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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성경공부교재/거짓신앙체계

by 발의무리 2008. 6. 2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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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어떻게 우리 신앙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인가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히 누구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서 그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의 자원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원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먼저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 신앙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세상과 죄를 이기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성취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신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신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세력을 멸하신 것을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 부분에서 좀 더 자세한 사항을 원하시면 새물결선교회에서 출판한 이길수 목사의 책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을 참조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서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을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 중 하나는 요한복음 6장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7). 여기의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인하여 사셨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자원으로 사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판단이나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주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몇 구절만 보아도 우리는 이 점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9).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0-11).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원수 갚는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셨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요 8:50). 다른 말로 해서, 예수님은 스스로 세우는 것을 철저하게 포기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셨습니다. “2)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 7:2-6).

 

부수적으로, 요한복음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오직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셨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선만을 의지하셨다는 점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7-18). 저는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이 구절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 의하면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의 선함을 부인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의 선함을 부인하셨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저는 몇 가지 주석들을 찾아보았지만, 설득력 있는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에게는 어떠한 죄도 없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선을 위해 자신의 선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의지하신 선은 오직 하나님의 선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사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의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셨다고 말씀하신 구절은 십자가 복음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3-57). 여기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6:28-29 참조). 그러면서 예수님은 순간순간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서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 거할 것이고(56절),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예수님의) 자원으로만 살게 될 것(57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만을 자기가 의지하는 선으로 삼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자기가 의지하는 능력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의 지혜만을 자기가 의지하는 지혜로 삼았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만이 우리가 의지하는 능력과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는 것이 십자가에 의한 삶입니다.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23-24, 30-31).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지극히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까지 와 있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살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으로 돌이켰더라면, 그들은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23)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19)...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

 

우리의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유일한 목적된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이 넘칩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런 목사님은 그 책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시작한다면 삶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삶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삶을 이해할 수 없다”(『목적이 이끄는 삶』, 22쪽).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몇 구절들을 보아도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49)예수께서 대답하시되...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50)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요 8:49-50).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요 12:28).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예수님은 특별히 아버지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어떠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목적을 위해 사셨습니다.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6-17).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여기의 “하여야 하리라”는 말은 영어로 “must do” 라고 번역될 만큼 “반드시 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사건과 관련된 구절인데, 여기서도 예수님은 나중에 이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놀라운 생명을 부으셨습니다.

 

먼저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그러한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예수님에게 허락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의 요한복음 5장 30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듣는 대로 판단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이유를 자신이 항상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추구하시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판단을 수시로 예수님에게 알려주시는 친밀함을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어 NIV 성경을 보면, 이 연결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By myself I can do nothing; I judge only as I hear, and my judgment is just, for I seek not to please myself but him who sent me.”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허락하셨다고 믿습니다.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항상 함께하시는 이유를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추구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시 영어 NIV 성경을 보면, 더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The one who sent me is with me; he has not left me alone, for I always do what pleases him.”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면, 자신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구하신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4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요 8:49-50). 영어 NIV 성경은 50절을 “I am not seeking glory for myself; but there is one who seeks it, and he is the judge(나는 내 자신을 위한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은 재판장이시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 8:54; 13:31-32; 17:1-5 등이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님의 영광을 구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구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삶

 

우리 신앙은 모든 면에서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삶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7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암 7:7-8). 7절에 나오는 담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담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세워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그들을 심판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을 가지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6). “22)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 7:22-23).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수 22:5).

 

특히 여호수아 22장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치고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요단 동편으로 보내면서, 그들을 향한 모든 신앙의 권면을 이 한 마디 속에 담아서 그들에게 당부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신명기 3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그것이 그 날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여 있던 그 많은 환자들 중 38년 된 병자 한 사람만 고치신 것과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슷한 종류의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각기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유를 위해 어떤 방법을 의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잘 한 사람 중 하나가 다윗입니다. 그는 매사에 자기의 판단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구하여 물었습니다. “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삼상 23:2, 4).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삼하 2:1). “19)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23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삼하 5:19, 23).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사무엘상 30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피신해 있을 당시 블레셋 족장들과 합하여 사울을 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다른 족장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냥 자기가 머물던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글락에 돌아오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 동안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범하여 모든 집들을 다 불태우고 자기들의 자녀들과 아내들을 포로로 잡아가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이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고 합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6)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 30:6-8). 만약 하나님께서 쫓아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참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처럼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윗도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큰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성으로 가져올 때였습니다. 역대상 13장에 보면, 그는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새로운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그 위에 싣고 나르게 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추며 온갖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소들이 뛰는 바람에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이를 본 웃사라는 다윗의 부하가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만졌다고 해서 그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모든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다윗은 심히 분을 내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중에 자기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수레에다 나르는 것이 아니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나르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가장 근본적인 잘못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에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대상 15:13). 영어 NIV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아주 선명하게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It was because you, the Levites, did not bring it up the first time that the LORD our God broke out in anger against us. We did not inquire of him about how to do it in the prescribed way.

 

우리의 참다운 신앙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자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삶입니다. 사실, 사역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다운 사역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자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의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사역입니다. 또한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 백성들의 손에서 건져내신 것을 보십시오.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원으로만 가능했습니다. 끝으로 우리의 사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동참한 뒤에, 그에게 그 일을 잘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짜서 실천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 일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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