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회복(21) 예배회복 전체요약
제1단원 신앙의 본질과 예배회복
제1장 / 예배의 본질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신앙의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1)신앙의 본질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2)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
3)본질이 없는 의식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위의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본질을 원하셨습니다.
본질이 없는 의식은 무의미 합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의식으로서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본질을 담을 때 의미가 있게됩니다.
예 - 결혼반지
본질이 없이도 의식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호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우시겠다는데 세 가지 이유 즉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고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의식은 많은데 본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없어도 수많은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이사야1장을 살펴보면 그 당시 무수히 많은 예배와 기도, 헌금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이사야58장은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에 한 차례씩 왕부터 시작하여 전 국민이 금식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예배와 의식들이 아무 소용이 없으며, 부담스럽고 미워하시는 예배라고 하신것입니다. 이처럼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수많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참다운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에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만 나아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로 예배를 드렸다할찌라도 하나님의 신앙의 본질을 모르고 예배를 드렸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은 본질이 없는 예배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예배를 드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복신앙의 방편으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이란? 하나님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수많은 예배를 드릴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위한 수단이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그냥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배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서 구원자이신 것으로 만족하여 예배했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제2장 / 다림줄과 예배
예배의 본질과 의식이 모두 갖추어지기 위해선 하나님의 다림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드리지 않는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은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의 정확한 이해입니다.
예배에 관한 하나님의 기준이 가리워진 것이 문제입니다.
암7:7-8 절에 보면 하나님의 판단은 하나님의 기준인 다림줄에 의해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에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 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그 성경말씀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접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그들이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가져와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하신 것은 관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틀리다는 것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관점이 틀리니 그들 앞에 심판이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3장 / 신령과 진정의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한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
1)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이다.
2)하나님께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3)예배하는 자는 반드시(must) 싱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의 의미
진리로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배하되 하나님을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며 드리는 예배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얼굴울 구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예배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령‘의 의미
1)모든 예배는 성령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2)성령의 조명 가운데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할 때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마땅합니다. 영혼과 마음이 몸과 더불어 하나님께만 집중해야합니다.
3)성령의 나타나심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예배입니다.
제4장 / 경외함과 예배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함(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아닌 것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위해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구약의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와 기름부음이 클수록 더 큰 책임이 요구됩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셨던 그의 축복과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신 것입니다.
3)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그렇게 이루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축복으로의 초청, 초대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믿음과 순종이 포합됩니다.
4)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도 사람을 두려워함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리로 사람들을 인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려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그 예배는 하나님께 올바로 드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인 두려움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럼 종교적인 두려움을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종교심에서 나온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1)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압도되어 그분 앞에서 감격하고 감탄하는 것을 말합니다.
2)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이 너무 소중하기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버리는 자세입니다.
3)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1)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출20:20)
(2)경외함은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합니다(시25:14, 출33:9-10, 잠2:3-5)
(3)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약속이 주어집니다(출34:10)
(4)예수님 안에 거하는 은혜가 있습니다(엡1:3)
(5)진실로 보호하십니다(시34:7, 31:19-20)
(6)모든 좋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시34:9,10)
(7)치유의 광선을 발하십니다(말4:1,2)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
히12:26-29
첫째-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받으시는 예배임을 볼 수 있다.
둘째-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필수임을 볼수 있다.
샛째-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점이다.
1)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의 전형적인 모델이 말라기1:6-14절에 나옵니다. 말라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단순히 흠이 있는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경외함이 없기에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를 드린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2)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는 부흥을 위해 필수입니다.
하나니님의 부흥을 위해서 예배는 반드시 회복되어야합니다. 히12L26-29까지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위해 시내산에 영광으로 임하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우리 시대에 임하실텐데 이유는 흔들기 위함이시며 흔드시는 목적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세우시기 위하여입니다.
여기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아야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3)경외함이 없는 예배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말2:8,9절과 히12:29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제5장 / 친밀함과 예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성경의 표현
1)무소부재라는 표현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2)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으로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때 함께하시겠 말씀하셨습니다.
3)왕의 신분으로 왕의 통치권과 왕의 권세로 임하시겠다는 애기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함께하심입니다.
따라서 예배가 예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친밀함이람?
1)자신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
2)깊은 자신의 마음을 보이는 것
3)가장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4)항상 서로 교감하는 것
찬양과 경배에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서는 가사의 직접화법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하여 하나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 시간에 필여한 요소로는 경배와 말씀, 중보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단원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
제6장 / 찬양과 경배로서의 예배
찬양과 경배는 최고 형태의 예배입니다. 고전14:26에서는 초대교회 예배에는 찬양과 말씀 그리고 성령의 사역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상경이 말하는 예배는 인격체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되 찬양, 말씀, 성령의 시역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개념을 통해 찬양과 경배를 본다면 찬양과 경배는 성경이 말하는 예배 그 자체이며, 찬양과 경배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 형태의 예배입니다. 뿐만 아니라 찬양과 경배는 오직 하나님 영광만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계시나 기쁨이 예배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찬양과 경배의 유일한 목적은 하난미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찬양인도자기 먼저 경배해야합니다. 찬양인도자는 연주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직접화법으로 부르는 찬양과 경배의 중요성을 알아야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므로 찬양이 하나님께 향해야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직접화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새노래로 찬양하는 일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와 때에 맞추어 하나님께서 주신시는 대로 찬양의 의미를 더욱 살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찬양과 경배는 모두가 배워야 할 가장 증요한 제자도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찬양의 의미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를 가장 우선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7장 / 찬양과 경배의 방법
찬사 -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놀라운 이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기뻐함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하여 하나님 그분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좋아 어쩔줄을 몰라 하며 바지가 벗겨지는 줄도 잊은 채 즐거움으로 춤을 추며 망가졌던 다윗의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찬양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찬양의 삶에서 자라가야합니다. 찬양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찬양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제8장 찬양과 경배의 자세
마음을 하는 자세
마음을 다하는 이유는 예배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해 찬양을 드림에 있어서 중요한 한가지는 가사 하나 하나에 우리의 온 마음을 다 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의 자세
시24:1-6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즉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구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가는 자는 거룩해야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드릴때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삶이 예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찬양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사는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삶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9장 / 찬양과 경배의 표현
엎드려 절하며
시138. 95, 계19:4에서 “경배하며” 의 뜻은 “엎드려 절하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록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엎드려 절할 때 마음으로 먼저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실어서 표현하게 될 때 그 행동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손을들고
딤전2:8, 렘3:41 “거룩한 손들 들어” “마음과 손을 아룰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처럼 우리는 회개하는 자세로, 가슴을 찢는 자세로, 하나님을 높이는 자세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손들 들고 찬양해야합니다.
춤을추며
출15:19-21에 미리암과 몇몇여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삼하에보면 다윗이 기뻐 춤추던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인식한다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해서 기쁨으로 춤을 추게될것입니다.
손뼉을 치며
시47:1,2 하나님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 속에 넘치게 될 때 우리들은 전심으로 손뼉도 치고, 손을 들기도 하며, 여러 가지 표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며
시150:3-5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악기 연주 소리에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감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악기 연주와 함께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을 쉽게 열 수 있고 마음을 담아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대하15장에서 악기 연주자들을 선택하여 연주하게끔 한 것을 보면 선명히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악기 연주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어서서
대하7:6에서 일어서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찬양을 시작할 때 서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 일어나는 일들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약4:8) 이말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사랑과 지식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10장 / 찬양과 경배의 단계
이 단계로 찬양할 때 하나님의 임재 속에 물흐르듯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단계의 중요성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함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1단계: 경배로의 부름(초청)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고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즉 경배로의 초청하는 초청의 단계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간접화법도 무난합니다.
2단계: 경배로 들어감
성도들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단계입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 연결되어지는 역동적인 단계입니다. 하나님과 개인이 만나며 또 하나님을 만나는 토대 위에 성도와 성도가 만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에는 찬양과 경배, 회개, 중보기도, 간구, 일반적인 사랑의 고백들이 나옵니다. 이 단계에서는 직접화법이 중요합니다.
3단계: 친말한 사랑을 고백하는 단계
3단계는 경배의 절정에 이르는 단계로 친밀한 사랑을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찬양과 경배의 목적과 목표가 성취됩니다. 즉 친밀함이 열리고 그 관계속에 있게 됩니다.
4단계: 주님 앞에서 기다리며 주님의 방문을 맞이하는 단계
우리가 주님의 방문을 위해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면 주님은 반드시 방문해 오십니다.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십니다.
5단계: 헌신의 단계
하나님이 방문해 오셔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헌금순서가 여기에 포합됩니다.
이상과 같은 단계에 의해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과 친밀함’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3단원 찬양과 경배의 교회접목
제11장 / 가치관의 접목
찬양과 경배의 가치는 성경적 가치관과 일치해야합니다.
성경적 가치관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되 찬양과 경배를 받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한 목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구합니다.
우리는 경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구하는 가치관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찬양과 경배에는 본질을 담을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전 회중이 모두 경배에 참여하게 하는 가치관으로 찬양과 경배를 해야합니다.
계5:11-14에 모든 생명들이 다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을 조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왕상18:25-28에보면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이 응답이 없자 자기 몸을 상하게 합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찬양과 경배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진실성과 정직성의 가치관을 가지고 경배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진실성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신앙이 제대로 서지 못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면서 필수 중의 필수 사안이 정직과 진실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어떠한 변화도 없습니다.
찬양과 경배에 있어서도 그 바탕은 정직과 진실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인도 가운데서, 성령의 인도 가운데서 행해져야 합니다.
성령님의 나타남을 환영하는 가치관으로 경배해야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주인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면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인도해 가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상과 같은 가치관으로 교회에 찬양과 경배가 접목되어 간다면 분명히 성령의 놀라운 임재 가운데 예배가 회복될 것입니다.
제12장 / 찬양과 경배의 접목
우리나라와 같이 율법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전통을 강조하는 실정에서 찬양과 경배를 교회에 접목하는 일은 쉽지않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려면 십자가의 복음이 같이 가야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려면 실제로 주님을 아는 이상 경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일은 예배의 회복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경배는 생물과도 같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복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경배가 자라질 못합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십자가의 복음을 줄기차게 전하고 가르처야합니다. 또한 인내와 간증이 필요합니다. 계속 가르치고 전하면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열매가 맺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자꾸 자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찬양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제13장 / 예배 인도자의 발굴
예배 인도자의 발굴을 샆피기 전에 예배인도에 대한 이해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배인도의 이해
예배인도가 아닌 것
1)예배의 목적으로 모이지 않고 음악적인 이유이든 다른 이유에서든지 회중들을 위하여 복음성가를 인도하거나, 친교를 목적으로 모여 복음성가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싱오 롱’ ‘문학의 밤’ 과 같이 예배 목적 이외의 시간에서 이를 인도하는 것은 예배인도가 아닙니다.
2)예배로 모이고 예배를 위한 찬양을 부룰지라도 사람들이 찬양을 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잘 격려해주는 것 역시 예배 인도가 아닙니다.
3)인도자 자신은 앞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사람들이 함께 예배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배인도자는 본인이 예배할 뿐만이 아니라 회중들도 예배 가운데 들어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4)예배가 공연처럼 기획되어 사람들이 부담없이 구경하고 즐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배인도자
1)예배인도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예배로 이끄는 인도자입니다.
2)예배인도자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예배인도자의 필여한 자질을 보면 1)예배와 예배음악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고, 2)성령의 기름불음이고 3)예배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3)예배인도자는 말 그대로 예배 인도자입니다.
성령님은 예배를 인도해 가실 때 에배인도자를 통해 예배를 인도해 가십니다.
4)예배인도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자입니다.
5)예배인도자는 회중들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예배인도자언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지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7)예배인도 있어서 영적인 준비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켜야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동기와 생각을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중들을 위해서 회중들을 어떻게 인도해 가시고, 인도자를 어떻게 인도하시 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8)예배인도는 혼자 하는 것보다 예배 팀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9)자유함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자유함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해야합니다.
워십리더 발굴
1)하나님 경외하기를 열망하는 사람을 골라야합니다.
2)경배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골라야합니다.
열심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찬양이 너무좋아 찬양을 하는자 이런자가 진실로 찬양자요 경배자입니다.
3)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 임무가 아니라 주를 섬기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4)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어야합니다.
리더를 세우는 원칙
1)천천히 세워야합니다 -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점차적으로 세워야합니다 - 처음엔 기타를 치는 것부터
3)목회 비전을 이해하는 사람을 세워야합니다 -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비전을 이해하고 그 비전을 보고 기꺼이 동참하기를 원하는 자를 세워야합니다.
4)충성심이 있는 자여야 합니다 - 주를 위한 충성
5)상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세워야합니다 - 하나님의 일을 성령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6)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세워야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앞에 비추어지고 지도자를 통해 말씀이 비추어지면 그것을 새로운 각오로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7)신뢰 할만 해야 합니다.
8)증명된 실즉 즉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9)가족을 돌보는 자가 되아야 합니다.
10)자기 행위에 책임질 줄 아는 자이야야 합니다.
11)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12) 팀 플래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꾼들이 발견되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사람은 자신이 세워지건 세워지지 않건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자입니다.
제14장 / 워십팀 만들기
팀사역의 중요성
예배의 주관자는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민감하여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닌 팀으로 이루어져 여러 사람들이 제 역할에 의해 성령님께 민감하여 협력한다면 예배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워십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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