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회복(19) 새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시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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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와 찬양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회복을 위해 정기적으로 경배와 찬양에 대한 글을 싣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경배(Worship:예배)와 찬양(Praise)에 대해 다룰때, 첫번째로 성경적인 배경을 통해 이에 대한 정의, 그 다음 실제적인 경배와 찬양을 위해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여러 각도로 살피고, 마지막으로 경배와 찬양 사역자들의 실질적인 사역을 돕기 위해 새로운 곡의 작사, 작곡법등을 소개하곤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러한 순서에 의해 소개해 드리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이글을 쓰기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말씀의 감동이 주어져 순종하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우리 모두는 예배자(Worshiper)입니다.
저는 작사, 작곡법을 전공하였거나 음악을 대학에서 배워서 음악적 이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예배인도자(Worship leader)가 되기 위한 조건이 이러한 음악적 배경을 전제로 한다면, 저는 예배인도자로 세워지지도, 그리고 이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예배자(Worshiper)로 부르셨습니다(롬12:1, 고전3:16, 벧전 2:5~6, 계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그러하며(사 43:21),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요 4:23). 우리의 예배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로써 지속적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요 4:23)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때(Now)’는 현재를 가리키는 말로 ‘지금이(Now)’ 우리가 예배할 때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최근 번역한 찬양 중 ‘오라, 지금은 우리가 경배할 때(Come, now is time to worship)’라는 예배 부름의 찬양곡이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하듯이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드리는 회중 예배와 음악을 이용하여 노래를 부르는 예배만으로 우리가 드려야 할 모든 예배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 예배자(The true worshiper).
성경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삶 전체를 드려 예배하였던 예배자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옥합을 가져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옥합을 깨드려 향유를 그 발에 부은 여인(눅 7:36~50).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올 때,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기쁨과 환희로 한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왕의 위엄을 포기한 듯 옷 이 흘러 내릴정도로 춤추며 찬양하였던 다윗(대상 15:25~29).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소유한 가축을 모두 도둑 맞거나 잃고, 자신의 종들 또한 죽고, 집이 무너지고, 그때 자식 또한 그 집더미에 깔려 죽었을 때,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던 욥(욥 1:20).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칠일동안 금식하고 철야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지만, 아이는 결국 죽게 되었고, 그 후에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한 다윗(삼하 12:20).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배자들의 예배 모습입니다. 그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옥합, 왕의 위엄, 전 재산, 자식..등을 깨뜨렸거나, 그것들이 깨졌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였고, 그들의 예배를 바라보는 곱지않은 시선들 즉, 여인이 비싼 옥합을 깨뜨였을때 바리새인과 주위 사람들의 태도, 다윗이 찬양했을때 사울의 딸 미갈의 불평, 고통 가운데 있는 욥에게 대한 그의 아내와 친구들의 말, 다윗이 그의 자식이 죽음에도 불구하고 예배하고 음식을 먹었을때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던 신복들 등등 그 어느 것도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지속적으로(요 4:23) 삶 전체를 드려(롬 12:1),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요 4:23) 참 예배자(The true worshiper)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자들에게 새로운 노래(A new song)가 주어집니다.
이들 중 예배인도자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은 수십편의(73편) 주옥같은 시편(詩篇)들을 지었고, 그것들 대부분이 노래로 불러 졌음을 시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훌륭하게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적 감각과 재능이 얼마나 탁월하고 그 수준이 어느 정도 였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그는 참 예배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중심에서부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이것이 다윗의 시(Psalms of David)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과의 친밀함(Intimacy with God)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리며, 나와 하나님과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face to face) 교제로 이해할 때, 우리는 다윗의 시(詩)처럼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드리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세계적으로 귀하게 쓰임받는 예배인도자들을 통하여 수많은 경배와 찬양 곡들을 접하게 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곡들이 진실로 아름답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데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주께서 내 입에 노래를 두어 그 새노래로 주께 노래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주신 곡이 `주의 사랑(The Lord’s love)’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아셨던지 경배와 찬양시간에 몇번에 걸쳐 새로운 멜로디를 주셨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정리할 때, 가사 또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보통 새로운 곡을 만들 때 수십번의 편곡과 개정 작업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십곡을 지었어도 대부분 사장되거나 그 중 한 두곡만이 교회에서 불리워진다고 합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널리 불리워지려면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 하다고 미국의 예배인도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러더군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찬양을 듣고 받으시는 분이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만족하시면 서툰 솜씨일지라도 자신들만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의미있고, 소중한 것일 겁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경배하자!
그럼, 한가지 새로운 곡을 만드는 저만의 비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선율의 특성, 메세지, 리듬, 반복기술, 노래의 키(조), 화성..등 곡을 만드는데 있어서 알아야 할 이론과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무시하고 만들다가는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만들수 있겠죠. 그러면, 자신이 지은 새로운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픈 모든 사람들이 어느새 이런 것들을 배우고 익혀서 노래를 만들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모든 예배인도자들의 모델인 다윗이 이 모든 것들을 배운후 시편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하나님과의 교제가운데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와 멜로디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담아 드리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배자이며, 성경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했으니깐요. 그래서 말씀드리면, `성령님께 배우세요’ 입니다. 성령님은 이 세상의 최고의 스승이시고, 그분이 모든 것을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하나님이 어떤 찬양과 경배를 원하시는지 너무나도 잘 아시며, 여러분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인내를 가지시고 성령께 민감하며, 특별히 경배와 찬양 시간에 하나님께 새노래로 자신만의 언어와 멜로디를 통하여 주님께 사랑을 고백해 보세요. 처음에는 단음 소리로 한 소리만 계속 나오기도 하지만, 차츰 차츰 성령의 움직이심에 따라가면서 배우게 될 때, 여러분의 입에 천상의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시(詩)와 음(音)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도 그 소리에 놀라 기쁨과 환희로 감격하는 그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잔잔한 사랑 난 느껴요 포근한 사랑 난 느껴요
주사랑 변함없어요 주사랑 영원하지요 주사랑 지금도 계세요
주사랑, 주사랑, 주사랑 난 원해요
‘주의 사랑(The Lord’s love)’의 찬양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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