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가인의 삶 2014.2.23. 창4:3-8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지난 시간
타락한 아담 이후 인류는 두 갈래로 나누어짐
한 갈래 –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라인 -> 대표 아벨
다른 한 갈래 -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간 라인 –> 대표 가인
두 사람이 제사를 지냈는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심.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열납 하신 이유?
아벨이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님
아벨이 가인보다 더 잘난 것이 없음
아벨, 헤벨의 이름: 아무 것도 아닌 자
그러면 아벨의 제사를 연납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여기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진정한 재물은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바친 제물이 바로 양의 첫 새끼인 것입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렸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의인이었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를 드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함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지 그의 제물이 특별해서 그 사람이 뭔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연납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벨은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롬9:9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9:10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1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9:12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9:14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9:15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인간 측에서 어떠한 공로나 노력이나 열심도 하나님께 구원의 근거로 드려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구원됨
적용)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된 것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나 열심히 아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됨
그 믿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
이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믿음의 선물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이 재물이 되셔서 죽으신 삶
이 삶을 힌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벨의 죽음
그래서 성경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
따라서 우리도 아벨과 같이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섞이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성도는 늘 가인이라고 하는 세상에 늘 노출이 되어있는 사람들로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21세기의 가인들에게 늘 맞아 죽는 모습으로 살게 되어있음
사랑, 온유, 겸손, 인내, 절제, 용서, 섬김으로 보여 지게 됨
이와 반대로 가인의 삶은 어떤 삶인가?
1. 가인의 농사 하는 자 이었음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농사하는 것이 뭐나 어때서?
“농사하는 자” 히) 아바드 “땅을 섬기는 자” “땅에 노예가 된 자”의 뜻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아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음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이 있음
다시 말해 이 땅에 목메고 있는 자들, 이 땅의 힘이 자기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
돈,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자들..
이런 자들의 특징
가인과 같이 자신이 드리는 제사행위나 제물, 이 세상의 것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줄 알았음. 그래서 열심히 제사 드림. 자기 의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고 의지함(바리새인)
그러다가 뭐가 안 되면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를 죄인이라고 하느냐는 불만
예배 할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함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2. 고의적인 죄 된 삶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말하고” 개혁한글 성경에서는 “고하니라” “요메르”이라는 단어는 “말하다”라는 의미의 아마르 라는 동사의 미래 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가인의 재물을 열납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신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우 아벨에게 어떤 말을 했다는 겁니다.
한글 개혁성경에는 가인이 아벨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음
그러나 70인역, 라틴어 번역본 라틴 벌 게이트 성경 공동번역, 사마리어 오경에 보면
“요메르”라는 단어의 목적어로 “들로 가자”라고 기록이 되어있음
정확하게 번역하면 가인이 아벨에게 “들로 가자”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에 의하면 성경의 갈대아 번역본에서는 가인이 아벨에게 한 말의 내용이 조금 더 첨가 되어 있다고 함
갈대아 번역본에 따르면 가인이 아벨에게 자신의 불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함
나는 내세가 없다고 믿어, 상벌 같은 것은 없다고 믿어 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아벨이 거기에 동의를 하지 않자 시기하고 질투하여 들로 가자라고 꾀어내어 죽였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라고 합니다.
죽는 것이 성도의 삶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삶이 일어남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고의적 살인이었다는 것을 말함
민35장 도피성 – 우발적 살인자
민35: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이스라엘 – 살인자들이 도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라는 제도가 있었음
그런데 그 도피성은 레위인들이 거하는 성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레위인들에게 48개의 성읍을 주었는데 그중에 6개의 성읍이 도피성이 었음
이 6개의 성읍은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에서나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성읍이어야 함
도피성은 고의적 살인을 한자가 아닌 우발적 살인자들이 도망해서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살인자를 죽이면 안됨
그러나 그들이 도피성 밖으로 나오면 죽임을 당함
왜? 이스라엘 율법은 사람을 죽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피하여 숨은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들의 죄는 완전히 사해져서 밖으로 나와도 무죄한 자로 여겨짐
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됨, 만약 죽이면 죽인자가 또 죽게됨
하나님 앞에서는 똑 같은 살인임
왜 이렇게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나누는가
아담이후 모두는 다 살인자(미움, 시기, 질투, 비판, 판단, 후욕)로 살인자 -> 우리 모두는 사형
그 많은 살인 자중 얼마를 우발적 살인자로 간주해 주시기로 함
그리고 우발적 살인자를 도피성으로 피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도피성은 말씀드린대로 레위인들의 성이요, 레위인들이 사는 성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이스라엘 하나님께 바처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고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영적 이스라엘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발적 살인자들이 도피성을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레위인화 시켜버리겠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당신의 배성들이 이 땅의 원죄로 살인자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지만 그택하신 살인자들을 우발적 살인자들로 취급하여 레위인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으넣으셔서 그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발적 살인자들이 온전히 사면되기 위해서는 그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됩니다.
민35: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살인자들이 거하는 대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겁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도피성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발절 살인자 – 성도 우리를 우발적 살인자로 여겨주심
그래서 그들을 용서하는 겁니다.
창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보다 “라아” 정탐하다, 노려보다, 즐기다 – 의도적
창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가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기에 동생을 고의적으로 쳐 죽였는가?
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 다시 말해서 가인이 선을 행치 않았다는 말임
선을 행하다 체티버 - 유익하다 아름답다 옳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야타브의 미완료형
히브리어의 미완료형은 계속되는 진행이나 반복을 의미
이 말은 선을 행하는 것, 유익한 일을 하는 것,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중단 없이 계속 지속되어져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
그런데 70인역(LXX)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도 번역한 것, 예수님이 이 성경을 인용하심
L-50, X–10, X–10 이 70인역에서는 “선을 행하다” 야타브라는 동사가 예물을 올바로 바치다, 재물을 올바로 바치다, 올바른 제사를 올리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즉 선과 제사를 같은 것으로 봄
70인 역에서는 창4:7을 네가 재물을 올바로 바쳤다면, 올바른 제사를 드렸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올바로 재물을 바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없드리느니라
가인이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내 제사는 기뻐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 물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제물을 올바로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제사를 올바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하심
이렇게 해석하면 마치 하나님이 재물의 내용에 따라 받고 받지 않고 하는 것 같음
히브리 성경에서 재물을 드리다. 제사를 올리다, 선을 행하다, 옳은 일을 하다 라는 단어가 한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셔야함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 방식 – 선을 행하는 일과, 아름답고 유익한 일은 올바로 재물을 바치는 일, 즉 올바른 예배의 삶을 사는 것과 정확히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음
4:7 네가 선을 행하면 – 이 말은 네가 선을 행하고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행하면 이라는 뜻과 동시에 네가 올바른 재물을 드리면, 즉 올바른 예배를 하면 말을 동시에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어구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재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배의 이야기 인 것입니다.
올바른 예배와 선을 행하는 것이 같은 것인가?
인간의 “선” “토브”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함
하나님의 질서 아래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과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는 것이 선임
이것을 어기는 것이 - 악
가나안에 들어가면 다 죽여라 – 다 죽이는 것이 선
인간편에서의 선의 개념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이 그분이 세우신 질서 아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대우해 드리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 – 이것이 선이다.
자기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는 자리에 올려 놓고 그것을 대우해 드리는 것 – 워십(예배)
선과 예배는 정확히 같음
선을 행하는 삶과 예배하는 삶은 정확히 같은 것임
여기서 네가 선을 행하면 내가 왜 받지 않겠느냐라고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인 삶‘ 열심 있는 삶을 선이라고 하지 않음
선을 행하는 것과 올바로 제사를 드리는 것 올바로 예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라는 의미에서 정확히 같은 의미임
그런데 가인은 그러한 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가인은 여전히 자신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 같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것들로 하나님의 비위나 맞추고 있었던 사람임
근본 된 땅을 갈게 함 – 티끌에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킴
네가 나온 흙을 갈게 함
진정한 예배는 인간의 하나님의 크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인정하여 하나님 앞에 작은 자로 엎드려 항복하고 순종하는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예배였음
아벨 –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림으로 구원자의 도래를 기다리는 믿음을 보여줌
가인은 여전히 자신을 신뢰함 다른 구원자가 필요 없었음
그래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
하나님은 자기가 준비한 것을 감지득지 하여 받아 드셔야 한다는 확신과 함께 그렇게 한 것임
안 받으니 화를 냄 – 불신자들의 삶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랑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 – 가인의 삶
내가 한 일이 하나님께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함
이 땅의 모든 인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자신을 예배하는 자 – 아벨 (옛사람과 전쟁에서 -> 점점 성숙되어져 감 -> 양육, 지어저감(엡)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 가인
광양 60만 명이 죽고 옛사람-> 새사람 60만 명이 민수기에서 가나안에 들어감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는 죽은 것입니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임
내 것을 비우는 삶을 살게 됨
주님이 오늘 나를 부르셔도 그분 앞에 기쁘게 갈 수 있는 삶
이 삶이 예배자의 삶 – 아벨의 삶
여전히 자신을 예배하는 자의 삶 – 가인의 삶
이 삶을 우리가 살아 내어야 한다.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 종말에 란 뜻
왜 최초의 예배에 대해서 기술한 창세기에 요한계시록의 언의인 종말이란 어구가 나올까요?
왜냐하면 예배란 종말을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인류는 딱 두 부류
자신을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타락한 아담의 후예들은 모두다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임
그런데 중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생김
이 말은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이 어떤 무리와 완전히 구별되어 나머지는 유기되었다는 표시임 – 이것이 심판이고 종말에 일어날 일이다
그래서 예배를 이야기하는 처음에 종말이라는 말이 나옴
그러면 우리가 모여 공적인 예배를 드리던가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제 선택과 심판으로 갈라져서 영원히 분리가 될 종말이 왔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그때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 까지를 우리가 말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심판을 선포하는 겁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사는 이 세상에 어떠한 한 무리가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것은 그 세상과 자기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에 일어날 일인 것입니다.
예배는 종말을 품고 있음
여러분이 각자가 속한 처소에서 예배자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의 악이 여러분의 선한 삶과 대조가 되어서 폭로가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
아벨의 행위는 선하고 자기는 악하기 때문
그러면 보고 배워야 하는데 이 세상은 악당들은 죽여 버리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예배의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악하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악에게 당하는 모습으로 이 땅을 살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인에게 계속 맞아 죽음으로 해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할 근거를 얻으시는 겁니다.
가인의 삶
오늘 본문은 인류최초 살인에 관한 내용
성경이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살인이라는 것이 어떠한 죄이며 어떠한 근원에서 출발한 것인가를 설명해서 우리 성도의 삶 속에서 살인의 행위를 도려내도록 하기 위함
단순히 물리적 살인을 말하는 것이 아님
살인이 도대체 뭐길래 인류 최초의 죄를 살인으로 규정하여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인가
성경에서 가장 심각하게 경고된 범죄가 바로 살인죄입니다.
신약에서 십계명의 제 4계명 까지를 대신윤리라고 칭하고 5-10계명까지를 대인윤리하고 말함
대신윤리는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를 말하고
대인윤리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를 말함
5-10계명의 대인윤리도 두 가지로 분류가 됨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적극적인 권고인 반면에
6-10계명은 이러이러한 것을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 경고의 메시지 중 가장 첫 번째가 뭐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민수기에는 살인자에 대한 경고가 더욱 무시하게 나와 있음
민35:29 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 35:30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5: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그런데 예수님은 살인은 물리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것뿐만 아니라 이러 이러한 거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죠?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주님은 이것이 살인이라는 겁니다.
주님은 형제에 대해 노하는 것,
라가라 하는 자 아람어 – 머리가 텅빈, 골빈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업신여기는 것을 살인이라고 합니다.
살인으로 간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요한도 똑 같이 말합니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형재를 미워하는 자는 가인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다 다 가인입니다.
살인자 들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들은 살이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떠난 죄인들은 이제 어떡하던지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남을 밟는 것이 그들의 삶의 원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삶 전체를 살인자의 삶, 가인의 삶, 가인의 길에 행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살인자의 삶에 대표적인 나타나는 징후가 뭔지 보자는 겁니다.
살인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이다.
우리 안에는 가인이 들어있지 않나 말씀을 통해서 보아야 함
살인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대표적 첫 번째 징후
시기와 질투이다.
가인이 왜 아벨을 죽었나요?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이것이 살인인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그 자체가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겁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왜 죽이려 했나요? 질투 때문에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왜 죽이려 했죠? 질투 때문에
요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1: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자기를 믿으면 안되나요? 질투죠
요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질투, 질투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왜곡 시키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 바로 질투심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절대 질투심을 갖지 않아요.
질투심이란 어떤 면에서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갖는 감정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기보다 나은 모습이 보일 때 그를 제거하고 싶어지는겁니다.
그 마음을 질투라고 하는 겁니다. 젤러시
여러분 이것이 살인의 동기요 바로 질투 자체가 살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살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안에는 이러한 가인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보다 나은 자들을 향한 태도는 – 축복하고 나도 닮아가는 것
가인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았을 때 도대체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내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지 않으신지 저 내 동생 아벨의 예배는 뭐가 다르기에 기뻐 받으시는지
질투와 살인으로 굴러가는 것이 세상
이러한 세상 앞에 하나님의 백성들은인 아벨은 계속 맞아 죽어야 해요
시73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때려 죽이고 계세요? 아니면 맞아 죽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누구를 심판하고 계세요? 아님 심판을 당하고 계신가요?
비판(판단, 후욕)을 하고 계세요, 아니면 비판(판단, 후욕)을 당하고 계신가요?
2. 살인자인 가인들이 품고 있는 살인의 동기는 분노이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가 왜 분노하냐?
너가 왜 나에게 분노하니? 라고 애기하는 겁니다.
인간의 분노는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라는 겁니다.
분노는 정확히 말하면 결국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분노, 이것이 하나님이 경계하시는 분노라는 겁니다.
의분도 있어요, 거룩한 분노도 있어요.
창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인간의 분도가 소 발목의 힘줄을 끊더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왜 분을 내죠?
그것은 우리가 분을 낼 자격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런 겁니다.
밀양
분노가 표면적으로는 그 자기 아들을 유괴해서 살인한 그 남자에게 나타난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임 – 하나님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인간의 분노는 결국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만들었느냐
어떻게 이런 상황을 나에게 허락했느냐는 겁니다.
이것이 분노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분노라는 건 결국 하나님을 향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분노는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품어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살해한 행위
하나님을 살해한 가해자들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노를 품어야 해요
분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해자입니다.
분노는 피해자가 품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행위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리에게 그 분노를 거두어가셨습니다.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분노를 다 쏟아 부으시고 이 분노를 가져가 버리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었으니 그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라면 나에게 분을 품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나에게서 거둬 가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분을 품을 만한 상황이나 사람들이 주어진다라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살해한 결과 그 죄인들에게 품어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금 맛배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질병, 가난, 전쟁
이것이 분을 내지 않는 길
분을 습관적으로 내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가 어떻게 자기에게서 벗겨졌는지 그 복음의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일만달란트
질투, 시기, 분노는 살인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노케 하는 상황들과 사건들과 이웃들을 허락하실 때 그것들을 여러분의 영적 성숙의 유용하게 쓰세요.
이것이 성도의 훈련인 것입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는 노하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함
이 말은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로 회복되지 못한 증거다. 라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분노케 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분에게서 거둬가신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자주 분노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여있다는 증거입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이거하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것 하는 겁니다.
이렇게 질투와 시기와 분노로 야기되는 살인은 모든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죄의 문제인데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매일같이 살인을 해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언제든지 자기 형제를 향해서 미련한 놈이라 욕을 해고, 라가라 하는 이들이 죄인된 삶이라면
그런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분노에서 구출되었다는 우리가 그들과 똑 같은 삶을 산다면 이것이 어찌 구원받은 자의 삶이 겠느냐 그 말 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만사형통,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내가 여전히 시기하는 자, 질투하는 자, 분노하는 자, 살인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자로서 사랑하는 자 용서하는 자, 온유한 자로 지어져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자꾸 사랑해보고 용서해보고 인내해보고 감싸않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고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때 흘린 눈물을 내가 닫아주마 한 것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인 것입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런데 이런 흘린 눈물이 있어야 닦아주죠.
이것으로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자기 신세 한탄하며 물지 말구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 가는 양육되어져가는
나를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어져가는 한 주 되기실 축복합니다.
그때에 우리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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