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당신의 세계를 취하라
롬13:8-10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관계중심전도에 대해 시리즈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당신의 세계를 취하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랑의 동심원에 속한 사람들을 조사해야 한다 자세하게 라는 것을 지난주부터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각자의 나의 예루살렘 나의 유대 나의 사마리아 나의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멀리까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리적인 면보다 관계적인 면에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은 지리적인 영역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아도 예루살렘 내에서도 복음이 전파될 때 그 다음 옆집 그 다음 집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복음이 건너갔습니다. 우리도 관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장 먼 곳까지 중심의 나부터 시작해서 원7에 해당되는 x에 이르기까지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내 자신의 땅끝까지 우리가 거기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양식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셔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원7에 속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원 2에 속하는 가족일 수 있고 또 다른 성도에게는 원3에 속하는 친지와 친척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속한 원5에 속한 직장동료가 다른 사람에게는 원4에 속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각 성도들이 자신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자신의 땅끝까지 사랑의 동심원안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전도하면 우리 각자가 이렇게 하면 온 세계가 다 카바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우리에게 속한 세계를 예수님을 위해서 취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런 것들도 필요합니다. 제가 이런 짓 잘 안하는데 때로는 필요합니다. 오른 손을 드십시오. 따라합시다.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세계를 취하자’. 아멘. 손 내리십시오. 좀 어색하지요. 뭔가.
1.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라.
우리가 지금 이제 각 사랑의 동심원 안에 속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살펴보고 있는데 원6은 아는 사람이라고 써있지요.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집에 우유를 배달하는 아주머니 신문을 배달하는 분들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는 경비아저씨들 식당에 자주가는 식당 종업원들 이런 분들이 이 원6에 속하는 아는 사람의 범주에 속합니다. 이분들 하나 하나도 다 조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전에 내 가족 내 친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원6에 속하는 피상적인 사람들도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아파트의 경비아저씨의 이름표는 장식품으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종업원을 부를 때도 어 이봐 이렇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든지 그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필요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인정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해서 그 사람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그 사람을 그의 존재를 가치 있게 여길 뿐아니라 그 이름을 기억할 만큼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른다는 것이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부르실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예배시간에 예배를 잘 못드렸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서요. 2부예배때도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이런 부분을 잘 못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나는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데요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으면 이름을 알기 원할 것이고 기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어제 중고등학생 두 명을 기도해주었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저도 이 부분을 잘해보려고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그 둘 중에서 한 아이만 생각나는 것 있지요. 그래서 주소록을 보고 다시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 교회 다닙니다. 우리교회는 몇 백명 수준입니다. 여러분들 주위에 앉아있는 성도님들 이름을 아십니까?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아까 광고시간에 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들은 지나가는 하나의 리스트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좀 제가 이름표를 붙였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면 해요. 이름을 알고 왜냐하면 이름을 알고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럴 때 상대방의 필요가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 필요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해가면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가면서 상대방의 필요가 눈에 보이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원으로 채워가면서 그때 우리가 주님을 닮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삶의 양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반드시 이름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포도나무 교회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많이 더해져서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귀한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아이들 이름 모르시지요. 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니까요. 오늘도 지나가면서 제가 얼굴은 압니다. 누구의 자녀인 것도 압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요. 예전 같았으면 듣고도 잊어버렸을 것인데 관심을 가지고 외우려고 하니까 지금까지라도 최소한 그 아이 이름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2.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헌신과 사랑이 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동심원안에 보내주신 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필요를 채움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새롭고 집중적인 헌신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사실 타락한 인생의 본성이 자기중심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자기중심적인 삼을 살면 그것이 타락한 삶이라고 수없이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삶은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면 모든 것이 나 나를 위해 내게 내것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는 관계를 해도 자기목적을 위해서 합니다. 이 사람을 사귀어두면 나중에 내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이 사람을 알아두면 나중에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이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내게 유익이 될 것 같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관계를 갖습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게 되면 자기목적이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게 유익한 내 목적에 부합한 내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만 찾을 뿐입니다. 메시지도 사람 사귀는 것도 모든 일도.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필요를 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삶의 양식으로 삼으려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날 대예배시간에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말하느냐 그렇게도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냐. 그리고 이런 시리즈를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 하찮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 하나님의 부흥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그럴듯한데 주일날 대예배 시간에 이것이 뭐냐고 그럴 수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계 중 하나는 형제를 이웃을 다시말해 사랑의 동심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증거요 열매입니다.
우리가 이런 동심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틀린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왜 읽었는지 아십니까? 로마서 13장을 보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계명이든지 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는 대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첫 번째 계명이 없습니다. 첫 번째 계명이 없이 두 번째 계명만 언급하면서 그 계명 속에 모든 율법이 다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미 들어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그동안 신앙의 본질을 추구해왔습니다. 지금도 추구하고 있고 앞으로도 추구할 것입니다. 인격체되신 하나님을 알고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삶 우리의 유일한 목적된 삶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우리의 관계의 동심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며 추구한다 하면서 이렇게 우리의 관계의 사랑의 동심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관계의 동심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의 핵심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새로운 집중된 사랑이 있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관계의 동심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적이어서 다 자기위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목적을 위해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동심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로 사랑하는 삶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이 당신의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우리 주님께 대한 온전하고 새로운 집중된 사랑을 해야한다고 일깨워드리기 원합니다. 당신과 나는 더욱더 자신을 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위주가 아니라 자기를 잊고 예수님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는 삶을 살아야 우리는 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암으로 돌아가신 분인데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나셔서 수년 동안을 미군 전역에서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받고 재발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죽음에 거의 도달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한 가지 잊지 못할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요.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저 오래 살기만을 원하시니까? 아니면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알차고 보람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3.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과 순종 가운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사람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들여보내실 것입니다.
원7이 사람 X입니다. 이런 분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길거리만 가도 버스만 타도 지하철만 타도 수없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누구를 사랑하며 섬기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원7에 속하는 사람X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보내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보내시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내려놓고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어져서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고 자기를 더욱 잊는 삶 상대방의 필요를 알고 채우기를 원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우리 삶에 보내실 것입니다. 거룩한 자석처럼 보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뿐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면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석처럼.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DIVINE APPOINTMENT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정이라고 하지요.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를 가지요. 원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로 안지나가는데 그곳으로 지나가다가 사마리아여인을 만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물길러 오는 시간이 아닌 정오 시간에 오는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 변화고 그를 통해 수가성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오지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치는 상황속에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리였습니다.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날 그가 구원을 받지요. 근본적으로 삶이 변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교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우리들 삶 속에. 언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삶 속에 올지 모릅니다.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필요를 아시고 때를 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 보내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삶을 살고자 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주시하여 보면서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사용하세요 하면서 사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책 72쪽에 보면 오스카 탐슨 박사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들 중에 어떨 때는 저는 제 주위에 잃은 영혼을 만날 수 없는데요 하고 말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다 믿는 사람들만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한답니다. 자네는 자네의 영적인 온도를 재보아야할 필요가 있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그렇게 사랑하고자 하는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 삶 속에 사람들을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내가 지금 올바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보라는 말이지요. 너무나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사람X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우리 자신에서부터 7번인 사람X까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믿은 사람들도 우리는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알고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우는 것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런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보내셔서 사랑하게 하실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을 전하는 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오스카 탐슨 박사의 이야기를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당신의 원7안으로 데리고 오실 때 그들은 거기에 잠깐 동안 있다가 혜성처럼 지나갈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그들을 거기에 두십니다. 당신은 그들을 또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포착해서 이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약속합니다. 그것처럼 우리 속에서부터 하나님의 성령께서 생명이 흘러나게 해서 그 사람을 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는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보고 채운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어제 오이코스 리더 인턴리더 모임이 있었습니다. 한분이 오이코스에 대해 보고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어려운 지역에서 오이코스를 섬깁니다. 그 지역에는 전도대상자들이 많아요. 그 전도대상자들이 쉽지 않은 분들입니다. 술도 마시고 책임감도 없고 자기주장이 너무나 강하고 그래요.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보편적인 관점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안될 만큼 심한 이런 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려 하니까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섬기면서 무엇을 보았느냐면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가 안될 만큼인 사람이면서도 자기 속에서는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자기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아주기를 원하는 열망이 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리더가 그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삶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처한 입장에서 이해해주면서 들어가기 시작했더니 그들 한분 한분이 아직 주께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오이코스 내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는데 한 가지 부분은 이런 것들입니다.
4.하나님의 움직이심을 보면 삶을 조정하여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지나가실 때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만졌을 때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다가 멈춰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묻지요. 그랬더니 여인이 자기의 행한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이 여인처럼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바뀌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렇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되려면 이런 자세를 가지고 나가되 하나님이 일하실 때 삶을 조정해서 그곳에 같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거기에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그 사람들을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극적인 예가 책에 나옵니다. 라디오 무선통신을 많이 하나봅니다. 하루는 휴스턴에서 자기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아내 캐롤린과 딸과 같이 갑니다. 밤이 늦었는데 라디오를 켜놓고 교신을 합니다. 목사라고 하지 않고 젤리 빈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록키 마운틴과 이야기를 한참 했어요. 이야기하는 가운데 어디로 가냐고 하자 센안토니오로 간다고 하더랍니다. 자기와 같은 방향이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한참 이야기하다가 잠잠했어요. 그런데 록키 마운틴이 갑자기 말하더래요. 젤리 빈 나는 사실 산 안토니오로 가는데 목회자를 만나러 갑니다. 만약 그 설교자가 나를 도와줄 수 없으면 저는 곧장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자살 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자 뒤에서 딸이 듣고 있다가 아빠 뭐라고 했어요 묻습니다. 그러자 탐슨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친구여 당신이 믿기 어렵겠지만 젤리 빈이라는 내가 바로 설교자입니다. 그래서 그 두 분들이 다음 휴게소에서 만났고 예수님을 20분 동안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분이 구원받고 인생을 새롭게 산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도 이런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딱 맞추는 것처럼 되냐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하는 자세와 하나님중심적으로 자신을 잊고 상대방을 보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필요가 있는 자들을 여러분의 삶 속에 보내십니다. 그래서 치유하시기도 하시고 온전케 하시기도 하시고 거듭나게 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 보아도 빌이라는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분은 회사의 공장 총감독입니다. 회사에서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라는 설교를 들었어요. 그런데 그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해보았답니다. 자기를 왜 그 회사에 보냈는지 자기를 왜 그 감독 자리에 있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저 그냥 열심히 노력해서 승진하면 되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예수믿는 사람들 몇 명 모아놓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회개하고 이 회사내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 주시하여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동참하십다고 기도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한 사람이 찾아온 것입니다. 저 요즘 죽을 것만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요즘 십대인 아이들 때문에 참으로 힘듭니다. 옛날 같으면 그냥 무시했을 것인데 그 말을 듣자 시간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분은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주님을 떠났으며 지금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계기가 되어 그를 찾아왔고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사람들을 보내실 때 사람X를 보내실 때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보아야할 뿐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이 보이며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하면 그 분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혜성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놓쳐버립니다. 따라서 삶을 조정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면서 아까 록키 마운틴 이야기하면서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을 당신에게로 이끌어오실 것입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무심하다고 느낍니다. 나는 록키 마운틴을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나의 생활에 들어왔다가 혜성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사람X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들에 대해 책임을 담당시킵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마리아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가장 먼 곳도 관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각각에 대해서 물어보실 것입니다. 너는 그 영역에서 무엇을 했느냐? 저와 여러분이 이 시리즈를 통해서 우리의 관계의 동심원안에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그들이 예수를 믿건 안믿건 사랑하고 그들에게 안믿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원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은 삶의 양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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