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나의 소중한 가족
엡5:22, 25, 6:1, 4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일낮에 관계중심전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사랑의 동심원 한 가운데 있는 내 자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갖는 관계 내가 다른 사람과 갖는 관계가 핵심입니다.
오늘은 직계가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직계가족에는 배우자 자녀 혹은 한 집에 같이 사는 부모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1.가족의 필요를 채우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되 가족이라는 학교에 먼저 두셨습니다. 거기서 공통적으로 배우는 것이 관계입니다. 한번은 신학대학원에서 학생이 울다시피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교수님 저는 진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도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고 주를 위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히브리서 헬라어 공부하는 것들이 너무 힘듭니다. 그러면서 울다시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을 통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충실하게 받았더라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아주 소중한 도구들을 배우는 신학교 과정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교육을 소홀이 하다보니까 정작 하나님을 위해서 배우는 소중한 교육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고 힘든 것입니다.
이와 정확하게 똑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해서 가장 먼저 어디에 두셨느냐면 가정에 두셨습니다. 가정이라는 곳에 두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핵심적인 내용이 관계입니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도하신 것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정작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 할 때 그 일이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가정에서부터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데 이것은 전도에 있어서도 가장 필수요 핵심입니다.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나의 가족의 필요를 채우도록 내 자신을 드리지 않는다면 나의 전도는 위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도 별로 원치 않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먼 곳에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냐면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느냐면 가족의 필요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아내와 남편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미워하라고 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아내를 별로 사랑하지 않아요? 자기의 고민이 무엇이냐면 진작 가족들을 버리고 주의 일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 고민입니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구절들이 지금 말한 구절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해할 때 이런 구절들을 그것은 주님의 제자들 다시말하면 목회자들처럼 풀타임사역자들을 위한 구절이라고 하면서 보통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전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성경을 균형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내나 남편이나 부모나 자녀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미워하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 다른 곳에서 오늘 본문만 보아도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고 아내들에게도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베드로전서 3:7절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힐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정확하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두 가지가 정확하게 같이 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모 자식 남편 아내 가장 가까운 가족을 미워하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우리 사랑을 비교해볼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 미움이 될만큼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목표가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가족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나누어진 마음이 우상숭배이듯이 우리의 초점이 나나 가족이나 돈이나 세상에 주어져서 하나님과 그것들이 경쟁하게 될 때 그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면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사랑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가장 우리의 값진 진주가 되라 보화가 되라 하나님이 우리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삶의 최우선이 되라 심지어 하나님 앞에 내 자신과 가족도 내려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조건으로 가족을 아내를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이 과정에서 우리가 계속 살펴보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뿐아니라 이웃과 관계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조건과 방법으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조건과 방법으로만 관계를 형성할 때 그 관계가 온전하고 그곳에 생명이 넘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조건과 방법으로 관계를 할려면 내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셔야 합니다. 그 말은 바꿔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하나님의 방법과 조건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정확하게 같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중심적인 삶 하나님이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야 올바른 신앙이고 그 토대위에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되 전도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 하나님이 나를 통해 내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시도록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순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l
사실 저 자신이 이 부분을 살펴볼 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사실 이 앞에서 설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날마다 묻는답니다. 내 아내 케롤린에 대한 날마다의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내의 삶 속에서 들어오게 하십니다. 혹은 남편의 삶 속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내에 대한 남편에 대한 나의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방법을 수락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채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탐슨박사 같은 경우에 아내 캐롤린 딸 모친이 있었는데 다 예수 잘 믿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지금 가족들이 다 예수 잘 믿는데 지금 전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지금 이것이 무슨 상관이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두 번째 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원 7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생활양식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으로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생활양식인데 이 생활양식은 구원받은 자들 뿐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만 하더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묻는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 아내의 필요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항상 거창한 것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거창한 것도 포함되지만 어떨 때는 단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을 쇼핑하기 좋아하잖아요. 남편과 함께 가기를 좋아하고 같이 있기를 좋아합니다. 쇼핑텐터를 가면 이쪽에서 저쪽까지 여섯 번은 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경우는 제일 처음에 들른 가게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것을 진짜 싫어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은 들으면서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신대원에 다닐 때 무척 바쁘지요. 아내도 아내대로 바쁩니다. 공부가 적지 않지요. 그러니까 시장을 가지요. 일주일에 한번씩 갑니다. 가서 한 시간이 지나면 저는 성질내기 시작합니다. 제 아내는 모처럼 남편과 함께 나왔잖아요. 일주일동안 먹을 것이니까 살 것도 많은건데 아무거나 사는 것이 아니고 싸고 좋은 것을 사려고 하니까 이것저것을 비교해보지요. 그러면 저는 한 시간만 지나만 짜증을 내기 시작하지요. 제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는가요. 지금도 별로 태도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서구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남자로서 가벼운 체통 없는,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때로는 목적을 위해서는 가정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서구적인 관점이라기 보다는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의 가치관들은 우리나라가 먹고살기 힘들 때는 우선 먹는 것이 급해서 그것 별로 신경 쓸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살만하니까 그 가치관의 부정적인 태도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뀌어야 합니다.
2.그리스도인의 결혼
모든 관계가 다 자기 방법 자기 자원으로 될 때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의 본질이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가지고 있는 습관이나 태도입니다. 그래서 결혼만 해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혼하자 이런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팽배해있습니다. 미국만 해도 세계에서 이혼률이 가장 높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습니다. 왜? 자기 중심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이란 내가 먼저 내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것이 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따르려면 자신이나 가족들까지 미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중심적인 하나님이 목적된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우리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삶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그리스도께 헌신했기 때문에 그분의 기준과 방법을 따라 남편에게 아내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내 자신을 그리스도께 먼저 헌신했기 때문에 그분의 조건을 따라서 그분의 사랑으로 상대방을 아내를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부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본문으로 네 구절을 읽었습니다. 거기보면 하나님이 남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고 아내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고 부모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고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네 구절을 읽었느냐면 남편에 대한 말씀은 남편에게 주신 것이고 아내에 대한 말씀은 아내에게 주신 말씀이고 부모에 대한 말씀은 부모에게 주신 말씀이고 자녀에 대한 말씀은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상대방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들이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먼저 그렇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탐슨박사가 전도학을 강의하는데 한번은 두 번째 시간이 끝났는데 신학생 부인이 와서 말하더랍니다. 제 남편이 한 과목 때문에 실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낮에 일을 합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밥을 하고 저녁에 오는데 남편이 좀 데려다 주었으면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수업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뒤에서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는 말씀이 메아리처럼 들려왔습니다. 들어가 보았더니 남편이 쇼파에 앉아서 길게 누워서 텔레비전에서 미식축구를 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여보 아이들 씻겨서 잠재우지 하더랍니다. 집안을 보니까 먹고 남은 것이 식탁에 가득하고 집이 온통 아수라장인데 자기는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서 그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순간 올라오지요. 자기는 도저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요. 그런데 오늘 배운 것이 있잖아요.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는 말씀이 메아리쳐서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남편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결단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래요 오늘 하루 종일 아이들이 보고 싶었었는데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나더랍니다. 벌써 남편이 아이들을 씻겼더랍니다. 그러면서 타올로 닦아주어요 내가 씻길테니까. 그러면서 둘째를 씻기더랍니다. 그 신학생 아내가 교수님에게 하는 말이 그렇지 않아도 남편과 갈등이 있어서 많이 긴장상태에 있었는데 그렇게 하고 났더니 남편에게 긍정적이고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책임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내가 드려지는 것입니다고 말하더랍니다.
내 자신부터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시도록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방법과 조건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3.아이들의 필요를 채움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제가 한번은요. 제가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만 시골에서 나오고 서울에서 친척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제가 나중에 목회를 하는데 하루는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그것을 비추셨어요. 제가 그분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어요. 그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더라고요. 그것이 비추어지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비추냐면 내적치유로 모든 어린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그리고 그 필요를 채움받아야 할 권리를 가진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비추셔요. 나를 도왔던 그분들도 그런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을 통해서 필요를 채움받았던 분들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권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딱 비추어지면서 엄청난 자유함과 함께 제 등에서 짐이 내려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 마음 속에 어떤 것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하나님이 어떤 가정에 자녀들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보호받고 양육받고 가르침을 받도록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거기에 두십니다. 어른들인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다른 분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필요를 채움받았습니다. 부모로서 중요한 한 가지는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욕구를 채우는 것과 필요를 채우는 것은 다릅니다. 자녀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는 것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제가 이런 분도 보았습니다. 목회자인데 교회가 거의 성도가 없어요.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랍니다. 일도 두 분 다 안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지 말라고 했다나요. 자녀들이 먹을 것도 없고 학교도 잘 못다니고 학교에서도 돈을 내라고 그러니까 맨날 선생님에게 불려가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울 수 없습니다. 부모들이 마땅히 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부모가 자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해야할 한 가지는 자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아버지들이여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에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가 무엇인바를 알아야 합니다. 때때로 그들의 필요에 대해서 우리가 느끼는 바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들으십시오. 십대는 사랑을 추구하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빠 엄마들이 그들이 경험하는 것과 그들의 필요를 알아주기를 정말 갈망하는 것입니다.
또 해야할 것은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부모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자녀들의 필요를 보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그런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한번은 신학교에서 신학교 학생을 위해서 기도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13살난 아들이 하나님을 모를 뿐아니라 부모를 거역하고 방탕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같이 모여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할 뿐아니라 동시에 그 아빠가 아들이 필요로 하는 인격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아빠가 아들의 필요를 보고 그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우리가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부모가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3개월 후에 기도받은 신학생이 간증하는 것입니다.
어제밤의 일이었어요. 한밤중에 아들이 자기 침실로 뛰어왔습니다. 달려오면서 울면서 영어로 나는 잃어버린 아이여요 하면서 울더랍니다. 아빠가 대단한 영적 분별력이지요. 무슨 소리야 아빠 엄마는 네 곁에 있고 너는 집에 있잖아! 잃어버리기는 그랬데요. 그러니까 아들이 그것이 아니고요 아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아이여요. 저는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거역했고 구원받지 못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쳤어요. 그때서야 깨닫고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거듭난 것입니다.
제 아내가 지방에 훈련원 때문에 다녀오다가 고속버스에서 텔레비전이 나오는데 자막이 나오는데 아이가 아주 반항적인 아이어요. 그 아이를 상담하는데 상담하는 분이 아이에게 문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문제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마이크를 연결해서 아이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때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는 가를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뒤에서 보면서 이어폰으로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십시오하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했더니 불과 며칠만에 아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부모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경청할 뿐아니라 기도하되 자기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부모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필요를 알게 해주시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또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님 학교 선생님 아이들의 친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아이들을 훈련시켜서 그들도 상대방의 필요를 보고 채우는 삶을 살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가정이라는 기본적인 훈련소에 집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훈련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여기서 훈련되지 않으면 어디서 훈련되겠습니까? 특히 자녀들의 경우 여기서 훈련되어야 나중에 하나님이 쓰고자 하실 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훈련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지 못하고 혹은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환경과 사람을 관계를 통해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빚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고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훈련의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에서도 핵심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훈련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부모가 아이들의 필요를 채울 뿐아니라 아이들도 상대방의 필요를 보고 채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필요한 것을 주지 부모가 원하는 것을 줍니다. 또 저들에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아서 오늘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들로 자라납니다. 배타적인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지 않을 뿐아니라 진정한 이웃과의 관계도 전혀 옳지 않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너무나 심각합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자라난 아이들이 어떻게 장차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겠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올바른 관계를 하는 법을 모르는데요.
어떨 때는 부유한 환경만 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최근에 사택이 이사했잖아요. 가까운 데로. 그러면서 아이들이 큰 아이가 외국에 나가있고 둘째와 셋째가 앞으로 장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등치도 크고 해서 아이들의 방이 필요해서 아이들에게 방 하나씩 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또 어머니가 계시니까 그래서 방이 네 개입니다. 방 세 개짜리와 다행히 전세금이 같아서 조금 안쪽으로 가서 집을 얻어 이사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넓어서 편한 것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 처음부터 이렇게 넓은 곳에서 살았다면 안좋은 것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분당에 있을 때 일반주택에 방 세 개짜리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렸을 때는 싱글 침대에서 둘이 잤는데 이제는 하나는 위에 하나는 아래에 잤습니다. 그것이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주 친합니다. 아주 친구처럼 지내요. 비밀 이야기가 없을 만큼 아주 친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이들이 좋은 환경은 주어졌을지 모르지만 따로 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친한 관계가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는 좋은 환경만 주어진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거기에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을 아이들이 배우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전도를 살펴봄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직계가족부터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의 내 부모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조건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한 마디만 읽고 마치겠습니다.
탐슨 박사는 경고의 말씀이하면서 다음의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당신에게 관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들이여 이 점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밑줄을 그어놓고 꼭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결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조건을 수락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다른 인간도 당신의 배우자보다 당신에게 더 가까운 사람은 없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당신이 친한 친구나 친척을 당신의 배우자보다 더 가까이 한다면 당신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인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떠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이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는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 채우는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부터 시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가정에서부터 먼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귀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되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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