겁니다.

부흥의 한 예로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의 때,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시력이 너무 나빠서 설교할 때, 촛불을 켜고 돋보기를 바짝 대고 원고를 읽었다고 합니다. 성도들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설교하는 겁니다. 그렇게 설교했는데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임하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니까 사람들이 지옥의 불이 자기 눈앞에 보이니까 기둥을 붙잡고 무서워 벌벌 떨기도 하고, 의자 밑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자기의 죄가 비춰지니까 통곡하고 떼굴떼굴 구르며 엄청나게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공로)로만 자기를 그 지옥에서 건지사 하늘에 들이신 것을 깨닫게 되니까 감격하며 찬양을 불렀고, 또 한편에서는 자기들은 그렇게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받지 못한 자기들의 식구들로 인하여서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부흥 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시는데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단순한 이론적인 진리가 전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비추심과 성령님의 강한 임재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니까 그 영광의 임재 앞에 혹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인격 앞에 사람들은 존재가 사로잡혀 그 앞에 엎드려지는 겁니다. 여기에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이 이처럼 영광으로 임하시는 게 하나님의 부흥인데, 하나님의 부흥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단순한 능력을 강하게 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부분입니다. 단순한 치유를 강하게 나타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시는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름이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왜 영광으로 임하시느냐? 다시 말하면 왜 부흥으로 임하시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하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회복시키십니다. 본문 말씀인 에스겔서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예레미야 시대에 그 나라가 패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폐허가 되고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 에스겔은 그렇게 나라가 패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생활을 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임 받은 사람이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 백성에 대한 회복을 약속하고 계신 부분이 나옵니다. 특별히 하반부로 갈수록, 우리가 읽은 36장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텐데 왜 회복시키시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회복시킬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16절 다시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해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구원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기준에 서지 않고, 우상숭배와 탐심과 탐욕과 죄악 가운데 행하고, 또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촉구하셨지만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여 열국에 흩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중에서 멸시를 당하고 조롱을 당하므로 그 이름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23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을 회복시키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요. 만군의 여호와임을 알리심으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이 열국 중에서 거룩함을 받게 하시겠다 그 말씀입니다. 심지어 이 일은 너희 때문이 아니고 너희를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 때문에 더럽혀진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27절,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 속에 주되 너희 육신에게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 그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렇게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에도 나타나고, 우리를 인도하심에도 나타나고, 우리 죄를 용서하심에도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심에 있어서도 나타나고,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심에도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심에도 나타나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하시는가?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이 부분을 첫 번째 기도의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가지고 계신데, 이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이 부분을 굳이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가라는 겁니다. 그 이유입니다.

3.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교회회복과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

1]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질투를 부어주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 질투를 가지고 계신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질투를 부어주십니다.

2]그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몇 군데 성경구절을 보겠습니다. 민수기 25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으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2장부터 보면,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발락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라고 꼬입니다. 돈에 욕심이 많은 발람이 몇 차례 시도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끝내 허락하시지 않으셔서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발람은 참다운 선지자로 시작했다가 거짓 선지자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타락한 선지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발람을 듭니다. 그 당시에 모압은 풍산 신을 섬겼는데, 그들의 제사행위의 한 부분이 여자와 남자가 음란한 행위를 하므로 그들이 섬기는 남신과 여신이 흥분되어서 성행위를 하면 풍년이 든다는 그러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모압 여인들은 그 신전에서 섬기는 여자 사제들을 말합니다. 결국 미인계에 넘어간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은 그 즉시 그들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고 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꾀를 발람이 발락에게 뇌물을 받고 알려준 겁니다. 이게 지금 민수기 25장의 상황입니다. 2절에 보시면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우상숭배와 음란이 즉각적으로 사단에게 부속되는, 다시 말하면 사단에게 억압을 당하게 되는, 다른 면에서는 하나님의 보호막이 걷히고, 진노가 임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진노가 크게 올라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급속도로 사람들이 염병에 걸려서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해결책을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지금 이런 상황인데도 6절에 보면 저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그래서 죄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경외함을 상실하게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 7절에 보면 비느하스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나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왜 하나님께서 그 맹렬한 진노를 멈추셨는가가 10절부터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2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비느하스 속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질투하여 그렇게 행했다는 겁니다.

다른 한 예를 봅니다. 열왕기상 18장36절입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기도 하고, 그들을 인도하시기도 하고, 그들을 회복시키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부어주시는데, 엘리야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왕상 11:14).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동일한 질투가 엘리야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에 보아도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서 말하면서 저가 비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하나님이 삼년 반 동안 땅에 비를 내리지 않았다고 그랬는데, 거기에 보아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볼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나요. 자기는 위대한 선지자로서 비도 못내리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가요?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아합 왕의 사악한 아내 이세벨이 그 시대에 참 다운 선지자는 다 죽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섬기고 있는 그 시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게 하기 위해서 엘리야가 하늘을 닫아 달라고 기도한 거지요. 그리고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가 제단을 쌓아놓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이 이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매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고 그랬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 이 엘리야 속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질투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 11절을 봅니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맹세하신 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15절,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주 하나님의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합니다. 16-19절 “주여 내가 고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쫓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17 그러하온 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을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그 다음의 그의 기도를 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주의 백성 주의 성읍이오니 주님 자신을 위하여 회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 다니엘 속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되 자기의 의를 의지하여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자지고 나아가되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합니다. 무슨 말인지 보이시지요. 이처럼 다니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기도가 끝난 다음에 20-23절에 보면 “내가 이같이 말하며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 할 때 전에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22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 시작할 즈음에 명령을 내렸으므로 내가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여기보시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사야 64장 6-8절은 이사야의 기도 내용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쇄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였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여호와여 과히 분내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질투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패망하여 열방 가운데 흩어졌으나 자기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 달라고 그의 백성을 향한 주의 질투가 그 속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질투)을 가지고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너희를 정결한 신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려 함이라.” 여기에 보면 바울 속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들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27절입니다. “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의중과 목적을 알게 된 사도 바울은 그 속에 하나님의 교회가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로 중매되어져서 정결한 신부로 드려지기 원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바울 속에 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바울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질투로 인하여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을 기꺼이 허비함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그랬더니 다음 구절에 다윗의 시를 인용하면서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이 저들을 쫓아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당시는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이니까 구약의 제사가 드려지는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원래 목적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기보다 제사를 빙자해 자기들의 배만 챙겼습니다. 이 사건만 보아도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 안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다윗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윗 속에 그러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질투를 부어주시고, 우리가 그 질투를 가지고 기도 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회복되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기를 위해서 시리즈로 살펴보았는데,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에스겔에게 이사야에게 그랬듯이, 다니엘에게 엘리야에게 그랬듯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향한, 혹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 때문에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하나님을 일개 무당보다 못하게 취급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세상 사랑과 탐심과 우상숭배와 거짓신앙 가운데 타락함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실제는 걷히고, 우리에게는 신앙의 이론만 가득하고, 말만 무성해 있습니다. 이러한 타락의 시기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주의 백성, 주의 교회이오니 우리 때문이 아니라 주 자신을 위하여 우리로 인하여 더럽혀진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주 백성을 회복시키소서. 주의 교회를 회복시키소서. 여호와여 주의 부흥을 보내소서. 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 그 기도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처럼 주의 이름을 향한 주님의 질투를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향한 주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들을 인하여서도 아니고, 그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위하여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다니엘과 에스겔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섰듯이,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응답하셨듯이 우리가 교회회복 시리즈를 마치면서 지금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그 하나님의 질투를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사모하고, 주님의 부흥이 이 땅에 임하기를 기다리고, 그 길을 예비하기를 우리가 사모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또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같이 있기를 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의 질투가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에게 바로 그 질투가 부어져서 그가 그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일어나 행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돌이키셨던 것처럼, 그 질투가 에스겔 속에 부어져서 그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천사를 보내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알리셨듯이, 그 질투를 엘리야에게 부으셔서 그 질투를 가지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하늘을 닫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사 응답하셨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질투가 우리 가운데 부어져서 그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예수님을 향한, 성령님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을 방문하시며 우리를 치유하시며 회복시키시는 그러한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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