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 빌립 011.7.17.(주저녁)
행8:26-31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함.
오늘 성령의 인도를 받은 한 사람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전도자 빌립입니다.
저는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 사탄? 답: 하나님의 자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 교인명부를 보면 알 수 있는가?
아니면 교패를 보면 알 수 있는가?
(롬8: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롬 8:1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 알 수 있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인생을 결정하고 움직일 때 성령님의 가이드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살아 갈 때 누구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사람들 눈에는 그 사람 자체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데 탁월하게 움직이며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인도?
자기 경험의 인도?
이러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탁월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느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당연히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왜 성도들이 욕을 먹고사느냐? 교회는 출석하지만 여전히 세상적 가치관으로 살아감.
우리의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지체들을 보는 관점도 여전히 자기 중심적임.
여전히 부정적임.
오늘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니까 우리의 계획이나 준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 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⑴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수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으로만 가능합니까?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이 오직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⑵ 성령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필수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노력으로 일구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만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필수입니다.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⑶ 성령은 우리의 사역을 위해 필수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우리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 우리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초대 교회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참다운 어떠한 사역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⑷ 성령은 우리의 예배를 위해 필수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배의 주관자는 성령이십니다. 예배는 우리들이 임의로 정해놓은 순서를 그저 매끄럽게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5)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성경에 여러분의 눈을 고정하십시오.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8:26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한 참 사마리아 부흥을 주도하고 있던 빌립에게 나타나셔서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가하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방향전환입니다.
행7장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가 나오며
행8장에 와서 예루살렘 교회의 큰 핍박이 일어나 사도 외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짐.
이 때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파합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음.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요약: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의 마음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의 가정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 큰 기쁨이 있더라 입니까?
사마리아 성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이렇게 사역을 잘하고 있는 빌립에게 성령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죠?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가라는 겁니다.
갑자기 방향전환을 말씀하심.
이해가 안 되는 인사 조치입니다.
승진이 아니라 좌천된 것 같습니다.
사역적으로 볼 때도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의 부흥의 불길에 찬물을 끼얻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행13장에도 나옵니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예)오이코스 아주 신납니다. 그런데 문제투성이 오이코스로 가라면...
다윗의 장막 인도하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 신남, 그런데 그 취약시간대에 섬기라고 할 때
이럴 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것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싫어해서 이러한 인사 조치를 취한 것 아냐?
내가 무능해서 잘 섬기지 못해서 그렇나?
별의 별 생각을 다할 것입니다.
3. 이 명령에 빌립의 반응은 즉시 순종합니다.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하느냐는 더 중요함.
여러분 하나님의 타이밍을 놓친 순종은 더 이상 순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언제 순종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그 때가 우리가 순종할 타이밍이요.
여러분 자장면이 배달이 왔어요. 그 자짱면 언제 먹어야 하나요?
불굴의 며느리 다보고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자기할 일 다 해 놓고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겁니다.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광야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려면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을 알아야 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만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똑똑합니다.
너무 계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성령의 인도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용량은 적은데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만 더 혼란스러워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은 이해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빌립이 즉시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면 내시를 정확한 타임에 만날 수 없었을 것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할 때 아이고 지금은 너무 힘들다고 쉬었다 나중에 하였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하십시오. 말씀하신 그 때가 순종할 때입니다.
4. 순종할 때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남
이 내시는 어떤 사람입니까?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
우리나라로 말하면 한 나라의 재경부장관,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제를 합쳐 놓은 인물.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8: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이 내시를 한 마디로 말하면 진리에 목말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성경보십니까?
이 내시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목말라 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목말라 하심.
그러니까 이 한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사역하고 있는 빌립을 투입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목말라하십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에 대하여 목말라하는 한 사람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목말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만나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한게 만나주시는지 보세요.
오늘 성경을 보면 빌립과 내시의 만나는 타이밍이 아주 절묘합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시고 빌립이 즉시 순종하고 달라온 시간과 내시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통과할 지점과 통과할 지점에 이사야53장 구절을 인용한 성경을 읽는 것과 그 타이밍을 딱 맞추신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 타이밍은 우연히 없어요.
에) 부산서 이사 올 때 절묘한 타이밍
빌립의 민감함, 민첩함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잡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 영성이란 하나님의 리듬에 춤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려면 방탕하지 않아야 합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는 술 취하면 방탕한 것이구나, 그러면 나는 술 먹지 않으니 방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방탕은 성령 아닌 다른 그 무엇에 장악 당한 상태
성령보다 마음을 이끌리게 한 것에 장악당한 상태가 방탕입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를 보십시오.
탕자가 왜 탕자입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서 탕자입니까?
그렇다면 만약 둘째 아들이 아버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서 몇 배로 남겼다면 탕자가 아닙니까?
탕자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탕자라는 겁니다.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방탕이요, 탕자입니다.
오늘 방탕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은 것이 방탕이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는 것이 방탕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는 것이 탕자요, 방탕입니다.
자기 멋대로 하는 것 - 더 큰 방탕입니다.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방탕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방탕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인생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그리고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면 의심하지 말고 가야합니다.
잘되는 사역을 버리고 광야 길을 가라고 하여도 낙담하거나 하나님께 삐지거나 의심하지 마세요,
찬송하며 들어가면 의외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찬야)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
빌립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프리카 저 큰 대륙의 복음화는 이 간단한 작은 사건 하나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작은 순종의 사건을 통해 아프리카의 복음화는 시작된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자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성을 듣는 사람은 바로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음성이 들리는 순간 순종을 원하십니다.
사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내 입맛에 맞게 오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을 이방인들에 대하여 대단히 배타적임.
자기 인종을 넘어가기 힘듦,
이방인들을 개취급하였음.
그런데 유대인의 피가 반쯤 섞여있는 사마리아 전도도 자기 딴에는 죽을힘을 다하여 한거예요. 자기 딴에는 굉장히 헌신한 것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완전히 이방인인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가라는 겁니다.
사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내 입맛에 맞게 오지 않습니다.
익숙하고 쉬운데 만 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항상 자기의 세계를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빌립은 항상 자기의 생각이나 계획을 뛰어 넘은 사람입니다.
빌립은 자기의 환경을 뛰어 넘은 사람입니다.
사마리아도 처음 빌립이 물고를 텄는데 에티오피아 내시도 빌립이 물고를 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남들이 가지 싫어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에 처음 물고를 터는 여러분들이 되길 원합니다.
빌립은 순종을 어떻게 했는가?
29, 30절을 보세요.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달려와 딱 보니 에티오피아 내시 행렬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29절에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The Spirit told Philip, "Go to that chariot and stay near it."
가까이 나아가라 -> 기회를 엿 보아라 .
행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지금 내시 마차를 타고 감 -> 마차는 말이 끌죠, 말은 사람 보다 빠르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는 아니 어떻게 사람이 마차를 좇아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마차를 좇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달려가는 사람이 되세요. 기쁘게 즐거움으로
정리
1.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2.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3.말씀하시는 때가 순종의 때입니다.
4.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내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즉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는 삶이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 같지만 어떻게 가능한가?
사40: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구절은 마치 독수리가 열심히 날개 짓을 해서 창공을 비상하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 172장(주께 가오니)
후렴: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주님 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 너무나 잘 못 된 것
어떤 성경 soar on wings like eagles (쏘오링 온 윈스 라이크 이글스)
쏘오링: 이 단어는 자기가 날개 짓 한다는 의미가 아님
이 쏘오링은 글라이더의 활공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글라이드는 자기가 날개 짓을 해서 하늘을 나는 도구가 아니잖아요.
글라이드는 날개를 펼쳐서 공기의 기류를 이용해서 나는 도구임.
이와 마찬가지로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를 때 자기가 날개 짓 해서 나는 것이 아니고 태양열이 땅을 비취면 공기가 따뜻해 짐, 그러면 그 따뜻해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독수리는 그 따뜻한 공기가 위로 상승할 때 그 상승 온난 기류를 찾아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승온난기류를 만나면 날개 짓 대신에 그 큰 두 날개를 펼쳐서 기류를 타면서 올라간다는 겁니다.
독수리는 나는 것에 굉장히 약한 조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독수리가 날개를 펴면 대약 2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육중한 날개 무개 때문에... 참새는 날개가 작기 때문에 자기의 날개 짓으로 날수 있지만 독수리는 너무나 무개가 육중해서 날개 짓을 하기 어려운 조류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의 날개 짓이 아니라 지구의 상승 온난 기류를 만난 것라는 겁니다. 그 기류를 만날 때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은 글라이딩처럼 쏘오링 창공을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독수리에 반해 참새는 자기 날개 짓으로 하늘을 나는 존재임
그런데 여러분 참새가 높이 납니까? 독수리가 높이 납니까?
참새는 자기 날개 짓으로 금방 지칠 수밖에 없어요.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지치고 탈진합니까?
우리가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고 애쓰면 애쓸수록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입니다.
자기의 날개 짓으로 날면 피곤하고, 곤비하며,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참새처럼 자기 날개로 파닥파닥 거리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우리 몸을 맡기고 날개를 펴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그 온난 기후에 내 몸을 맡기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한번 상승기류를 만나면 그 상승기류를 벋어나려고 하지 않듯 하나님의 은혜의 상승기류를 벋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부림이 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되길 원합니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폼을 잊어먹지 않기 위해 자면서도 폼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날개 짓으로 사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날개만 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날개 짓을 한두 번 해보셨습니까?
자녀를 위하여 날개 짓 한두 번 해보았습니까?
아무리 날개 짓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제 영적인 상승기류를 만나서 하나님이 주신 그 큰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참새 같은 몸부림으로 날 수 없었던 저 놀라운 창공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찬양이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펴 올라가 듯 나주님과 함께 이러나 걸으리 주의 사랑안에...
내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 (0) | 2011.11.07 |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행13:1-4) (0) | 2011.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