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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타락의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삶

성경공부교재/거짓신앙체계

by 발의무리 2011. 4. 1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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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타락의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삶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이 타락하면 자기 중심적이 됩니다. 사실, 타락의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사탄의 타락과 자기 중심적인 삶

 

자기 중심적인 삶은 사탄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사야 14장에 나오는 계명성에 관한 내용을 사탄의 타락에 대한 내용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사탄은 원래 천사장 중 하나로서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피조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그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 원했습니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14:12-15). 물론 그 결과는 음부의 맨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높아지려 하는 자는 오히려 가장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타락, 이것이 바로 자기 중심적인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다는 말은 그가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 하나님이 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이처럼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의 본질이요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타락과 자기 중심적인 삶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시도하다가 지옥에 내리꽂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그는 하나님의 걸작품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을 시험합니다. 인간을 넘어뜨리려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사탄의 유혹 또한 정확하게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의 유혹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이 부분이 잘 나와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1-6).

인간 타락의 본질은 단순히 한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악과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타락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타락의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삶

 

사탄의 타락이나 인간의 타락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의 본질입니다. 타락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모든 죄의 원조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 없는 삶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인류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인 삶,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에 관해 예언하면서 인간의 타락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53:6).

 

성경은 하나님 없는 불신자들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1-3). 자기 타락한 마음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 그것이 정확하게 하나님 없는 불신자들의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의식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삶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의 본질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삶입니다. 거기에 아무리 많은 의식이나 희생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적인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삶입니다.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의 삶에서 우리는 그 점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종교적인 헌신이나 희생이나 열심히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예배와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1:4).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2:13).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성수주일을 잘하고, 십일조를 잘 드리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읽고, 금식을 많이 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할지라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철저히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는 생명의 고갈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는 하나님 생명의 풍요가 있는 반면에, 자기 중심적인 삶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생명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고갈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를 우리는 타락 이후의 아담과 하와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타락했을 때, 그들에게는 생명의 고갈이 즉각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타락하기 전,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8)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3:8-9).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과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타락 이전에 그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 말은 그들 사이에 온전한 화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로 그들은 부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대하여 불신과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3:7).

 

그들은 정서적으로 병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10). 사실, 마음의 상처와 병, 모두 자기 중심적인 삶의 결과들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내적 상처나 병이 치유되는 진정한 길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서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몇 가지 치유의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병들게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적당하게 둘러대고,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2)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13).

 

환경이 그들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 환경적인 고갈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3:16-19).

 

그들은 육신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19)...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22)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3:19, 22-23).

 

그리고 그들에게서 평안과 안식이 거두어졌습니다. 진정한 평안과 안식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 속에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타락할 때, 거기에는 진정한 평안이나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4).

 

우리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는 것으로 만족치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생명의 고갈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유는 특히 자기 중심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고갈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극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돼지는 더러운 짐승으로서 이스라엘 경내에서는 돼지를 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탕자는 그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 했으나 그것마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5:14-16). 그가 생명의 풍요함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돌아와야 거기에 생명의 풍요가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과 세상과 사탄.

 

자기 중심적인 삶과 세상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삽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기 중심적인 삶은 세상의 풍조나 유행이나 습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불신자들의 삶의 특징을 다루는 에베소서 2장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1-3). 보십시오. 하나님 없는 불신자들의 삶은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삶입니다. 정확하게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그 삶은 또한 이 세상 풍속을 좇는 삶입니다(2).

 

이처럼 자기 중심적인 삶과 세상은 분리할 수 없도록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집니다. 세상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 가치관에 있어서 안 믿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배후에 동일한 가치관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상태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의 경우에, 세상에서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 귀한 것을 얻는 방법, 세상에서 살아가는 목적과 목표와 방법 등은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그 말은 그 만큼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신앙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만큼 신앙이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신앙은 빛과 어둠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과 사탄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목적과 방법, 가치관 등이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또한 자기 중심적인 삶은 사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의 원조가 사탄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를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미혹한 것도 사탄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 없는 불신자의 삶도 보십시오.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삶,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은 한편으로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삶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을 따르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없는 불신자들이 모두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실제로 사탄을 숭배하고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수는 전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실제로는 사탄을 섬기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라고 대답해서 예수님께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예수님께서 앞으로 지실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16:22) 라고 말렸다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16:23) 라는 호된 질책과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럼 이 말은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자기 스승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할 제자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문제는 예수님을 말리는 베드로의 생각이 자기 중심적인 것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23). 그 배후에 사탄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인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결과적으로 사탄에게 이용당했던 것입니다.

 

역대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구조사는 국가적인 여러 가지 계획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조사는 자기 자원을 의지하여 서고자 하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서 나온 심각한 죄였습니다. 불신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에게 그렇게 인구조사 하도록 미혹한 것이 사탄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이처럼 매우 심각하게도 자기 중심적인 삶 배후에는 항상 사탄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은 사탄을 섬기는 삶입니다. 사탄의 목적을 이루는 삶입니다. 사탄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바리새인들에게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그들의 아비인 마귀의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1)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8:41, 44).

 

사탄과 세상과 자기 중심적인 삶(육신의 삶)은 마치 삼위일체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항상 같이 갑니다. 절대로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과 하나님의 심판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락한 삶입니다. 불신의 삶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삶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삶입니다. 결국 사탄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중심적인 삶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구조사를 한 다윗을 심판하셨습니다. “7)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9)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10)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1)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12)혹 삼 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대상 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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