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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거짓 신앙체계와 거짓

성경공부교재/거짓신앙체계

by 발의무리 2011. 4. 1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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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거짓 신앙체계와 거짓

 

거짓 신앙체계와 하나님의 말씀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타락하여 거짓 신앙체계에 빠지면, 올바른 말씀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거짓이 만연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삶에서의 거짓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거짓입니다. 그런데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거짓이 항상 먼저입니다. 거짓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삶에서의 거짓은 자동적인 결과입니다.

 

이 장에서는 바로 그 거짓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신앙이 지극히 타락했던 예레미야 시대의 모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 가지 매우 두려운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임했던 예레미야 시대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입니다.

 

거짓 신앙체계에서는 거짓이 가득합니다.

 

예레미야 시대는 신앙이 지극히 타락한 시대로서, 거짓이 매우 팽배했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몇 구절만 보아도 이 사실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5:31).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6:13).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7:8).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8:5).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8:8).

 

이 외에도 예레미야서에 보면,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거짓을 예언했다는 말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짓이 가득했다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 시대에는 거짓이 팽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시대이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곧바로 거기에 거짓이 가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의 의미

 

그럼 하나님은 무엇을 두고 그 시대에 거짓이 가득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물론 그들의 행실과 말에서 거짓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은 무엇보다 먼저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거짓이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거짓들은 모두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거짓을 말합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이 타락하면,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가 사라지고, 거짓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거짓이 그 뒤를 따라옵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짓이 가득하게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의 기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올바른 상태에 있는지 혹은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도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짓이 가득한 가운데 살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은 반드시 교리가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거짓을 이해함에 있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짓이라고 말씀하시니까, 그것은 반드시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말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분별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는 전적으로 옳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예에서 이 점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6장에 보면, 그 당시 하나님께서 무엇을 두고 거짓이라고 하셨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3)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3-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은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평강이 없이 온갖 상처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강을 외친 것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단순한 마음의 평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함께하심으로 인하여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 , 그리고 평강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평강을 외친 것은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평강을 외친 성경적인 근거 중 주된 두 가지만 들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와 자손에게 영원한 평강을 약속하셨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것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약속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왕상 2:33).

 

“9)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대상 22:9-10).

 

“5)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명기 12:5-7).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왕상 9:3).

 

다윗이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대상 23:25).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윗과 그 자손과 그 가문과 그 왕위에 영원한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세우시고, 그에게 평강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그곳에 영원히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솔로몬을 통해 그 약속을 이루시고, 그 모든 축복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에는 여전히 다윗의 자손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수많은 예배와 제사와 희생이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평강을 외쳐댔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에 기초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일부 백성들이 이미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즉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심판이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포로로 잡혀간 그들이 곧 돌아올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교리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전적으로 옳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2.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또 한 부분은 영적 분별력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리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 옳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철저한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짓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예레미야 시대를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은 그 당시 선지자들의 선포가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것들을 거짓이라고 하셨습니까? 사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 85절에서 11절을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5)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8)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8:5-11).

 

왜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메시지가 거짓이었나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의 관점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점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에게 놀라운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들에 근거하여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평강을 외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메시지들을 당연히 성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토록 강력하게 경고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관점이 무서운 것입니다. , 영적 분별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면,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메시지가 왜 거짓이었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과 다윗의 자손에게 영원한 평강과 나라를 약속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다윗을 통해서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물론 그 약속은 그 당시 실제적인 다윗의 자손들을 향한 약속도 됩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할 때에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보증이 아니라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 또한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처음부터 약속하셨습니다. 한 예를 들어,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신명기 125절에서 7절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서만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이후에 이와 비슷한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명기 12장 이하에서 그 부분을 말씀하시기 이전에 먼저 10장과 11장에서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의 토대 위에서 12장 이후에 나오는 의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16)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10:12-16).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 성전을 파괴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1)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2)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4)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7)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1-7).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어떠한 하나님의 생명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 어떠한 하나님의 평강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온갖 상처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우리를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분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코앞에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평강을 외쳐대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메시지는, 그것들이 나름대로 성경에 나와 있는 약속에 기초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것들인 거짓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도 않은 거짓을 예언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1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14:14-15).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이처럼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우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비슷합니다.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삶 속에 의식은 많을지 모르지만, 철저하게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목적을 위해 살아갑니다.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생명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 가운데서 걷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날 축복을 외쳐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외치는 말일지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철저하게 거짓입니다.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23:16-17).

 

거짓은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거짓의 심각성은 그것이 전혀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장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거하게 하리라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내가 너희를 이 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8)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7:1-8).

 

우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어 안식일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사실은 성경에도 수없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도 수백 년 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의심할 나위 없이 확고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여러분들은 소위 평화의 선지자들과 예레미야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믿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예루살렘 성전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말이 거짓이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머물러 계신 동안에만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그곳을 떠나신다면,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건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에만, 그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10장과 11장에서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12장 이하에서 의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에스겔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이미 그들에게서 걷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관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하고 계시는 성전에서 그 많은 제사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지켜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외쳐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대로 믿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은 그들이 거짓을 신뢰한다고 말씀하시고, 또 그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성전을 신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 거짓이 무익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7:8). 그렇습니다. 거짓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떠한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12).

 

그런데 이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질 때, 나타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자기 임의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선별적으로 취해서 아무리 그것을 주장하고, 전하고, 또 믿는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이며, 거짓에는 어떠한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하나님을 떠나 있는 백성들에게 성경에 나오는 좋은 약속들을 선별적으로 취하여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일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아무런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전한 거짓이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은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은 이것을 “vain repetitious babbling(헛된 반복적인 중언부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목회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두 분 목사님들이 기도를 하셨는데, 이상하게 두 분 다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약속들을 믿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외치고, 붙잡고, 전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곳에 함께 계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 약속들이 전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어떠한 실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서 걷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와 설교와 고백이 그저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동의, 어떠한 능력도 없는 반복적인 중언부언에 불과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에 정확하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기도사역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물을 퍼 올리는 데 사용했던 펌프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 펌프에 물을 조금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계속 펌프질을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 펌프 바킹이 탔습니다. 그러한 점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저에게 그런 것처럼 목회자들의 목이 타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줄기차게 외칩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말씀의 생명과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치 목이 타버린 것처럼, 목에서 뜨거운 바람만 나올 뿐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한편으로 오늘날의 상황을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짓이 팽배함.

 

거짓 신앙체계는 누룩과 같습니다. 조그만 누룩이 온 반죽을 다 부풀리듯이, 거짓 신앙체계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쉽게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거짓 신앙체계인 율법주의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짓 신앙체계가 확산되면서, 거짓도 아울러 퍼집니다. 그래서 거짓이 온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팽배하게 됩니다. 한 편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를 더욱 보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거짓이 팽배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거짓을 진리로 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정확하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몇 구절만 보아도 그 당시 거짓이 얼마나 팽배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6:13). 이 구절에 대해서 J. Bright Thomp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자''선지자'가 대구를 이루고 있고 '큰 자''제사장'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지자가 제사장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모든 성직자를 다 포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또 다른 구절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레미야를 대적한 것에 대해 다루는 구절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18:18). 이 구절을 영어 NIV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They said, ‘Come, let's make plans against Jeremiah; for the teaching of the law by the priest will not be lost, nor will counsel from the wise, nor the word from the prophets. So come, let's attack him with our tongues and pay no attention to anything he says.’” ,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제사장들의 가르침, 현인들의 상담, 그리고 선지자들의 선포된 말씀이 헛되지 않도록 예레미야를 대적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사장들이건, 현인들이건, 선지자들이건 총체적으로 거짓을 전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통해 전파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신앙체계를 누룩에 비유하면서, 그것을 바리새인의 누룩”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과 헤롯은 교리적인 면에서나 배경에서나 그 외 여러 가지 면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동일한 거짓을 붙들고 있었던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 2000년을 되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신앙이 타락한 시대일수록 이렇게 거짓이 팽배했던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거짓 신앙체계에 빠지면, 사람들이 거짓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짓 신앙체계에 빠지면,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들이 거짓을 좋아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5:31). 이사야 시대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9)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10)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30:9-11).

 

이러한 구절들을 읽을 때, 우리는 선뜻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럴 수 있나?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지.” 여러분은 진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거짓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으로 하는 말을 우리의 말로 여기십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그저 표면적으로 읽고 넘어가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의 배경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선 이사야 시대를 보십시오. 우리는 이미 이사야 1장에서 그들이 얼마나 안식일과 월삭과 모든 절기와 대회를 철저하게 지켰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수많은 살진 짐승을 희생으로 드렸습니다. 그들은 많이 기도하고 많이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이 진짜로 선지자들에게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정로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하여금 우리를 떠나시게 만들라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시는 분입니까? 그것 또한 가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18:11-12). 하나님은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을 때, “헛소리 마세요. 우리는 그냥 우리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인도에까지 가서 특별한 향품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3장에 의하면, 그들은 선지자를 만나거나 친구를 만났을 때 첫 마디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헛소리 마세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대답했겠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은 그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시는 분입니까?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다른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입으로 말하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행동으로 한 말을 우리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야나 예레미야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도 진리를 싫어하고 거짓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예를 들어, 오늘날 새로운 담임목사를 구하면서, 청빙 광고에 이렇게 싣는 교회가 있을까요?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짓을 전하는 목회자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메시지만을 전할 목회자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떠나시게 만들 목회자를 원합니다.” 그러한 교회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새로 부임한 목회자가 지속적으로 신앙의 본질을 전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전하자, 그 교회 성도들이 싫어하고 교회를 떠난다면, 그 교회는 실제로 하나님께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교회를 보십시오. 저는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사실조차도 모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거짓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메시지를 좋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부드러운 메시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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